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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논문.평설

수석에서 보석을 캐다 / 정태종 수석시조집 해설

by 시조시인 김민정 2024. 5. 25.

<정태종 수석시조집 해설>

 

내면의 아름다움까지 추구한 수석시조집

 

김민정(시조시인, 한국문인협회부이사장)

 

1. 청송 화문석 수석에서 찾아낸 수석 노래

 

청송의 꽃돌은 일단 겉으로 문양들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돌 속의 문양을 돌을 깎아 찾아내야 한다. 원석을 가공하여서 만드는 것이다. 그 돌 속에 어떤 문양이 들었는지 겉만 봐서는 알 수 없다. 돌을 깎아 보아야 문양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원석 속에 들어 있는 온갖 오묘한 문양들이 신기하고 아름답다. 자연석을 즐기는 사람들은 가공석을 수석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꽃돌은 일단 피부가 매끄럽고 문양 자체가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 특히 꽃문양이 많아 화문석이라고 한다. 그래서 인기도 높은데, 정태종 시인은 화문석에다가 시조까지 곁들였다.

 

볼록한 젖 몽우리 부풀고 부풀더니

불꽃처럼 활짝 터져 감당 못할 넉넉함

맙소사 팜므파탈의 치명적인 신여성

 

혜성처럼 나타나 온 마음 뺏은 여왕

끊어내듯 후두둑 꽃잎을 떨구던 날

아서라 그리움 하나 던져놓고 간 여인

 

온 마음 아리도록 기나긴 침묵 끝에

약속처럼 다시 핀 검은 줄기 낙양화

오로지 한마음으로 별을 낳는 꽃 중의 꽃

 

낙양화: ‘모란을 달리 부르는 말

- 목단의 침묵전문

 

목단의 침묵은 소품의 수석이지만 아름답다. 목단은 모란이라고도 한다. 수석문양에 나타난 문양을 목단이 활짝 핀 모습으로 보고 쓴 작품이다. 목단은 꽃 중의 왕이라 한다. 그런데 향기가 없어 그림을 그릴 때 벌과 나비를 함께 그리지 않는 꽃이기도 하다. 목단의 우아함을 꽃 중의 여왕으로, 그리움 하나 던져놓고 간 여인으로 표현하고 있어 수석의 아름다움과 목단의 아름다움을 함께 느끼게 하는 시조다. 실제의 꽃은 피었다가 5월이 지나면 져서 아쉬움을 남겨 김영란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란 작품을 생각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수석 속의 꽃은 5월이 가도 오랫동안 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약속처럼 다시 핀 검은 줄기 낙양화/ 오로지 한마음으로 별을 낳는 꽃 중의 꽃라고 하여 목단 문양의 수석을 찬양하고 있다. 시인의 마음에 기쁨을 주는 돌꽃임에 틀림없다.

 

목탁 소리 개화하는 순백의 화안 앞에

흔들리는 불심으로 헛꽃만 피워왔던

내 마음 들켜 버리고 고개 깊이 숙이네

 

화안(花顔): 꽃처럼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

-불두화전문

 

이 시조집을 통해 볼 때 정태종 시인은 부부애가 상당히 좋아 보인다. 늘 아내가 남편의 취미를 도와주고, 남편에게 수석선물도 자주 한다고 한다. 아래 작품 설명에서도 집안에 두면 집안이 화목해진다는 불두화 모양의 화문석을 선물했다고 한다. 정태종 시인은 이 시조집에서 수석에 시뿐 아니라 간단한 설명까지 붙여 수석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하고 있다. 불두화처럼 탐스럽고 둥근 문양의 화문석을 노래한 작품이다.

이 수석과 그 설명을 보면서 언제나 밝고 긍정적인 마음을 지닌 정태종 시인의 근원을 알 것 같다. 늘 자신을 긍정해 주고 취미조차 거들어 주는 착한 아내가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갖게 한다.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시조인이다. 가정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이다. 가정에 근심이 있으면 사회에 나와서도 가정 걱정 때문에 일을 잘 못하는 법이다. 더구나 불두화란 이 작품으로 등단까지 했다고 하니 부처님이 복을 내리신 것인지 화문석이 복을 내린 것인지, 아내가 복을 불러온 것인지. 복이 있는 수석임에 틀림없다. 집안에 꽃이 있으면 좋다고 하는데 지지 않는 꽃을 여러 점 집안에 두니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슬에 멱을 감고 서리에 잠이 깨어

꽃 눈썹 층층이 익어가는 무리들

와르르 토해내는 꽃말 몽실몽실 부푼다

 

햇빛에 바투 서서 수줍은 꽃송이

빛깔로 덧씌우고 향기로 감추지만

군자의 고고한 기품만은 숨길 수가 없구나

 

한겨울 찬바람에 무정한 세월 따라

달빛에 서성이고 햇빛에 스러지며

수줍어 수줍어하며 꽃잎 떨고 있구나

- 국화의 한 살이전문

 

꽃돌의 산지는 주로 청송과 영덕이다. 특히 청송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지질공원이다. 꽃돌은 용암이 지표면으로 올라오는 과정에서 용암 속의 성분에 따라 중심부와 바깥 부분이 서로 다른 속도로 식으면서 화려한 꽃을 만든다고 한다. 국화, 무궁화, 해바라기 등이 많다. 작가는 이 국화문양의 수석 앞에서 자주 숙연해진다고 한다. 그 이유는 기품이 있고 질서가 있어서라 한다. 국화는 예부터 의리가 있는 선비를 나타내는 꽃으로 오상고절이라 불렀고 선비들이 좋아했던 꽃이다. 추워지기 시작하는 계절, 모든 꽃이 지는 계절에 홀로 피는 꽃이기 때문에 지조가 굳은 선비같은 꽃이라 보았던 것이다. 우리는 마음이 쉽게 변하지 않는 지조가 굳은 사람을 우리는 예부터 좋아했던 것이고, 정태종 시인의 마음에도 그런 정신이 깃들어 있어 이 꽃을 보면 숙연해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시인이 사물을 바라보는 마음이 바로 그 시인의 정신세계이기 때문이다.

 

혹한의 바람 속에 속마음 감추고

꽃바람 갈바람에 꽃 가슴 터트리는

저것은 지조와 절개 우아한 내숭 떨기

 

무엇을 바라는가 어디를 향하는가

통째로 후두두 둑 댕강댕강 잘라내듯

저것은 검붉은 고백 어여쁜 결별 잔치

-동백꽃 고백전문

 

이 수석의 문양은 동백꽃이다. 그림을 그려서 붙인 듯 선명한 동백꽃 문양을 보고 쓴 시조다. 평생 떨어지지 않고 결별하지 않기를 바라며 동백꽃 문양의 돌꽃에 시조를 쓰고 있다고 정태종 시인은 말한다. 이 시조 역시 혹한 바람 속에서도 꽃가슴 터트리는 지조와 절개를 지닌 꽃임을 말하고 있다. 또 질 때는 지저분하지 않게 꽃송이 채 댕강댕강 잘라내듯 지는 꽃이다. 그래서 시인은 둘째 수에서 무엇을 바라는가 어디를 향하는가/ 통째로 후두두 둑 댕강댕강 잘라내듯/ 저것은 검붉은 고백 어여쁜 결별 잔치라며 수석의 문양을 떨어진 동백꽃 문양으로 표현하고 있다.

정태종 시인의 화문석 수석에는 꽃중의 왕이라 할 수 있는 목단, 가정의 평화를 가져온다는 불두화, 고절의 선비를 나타내는 오상고절의 국화, 또 추위 속에서 가장 빨리 피는 꽃 중의 하나인 동백꽃 등이 있다. 모두 아름다운 꽃이고 덕을 지닌 꽃들이며 시인은 이 수석에 대한 것들을 노래하고 있다.

 

분 단장 곱게 하고 열 손가락 옥가락지

벽류 속 바위 위에 원수의 석화 되어

수천 년 지지 않는 꽃 푸른 줄기 붉은 꽃

-촉석루에 핀 꽃전문

 

바닷가 해녀의 집에서 구입했다는 이 수석은 꽃돌은 아니지만 원석을 가공하여 마는 수석이다. 가공하고 보니 생각지도 않았던 촉석루와 남강의 문양이 나왔다고 한다. 수석을 자세히 보면 중간에 기와집처럼 생긴 문양이 보인다. 시인은 이 집을 촉석루라 생각하고 촉석루의 절개 굳은 논개가 바닷가 해녀로 환생한 것은 아닐까 상상하고 있어 재미 있다.

 

2. 형제애, 가족애, 인간애 등을 표현한 인상석에 대한 수석 노래

 

젊은 꿈 만경창파 수평선 위에 싣고

앞서고 뒤따르다 나란히 어깨동무

태풍도 으뜨무르차 형제애 으라차차

 

으뜨무르차: 무거운 것 상대하기 힘든 것 상대할 때 내는 소리

-형제도전문

 

두 개의 봉우리를 가진 산수경석을 보면서 시인은 형제애를 생각하고 있다. 이 수석을 보면서 작가는 동기간의 사랑과 서로에 대한 겸손으로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정태종의 수석시를 읽다가 보면 삶에 대한 교훈을 수석에서 참 많이 찾아내고 있다. 수석에 대한 감상을 통해 시를 쓰면서 수석에서 끊임없는 교훈을 얻으며 그 교훈을 자신의 삶에 적용시켜 더욱 풍요롭고 긍정적인 생활이 되게 한다는 데 정태종 시인만의 수석사랑이 있다.

 

신선의 뮤지컬인가 선녀의 오페리인가

테너와 소프라노 마주 선 두 봉우리

아리아 폭포수 향연에 멈춰버린 내 심장

-사랑 폭포전문

 

이 작품은 제목이 사랑폭포라 하여 폭포에 초점을 맞추었으나 오히려 폭포를 가운데 둔 두 바위문양이 사람의 형상을 닮아 있다. 어쩌면 남과 여의 모습이고, 폭포는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사랑의 감정이 아닐까 싶다. 작업스토리에서 말하듯 부부가 포옹을 하고 그 사이에 사랑이 흐르는 느낌이라 인상석에 포함시켜 보았다. 환갑 때 사랑스런 아내가 선물로 준 수석이라니 더욱 그렇다. 남편의 취미를 인정해주는 아내의 모습도 이 수석만큼이나 아름답게 느껴진다.

 

식은 밥 한 그릇에 참기름 한 술 뿌려

손으로 얇게 눌러 노릇노릇 구워낸

고소한 누룽지의 맛 울 어머니 손맛 탱

 

밥 퍼낸 가마솥에 누룽지 익는 냄새

큰 주걱 든 어머니 누룽지 긁어모아

오종종 모여든 육 남매 입안에 한 덩이씩

 

세월이 좋아져 누룽 솥 플러스

간편한 누룽지 넙디기에 감탄해도

도무지 잊을 수 없는 누룽지 맛 엄마 맛

 

* : 작은 물건이 탄력 있게 튀는 소리 또는 그 모양

* 누릉솥 플러스: 온도센서와 타이머가 있어 내가 원하는 온도와

시간으로 누룽지를 구울 수 있는 누룽지 제조기

-어머니의 누룽지전문

 

이 수석을 보면서 화자는 어머니의 누룽지를 떠올리고 있다. 자식에게 어머니만큼 소중한 존재가 없듯, 정태종 시인에게도 어머니는 지고지순한 여인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엄마가 떠오른다고 한다. 그 뿐 아니라 마음도 따뜻한 여인이었고, 구수한 여인이었고 푸근한 여인이었다는 것이다. 그 어머니가 긁어주시던 누룽지, 여인의 모습과 누룽지의 모습이 함께 나타나는 누룽지를 보며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볼 수 있다. 화자에게 누룽지는 바로 엄마의 손맛이었다고 한다. 긁는 소리가 하나의 리듬이었고, 자녀들의 입에 넣어주던 누룽지는 사분음표였다고 하는 시인의 아름다운 마음이 들어가 있다.

 

땅을 열고 고개 내민 별을 캐는 아낙네

호미 잡고 끝없는 은하수를 바라보며

물린 젖 억지로 떼 내고 돌아앉은 어미 심정

 

오뉴월 땡볕에서 고랑마다 별이 눕자

아낙의 손끝에 새파랗게 풀물 든다

정오의 목마른 태양은 더디게 지나간다

 

고랑을 긁는 심정 아는지 모르는지

손톱 밑에 고이는 새까만 모정

하루해 길고도 멀어 부푼 젖만 아프다

-김을 매는 아낙네전문

 

김을 매는 아낙네 문양을 닮은 수석에서 시인은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있다. 밭에서 김을 매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노래한 것이다. 뙤약볕 속에서도 수건을 머리에 둘러 햇볕을 가리며 호미로 밭을 매고 풀을 뽑는 어머니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어머니는 그렇게 별을 캐고 계셨던 것이다. 하나의 수석 문양 앞에서 땡볕 속에서도 밭을 매며 고생하시던 어머니를 떠올리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기쁜 날에도 울적한 날에도 이 수석 앞에서 마음의 평온을 찾는 정태종 시인은 효자의 곡진한 마음과 긍정적인 모습을 잘 드러낸다.

 

가녀린 긴 목 따라 사라진 양쪽 팔

한발로 무게 잡는 콘트라포스토 S자 육감

오호라 1:1.618 황금비율 밀로의 비너스

 

콘트라포스토: 몸의 무게 중심을 한쪽 다리 즉 뒷다리에 둔 포즈

-섹시한 여신전문

 

수석의 문양이 섹시한 여인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제목인 것 같다. 황금비율의 비너스상을 만난 듯이, 시인은 기뻐하고 있다. 작은 수석 하나에도 마음을 빼앗기며 사랑하고 있는 정태종시인의 마음이 잘 나타난다. 30여 년 수석을 했으니 그 수석사랑을 알 수 있을 듯하나, 밤잠을 설치면서까지 수석을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변함없는 애석의 마음이 이 작품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반야에 잔등 켜고 푸른 달빛 반주伴奏 삼아

가슴을 후벼 파는 진혼의 곡성 같은

구슬픈 여인의 선율 일촌간장 다 녹인다

-피리 부는 여인전문

 

피리 부는 여인은 피리를 불어 잠 못 드는 영혼을 달랜다고 한다. 깊은 밤 여인의 피리 소리는 수석을 뚫고 가늘게 흘러나와 화자를 잠 못 들게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가슴을 후벼판다고 했으니 잠 못드는 화자일 것이고, 구슬픈 피리소리가 일촌간장을 다 녹인다고 하니 그 소리의 애달픔에 잠 못 들고 피리 소리를 듣고 있는 듯 하다. 수석 속의 피리부는 듯한 문양을 보고 화자는 그 속에 깊이 빠져든다. 수석속의 여인의 피리소리가 독자의 귓가에도 곧 들려올 듯 하게 표현하고 있다.

 

잉태의 아름다움 그 어디에 비유할까

청잣빛 하늘 이고 태교의 즐거움에

출산의 기쁨을 맞는 조물주의 신비로움

- 만삭의 여인전문

 

남녀가 만나 사랑하고 2세를 낳아 대를 이어가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신성한 의무이기도 한데, 아이를 낳지 않고 둘이만 잘 살다 가자는 주의가 우리 사회에 팽배하고 있다. 교육비가 너무 많이 들고, 아이를 키워줄 사람도 마땅치 않아서라고 한다. 선진국일수록 더욱 그러한 현상을 보인다고 한다. 젊은이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해결될 문제인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은 만삭 문양의 수석을 보고, 실제의 만삭 여인을 만난 듯 기뻐한다. 그 여인이 태교를 위한 준비운동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출산을 언제할지 모르겠다며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수석을 감상한다고 한다. 수석을 생활 속에, 자신의 삶 속에 완전히 스며들도록 하는 시인의 태도를 매 시조마다 발견한다.

 

엄마를 닮았을까 아빠를 닮았을까

열 달이 지겨워서 쪼그리고 앉아

언제쯤 세상 구경 나갈까 기다리네, 첫 만남

-태아의 기다림전문

 

태아를 닮은 수석, 이 시 속의 화자는 태아자신이다. 그 태아가 엄마의 뱃속에서 자신이 엄마를 닮았을까, 아빠를 닮았을까 궁금해 한다. 그리고 쪼그리고 앉아서 기다리는 열 달을 지겨워한다. 어서 빨리 세상 구경을 나와서 첫울음으로 첫 만남을 하고 싶은 태아가 자신의 심정을 표현한 작품이라 재미있다. 화자가 태아라는 점이 이 작품을 신선하게 한다.

 

선방에 앉은 스님 좌선 수행 삼매경에

불청객 졸림 손님 느닷없이 찾아 왔네

어쩌나 졸음과 겨루는 안쓰러운 수도승

-졸고 있는 수도승전문

 

남한강 수석으로 시인은 이 수석을 수행하는 스님으로 보고 있다. 선방에 앉아 좌선 수행을 하는 스님에게 졸음이 찾아오고 그 졸음을 쫓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수도승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하나의 수석을 보면서 나름대로 상상해 가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보는 이마다 달리 볼 수 있는 것이 수석이다. 자기가 보는 것을 어떻게 표현해 내고, 독자에게 공감이 가게 하는 가에 따라 좋은 수석으로, 좋은 시로 평가받을 것이다. 시인의 개성 있는 안목으로 재미있게 표현한 수석시다.

 

신나는 공놀이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구르는 공을 따라 힘찬 발길 매번 허탕

또다시 마음만 앞서 발이 먼저 공은 뒷전

-헛발질전문

 

어린 손자가 공은 차며 인생을 배워가는 모습으로 생각한다. 수많은 연습인 헛발질의 이 반복되면 hot’이 된다고 화자는 생각한다. 진짜 제대로 뜨거운 발을 한 번 차기 위한 헛이기에 수많은 발질은 헛발질이 아니라는 거다. 세상은 마음만 앞서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지만 그래도 작은 뜻이 이루어지고 이루어져 큰 뜻을 이루었을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고 화자는 말한다. 인생은 정답이 없는 것이고, 자기의 목표에 대해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어느 사이 그것에 도달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화자는 이 작품을 이라는 계단을 밟아가는 손자 손녀들에게 남겨주고 싶다고 한다. 이 수석에서 교훈을 얻도록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도 자신만의 삶이 아닌 후대로 이어지는 삶을 그리는, 가족과 자손을 생각하는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참 따스한 감정을 가진 시인임을 알 수 있다.

 

덩어리 뭉개도록 건너온 나그네여

속절없는 세월에 돌아보면 무엇하리

한 자락 비바람처럼 바삐 왔다 갈 뿐인데

- 인생무상전문

 

인생은 늘 돌아보면 무상하다. 무엇을 남기고 왔든, 남기지 않고 왔든 늙으면서 점점 자신의 에너지가 소모되고 그러면서 언젠가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우리는 인생이 허망함을 느끼게 된다.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는 것은 인생은 살아내는 하나의 과정임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만이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누구나 겪는 공통된 감정일 것이다. 수석 앞에 앉아 많은 생각을 한다는 시인, “나는 누구이며 삶이란 무엇인가?” 이 말은 누구나 갖고 사는 화두의 하나일 것이다. 인생은 끊임없이 자기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달빛도 숨을 죽인 절간의 깊은 밤에

한 줄기 향 내음이 법당을 무화하고

먹먹한 염불 소리만 심장을 파고든다

 

무화(武火): 활활 세게 타는 불

-염불 소리전문

 

작은 수석, 그러나 스님을 닮은 인상석이기에 아주 큰 수석을 만난 듯 기뻐하는 시인이다. 스님과 마주 앉아 큰 이야기를 나누려고 생각하는 시인이지만 스님은 묵언 수행 중이고, 덩달아 시인도 묵언 수행하는 밤이었다고 밝힌다. 스토리를 보면서 이 내용도 그대로 시에 스며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시로 표현해도 좋을 내용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상대적으로 시가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단시조인 이 작품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이 작품은 단시조지만 단아하고 아름답다. ‘달빛도 숨을 죽인 절간의 깊은 밤에/ 한 줄기 향 내음이 법당을 무화하고/ 먹먹한 염불 소리만 심장을 파고 든다고 한다. 시에서는 고요한 절마당이 생각나고 향불만이 타올라 향내음이 진동하는 듯한 절마당에서 말없이 합장하며 기도하는 스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조지훈의 시 승무를 연상하게도 하는 한밤 중 고요한 절간과 경건한 기도의 모습을 시화한 시인의 능력이 돋보인다.

 

억겁의 세월 속에 할퀴고 깎이면서

다져진 내면 아이 윤나는 돌갗에서

놀래라 미켈란젤로 되살려 낸 환영?

 

그것은 태초부터 돌 속에 존재했던

신들린 온몸과 춤추는 열 손가락

서서히 세상 밖으로 현현하는 연주곡

-피아노 치는 돌 그림전문

 

하나의 돌에서 문양과 형상을 발견하고 이름을 부치고 가치를 부여하는 일, 거기다가 시까지 입혀주는 일, 그럴 때 그 돌은 수석으로 더욱 빛을 발한다. 말 없는 수석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면 수석을 볼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하다. 세상은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한다. 수석에서 미를 발견하고 그 미에 맞는 시까지 입히려면 먼저 수석가의 안목이 높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시인은 미에 대한 안목이 있는 수석가다. 수석 속에서 희고 검은 건반 위에 피아노를 치는 소년의 문양을 발견하고, 미켈란젤로가 그린 그림인 양 표현하고 있다. ‘신들린 온몸과 춤추는 열 손가락/ 서서히 세상 밖으로 현현하는 연주곡이라며 돌 속의 피아노 연주 그림에서 연주하는 피아노곡이 금방이라도 귓가에 들려올 듯 표현하고 있는 재주가 놀랍다.

 

두 눈이 휘둥그레 벌어진 커다란

무엇을 보았을까 어떤 걸 상상했나

뚝뚝뚝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눈물

-놀람둥이전문

 

햇빛을 바라본 모든 순간이 수련이고

핏덩이처럼 칼처럼 걸린 구름은 절규되고

너와 나 마주친 순간 외마디 언어의 포옹

-절규전문

 

두 작품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사람을 닮은 것을 인상석이라 하는 데, 놀람둥이는 어떤 일에 놀란 어린이를 표현하고 있다. 놀람은 기뻤을 때도, 슬펐을 때도 있는데 시인은 기쁨의 눈물을 금방이라도 터트릴 것 같다고 한다. 긍정적 시각이 그의 시 전편을 흐르고 있다.

절규뭉크의 절규같은 인상석이다. 수석을 보는 순간 절규를 떠올리고, ‘너와 나 마주친 순간 외마디 언어의 포옹이라고 하며 귀 기울여 들어야 할 사연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 시인은 생각한다.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면 이 수석과 자주 마주 앉는다는 시인, 사람마다 절규를 숨기고 살 수도 있고 누르고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시인. 이렇게 수석은 정시인에게 인격 수련을 부여하기도 하는 존재임을 밝히고 있다.

 

돌 속에 돌을 품고 산속에 산을 품어

스님 품은 산사처럼 둘이 하나 석중석

사람이 사람 품는 일 유체이탈 달마상

 

유체이탈 遺體離脫: 영혼이 육체에서 벗어나 분리되는 일

-달마상전문

 

그의 수석가다운 모습은 돌만 보면 친구를 만난 듯 기쁘고 그중에 될 놈을 만나면 수석이다라며 예우한다.’라는 말 속에서 다시 한 번 발견한다. 석중석 달마상을 만났다고, ‘심봤다을 외쳤고 곧바로 좌대를 만들어 달마를 모셨다며 기뻐한다.

작은 수석 하나에서도 이런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평소 정시인의 매사에 감사하는 겸손한 마음가짐 때문이다. 탐석을 하는 것은 어렵고, 좋은 수석을 만나는 것은 더욱 어렵다. ‘돌 속에 돌을 품고 산속에 산을 품어/ 스님 품은 산사처럼 둘이 하나 석중석/ 사람이 사람 품는 일 유체이탈 달마상이라며 즐거워하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품는 일이란 표현이 특히 좋다. 마음이 너그러워야 내 속에 너를 품을 수가 있다. 너와 나의 다름을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것은 내가 먼저 품이 커야 가능한 일이다. 나와 다른 너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시인은 이 수석에서 발견한다. 시인의 마음 또한 그러하리라.

 

망팔에 바라보는 허공은 무심하고

구름은 일고 지고 세월은 덧없지만

인생은 애환이 서린 삶의 흔적 무음소

-무음소전문

 

나는 100%의 돌에 쳤다는 소리를 듣는다. 수석 사랑은 아내를 사랑하듯, 어쩌면 그보다 더 좋아한다.”고 정태종 시인은 말한다. 여기에 부창부수로 아내는 그러한 남편의 취미에 동조한다. 그랬기에 나의 수석 사랑에 질투하지 않고 언제나 다정하게 웃어주는 아내와 같은 미소의 수석을 발견했단다. 웃는 인상석을 발견하고 아내 같다고 말할 수 있는 정태종 시인은 부부애도 좋음을 작품을 통해 말하고 있다.

 

산천은 조용한데 은근한 둥근 달빛

나뭇잎 사이사이 비집고 파고들어

더욱더 애타는 심곡잠 못 드는 이 한밤

-월하여인전문

 

보름달 아래의 여인을 시인은 기도하는 여인, 어머니로 보고 있다. 시조내용으로는 달빛 아래의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보며 잠 못 드는 한 사람을 표현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고, 또한 아름다운 달빛을 보며 기도하는 그 여인이 잠 못든다고 볼 수 있다. ’애타는 심곡을 간직한 이가 누구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여인일 수도 있고, 그 여인을 그리워하는 남성일수도 있다. 시인은 대대손손 여인의 이런 기도가 모이고 모여 우리네 자손이 번창하는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어 기도하는 여인이라 못을 박고 있다. 모암, 수마, 색상, 석질, 문양까지 단조롭지 않은 인상석에 시조를 곁들이고 있다.

 

조급한 마음에도 누가 볼까 두리번

흘러내린 내의를 붙잡고 응가하는

일곱 살 우스꽝스런 너야말로 국민 손자

-해우소전문

 

수석의 문양을 보고 이런 작품을 쓴 시인은 천진난만한 소년 같다. 자신의 수석을 스스로 촌석이라며 겸손하게 낮추고 있으며, 그 수석에서 해학과 재미를 발견한다. 이 작은 수석을 만나면서 시인은 엉덩이를 닦아주며 토닥토닥, 내 새끼 응가 많이 했어?’하시던 어머니와의 어린 날의 따스했던 기억을 추억한다. 정태종 시인에게는 어머니는 늘 따스하고 자식을 위해 언제나 기도하는 여인으로 인식되어 있다. 인상석 수석시에서 어머니를 자주 언급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3. 동물과 식물과 사물에 대한 수석 노래

 

단비가 오려는가 복두꺼비 엉금엉금

단단한 갑옷 속에 복 보따리 감추고

천천히 둘러보면서 복 풀 자리 물색하네

-복두꺼비전문

 

이 수석시의 수석은 복두꺼비 형상을 하고 있다. 복을 준다고 생각하여 우리는 복두꺼비라 이름 붙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복두꺼비 형상을 발견한 기쁨에 석우들과 장원주도 내며 즐겼고, 또한 복을 풀라고 집을 통째로 내 주었다는 시인의 큰 배포도 만날 수 있다. 두꺼비가 눈에 띄면 우리조상들은 비가 온다고 생각했고, 복을 불러들인다고도 생각했다. 돌두꺼비가 복 풀자리 물색한다고 보는 시인의 생각, 세상 만물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평가된다. 아마도 시인에게 복을 많이 베풀 것 같은 수석이다.

 

거대한 용 한 마리 몇 겁을 기다렸나

당장에 솟구칠 듯 비틀린 울부짖음

얄라차 가는 선 타고 장삼무를 추다니

-용틀임전문

 

자신감과 용맹으로 신바람을 일으키며

무한한 꿈을 향해 춤추듯 날아올라

도전의 그 정신으로 기량 한껏 뿜어내며

-잠룡 승천전문

 

용틀임이란 작품은 용이 몸을 틀고 있다는 내용의 수석시다. 승천하고자 하는 몸부림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표현한다. 용이 금방이라도 승천할 듯 장삼무를 추고 있다고 한다. 시인은 이 수석의 탐석 순간을 생각하며 보이는 곳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 더 좋은 일, 더 아름다운 일, 더 배워야 할 일이 숨어 있다며 이 수석의 탐석과정에서도 삶의 교훈을 찾아낸다.

잠룡승천에서는 갑진년 청룡의 해여의주를 얻어 이무기가 승천하는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자신감과 용맹으로 신바람을 일으키며/ 무한한 꿈을 향해 춤추듯 날아올라/ 도전의 그 정신으로 기량 한껏 뿜어내며라며 힘차게 날아오르는 용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갑진년, 용의 해라서 더욱 돋보이는 수석시다.

 

감나무 꼭대기에 나뭇가지 한 잎 물고

물고 온 나뭇가지 차곡차곡 쌓아가며

온종일 쉴 사이 없이 기초공사 한창인

 

근사한 집 짓고서 좋아라 까악깍악

낮에는 해님 손님 밤에는 달님 별님

깍악깍 귀한 손님 모셔다 집들이로 야단난

 

설계사 어미 까치 건축사 아비 까치

오붓한 보금자리 까르르 까악까악

이보다 멋진 가족애 어디에서 찾으랴

-까치의 삶전문

 

우리 민족에게 까치는 반가운 새다.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는 새이기 때문에 길조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수석에서 까치를 만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까치 문양의 수석을 발견한 그 일이 바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첫수에서는 까치가 집을 짓는 모습을 표현하고, 둘째 수에서는 집들이로 야단이라는 것이며, 셋째 수에서는 오붓한 보금자리를 짓는 까치의 가족애를 칭찬하고 있다. 까치를 만나 가정에 기쁜 일이 많을 것 같다는 시인, 그 가정에 늘 기쁨이 가득하길 바란다.

 

초록 하양 투톤의 윙팁 칼라 빼입고

까투리 앞에서 힘준 날개 붉은 얼굴

꾸억 꽉 장의 포효 들썩이는 사월 숲

-의 구애전문

 

이번에는 장끼문양의 수석에다 장끼의 구애라는 제목을 붙였다. 새는 수컷이 더 아름답다고 한다. 암컷에게 구애를 하기 위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도 암컷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장끼의 모습을 표현하여 재미를 더한다. 이 외에도 토끼, 호랑이 등 동물 문양과 형상 등의 수석에 대한 수석시가 더 있지만 다 언급하기 어려워 몇 개만 골라 보았다. 다양한 동물 문양과 형상에 대한 표현으로 시인의 상상력이 펼쳐지고 있는 수석시을 보았다. 다음에는 식물에 대한 것을 살펴보기로 하자.

 

대나무 숲에 서면 온갖 소리 들려온다

쭉쭉 곧은 마디마디 절개를 지키라는

근엄한 선비의 호통 합창으로 들려온다

 

대나무 숲에 서면 온갖 새들 모여든다

서로 다른 새들 소리 환상의 하모니다

모두가 함께 모여서 멋진 공연 펼친다

 

대나무 숲에 서면 늘 푸른 마음이다

힘들고 지칠 때는 주저앉고 싶지마는

언제나 싱싱한 희망 푸르름이 안긴다

-대나무숲전문

 

이 작품은 시인이 작업 스토리에서 밝혔듯이 대나무숲의 모습을 표현한 시조다. 자신의 집 가까이 있는 대나무밭에서 해가 질 때, 또 해가 뜨기 전 온갖 잡새들이 대나무숲에서 지저귀는 소리, 그 공연을 듣다가 그것을 시조로 썼고, 또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대나무 문양의 수석을 선물 받음으로써 대나무숲이란 수석시가 된 것이다. 이 시조를 읽으면 대나무숲의 새소리가 들려올 듯 하고 또 셋째수에는 대나무 숲에 서면 늘 푸른 마음이다/ 힘들고 지칠 때는 주저앉고 싶지마는/ 언제나 싱싱한 희망 푸르름이 안긴다는 숲은 시인에게 늘 푸른 마음을 주어 지쳐 있음을 헤어나게 하는 싱싱한 푸른 희망을 주는 곳이라고 한다. 그대로 싱싱함이 전달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의 시조를 읽으며 독자들도 시인과 같은 마음이 되리라 본다. 그만큼 대나무의 푸르름이 잘 드러난다.

 

바람에 얽맴 없이 초연히 흔들리다

꺾일 듯 쓰러질 듯 일어설 듯 눕더니

슬며시 바람을 안고 꼿꼿이 일어선다

 

바람을 품은 백필 눈부신 초가리

가는 필관 꼿꼿하게 때때로 비스듬히

허공에 휘갈긴 문장, 가을은 표음문자

 

초서로 뒤엉켜도 해서로 풀어내고

일시에 밀려나도 다 같이 일어서니

휘리릭 써 내려가는 올가을 첫 페이지

 

필관: 붓촉을 박는 가는 대

표음문자: 사람이 말하는 소리를 기호로 나타내는 글자

-갈대의 문장전문

 

탐석을 하는 일은 늘 수많은 돌들 중에 인연이 되는 돌을 만나고 때로는 파도에 옷을 흠뻑 적시기도 하고 파도 때문에 넘어지기도 하고 자칫하면 파도에 휩쓸리기도 하는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특히 파도가 셀 때 탐석을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인데, 그 파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건져낸 것이 바로 이 갈대밭이라는 수석이란다. 갈대밭이란 작품은 수석이 없더라도 멋진 시조다. 갈대의 모습을 꺾일 듯 쓰러질 듯 일어설 듯 눕더니/ 슬며시 바람을 안고 꼿꼿이 일어선다고 표현하여 갈대의 끈질긴 생명력의 모습과 언제나 곧게 서려는 꼿꼿한 의지를 잘 나타내고 있는 좋은 작품이다. 서울지하철공모시에도 당선되어 서울 지하철역 4곳과 하남지하철역 승강장에 게시된다고 한다.

 

긴 세월 바위틈에 꿋꿋이 뿌리박아

바람을 이불 삼고 바위를 베개 삼아

장엄한 철갑을 걸친 송죽지절 소나무

 

거북의 배면처럼 두꺼운 껍질에서

수양의 덕을 갖춘 은은한 솔 향기가

무심히 지어지선의 옷을 벗어 해탈한다

 

얄팍한 세상에서 생명을 의지한 채

선비의 기품 닮은 올곧은 형상으로

속세의 번뇌를 씻고 무상무념 흐른다

 

늘어진 가지에서 읽어내는 모진 세월

가냘픈 한 여인의 절제된 자태에서

내 삶의 나침반 같은 솔 향기를 뿜는다

-소나무전문

 

노송 문양의 수석을 보고 쓴 작품이다. 소나무의 상징은 꿋꿋한 절개, 흔들림 없는 의지의 선비 나무라고 보고 있다. ‘얄팍한 세상에서 생명을 의지한 채/ 선비의 기품 닮은 올곧은 형상으로/ 속세의 번뇌를 씻고 무상무념 흐른다내 삶의 나침반 같은 솔 향기를 뿜는다는 표현으로 수석 속의 소나무를 표현하고 있다. 이 수석을 곁에 두고 보면서 자신의 좌우명처럼 선비의 꿋꿋함을 닮고 싶어하고, 솔향기를 뿜듯 시인 자신도 그런 향기를 뿜으며 살기를 바라고 있는 작품이다.

 

수천 년 고향마을 지켜 온 삶의 역사

애환의 흔적들을 흠뻑 담고 서 있다

장엄한 신목 앞에서 숙연해지는 내 영혼

-당산나무전문

 

당산나무는 고향을 지키는, 수호신 같은 존재의 나무다. 마을의 역사와 함께 사는 나무, 마을의 애환을 누구보다 오래 보아왔을 나무다. 당산나무는 마을의 안녕을 비는 당산제를 지내는 곳이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사는 나무이기도 하다. 정태종 시인에게는 당산나무처럼 수석이 자신의 인생에 다양한 지킴이가 되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당산나무 문양의 수석 앞에서 숙연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잎 지고 떨군 자리 나무껍질 비집고서

시린 입김 내뱉으며 움츠렸던 붉은 입술

한 줄기 햇살을 안고 곱게 내민 꽃망울들

 

찬 이슬로 화장하고 봉긋봉긋 불거지는

사춘기 소녀 같은 부풀은 가슴 가슴

만지면 터질듯한데 봄은 아직 멀었으니

 

봄볕을 기다리는 목마른 가지마다

설한에 눈물같이 그렁그렁 맺힌 망울

바람결 아지랑이 타고 발롱발롱 피어난다

-겨울 매화전문

 

수석을 하는 수석가들이 모두 매난국죽 4군자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 모두를 갖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겨울 매화라는 작품은 수석에 붉은 기가 도는 꽃송이가 많이 피어 있다. 막 벙그는 매화의 꽃망울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봄바람에 발롱이며 피어나는 그 탐스런 꽃송이들이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하고, 매화향이 풍겨올 듯 하다.

 

기다리다 지친 마음 몇 줄기 가는 잎새

생각이야 흔들려도 올곧은 마음 하나

향긋한 꽃대 하나가 이파리를 달랜다

-난초전문

 

수석에서 난초잎새를 발견하고 선명한 꽃대도 발견한다. 생각은 늘 흔들리며 살지만 올곧은 마음 하나처럼 그렇게 올라가는 수석 속의 꽃대를 보며 그 향기로운 꽃대가 이파리를 달랜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도 수석 속의 난초이긴 하나 향기로우면서도 올곧게 사는 난초를 생각하며 삶의 지표로 생각하는 듯한 시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봄에는 노랑 왕관 가을엔 붉은 왕관

보기에 아름답고 먹어서 병 고치니

스스로 샛노란 축포 터트려 자축하는

-산수유꽃전문

 

노랗게 산수유꽃이 만발한 듯한 수석, 때로는 유채꽃처럼 때로는 산수유처럼 표현되기도 하는 수석이다. 시인은 수석을 보며 늘 마음을 채워간다. 모자란 부분을 가슴으로 채워가면서 감상할 줄 아는 시인이다. 미덕은 부족함에서 생겨난다고 생각하므로 시인은 늘 자신의 인격을 가다듬으며 살고 있는 듯하다.

 

설레는 봄바람에 얼굴이 붉어져서

살긋살긋 휘날리며 춘정을 피우더니

이 세상 모든 근심을 웃음으로 날린다

-벚꽃이 필 때첫 수

 

활짝 핀 벚꽃을 보는 것은 즐겁다. 아니 바람에 지는 벚꽃을 보는 것도 아름답다.

이 세상 모든 근심을 웃음으로 날릴 듯한 벚꽃이 피는 모습, 수석 속의 꽃을 생각하게 하는 수석은 색상도 아름답고 문양도 아름다울 수 밖에 없다. 수석 속의 꽃을 벚꽃이라 이름 불러 줄 줄 아는 시인, 그의 수석사랑을 다시 한 번 본다.

 

수줍은 총각보다 먼저 웃는 처녀들

바람에 상글상글 꽃잎들의 춤사위에

내 마음 홀린 듯 붙잡혀 샛노랗게 물든다

-유채꽃둘째 수

 

시인은 수석에서 유채꽃을 밭떼기로 가져온 느낌이다. 꽃잎의 춤사위란 말도, 상글상글하다는 표현도 신선하다. 자신만의 시어로 표현하여 유채꽃이란 작품이 더 돋보인다. 유채꽃 만발할 때, 유채꽃 향기를 맡으며 가족사진을 찍고 싶다는 시인의 마음, 그 마음은 유채꽃을 보며 샛노랗게 물들고 있다. 수석과 일심동체가 된다.

 

메밀묵 메밀전병 막걸리 궁합 좋고

꽃물결 일렁이는 정자에 동무들과

이보다 좋을 수 없는 매력적인 피사체

-메밀꽃밭전문

 

수석에서 메밀꽃밭을 연상하는 화자. 메밀전병, 메밀묵, 막걸리와 같은 토속적인 꽃을 생각해 내고 고향친구들까지 수석 속에서 삶의 모습을 끌고 온다. 삼라만상이 수석 속에 들어 있고 그 속에서 정시인은 자유롭게 상상의 세계를 유영하고 있다. 여러 가지 나무와 꽃모양의 문양석의 수석을 보고 시로 노래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사물에 대한 작품을 살펴보자

 

허물을 덮어 주는 진흙 모래 아량에

평원은 키워내고 나누는 일을 하며

언제나 고요할 수 있지 만남도 떠남도

-만리 평야전문

 

평원석에 시를 붙인 작품이다. 가슴이 탁 트이고 시원한, 눈의 막힘이 없는 마치 평야를 보는 듯한 평원석. 그래서 이름도 만리 평야이다. 그 평원을 마치 마음의 평정심을 상징하듯 언제나 고요할 수 있지 만남도 떠남도라고 표현하고 있다. 보는 이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평원석, 언제나 평정심을 가져 고요한 마음처럼 나타낸 시적 표현이 좋다.

 

절벽을 깔고 앉은 광활한 평원 품에

혹처럼 박혀있는 단봉산 이력을

누구라 말할 수 있나 가슴에 묻을 뿐

-고평원 단봉산전문

 

평원석이 높을 때 고평원이라 하는데, 그 끝부분에 단봉이 앉아 있으니 아름답다.

절벽을 깔고 앉은 광활한 평원 품에/ 혹처럼 박혀있는 단봉산 그 이력을/ 누구라 말할 수 있나 가슴에나 묻을 뿐이라며 매력적인 고평원 단봉석을 읊고 있다. 이 수석처럼 형상석은 형상석대로 아름답다. 사물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마음이 있기에 그 모든 것이 눈 끝에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것이고, 읽는 독자 또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황금  초가지붕 감아 오른 박 넝쿨

술래잡기 구슬치기 말뚝박기 고무줄놀이 

너무나 짧았던 하루 그 시절이 언젠데

 

초가  처마 끝에 고드름 주렁주렁

팔뚝만 한 고드름을 깨금발로 따다가 

덤벼라 칼싸움하던  시절이 선하다

-초가집전문

 

초코렛색깔을 지녀 초코석이라 부른다. 단단한 석질의 남한강 특유의 초코석 초가집 형상의 수석을 노래하고 있다. 시인의 말처럼 평화롭고 잔잔한 정감을 일으키는 소재로 어릴 적 고드름 따다가 칼싸움하던 추억을 불러내는 모습의 수석이다. 시인 세대 사람들이 사라지면 초가집의 추억도, 고드름의 추억도 사라질 것 같다. 옛날 얘기 속에서나 나오는 초가집이 될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의 아이들은 잘 보지 못한 풍경일 테니 말이다.

 

오곡밥 지어 먹고 한 잔의 귀밝이술

생솔가지 나뭇더미 달집을 지어 놓고

달님요 소리쳐 부를 때 불타는 소원지

-정월대보름에전문

 

달문양의 수석인 월석을 보고 대보름날을 생각한다. 오곡밥을 먹고 귀밝이술을 한잔하고, 견과류를 깨물면서 내 더위 사가라고 친구들께 더위를 팔던 풍습. 보름달을 보면서 기도하며 소원지도 올리는 모습이다. 어렸을 때의 풍습을 잊지 않고 생각해 내어 수석시에 적용하고 있다.

 

홀라당 알몸이다 태초의 알몸이다

지위나 재산도 권력도 내려놓고

모두가 똑같아지는 가식 없는 참이다

 

육신의 찌든 때를 천천히 밀어낸다

빈손에 오고 가는 인생철학 닦아내며

맘속의 욕심의 때도 말끔히 씻어낸다

-목욕탕에서전문

 

물고임의 수석을 노래한 시조다. 주로 물고임석은 호수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지만 정시인은 물고임이 깊은 수석이라서인지 목욕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 목욕탕에서 시인은 육신의 찌든 때를 천천히 밀어낸다/ 빈손에 오고 가는 인생철학 닦아내며/ 맘속의 욕심의 때도 말끔히 씻어낸다고 한다. 물고임의 수석을 목욕탕이라고 이름을 붙였고 욕심의 때까지 씻어내고 싶어하는 시인의 깨끗한 마음이 드러나는 멋진 작품이다.

 

이번에 첫 수석시조집 수석에서 보석을 캐다을 발간하는 정태종시인에게 크게 축하를 보낸다. 아름답고 신기한 수석의 갖가지 문양과 형상에다 시조를 붙여서 세상에 선보이고 있다.

청송 화문석 수석에서 꽃중의 왕이라 할 수 있는 목단, 가정의 평화를 가져온다는 불두화, 고절의 선비를 나타내는 오상고절의 국화, 또 추위 속에서 가장 빨리 피는 꽃 중의 하나인 동백꽃 등이 있다. 모두 아름다운 꽃이고 덕을 지닌 꽃들이며 시인은 이러한 수석에 대한 것들을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다.

또 여러 가지 인상석의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인상석이란 사람의 모습을 닮은 것을 말한다. 어머니, 형제, 부부, 스님, 여인, 달마상, 절규 등 시인은 주로 문양석을 중심으로 시조로 표현하고 있다. 물론 인상석 중에는 문양석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형상석도 있다. 문양석이란 수석에 그림으로 나타난 것이며 형상석이란 돌모양 자체로 어떤 모습을 나타낸 것을 말한다.

동물들을 시조로 표현한 작품에는 토끼, 호랑이, 두꺼비, 장끼, , 까치 등을 표현하여 그 동물들의 특성과 수석에 보이는 내용을 절묘하게 수석시로 나타냈다. 식물인 나무와 꽃도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화문석에서도 여러 가지 꽃이 나타나지만 일반 수석 중에서도 대나무, 소나무, 당산나무, 갈대, 매화, 난초, 산수유, 유채꽃, 벚꽃, 메밀꽃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들 동식물들의 특성을 잘 살려서 좋은 시조로 표현하고 있다. 그 밖에도 그의 수석시조에는 초가집, 목욕탕, 정원대보름, 만사형통, 운무, 산수 수묵화 등 많은 사물들을 소재로 시조를 썼다.

시인이 쓰는 시는 상상력의 산물이다. 물론 구체적으로 사물을 묘사할 수도 있지만 시인의 상상이 가미되어 한 편의 시가 된다. 수석시는 수석을 보면서 그것에 대한 상상을 하고 있으니 수석시는 두 번의 상상을 거쳐 나온 작품이다. 그러면서도 수석시는 추상적인 작품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수석시는 수석에 나타난 문양과 형상을 보고 그것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수석에 나타난 문양이나 형상을 보고 그것을 표현하고자 하다가 보면 자칫 겉으로 보이는 면만 표현하기 쉽다. 그랬을 경우 깊이 없는 작품이 될 수도 있어 그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다 보면 시적 상상력이나 시적 재미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정태종 시인의 작품은 표피적 아름다움만 추구하지 않고 안 보이는 내면의 아름다움까지 추구하는 작품이 많아 깊이가 있는 작품들이다. 또 수석을 탐석하고 수석시를 쓰면서 수석이 주는 삶의 깊은 교훈까지 얻고 있다. 때문에 정태종 시인에게 수석은 하나의 돌이 아닌 삶의 반려로써 수석시를 쓸 수 있는 아름다움만 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꿋꿋하게 지조를 지키며 나아가게 하는 삶의 원동력이 내일을 설계하게 하는 가치를 지닌 보석보다 귀중한 있는 존재이다. 이러한 마음으로 수석을 대하는 그의 수석시가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아름다운 수석시조가 가득 담긴 수석시조집 수석에서 보석을 캐다 탄생을 축하드린다.

앞으로 넘치는 석복과 함께 더욱 아름다운 수석시를 쓸 수 있기를 바라며, 멋진 시조집이 탄생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시인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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