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운 시조론>
화합과 상생 정신으로 자리이타自利利他의 행복한 삶 추구
권오운 시조시인의 『악수』 시조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권오운 시인이 보여주는 작품의 특성을 몇 가지만 살펴보기로 한다.
1. 화합과 상생으로 자리이타自利利他의 행복한 삶 추구
다정한 눈길 주며
인사할 때 내미는 손
따뜻한 체온 속에
대화 물고 트고 있네
알파고
불통 시대에
마음의 문 빗장 연다
악수도 가지가지
인생길 각양각색
손 잘 잡고 도와가면
인생길도 탄탄대로
즐겁게
손에 손 잡고
함께하자 너와 나
- 「악수」 전문
악수를 청하는 뜻은 ‘내 손엔 당신을 헤칠 무기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며 서로 잘 지내보자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상대의 손바닥을 맞잡고 웃으며 반갑게 악수를 하는 것이다. 권오운 시인은 이것을 “따뜻한 체온 속에/ 대화 물꼬 트고 있네”로 보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을 때 우리는 악수도 주먹으로, 또는 손등을 잠깐 대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하였다. 모든 인간이 꿈꾸는 세상은 서로 사이좋게 지내고 서로 돕고 함께 잘 사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생은 생존을 위한 경쟁의 연속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들의 보편적인 꿈은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나 때문에 상대방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서로가 소통하고 이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함께 잘 사는 길을 찾고 싶은 것이며 그러한 마음을 표현한 작품이다. 서로의 화합을 위한 “마음의 문 빗장 연다”와 “함께하자 너와 나”로 악수의 의미를 잘 표현해 내고 있다.
먹이를 발견하면 목놓아 우는 사슴
배고픈 친구 불러 즐겁게 함께 먹네
녹명은
고귀한 울음
아름다운 소리다
먹잇감 획득하면 돌아서 혼자 먹는
동물의 생존전략 벗어난 사랑일세
서로간
보듬어 주며
함께 하는 따스한 삶
야박한 세상에서 필요한 삶의 철학
타인을 이롭게 하면 자신도 이로운 걸
사랑은
자리이타自利利他라
살아가며 깨닫는다
*鹿鳴: 사슴의 울음소리
- 「고귀한 울음–녹명鹿鳴」 전문
사슴은 먹이를 찾으면 울음을 울어 동료들을 불러모아 같이 먹는다고 한다. 동물 들 중에 유일하게 사슴만이 이러한 행동을 한다고 한다. ‘녹명’은 시경에도 등장하며 사슴 무리가 평화롭게 울며 풀을 뜯는 풍경을 어진 신하들과 임금이 함께 어울리는 것에 비유했다. 이 시조는 그러한 사슴의 습성을 쓰고 있다. ‘먹이를 발견하면 목놓아 우는 사슴/ 배고픈 친구 불러 즐겁게 함께 먹네’라고 사슴의 어짐을 첫째 수에서는 말하고 있다. 둘째 수에서는 다른 동물들은 먹잇감을 발견하면 ‘먹잇감 획득하면 돌아서 혼자 먹는/ 동물의 생존전략 벗어난 사랑일세/ 서로간/ 보듬어 주며/ 함께 하는 따스한 삶’이라며 다른 동물의 습성과 비교하며 사슴의 습성을 칭찬하고 있다. 셋째 수에서는 ‘야박한 세상에서 필요한 삶의 철학/ 타인을 이롭게 하면 자신도 이로운 걸/ 사랑은/ 자리이타自利利他라/ 살아가며 깨닫는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바보같아 보이는 사슴의 그러한 행동이 사슴에게도 결과적으로 이롭다는 것이다. 연약한 사슴이 먹이를 먹느라 집중하고 있을 때 무서운 적이라도 나타나면 꼼짝없이 당할 수 있다. 이럴 때 동료들이 함께 모여 먹으면 그만큼 자신의 위험도 줄어들 수 있으니 상대방을 이롭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이익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동료에 대한 사랑이 결국은 자신의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교훈이 셋째 수에는 들어 있다. 유난희 권오운 시인의 시조에는 이러한 교훈적 내용이 많이 들어 있다.
여기도 꽃
저기도 꽃
벌 나비가 모여든다
꿀 주고
열매 맺고
서로 도와 사는 세상
꽃처럼
살 순 없을까
향기롭고 환하게
- 「꽃처럼」 전문
「꽃처럼」이란 단시조에서는 꽃과 벌의 관계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면서 살아가는 세상을 화자는 원하고 있다. 즉 시인이 꿈꾸는 세상은 ‘꿀 주고/ 열매 맺고/ 서로 도와 사는 세상’이다. 서로가 협력관계로 꽃처럼, 벌처럼 도와가며 서로가 잘 살기를 원하고 있다.
사람들은 서로의 이익을 따지고, 잘남과 못남을 가리고, 서로가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욕심 때문에 싸움이 생기고, 국가 간의 전쟁도 생기는 것이다. 꽃처럼 살고 싶지만, 인간은 자신의 욕심을 버리기가 쉽지 않다. 시인은 그렇게 사는 것이 현실에서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서로의 욕심을 줄이면서 살아간다면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니므로 얼마든지 실천가능할 수도 있다.
내 몸을 녹여 내어
남의 때 씻어주는
거품 속 숨어 있는
숭고한 희생의 삶
댓가를 바라지 않는
네 모습이 아름답다
- 「비누처럼」 전문
이 작품에서 살신성인의 표본으로 비누를 들고 있다. 시인의 관찰력은 ‘내 몸을 녹여 내어/ 남의 때 씻어주는// 거품 속 숨어 있는/ 숭고한 희생의 삶// 댓가를 바라지 않는/ 네 모습이 아름답다’라며 자신을 조금씩 죽여가며 남을 위해 살고 있는 비누의 모습, 그러면서도 어떠한 댓가를 바라지 않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찬양하고 있다.
타인의 더러움을 씻어준다는 그 능력만으로도 비누는 아름다운데, 자신의 몸은 사라지면서 그 일을 하는 비누는 생각하면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가. 추앙받아야 마땅하며 이러한 사람이 있다면 생은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언젠가 본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생각난다. 나치수용소에서 자신은 얼마 후에 죽을 것을 알면서도 자식을 위해, 자식의 두려움을 없애주고 인생이 아름답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 노력하는 아빠의 모습이 떠오른다. 평소에 아무런 감정도 없이 대하던 비누에 대해 고마운 감정을 갖게 해 준 작품이다.
권오운의 작품 중에서는 이 작품처럼 나를 녹여서 남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표현한 작품들이 많다.
인생은 아름답다 사랑이 있어서다
따뜻한 자비로움 푸른 바다 춤을 춘다
꽃길도
활짝 열린 채
눈부시게 빛난다
편안히 살자면은 아프지 말아야 해
마음이 편안하면 살맛 나는 세상이다
행복을
꿈꾸는 나날
웃고웃고 또 웃어
여명의 빛나는 해 오늘은 참 좋은 날
슬픔이 떠나가고 빈자리에 기쁨으로
웃어라
희망찬 발길
멋지게도 달린다
- 「꽃길 인생」 전문
불교에서는 심즉시불(心卽是佛)이라는 황벽선사의 말씀이 있다. 즉 마음 그대로가 부처라는 말이다. 위로는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아래로는 꿈틀거리는 벌레에 이르기까지 다 부처의 성품이 있으니 마음의 본체는 한 가지라는 뜻이다. 세상사는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세상을 보려는 시인의 인생관이 잘 드러난다. 인생을 긍정적으로 보면 세상은 늘 살만한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인생이 ‘아름다운 건 사랑이 있어서다/ 따뜻한 자비로움 푸른 바다 춤을 춘다/ 꽃길도/ 활짝 열린 채/ 눈부시게 빛난다’고 한다. 그 길을 편안히 걸어서 가기만 하면 된다. 사랑이란 묘약이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인생은 아름다운 것임을 말하고 있다.
둘째 수에서는 ‘편안히 살자면은 아프지 말아야 해/ 마음이 편안하면 살맛나는 세 상이다/ 행복을/ 꿈꾸는 날들/ 웃고웃고 또 웃어’ 라며 마음이 편해지려면 많이 웃어야함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들의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늘 제 분수보다 많은 것을 탐하기 때문이다. 적게 주고 많이 얻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음을 비우면 비로소 편안해지는 것이다. 시인은 ‘슬픔이 떠나가고 빈자리에 기쁨으로’ 다가오는 날들을 기대한다. 그리하여 시인은 ‘웃어라/ 희망찬 발길/ 멋지게도 달린다’며 주문을 외듯, 최면을 걸 듯 행복해지기를 바라고 있다. 스스로가 행복을 느끼면 그것이 꽃길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장거리 마라톤 길 외롭게 홀로 뛴다
지름길 요행수는 애당초 없는 거다
누구나
실력과 믿음
자신과의 싸움이다
결승점 다달으면 있는 힘 다 쏟으며
신기록 세우려고 치열한 경쟁이다
일등과
후순위 거리
근소시간 차이다
공정한 운동경기 인내의 스포츠로
많은 땀 고된 훈련 시간이 말을 한다
저마다
정직한 땀은
인생행로 발판이다
- 「마라톤」 전문
마라톤은 장거리 달리기다.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 시조에서는 인생에 대한 비유라기보다는 마라톤 경기 자체에 대한 내용을 말하고 있다. 마라톤은 축구나 야구나 농구처럼 여럿이 힘을 합쳐 하는 경기가 아니라 홀로 하는 경기이다. 지름길 요행수도 없는 인내와 믿음으로 하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경기일 때는 나보다 앞서가는 사람을 이기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뛰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자신의 신기록을 갱신하기 위해 뛰기도 하는 운동이다. 앞만 보고 목표지점만을 향해 뛰는 경기인만큼 특별한 재미도 없고 보는 관람자도 인내가 요구되고, 직접 운동에 참여한 사람은 더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나 단순한 경기이고 자신과의 싸움이라고는 하지만 많은 훈련을 했을 때만이 진짜 경기에서 지치지 않고 목표지점까지 완주할 수 있다. 그렇게 어렵게 단련된 몸은 인생의 여러 문제점에 부딪혀도 어려움을 인내하고 넘을 수 있는 탄탄한 체력을 만들어 준다. 때문에 시인은 ‘저마다/ 정직한 땀은/ 인생행로 발판이다’고 한다. 어떠한 트릭도 없이 정직한 땀을 흘리며 달려가서 승리하는 진정한 스포츠 정신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어쩌면 시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끊임없이 자신과 인내하며 시를 쓰고 시를 완성해 가는 것,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인 것이다.
누구나 행복 위해 청사진 펼쳐든다
희망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행군의 길
꿈길은
마냥 뜬구름
죽끓듯한 변덕이다
비바람 눈보라에 인생길 힘들구나
즐겁고 행복한 삶, 그 길은 어디인가
찾으며
물어보아도
좋은 대답 없구나
아프다 몸과 마음 아는 자 나뿐이다
의사도 내 말 듣고 처방전을 내어준다
내 인생
즐기는 행복
나만 아는 비밀인가
- 「행복은 비밀인가」 전문
이 작품에서 시인은 ‘행복’은 나만이 알 수 있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이 행복할 것이라고 해도 내가 행복하지 않을 수가 있고, 다른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해도 나는 행복할 수 있다.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은 행복을 꿈꾸며 살고 있다. 누구나 행복하고 싶어하지만 그 행복이란 각자에게 다르다.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누구는 가족이 함께 있을 때 행복하다고 하고, 누구는 건강할 때 행복하다고 하고, 누구는 성적이 올랐을 때 행복하다고 하고, 누구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때 행복하다고 느낄 테니 말이다. ‘아프다 몸과 마음 아는 자 나뿐이다/ 의사도 내 말 듣고 처방전을 내어준다/ 내 인생/ 즐기는 행복/ 나만 아는 비밀인가’라며 행복은 나만이 느낄 수 있고, 나만이 알고 있다고 시인은 말한다.
의사도 내가 어디어디 아프다고 말을 해 줘야 처방전을 해 준다. 그것처럼 무엇 때문에 내가 아프고 무엇 때문에 내가 행복한 지 본인만이 안다. 제3자는 그것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시인은 제목을 「행복은 비밀인가」로 잡았을 것이다. 제삼자의 판단기준이 아닌 자신의 판단기준에 의해 행복은 느낄 수 있음을 이 작품은 말하고 있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상황이 와도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더 많을 것이다.
2. 가족 간의 사랑과 화합과 건강을 추구하는 작품들
“어떻게 된 일이니 거꾸로 일등이네”
“괜찮다 담에 잘해 못난 어미 탓이다”
목이 멘
어머니 말씀
내 가슴을 후비네
-「성적표」 전문
학창시절 열심히 공부를 안 한 탓에 꼴찌를 했는데도 어머니는 아들을 탓하고 혼내지 않고 어미 탓으로 돌리면서 괜찮다고 격려한다. “괜찮다 담에 잘해 못난 어미 탓이다”란 목이 멘 어머니 말씀 한 마디가 지금까지 화자의 가슴을 후빈다고 한다. 그 어머니의 말씀은 매질보다 아프게 화자를 때렸을 것이다. 백 마디 말보다 더 많은 교훈을 시인에게 심어주었을 것이다.
용서하고 격려하는 어머니 말씀 그 한 마디가 시인의 가슴에 감동을 주고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하여 변화를 일으켰을 것이다. 권오운 시인은 지난 시절의 어머니 말씀을 떠올려 작품을 구성하며 용서와 격려가, 혼내며 훈육하는 방식보다 더 크게 감동을 주고 상대로 하여 변화를 하게 한다는 것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삶의 경험에서 오는 리얼리즘의 직설적 시어들이 실존철학의 모습을 보여준다. 고도의 수사법으로 치장한 작품보다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때로 더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예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손자와 할아버지 사이좋게 목욕하다
할아버지 “아, 시원타” 손자가 그 말 듣고
탕 안에
두 발 담그다
“앗, 뜨거워” 달아난다
“할배는 거짓말쟁이” 신용이 추락한다
똑같은 물을 두고 시원타와 뜨겁단 말
세월이
알려줄 테지
간격 좁혀 갈 테지
- 「느낌」 전문
이 작품은 할아버지와 손자의 목욕탕에서의 짧은 대화로 상황을 보여준다. 똑같은 상황을 두고도 느낌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여기서는 할아버지와 아이의 차이다. 물의 온도는 똑같지만 거기에서 느끼는 어른인 할아버지의 느낌과 손주인 어린 아이의 느낌은 완연이 다른 것이다. 어른은 그 뜨거운 물이 몸의 피돌기를 잘해 주어 몸의 피로가 풀리는 듯 해서 “아, 시원타”고 한다. 그런데 비해 어린 아이는 어른들보다 피부가 더 얇고 부드러워 뜨거움에 약하고, 어른들처럼 약간 뜨거운 물이 피의 순환을 잘 되게 하여 근육통 등 몸의 응어리진 것들을 풀어주며 피로를 풀어준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터라 피부의 느낌만을 말하고 있어 “아, 뜨거워”라며 놀란다.
둘째 수에 오면 ‘“할배는 거짓말쟁이” 신용이 추락한다/ 똑같은 물을 두고 시원타와 뜨겁단 말/ 세월이/ 알려줄 테지/ 간격 좁혀 갈 테지’라며 조금은 느긋하게 생각한다. 그것이 어른과 아이의 차이임을 화자는 알기 때문이다.
소문난 손큰 엄마 뭐라도 많이 해서
친척들 이웃들에 골고루 나누시고
고맙단
말 들으시면
힘든 줄도 모르네
“퍼주는 재미 들면 세상일 즐거워요“
마음이 만족하니 얼마나 흐뭇한가
즐겁게
나누는 마음
그게 정말 기쁨이다
- 「손큰 엄마」 전문
이 작품은 엄마에 관한 추억을 노래하고 있다. 엄마는 손이 커서 무엇이든 많이 해서 친척들에게 이웃들에게 돌리기를 좋아했고, “퍼주는 재미 들면 세상일 즐거워요”라고 했다고 한다. 그만큼 집안이 넉넉했다는 소리다. “쌀독에서 인심난다”는 말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여유가 있다면 ‘즐겁게/ 나누는 마음/ 그게 정말 기쁨이다’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말이다. 그러나 꼭 부자라고 이렇게 베풀 수 있는 마음가짐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친척에게 이웃에게 덕을 쌓으며 사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시인은 그러한 마음가짐을 은연중에 배웠을 것이다. 그리하여 다음의 어머니 작품에서도 시인은 어머니를 스승이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내 손이 약손이다 체한 것 내려가라
시계방향 쓰다듬던 엄마의 부드런 손
그 언제
아팠냐는 듯
거뜬해진 나의 몸
날마다 힘들어도 환하게 웃으시며
삶의 길 재미있고 살만한 세상이다
기쁨도
고통도
뒷바라지 바쁘셨다
도리를 실천하는 참다운 사람 되라
사랑을 가르쳐 준 인자한 스승이다
올바른
인생행로의
이정표가 되셨다
- 「어머니」 전문
어머니는 언제나 희망이고 안식처다. 권오운 시인이게도 어머니는 언제나 희망이고 안식처고 세상에 대한 멘토다. 그리하여 내가 아플 때 ‘내 손이 약손이다 체한 것 내려가라/ 시계방향 쓰다듬던 엄마의 부드런 손/ 그 언제/ 아팠냐는 듯/ 거뜬해진 나의 몸’이라고 한다. 어릴 때 누구나 경험한 내용이다. 나의 어머니도 나에게 그러했고, 다른 이의 어머니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것이 이론적으로 장을 쓰다듬어 소화의 흐름이 잘 되도록 하는 행위라서 의학적으로도 좋은 것이지만, 일단은 엄마가 내 곁에 있고, 엄마의 손이 나를 보호하고 있다는 안도감 때문에 아이들의 병은 더 빨리 나았을 것이다. 남편 뒷바라지 아이들 뒷바라지로 늘 바쁜 어머니겠지만, ‘날마다 힘들어도 환하게 웃으시며/ 삶의 길 재미있고 살만한 세상이다/ 기쁨도/ 고통도/ 뒷바라지 바쁘셨다’고 한다. 특별한 수사법이 없는 사실적인 표현이지만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세상은 살만한 것인가 보다고 생각하며 자라는 자식들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어머니는 우리 삶의 스승이기도 하다. ‘도리를 실천하는 참다운 사람 되라/ 사랑을 가르쳐 준 인자한 스승이다/ 올바른/ 인생행로의/ 이정표가 되셨다’라며 어머니가 삶의 이정표였음을 말하고 있다. 우리 삶의 가장 큰 스승, 가장 가까이 있는 스승은 바로 어머니이다. 그 깨달음을 이 작품에서는 말하고 있다. 어머니의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따뜻하고 바른 가정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소중한가를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이다.
이웃간 품앗이로 김장준비 한창이다
무 배추 소금 절여 나란히 일렬정돈
김장도
종류가 많아
김치통들 줄섰다
배추잎 젖혀가며 갖은양념 버무리다
곰삭아 맛 들도록 큰 단지 차곡차곡
땅속에
묻어두었다
두고두고 먹는다
방금한 김치 말아 막걸리 한 잔 걸쳐
힘들은 몸과 마음 한꺼번에 풀어본다
정담도
풍성하구나
김장 담는 좋은 날
- 「김장하는 날」 전문
시인은 생활주변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이것은 어떤 위대한 것만이 시의 소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작고 소소한 것들이, 그러한 일상이 시의 소재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요즘은 김장을 온 동네가 모여서 하지도 않고 예전처럼 많이 하지도 않고, 또 아예 김장을 안 하는 집들도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집들은 아직도 겨울준비로 아들며느리 딸사위들을 모아 김장을 하기도 하고, 또 부모가 김장을 하여 아들집 딸집에 나누어주기도 한다. 요즘은 남편들도 김장할 때 많이 도와주다 보니 예전처럼 온 가족이 모여 김장을 담기도 한다. 그만큼 김장은 지금도 우리 생활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고 우리의 먹거리 음식 중 아직도 김치는 으뜸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김치가 한국음식의 주부식인 만큼 그것은 아직도 우리에게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이고 김장의 풍습은 아름다운 것이다. 첫째 수에서는 김치의 종류대로 김치통도 준비해 놓은 것을 말하고 있다. 둘째 수에서는 배추잎을 젖혀가며 갖은양념을 넣고 버무리며 김치를 담는 모습을 담고 있다. 셋째 수에서는 김장 후의 모습, 김장 겉저리로 술 한 잔 걸치며 피로를 푸는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식구들이 화목하게 김장을 담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웃으면 복이 와요 마음 밭엔 웃음꽃이
인생길 고해라지만 살다 보면 꽃길 있어
힘들 땐
웃음보 터트려
가시밭길 잊어보세
웃음은 만병통치 진실로 천하제일
슬픔과 아픈 고통 말끔하게 씻어내니
삶의 길
동반자로세
어깨동무 함께 하세
우하하 웃음잔치 없던 복이 굴러 온다
신명난다 살맛난다 어께춤이 절로 인다
대박이
꽃바람 타고
두리둥실 날아오네
-「웃음보약」 전문
권오운 시인은 『웃음부자』라는 수필집을 낼 만큼 평소 잘 웃고, 또 웃음은 만병통치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는 시인이다. 우리 속담에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웃는 모습은 상대방의 마음도 즐겁게 하고 화가 났던 마음도 풀리게 하기 때문이다. 기분이 안 좋을 때도 웃음을 잃지 않다 보면 자신의 일도 잘 풀리고 주변에도 기쁨을 주는 일이므로 늘 웃는 습관을 지니는 것은 삶에서 정말 중요한 일이라 생각된다. 이 시조에는 평소 시인의 삶의 태도가 그대로 녹아 있다. “힘들 때 웃음보 터트려 가시밭길 잊어보세”, “삶의 길 동반자로세 어깨동무 함께 하세”, “대박이 꽃바람 타고 두리둥실 날아오네”라는 생각은 웃음을 친구처럼, 동반자처럼 생각하고 늘 함께하고 싶어하는 시인의 모습이다. 단순함 속에 삶의 철학을 담아 그렇게 살고 싶어한다. 그러한 삶의 모습을 주변에게도 전이를 시키고 싶어한는 시인의 넉넉한 모습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임파선
종양암에
지옥에서 몇 주 살다
의사진단
“암은 아님”
그 말을 듣는 순간
하늘로
날아 오른다
천당문이 열린다
- 「천당」 전문
사람의 마음은 한없이 단순한지도 모른다. 의사의 한 마디 때문에 마음이 무거울 수도 있고 가벼울 수도 있다. 판사의 판결을 기다리는 죄수의 마음으로, 떨리는 마음으로 의사의 진단을 기다리는 환자들…. “암은 아님”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는 순간, 사형선고에서 벗어난 죄수의 기쁨처럼, 살았다는 안도감에 그 순간 천당문이 열리는 듯한 기쁨을 느낀다. 경험한 사람은 알 것이며, 고개를 끄떡이며 공감할 것이다. 실생활에서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 진솔감이 있어 독자들은 감동한다. 이 작품은 아름다운 표현 때문이 아니라 진솔한 감정표현이 때로 독자를 더 공감하게 한다.
적막한 병실 밖엔 흰 눈이 쌓이는데
생사를 오가는 자 가래가 끓고 있다
병균과
엉켜 사는 곳,
참 불쌍한 사람들
온 길을 돌아보니 초라하기 그지없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그걸 자주 잊어버려
병실문
나가게 되면
새로운 삶 살리라
- 「새로운 삶」 전문
누구나 병원에 가 보면 평소에 병원에 안 가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게 된다. 옆에서 고통에 신음하는 자를 보면 우리들은 재산이나 명예는 다 필요 없고 오직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가장 필요하고 절실한 것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병균과/ 엉켜 사는 곳/ 참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인식한다. 그리하여 시인은 ‘병실문/ 나가게 되면/ 새로운 삶 살리라’고 다짐을 한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오면 또 그렇지도 못하다. 눈에 보이는 일이 당장 있고, 발등에 떨어진 일부터 해결하느라 건강은 뒷전이 된다. 작품에서는 자신의 목숨이 가장 소중함을,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이 소중함을 느끼며 그것에 우선하며 살아야겠다는, 살아야한다는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각성하게 하는 작품이다.
밥 먹고 물마시 듯 숨 쉬는 일상생활
나이 먹어 호흡기가 막히고 고장났다
숨 쉬는
중요한 것을
평소 잊고 살았다
숨소리 끊어졌다 이어진 응급상황
생과 사 갈림길에 초조, 불안 연속이다
호흡이
생명줄인 걸
바보처럼 몰랐다
- 「숨」 전문
이 작품에서는 숨 쉬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평소에 쉽게 숨 쉬며 사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 들어 쉬며 내 쉬는 이 숨, 들숨과 날숨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산다. 그러나 ‘숨이 멎었다’든가, ‘숨이 끊어졌어’라고 하면 생명이 끊어졌다는 소린데, 이 때의 숨은 바로 생명을 의미한다. 얼마나 중요한 의미인가.
‘나이 먹어 호흡기가 막히고 고장났다/ 숨 쉬는/ 중요한 것을/ 평소 잊고 살았다’고 한다. 고장이 나고 힘들어 질 때 비로소 그 중요성을 인식한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늦다. ‘숨소리 끊어졌다 이어진 응급상황/ 생과 사 갈림길에 초조, 불안 연속이다/ 호흡이/ 생명줄인 걸/ 바보처럼 몰랐다’고 한다. 호흡이 중요하다는 걸 평소에 알면 사람들은 호흡기를 더 보호하려 노력할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그렇지 못하게 살아온 자신의 삶을 후회하고 있다. 이것을 알면 담배를 피는 어리석음은 없을 것이며 호흡에 무리가 가게 하는 일도 하지 않을 것이다. 산소가 많은 곳을 찾아가서 호흡기를 보호하며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작품 하나하나가 우리에게 참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이처럼 권오운 시인의 작품에서는 우리가 생활에서 놓치고 가는 작은 것들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고 그것을 중히 여기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특히 생명에 대해, 건강에 대해 주의하라는 경고성 교훈을 주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
3. 회고를 통한 추억과 정을 추구
빛바랜 사진의 꿈 너도 한 장 낙엽이었네
아직도 무성영화는 물레방아 돌고 있고
낯익은
산동네 하늘 밑
보고 싶은 사람들
삶의 길 황금기엔 굵은 힘줄 하나로
밤낮을 경작하여 앞만 보며 달려온 길
내 곁에
그늘막 같은 이
다 모여 있구나
축하객 사진 속의 그대가 밖으로 나와
“그동안 잘 있었냐?”며 손이라도 잡으려나
접시꽃
그 웃음소리
환청으로 들린다
- 「사진은 영화처럼」 전문
사진으로 하여 추억을 불러오고 있는 작품이다. 마치 무성영화를 돌려보듯 사진을 들여다보며 사진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옛날의 추억을 더듬어보고 있다. 그들이 하는 말을 정겹게 듣고 그들을 보고 싶어하고 있다.
특히 첫 수에서는 “빛바랜 사진의 꿈 너도 한 장 낙엽이었네”라며 이제는 낙엽처럼 굴러떨어지고 쓸쓸하기도 한 느낌의 옛날 사진을 마치 낙엽을 주워들고 바라보듯 하며 “낯익은/ 산동네 하늘 밑/ 보고 싶은 사람들”이라며 사진속의 얼굴들을 그리워하고 보고싶어 한다. “삶의 길 황금기엔 굵은 힘줄 하나로/ 밤낮을 경작하여 앞만 보며 달려온 길/ 내 곁에/ 그늘막 같은 이/ 다 모여 있구나”라며 이 땅의 70~8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사진들, 그들은 부지런히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 왔던 이들이기도 하다. 그들이 내 삶의 그늘막으로서 내 곁을 지키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며 그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은연 중에 하게 되는 화자의 겸손함이 드러나기도 한다. 내 삶을 지탱해 준 것은 나의 열심도 있지만, 옆에서 나를 다독여 주고 말없이 힘을 실어주는 친지와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를 축하해 주기 위해 왔던 사람들의 사진 속에서 문득 “그동안 잘 있었냐”며 손이라도 잡으려는 듯, “접시꽃/ 그 웃음소리/ 환청으로 들린다”고 한다. 추억 속으로 빠져들며 접시꽃처럼 환하고 크게 웃고 있는 것은 축하객의 모습이지만 동시에 화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석탄 연기 뿜으면서 칙칙폭폭 장단 맞춰
힘이 세 기차랬나 기운차게 달려간다
판매원
“오징어, 땅콩,
맥주, 소주 있어요”
초면에 말문 트고 사투리로 나눈 술잔
자식 줄 귀한 반찬 슬쩍 꺼내 놓기도 한
구수한
기차 속 인심
세월 따라 가 버렸네
- 「기차여행」 전문
이 작품은 지난 시절 기차여행의 즐거움을 말하고 있다. 70~80년대의 기차여행, 그 시절에는 기차는 석탄을 때면서 그 힘으로 동력을 움직여 기차를 움직였던 것이다. 그래서 큰 역에서는 동력을 얻기 위해 석탄을 넣기도 하고 물을 넣기도 하여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는 역들이 있다. 그 시절 기찻칸에는 심심한 손님들을 위해 철도에서 경영하는 홍익원 판매원들이 맥주, 사이다, 땅콩, 오징어, 달걀, 건빵, 과자 등을 팔기도 하였다. 그리고 손님들은 순박하여 옆에 앉은 여행객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가고 술도 사서 함께 마시고, 자식들 주려고 가져가던 반찬도 술 안주로 나누어 먹기도 하는 순박한 풍경들을 펼치기도 했던 것이다. 지금은 볼 수 없는 풍경 중의 하나이다. 아래의 작품도 예전의 기차여행에서 맛볼 수 있는 내용이다.
청랑리 기찻길로 고향인 영주갈 때
중간쯤 원주역서 간식의 가락국수
쪼르록
배꼽시계가
소리내며 돌아가
오백원 가락국수 단무지 고춧가루
삼분의 정차시간 급하게 먹는 그맛
지금 와
생각해 봐도
꿀맛 같던 시절이
- 「추억의 가락국수」 전문
지금처럼 KTX 기차가 아니라서 기차를 타면 느리게 가는 비둘기호, 무궁화호 등이 있었고 큰 역에서는 조금 오래 머물기도 했기 때문에 플랫홈에 내려 국수를 사 먹기도 했었다. 그 때의 짧은 정차 시간에 먹던 그 가락국수에 대한 추억을 노래하고 있다. 그것을 먹는 사람들은 시장했기 때문에, 그 순간의 국수맛은 더욱 좋았을 것이다. 3분이라는 아주 짧은 시간에 가락구수와 반찬은 단무지 하나로 먹던 짜릿한 추억을 불러오는 작품이다. 그것은 그대로 꿀맛이었고, 꿀맛 같은 추억 속의 시간인 것이다. 독자의 입안에도 가득 군침을 돌게 하는 작품이다.
권오운의 「사진은 영화처럼」, 「기차여행」, 「추억의 가락국수」 등의 작품은 과거에 대한 회고의 정서가 정감을 불러오고 있다. 그것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과거의 역사로, 상상으로 비춰지겠지만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공감을 자아내며 옛 서정을 불러오는 공감능력이 있는 작품인 것이다. 또 이러한 회고의 작품들은 그 시대 삶의 모습들을 진솔하게 담고 있어, 그 시대 모습들을 은연중에 반영하기도 한다. 이러한 리얼리즘의 작품들은 그 시대의 모습을 반영한다. 시조를 시절가조를 줄인 말이라고도 하는데 시조는 이렇게 그 시대의 가치관 모습 등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 시조들도 그러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권오운 시인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주제와 소재가 많이 등장하여 과거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 그것대로의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4. 생활주변에 대한 비판과 반성
가위질 철사줄로
멋대로 재단한다
자연이 만든 예술
인위로 깍아 내며
사람들
예술이라네
안하무인, 저 무례
- 「분재의 말」 전문
「분재의 말」에서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상대나 사물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에서 또는 인간의 입장에서만 사물이나 대상을 바라보고 생각한다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아름답게 보일지 모르지만 나무의 입장에서 보면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가지가 뻗으면 뻗는 쪽으로 커가며 인위가 가해지지 않는 곳에서 자라는 것이 나무로서는 가장 행복할 것이다. 그것을 가위질로, 철사줄로 재단하고 묶어가며 자연이 만든 예술을 인간의 잣대로 인위로 깎아 내며 그것을 예술이라고 즐기는 인간은 자연에 대한 얼마나 큰 무례를 범하고 있는 것인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얼마나 큰 안하무인의 행동인가.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 더욱 예술적이고 아름답다는 시인의 생각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몸뚱이 동강 나서
울분에 몸을 떤다
산자의 자축 향연
흥겨운 웃음소리
수저가
파르르 떤다
순간 내가 아프다
- 「생선회」 전문
「생선회」에서는 생선회를 먹으며 그 생선을 생각하는 작품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며 자신들의 생존을 영위하기 위해 세상의 모든 것을 이용하고 생선이나 가축을 잡아먹으며 살아가고 있다. 생존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상대의 입장에서 보면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수족관에서 금방까지 살아있다가 횟감이 되어 산자의 향연에 놓여지며 듣는 산자들의 흥겨운 웃음소리라니…. 생선의 입장으로 바라 보면 얼마나 비참하겠는가.
사물의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들이 권오운 작품에는 꽤 있다. 이것은 살아가면서 생을 폭넓게 이해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지 말고 그 이면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참다운 시인의 눈이라고 할 수 있다.
어렵고 힘든 세상 말로서 평생 산다
한 마디 말 잘하면 천냥 빚 갚고 남아
따뜻한
좋은 말씨는
건강, 행복 삶의 거름
진실한 참된 대화 동아줄 인간관계
잘못된 말의 씨앗 내 무덤 팔 때 있다
무심코
뱉는 말속에
죽고 살기 다 있다
볼 수도 만질 수도 색깔도 없지만은
잘 하면 좋은 씨앗 못 하면 나쁜 씨앗
말의 씨
뿌려진 대로
어김없이 자라나
- 「말言 속」 전문
이 작품에서는 말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하루라도 말없이 사는 경우는 드물다. 혼자 있을 때는 직접 말은 하지 않겠지만, 그러나 전화 또는 메일 등을 통해서 외부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다. 그것을 인지하는 시인은 ‘어렵고 힘든 세상 말로서 평생 산다/ 한 마디 말 잘하면 천냥 빚 갚고 남아’라며 말의 중요성을 토로한다. ‘볼 수도 만질 수도 색깔도 없지만은/ 잘 하면 좋은 씨앗 못 하면 나쁜 씨앗/ 말의 씨/ 뿌려진 대로/ 어김없이 자라나’라며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좋은 말만 하기도 바쁠 텐데, 나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도 아닌데, 남이 잘 되면 배가 아파서 좋은 말을 해 줘도 될 상황인데도 질투하고 시샘하고 헐뜯는 경우도 많다. 시인은 ‘말의 씨는 뿌려진 대로 어김없이 자라’난다고 한다. 말의 중요성, 말의 무서움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좋은 말을 써야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는 작품이다.
풍문에 뜨고 지는 묘한 곳 이곳이다
대박을 노리지만 쪽박이 더 많은데
내일장
오르리라는
희망 속에 살아가네
돌고 도는 돈시장에 꿈의 장터 증권시장
투자와 투기 속에 일확천금 노리면서
오늘도
선택의 연속
부자 되기 꿈꾼다
- 「증권시장」 전문
「증권시장」이라는 작품은 우리들의 실생활과 밀접한 작품이다. 누구나 일확천금을 꿈꾸고 주식투자를 한다. 하지만 누구나 대박을 노리지만 실제로는 ‘대복보다는 쪽박이 더 많은데’라며 쪽박이 많은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자신은 예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일장/오르리라는/ 희망 속에 살아가네’라고 시인은 노래한다. ‘투자와 투기 속에 일확천금 노리면서/ 오늘도/ 선택의 연속/ 부자되기 꿈꾼다’고 한다.
만약에 신이 존재한다면 삶을 건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에게 행운을 주어야 한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 간혹 그런 사람에게 행운이 찾아오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관리 못해 금방 그 돈을, 그 행운을 헛되게 쓰는 사람들이 많다. 삶은 마라톤을 하듯 스스로 땀 흘리며 노력하여 얻을 때 그 성취가 더욱 소중하고 그 성취에 만족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시인은 이 작품을 통해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그러한 허망한 꿈을 꾸는 사람을 비판하고 있다.
어디든 왕초보는 서툴고 어눌한 것
새 세상 여는 것도 기쁘지만 힘겨운 일
창조란
짜릿한 입맛
명품작가 돼 봤으면
시 세계 큰 문 활짝 달과 별도 반짝반짝
새롬빛 밝아오니 어둠 점점 떠나가네
아직도
나는 왕초보
언제 무대 올라볼까
- 「명품 장인을 꿈꾸며」 전문
좋은 시를 쓰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모든 시인들은 좋은 시를 쓰고 싶어하지만 그것은 마음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구양수가 주장하던 삼다三多를 해야 한다. 즉 남의 시를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 봐야 한다. 그러자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핀 꽃은 없다. 꽃씨가 제 살을 찢고 발아해 혼신으로 물을 끌어올려 줄기를 만들고 잎을 키우고, 모양을 만들고 색을 입힌 뒤에야 꽃이란 이름으로 존재를 드러낸다. 어느 시인이 ‘꽃은 스스로를 축복한 결과’라고 했다. 사람들은 꽃을 보면서 그저 예쁘다고 할 뿐 얼마나 애썼니? 하지 않는다. 하지만 꽃은 아름답다는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문학도 그렇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작품도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은 없다. 삶이라는 토양에서 걸러낸 줄기며 잎이며 꽃이다. 스스로를 축복하고 응원한 결과이며, 울음으로 피워낸 꽃일 때가 더 많다.” - 이명지, 월간문학 2023년 7월호, 「나의 등단 이야기」 중에서.
시간도 투자하지 않고, 노력도 투자하지 않으면서 좋은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시인이 시를 쓴다는 것은 밤잠을 설치면서까지 시어 하나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남들이 즐겁게 놀러 다닐 때, 혼자서 시를 쓰기 위해 고독한 시간을 견뎌야 한다. 남이 하는 것을 보면 쉬워 보이지만 겉만 따라간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장인은 수많은 시간과 노력의 과정이며 결과물이지 장인이 되고 싶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문인에겐 명품 장인이란 없다. 그때마다 늘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작품을 쓰는 문인에게는 명품 장인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는 작품이 탄생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작품이 명품이기를 바라는 과욕보다는 한 작품이라도 좋은 작품을 남기려고 진지하게 노력하는 겸손한 자세가 문인에게는 필요하다.
권오운의 시조집 『악수』의 작품을 몇 가지 유형으로 살펴 보았다. 첫째는 화합과 상생의 마음으로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삶을 추구하는 작품들이다. 행복한 인생을 꿈꾸고 그러한 삶이기를 꿈꾸는 모습의 작품이 곳곳에 보인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사물과 인생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어떤 상황이 와도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웃음도 많고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더 많다. 그의 작품에는 유난히 웃음을 강조하는 교훈적인 작품이 많고 행복을 추구하는 작품도 많이 보인다. 주변의 사람들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그대로 작품에 반영하기 때문이다.
권오운 시인이 추구하는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작품은 가족에 대한 작품과 건강을 추구하는 작품에서 엿볼 수 있다. 어머니의 사랑으로 오늘의 내가 있음을 인식하고 어머니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고, 또한 손주에 대한 사랑을 작품 속에 잘 표현하고 있으며,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을 병원에 다녀온 경험들을 통해 과장법없이 진솔하게 독자에게 보여준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인간의 마음을 시조작품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시인은 과거를 회고하는 작품을 통하여 흘러간 역사를 불러오고 그 시대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기차여행에 대한 추억들을 통하여 예전 사람들이 지녔던 깊은 정을 불러오고 우리로 하여금 오늘날의 삭막한 인간관계의 모습을 반성하게 하기도 하고 사진을 들여다 보며 옛사람들을 추억하며 과거를 소환해 오기도 하며 그 때의 정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인간의 오만을 꼬집으며 비판하는 작품들도 보이고 증권을 통해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비판정신도 보인다.
첫시조집 『악수』를 상재하는 권오운시인께 진심으로 축하를 드린다. 첫시조집을 출간한다는 것은 그만큼 시인에게는 설레는 일이고 기쁜 일이다. 첫시조집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소재를 잘 소화해 내고 있다. 앞으로 더 좋은 작품들을 창작하여 제2권, 제3권 시조집이 계속해서 출간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다시 한 번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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