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속에 등장하는 철도문학
宇玄 김민정
1. 한국철도의 시작
한국철도는 1899년 9월 18일 경인선을 처음으로 개통했다. 경인선은 1896년(고종 33) 3월 29일 미국인 J.R.모스가 한국 정부로부터 부설권을 얻어, 1897년 3월 29일 인천 우각현(牛角峴)에서 공사에 착수하였으나 자금부족으로 중단하였다. 그후 일본인이 경영하는 경인철도회사(京仁鐵道會社)가 부설권을 인수하여 1899년 4월부터 다시 공사를 시작, 그 해 9월 18일 제물포(濟物浦:인천)∼노량진(鷺梁津) 사이의 33.2km를 개통하게 된다. 1900년 7월 5일 한강철교가 준공되자, 같은 해 7월 8일 노량진∼서울(당시의 서울역은 서대문으로 현재의 이화여고 자리) 사이가 개통되어 서울∼인천이 완전 연결되었다.
경영권은 철도를 부설한 경인철도주식회사에 속하였다가 1903년 11월 1일 경부철도회사에서 매수하여 합병하였고, 1906년 통감부 철도국에 매수되었다가, 1910년 총독부 철도국에 이관되었으며, 처음에는 화물을 주목적으로 한 철도였지만, 점차 서울∼인천 사이를 잇는 교통수단이 되어가면서 서울∼인천 사이에 수요가 높아져, 복선화 공사를 시작하게 되고, 1965년 9월 18일에 경인선의 영등포∼인천 사이 복선 노선이 개통되었다.
수도권 전철화 계획으로 1974년 8월 15일에 전철화되어 지하철과 직결 운행하였다. 1999년 1월 29일에 부평과 구로 간 복선전철이 개통되어 용산∼부평 사이 직통열차(2003년 1월 급행으로 명칭변경)가 상업운행을 시작하였고, 2002년 3월 15일에 부평∼주안 사이 복복선 전철이 개통되어 직통열차가 연장운행하게 되었으며, 2005년 말에 주안∼동인천 구간의 공사가 완료되어 인천역까지 급행열차가 운행되고 있다.
경부철도는 1901년 8월 20일 영등포에서 북부 기공식, 9월 21일 초량에서 남부기공식을 시작으로 공사를 시작하게 된다. 일본은 1904년 2월의 러일전쟁 발발 전부터 러시아와의 전쟁을 예견하고 군사수송을 위해 경부철도를 긴급 부설하기로 결정한다. 1903년 12월 2일 경부철도회사에 경부선 속성건설의 명령을 내리고 필요자금을 지원하면서 늦어도 1904년 12월 31일까지 전 구간을 개통하라는 명령을 추가 하달한다. 1904년 11월 모든 구간의 공사가 준공되어 1905년 1월 1일 초량~경성(서대문역)간 영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개통식은 1905년 5월 25일 남대문역 구내에서 거행되었으며, 이날 개통식에 참석한 주한미국공사 Horace N. Allen은 축사에서 “나는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차장에게 ‘남대문역에서 내려주시오!’라고 말할 날이 오기를 희망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당시 시각표에 의하면 오전 9시에 경성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오후 8시 15분에 초량역에 도착하였으며, 총 11시간 15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경부철도는 한국내의 교통이나 경제상황보다는 중국대륙을 거쳐 유럽에 이르는 대륙철도의 간선역할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던 것이다. 가능한 한 최단거리로 선로가 놓이게 하였으며, 구배나 큰 터널 또는 하천의 범람 등을 피하는 노선으로 오늘날의 경부철도 노선을 확정하였다.
초량~부산 간은 구릉과 바다로 막혀있어 초량을 종착역으로 결정하여 철도를 부설하고 개통하였으나, 경부철도를 개통한 이후, 일본인 거류민들을 포함한 부산 거주민들이 부산까지 연장하는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에 터널을 파고 바다를 매립하여 부산까지 철도를 연장하여 1908년 4월 1일 초량~부산 간 철도가 개통됐다. 이날부터 서울~부산 간 야간열차 운행이 시작되었고, 최초의 급행열차 제1, 제2열차에 식당차를 운행하였다. 또 부산~신의주간 직통급행열차 융호열차와 희호열차 운행이 개시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날부터 경부선에 통표폐색기가 설치되고 신호규정이 제정되어 시행되었다. 개통초기 한국철도에 근무했던 일본인 강구관치(江口寬治)가 1936년에 남긴 ‘철도회고록’에 의하면 당시 부산~신의주간 직통열차 열차명 제정을 위하여 철도국간부들이 연구한 결과, 조선의 연호 융희로 결정하고 북행은 ‘융열차’, 남행을 ‘희열차’로 결정했다고 한다.
2. 한국철도시(詩)의 시작
1908년 최남선(崔南善)이 지은 창가 「경부철도가」는 경부철도를 노래한 것이다. 장편 기행체의 창가로, 원제목은 <경부聊도노래>이다. 신문관(新文館)에서 단행본으로 발행하였으며, 이 작품은 철도의 개통으로 대표되는 서구문화의 충격을 수용하여 쓴 것이다. 즉, 경부선의 시작인 남대문역에서부터 종착역인 부산까지 연변의 여러 역을 차례로 열거하면서 그에 곁들여 풍물 ․ 인정 ․ 사실들을 서술해나가는 형식을 취했다. 이 창가는 67절, 각 절 4행으로 총 268행으로 되어 있다.
우렁차게 토하는 기적 소리에
남대문을 등지고 (서울역=경성역)떠나 나가서
빨리 부는 바람같은 형세니
날개 가진 새라도 못 따르겠네
늙은이와 젊은이 섞여 앉았고
우리네와 외국인 같이 탔으나
내외 친소(親疎) 다같이 익히 지내니
조그마한 딴 세상 절로 이루었네
- 최남선, 「경부철도가」 1절과 2절
인용한 시는 경부철도가 1절과 2절이다. 질풍처럼 발전하는 개화문명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문호 개방, 세계 인류 평등사상, 모두가 거리감 없고, 세대차이도 없는 개화된 새로운 사상을 보여주고 있다. 개화문명을 찬양하는 계몽적이고 교훈적인 성격이며, 직유, 과장, 영탄 등의 표현법을 쓰고 있다.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철도가'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이 창가는 스코틀랜드 민요 'Coming through the Rye(밀밭에서)'의 곡조가 붙어 있다.
창작 의도는 다른 창가나 신체시처럼 국민의 교도와 계몽이었으며, 특히 청소년에게 국토지리에 대한 교양과 지식 고취를 목적으로 했다. '철도'라는 신문명의 도구가 지닌 이점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동시에 문명개화의 시대적 필연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였다. 또한 작가가 지녔던 개화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를 엿보게 하는 작품으로, 그 밑바탕에는 현대문명에 대한 열망과 함께 세계 동포주의 사상도 나타나며, 개화를 강력하게 열망하는 숨은 뜻도 담겨 있다.
형식면은 일종의 연형체 창가로 4행을 한 단위로 그 머리에 한자로 숫자가 매겨져 있다. 전편은 67연 268행이며 각 행이 정확하게 7.5조의 자수율로 이루어진 정형시다. 결국 이 작품은 268행의 서술체 작품이라 볼 수 있다. 이 작품 앞자리에는 4분의 2박자 4절로 된 부곡(附曲)이 있는데, 이 작품은 여느 창가와 마찬가지로 가사 제작에 그치지 않고 곡조와 함께 여러 사람들이 노래 부르도록 꾸며져 있다.
다음에는 1930년대 김기림의 ‘심장 없는 기차’라는 작품을 살펴보자.
여기는 삼월에도 하늘에서 비가 눈이 되어 내리는 북쪽국경 가까운 동리라오.
남포소리가 산을 울리던 이듬해부터 칠년을 기차는 들의 저편을 날마다 외투를 입은 구장 영감처럼 분주하게 달려댕기오.
가을마다 기차는 그 기다란 몸둥아리에 붙은 수십 개의 입을 벌려서 이 동리 사람들을 하나 둘 하나 둘 삼켜가더니 지금은 마을의 절반이나 텅 비었오.
우리들은 지난밤도 마을에서 십 리나 되는 정거장에서 떠나가는 이, 남아 있는 이, 슬픈 ‘잘 가오’와 ‘잘 있오’를 몇 번이나 불렀오.
기차가 어둠을 뚫고 북으로 뛰어간 뒤에는 검은 철길이 우루루 울었오. 남폿불이 조으는, 시골 정거장에서 우리들의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았오.
편지는 없으나 바람과 같이 떠도는 말을 들으면 기차는 그들을 두만강 밖에 배앝아 버렸다는데 나오는 기차는 말이 없이 슬그머니 지나만 가버리오. [중략]
기차가 떠난 뒤꼬리면 언덕에 걸터앉아 시들어지는 나의 마음이 땅위에 남고 보-얀 연기기둥이 푸른 하늘에 남소.
잊어버리운 연기는 사냥개처럼 궤도 위를 냄새를 맡으며 돌아댕기오. 나의 마음은 송화강가로 돌아댕기오.
기차여 너의 기관차 화통에서 벌겋게 타는 것은 너의 심장인 줄만 알았더니 그것은 시커먼 석탄이었고나.
- 김기림, 「심장 없는 기차」 부분, 1933.
김기림은 시 「심장 없는 기차」에서 ‘우리들은 지난 밤도 마을에서 십리나 되는 정거장에서 떠나가는 이, 남아 있는 이, 슬픈 "잘 가오"와 "잘 있오"를 몇 번이고 불렀다오. 기차가 어둠을 뚫고 북으로 뛰어간 뒤에는 검은 철길이 우루루 울었오’라고 국경을 넘는 민중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조선철도는 문명의 이기가 아닌 침략과 지배, 수탈과 분열, 탄압과 차별이라는 식민지의 모순을 실어 나르는 슬픈 기관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즉 일본제국주의가 지배하는 조선땅은 점점 살기가 어려운 곳이 되어갔고, 땅뙈기 하나 없는 농민은 고율 소작료에 시달리다가 결국은 얼마 되지도 않는 가재도구를 보따리에 싸서 이고 지고 야반도주 하듯 고향땅을 떠나 멀고먼 이국으로 떠나가야 했다. 그들 중에는 자기 농토를 철도에 빼앗긴 농민도 있었을 것이다. 김기림의 시 「심장 없는 기차」는 그렇게 고향을 등지는 사람들을 싣고 아무런 감정도 없이 두만강 건너 거친 땅으로 떠나가는 기차의 모습을 슬프도록 처연하게 그리고 있다.
다른 방향에서 보면, 철도는 봉건시대의 굴레를 벗겨내는 촉매가 됐고 전국을 단일한 경제권과 의사소통 공간으로 바꿔놓았다. “신문은 조선반도 전역에서 정보를 수집해 활자화하고 그것을 다시 전국의 독자들에게 배달한다. 신문의 유통 시스템을 담당한 것이 바로 철도와 우편이었다.” “철도를 통해 부산의 풍물과 소문이 멀리 북방의 신의주와 회령까지 빠르게 전파됨으로써 사람들은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유대감을 형성하게 된다. 다시 말해 지역적 폐쇄성이 점차 허물어지고 사람들은 공통의 생활감각을 획득하게 된다. 더 나아가 철도는 중세적인 농촌 공동체의 질서를 넘어서 민족적 일체감을 형성하게 했다.”고 평가한 것들을 보면 철도가 개화를 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최남선의 「경부철도가」가 철도에 대한 긍정적인 면, 개화적인 면을 노래했다면, 김기림의 「심장 없는 기차」는 철도에 대한 부정적인 면, 애환적인 면을 노래하고 있다. 문학사적으로 볼 때 철도에 대한 긍정적인 작품만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고 부정적인 것도 보존의 가치가 있다. 그것은 우리 삶, 우리 민족이 거쳐 온 과정이며, 삶의 모습이며, 역사이기 때문이다.
3. 한국철도시(詩)의 현황 및 성격
소재면을 살펴보면 철도역, 철도(기찻길), 철도여행, 철도를 배경으로 한 삶의 모습 등을 노래한 작품들이 많다. 주제는 만남, 이별, 삶의 애환, 그리움, 여행의 설레임, 기다림 등 다양하다. 형식은 시조, 자유시, 동시 등이 있다. 먼저 최근의 자유시 중에서 철도역을 소재한 한 작품을 두 편 살펴보고, 시조도 살펴보자.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 곽재구 「사평역에서」전문
곽재구의 시집 제목이기도 한 ‘사평역에서’라는 시는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품이다. 이 시에서 등장하는 사평역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역이며, 다만 모델이 됐던 역은 광주광역시에 소재한 남평역이다. 이 역 역시 지금은 존재하지 않고 조선대학교 앞쪽에 위치했던 역이다. 톱밥난로도 그 당시 남평역에 없던 것으로 시인이 남해 어촌에서 군인으로 복무하던 시절의 추억을 재구성한 것이며 가상적인 철도역을 소재로 하여 작품을 구상한 것이라 한다.
막차가 오지 않는 겨울, 시골 간이역의 대합실에서 '할 말들은 가득해도'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80년대 역사의 변방으로 밀려나 막연한 기다림으로 지쳐 있는 소외 인물들의 고독과 우울을 따뜻한 시선으로 포착하고 있다. 그들을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한줌의 톱밥' 과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며 관망할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화자의 독백에서 자조적 비애감, 쓸쓸함이 느껴지는 시이기도 하다. 이 시는 존재하지 않는, 그러나 그 당시 어느 역에나 해당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시를 씀으로써 오히려 폭넓은 독자층을 가질 수 있었다.
너를 기다리다가 / 오늘 하루도 마지막 날처럼 지나갔다
너를 기다리다가 / 사랑도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바람은 불고 강물은 흐르고 / 어느새 강변의 불빛마저 꺼져버린 뒤
너를 기다리다가/ 열차는 또다시 내 가슴 위로 소리없이 지나갔다
우리가 만남이라고 불렀던 / 첫눈 내리는 강변역에서
내가 아직도 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나의 운명보다 언제나 / 너의 운명을 더 슬퍼하기 때문이다
그 언젠가 겨울산에서 / 저녁별들이 흘리는 눈물을 보며
우리가 사랑이라고 불렀던 / 바람 부는 강변역에서
나는 오늘도 / 우리가 물결처럼 / 다시 만나야 할 날들을 생각했다
- 정호승, 「강변역에서」전문
실제하는 역명을 지닌, 지하철 2호선 ‘강변역’을 노래한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기쁨보다는 슬픔이 느껴지는, 이별한 애인을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우리가 물결처럼/ 다시 만나야 할 날들을 생각했다’고 과거형으로 끝나고 있어 아직 만나지 못하고 계속 기다림이 이어질 것 같은 쓸쓸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역은 마중할 수도, 배웅할 수도 있는 ‘만남과 이별’의 장소지만, 시나 노래에서는 만남보다 이별에 대한 것이 더 많고, 이별을 노래한 것들이 사람들의 가슴을 더 많이 적시고, 더 많이 회자된다. 그 이유는 타인의 슬픔이 내 슬픔을 치유할 수 있는 카타르시스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슬픔이 내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시에서처럼 다른 사람들도 슬픔이 있다는 것을 앎으로서 스스로 위로받고 자연스레 치유되기 때문일 것이다. ‘대전부르스’ ‘이별의 부산정거장’ ‘남행열차’ 같은 대중가요들이 그런 역할을 했다.
무심히 피었다지는/ 풀꽃보다 더 무심히
모두가 떠나버린/ 영동선 철로변에
당신은/ 당신의 자리/ 홀로 지켜 왔습니다
살아서 못 떠나던/ 철로변의 인생이라
죽어서도 지키시는/ 당신의 자리인 걸
진달래/ 그걸 알아서/ 서럽도록 핀답니다
시대가 변하고/ 강산도 변했지요
그러나 여전히/ 당신의 무덤가엔
봄이면/ 제비꽃, 할미꽃이/ 활짝활짝 핍니다
세월이 좀더 가면/ 당신이 계신 자리
우리들이 자리도/ 그 자리가 아닐까요
열차가/ 사람만 바꿔 태워/ 같은 길을 달리듯이…
- 김민정, 「철로변 인생 - 영동선의 긴 봄날 1」전문
『영동선의 긴 봄날』이란 시조집은 「영동선의 긴 봄날 1」부터 시작하여 「영동선의 긴 봄날 77」까지 연작이지만 작품마다 제목이 따로 있으며, 5편씩 묶어 같은 소재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77편 1127행으로 되어 있다. 『영동선의 긴 봄날』은 우리민족 역사의 변동기였던 일제시대, 육이오 등을 거친 평범한 한 개인의 역사, 국내유일의 강삭철도와 스위치백 철도 등의 모습이 나타나는 영동선의 역사, 탄광촌의 역사, 민족의 역사를 아울러 지니고 있다. 사실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면서 상상을 가미하여 창작되었기에 <서정서사시조집>이라고 명명된다. 유성호 교수는 이 시조집 발문에서,
“그 한 편 한편이 시인의 애잔하고도 근원적인 ‘서정적’감각을 담고 있으면서도, 일종의 ‘서사적’기억에 의해 한 줄기로 묶이는 속성을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으며, 시인은 ‘시조’라는 단형의 서정 양식을 통해, 가파르게 살아오신 아버지의 생을 때로는 호활하게 때로는 섬세하고 재구성하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바람을 켜고 있는 색동의 바람개비
온 종일 일렬종대 누구를 맞고 있나
고향역 아리는 눈길 저 너머 언덕을 본다
산정보다 높게 앉은 잔설 위 햇살처럼
두고 떠난 옛길들이 얼굴 환히 돌아오고
윤이월 깨무는 속살, 봄의 촉이 트고 있다
- 김민정, 「추전역에서」 전문
하늘 아래 첫 정거장 태백선 간이역엔
팔백오십 고도만큼 하늘 길도 낮게 열려
소인도 없는 사연들 눈꽃으로 날린다
한 때는 그랬었다, 무청 같이 시리던 꿈
처마끝 별을 좇아 시래기로 곰삭을 때
산비알 삼십 촉 꿈이 온 새벽을 열었다
화전밭 일구시며 석 삼년을 넘자시던
이명 같은 그 당부 달무리로 피고 질 때
사계(四季)를 잊은 손들은 별을 향해 떠났다
자진모리 상행철로 마음이 먼저 뜨고
구공탄 새순마다 붉은 꽃이 피어날 때
그 얼굴 다시 살아나 온 세상이 환하다
- 장중식, 「추전역」전문
희망은 언제나 높은 곳에 자리했다
우리나라 제일 높은 / 해발 855m 추전역
서민의 애환 덜컹이는 태백선 완행열차
그 화력 좋던 석탄 다 실어 보내고
가슴 비운 사람끼리 꿈을 안고 찾아드는
태백의 관문 / 일상에 지친 삶의 아픔도
구름 벗한 높이쯤 다다르면
어느새 길고 긴 정암 터널 빠져 나온 / 환한 세상
저 아래 발원지에서 흐르는 한강 낙동강
팔도의 애환 굽어보는 / 싸리밭 가득한 우리의 희망은
해발 855m
- 정연수, 「추전역」 전문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추전역’에 관한 작품들이다. 태백선의 간이역, 언제부터인가 기차가 서지 않고 통과하는 역이며 지금은 O트레인과 눈꽃열차가 운행될 때만 서는 역이다. 추전역에서 돌고 있는 색동의 바람개비가 금방 손에 잡힐 듯하다. 멀리 잔설이 남아있는 바람의 언덕에는 수력발전의 큰 풍차들이 돌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윤이월 깨무는 속살, 봄의 촉이 트고 있다’며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봄은 오고, 봄의 촉이 트고 있다는 표현으로 희망적인 미래를 노래하고 있다.
두 번 째 시조에서는 ‘화전밭 일구시며 석 삼년을 넘자시던/ 이명 같은 그 당부 달무리로 피고 질 때/ 사계(四季)를 잊은 손들은 별을 향해 떠났다’고 하여 추전역의 쓸쓸함을 말하기도 하지만, ‘자진모리 상행철로 마음이 먼저 뜨고/ 구공탄 새순마다 붉은 꽃이 피어날 때/ 그 얼굴 다시 살아나 온 세상이 환하다’며 기억 속에 사라지는 역이 아니라, 다시 얼굴 환히 살아나는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정연수의 시에서는 ‘서민의 애환 덜컹이는 태백선 완행열차/ 그 화력 좋던 석탄 다 실어 보내고/ 가슴 비운 사람끼리 꿈을 안고 찾아드는/ 태백의 관문’이라며 한때 석탄으로 유명했던 시절을 다 보냈던 역, 지금 비록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이고 눈꽃열차의 승객만이 이 역에 내려 즐기다 가지만, ‘희망은 언제나 높은 곳에 자리했다/~팔도의 애환 굽어보는/ 싸리밭 가득한 우리의 희망은/ 해발 855m’라며 이곳을 역시 절망보다 희망으로 노래하고 있다.
아래는 서정주의 작품으로 1965년 9월 18일에 개통된 「경인복선 개통의 날」이란 축시이다.
항시 열려있는 / 出札口와 開札口
單線 아닌 複線 / 京仁線뿐만 아니라
우리 生活의 모든 것이 다 그리되었으면…
언제든지 / 到達하고 돌아올 수 있는
京仁複線의 鐵路같이 되었으면…
서울의 主婦들은 / 인제 / 仁川 魚市場을 보아서
저녁 밥상을 차릴 수 있게 된 것이 기쁠 것이고
仁川과 서울 사이의 通勤者와 留學生들은
서울과 仁川 사이의 그 고단한 距離感을
느끼지 않게 되어서 좋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더 많이 고단한 / 距離感속에 사는 우리들은
우리 貧慾의 한 象徵的 現實 / 京仁線의 開通을 눈앞에 보며 꿈인 양
이 象徵이 암시하는 머언 領域을 / 遠視하고 섰다
- 서정주, 「경인복선 개통의 날에」 전문
경인선 복선전철의 개통으로 조금 더 편리하고 빨라진 서울과 인천 간의 교통, 주부들과 통근자와 유학생들이 서울과 인천 간의 거리감을 느끼지 않아서 좋을 것이다며 한 편으로 ‘이 象徵이 암시하는 머언 領域을/ 遠視하고 있다’고 했다.
성산에서 문산까지 사십점 육 킬로미터
단선디젤 구간에서 복선전철 구간으로
고결한 숨결이 되어 신선하게 태어난다
유라시아 대륙으로 대동맥을 펼쳐 나갈
통일의 꿈 피어나는 가야할 길 시작이다
이제 막 심장으로부터 더운 피를 뿜는다
정점 향해 달려가는 순수의 네 행보는
아스라한 철로 위에 섬광처럼 반짝이고
너와 나, 함께할 내일 눈부시게 푸르다
칼날처럼 변화하는 디지털의 세상에서
판문점, 임진각아 너희들도 변해 보렴
경의선 기적소리여, 관통하라, 남과 북!
- 김민정, 「경의선 기적소리여 - 경의선복선전철개통 축시」 전문
이 작품은 경의선 복선전철이 개통됨을 축하하는 시이며, 축복과 염원이 담긴 시조다. 경의선은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가는 기찻길이다. 문산에서 멈출 것이 아니라 판문점․임진각을 지나 그 기적이 남과 북을 관통하여 북한의 신의주까지 가기를, 아니 더 먼 유라시아 대륙까지 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 국민의 간절한 바람을 피력한 작품이다.
철도시들은 「경부철도가」 「경인철도가」 「경의철도가」 등의 창가 작품이 있고, 고유섭의 「경인팔경」, 서정주가 쓴 「경인선 복선 개통의 날」도 있다.
2010년에는 한국철도 111주년을 기념한 시조작가초대시화전이 열려 2011년 5월 28일 대전역(당시 대전충남본부장 강해신)에서 처음으로 개최되어 시조문학진흥회 시인들을 중심으로 철도를 소재로 한 시조작품 32편을 대전역, 천안아산역, 청주역, 제천역, 태백역 등에서 1년간 전국 순회전을 하기도 했다.
4. 한국철도시의 보존 및 확대 방향
철도가 개통되고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철도에 관한 작품들이 쓰였지만 그것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논문도 드물고, 또한 보관해 놓은 곳도 없다. 이미 창작된 철도시, 현재 창작되고 있는 철도시, 앞으로 창작될 철도시들을 어떻게 보존하고 또 활성화시켜 국민들이 계속 철도를 아끼고 사랑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모색해 보려 한다.
첫째, 『한국철도시전집』의 발간이다. 철도시들을 수집하여 『한국철도시전집』이란 책으로 묶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발표된 작품들을 모아 정리를 하고, 앞으로도 몇 년 단위로 계속 발간을 해 나간다면 가치 있는 『시전집』이 될 것이다. 2007년 발간된 『한국탄광시전집』Ⅰ․Ⅱ권처럼 현재 흩어져 있는 철도시도 모아서 『한국철도시전집』으로 묶어 국회도서실, 대학도서실, 지역도서실, 철도박물관, 각 역의 맞이방 등에도 비치한다면 국민들이 철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문학을 통한 ‘국민의 철도’라는 인식 확산으로 철도를 사랑하고 애용하리라 생각한다.
둘째, <철도문학상> <청소년철도문학상>등의 활성화이다. <철도문학상>은 국토해양부에서 2009년에 만들었다고 하나 대다수의 문인들조차 그런 상이 있는지 모르고 있다. 국토해양부에서 주최를 할 것이 아니라 한국철도공사에서 주최를 하고 문학인을 운영위원으로 두어 실행한다면 좀 더 활성화 되고 그 효과도 클 것이라 생각되며, 한국문학에서 <철도문학>이란 개념이 제대로 정립될 것이다.
셋째, 유명한 역에 시비, 시화액자, 시판 등의 건립이다. 책에 수록하는 것은 자료보관으로 가치가 있지만 자칫 사장되는 문학이 될 수도 있다. 때문에 시비, 시화액자, 시판 등을 건립하여 여행객들이 많이 볼 수 있고, 애송할 수 있도록 만든다면, 시를 통해 여행객들의 마음도 순화시킬 수 있고 기차역이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어 사회를 위한 진정한 공익사업이 될 것이다.
넷째, 철도에 관한 시집, 수필집, 소설집 등이 출간되면 한국철도공사에서 검토하여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책들은 구입하여 각 역의 맞이방, KTX 기차 등에 비치한다. 현재의 레일로드 등이 꽂혀있는 곳에 레일로드와 함께 비치하여 독자들이 철도에 관한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다면 더욱 사랑받는 한국철도공사가 될 것이다.
다섯째, 아름다운 철도시를 엽서로 인쇄한다. 한 면은 시를 인쇄하고 다른 면은 간단한 편지를 적을 수 있는 공간과 주소를 인쇄하여, 제작한 엽서는 각 역 또는 KTX 좌석 등에 비치하여 여행객들이 간단하고 쉽게 사용하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친필편지가 사라져가는 요즈음, 친필엽서를 받음으로써 사랑도 우정도 깊어질 수 있어 인간관계가 호전될 것이며, 쓰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철도여행에 대한 좋은 추억을 오랫동안 간직하게 될 것이다.
여섯째, '레일로드', 'RAIL로 이어지는 행복 PULS' 등에 철도시를 많이 싣고, 시창작 배경 및 현장 등에 대한 설명을 싣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일곱째, KTX 좌석 등받이에 철도와 여행에 관한 시 등을 인쇄하여 앉은 고객들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칸칸마다 다른 작품들을 선정하여 사용하고 한 달, 또는 일주일씩 바꾸어 다른 칸에 교환하면 새로운 느낌을 줄 것이다.
여덟째, 각 역의 출입문, 플랫홈 등에 철도시를 소개하면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지 않고, 철도역을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한국철도공사에서 우리 고유문학인 시조를 많이 소개하고 창작활성화를 시켜 노벨문학상도 타게 한다면 한국문학의 발전에 크나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며, 더욱 사랑받는 국민의 철도가 될 것이다.
5. 맺는 말
사라져가고 잊혀져가는 예전의 철도시를 보존하고, 앞으로 더 많은 철도시가 창작되어 「철도시」나아가 「철도문학」이 한국문학 속에 하나의 큰 장르로 발전되고 성장하기를 바란다. 또한 한국철도공사가 문학을 통해 온 국민들과 원활히 소통하고 화합하여 국민들로부터 더욱 사랑받는 ‘국민의 철도’로 거듭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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