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수 작가의 생애와 작품세계
김어수(金魚水)는 1909년 1월 4일 강원도 영월군 상동면 직동리에서 7대 독자로 출생했으며, 1985년 1월 7일 사망했다. 시조시인이며 본명은 김소석(金素石), 호는 영담(影潭), 법명은 어수(魚水)이다. 13살 때 부모를 모두 여의고 범어사에 출가했다. 불가에 입문 후 5년 만에 일본 유학생으로 뽑혀 일본 교토 화원중학(花園中學)을 졸업하고,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졸업했다. 1945년 이후 부산, 경남 등지에서 교직생활을 하였으며, 금정중학교 교장,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상임포교사,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위원장, 한국현대시조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1932년 〈조선일보〉에 시조 「조사(弔詞)」, 《조광》지에 「고향」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중앙불교전문학교 재학 중 김달진ㆍ나운경(羅雲卿) 등과 교우지 <룸비니>를 만들어 창작활동을 하였으며, 1966년 한국문인협회 울산지부의 창립 지부장이 되었고, 1968년 대한불교조계종의 첫 상임 포교사로 선발되었다.
김어수 선생은 시조가 아직 현대시로 정착하지 못했던 30년대 초반부터 시작에 전념, 마침내 시조를 현대시의 경지에까지 끌어올리는 데에 결정적인 일익을 담당하였다. 현대적 감각을 살린 시조형식으로 인생과 자연과 선(禪)의 세계를 파고들어 그 실체를 밝히는 데 주력하였다. 제5회 노산문학상(1980) 수상하였다.
그의 시조집으로는 『회기선의 꽃구름』(一鵬三藏院. 1976), 『햇살 쏟아지는 뜨락』(一鵬三藏院. 1978)이 있다. 수필집으로는 『달안개 피는 언덕길』(한진문화사. 1975), 『가로수 밑에 부서지는 햇살』(한국출판문화공사. 1983)가 있고, 번역서로는 『안락국태자경(安樂國太子經)』(통도사대구포교소. 1937), 『법구경(法句經)』(보성문화사. 1979), 『붓다의 으뜸가는 제자 열 분』(공역. 보림사. 1986)이 있다. 그 밖의 저서로 『스님에게서 온 편지』(미래산업사. 1983), 『이 짙은 향기를 어이하리』(보림사. 1983)가 있다. 평론은 「육하정신(六和精神)의 구현」(법시 75. 1971. 7), 「현실은 언어의 비상사태이다: 변해가는 언어의 본질을 찾자」(교육관리기술. 1971. 10), 「포교인(布敎人)의 자세」(불교 102. 1980. 6) 등 주로 교육과 불교에 관한 것이 있다.
김어수 선생 기념사업회에서 2009년 김어수 선생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선생의 고향인 영월에 「봄비」 시조비를 건립하였으며 시조비는 디딤돌이 62톤, 시비석이 70톤으로 총 무게가 132톤에 달하며, 높이 550㎝, 폭 360㎝, 두께 100㎝, 시비 둘레 860㎝로 국내 최대의 자연석 시비로 알려져 있다. 시조비 인근은 ‘김어수 공원’으로 조성하여 그를 기념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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