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제576돌 한글날을 맞으며
김민정(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 회장)
2022년 10월 9일, 제576돌 한글날이다. 우리 민족에게 우리말과 우리글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세계의 많은 민족 중에서 고유의 말과 글을 가진 민족은 많지 않다. 늘 이맘때면 잊었던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한 감사함을 새삼 느끼고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평소에 공기의 고마움을 잊고 살 듯 편하게 한글을 사용하여 여러 가지 글을 참 쉽고 편하게 쓰면서도 그 고마움을 잊고 있다는 것에 가끔은 미안한 생각이 든다.
우리 한글의 가치를 가장 먼저 서구에 알린 사람은 조선 최초의 근대 관립학교인 육영공원에 교사로 와 있던 미국인 헐버트(Hulbert, Homer Bezaleel)다. 그는 한글을 사용하면 조선의 근대화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한글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사민필지士民必知”라는 한글체 교과서를 처음 펴내기도 했다. 그는 조선의 문화를 서양에 알리는 영문 잡지를 창간하고, “이보다 더 간략하게, 이보다 더 과학적으로 발명된 문자는 없다.”고 한글을 극찬하는 논문을 실어 서양에 한글을 학술적으로 처음 소개하였다. 서재필은 한글의 가치를 깨닫고 한글체 독립신문을 발간하여 국민 계몽에 나섰고, 그의 제자 주시경은 국어와 국사를 연구하고 가르쳤다. 그리고 주시경의 제자들은 조선어 학회를 결성하고 한글날을 제정하였다. 또한 그들은 1929년부터 조선어대사전의 편찬을 시작하고 한글 맞춤법 통일안과 같은 어문 규정을 만드는 등 우리말과 우리글의 연구, 정리, 보급을 위해 노력해 왔다.
현재 한국어는 쓰는 인구가 8천만이 넘어 세계 15위권의 언어가 되었다. 또한 한글은 정보화 시대에 컴퓨터, 휴대전화 등 소프트웨어 산업에도 유리해 다시금 그 우수성과 과학성이 입증되고 있다. IT강국으로 발전하는데 한글의 공헌이 컸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해서 IT강국으로 발전해 갈 것이며 그 밑바탕에는 한글의 우수성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유네스코는 1989년 ‘세종대왕상’을 제정해 1990년부터 문맹 퇴치 운동에 힘쓴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하고 있고, 1997년에는 한글의 가치를 인정하여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록하였다. 배우기 쉽고 쓰기 편한 글자라서 동티모르와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은 한글을 공용문자로 채택하여 쓰고 있다. 그 외 많은 나라에서 한글을 배우는 열풍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한글의 우수성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리는 외국인이 한글의 우수성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면 그 자리에서 대답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세종대왕은 1443년(세종25년)에 훈민정음 스물여덟자를 만들었다. 세종실록 102권, 세종 25년 12월 30일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이 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는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였으며,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뉜 것을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항간의 속된 말에 관한 것까지 모두 적을 수가 있다. 이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일렀다.” 이후 3년간의 실험을 거쳐 1446년에 훈민정음을 백성에게 반포한다. 4자는 사용하지 않게 되어 지금은 한글의 기본 글자는 자음 14자와 모음 10자로 되어 있어 24글자다.
한글의 자음 글자는 그 소리를 낼 때 쓰이는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ㅁ’은 입 모양을, ‘ㅅ’은 이의 모양을, ‘ㅇ’은 목구멍 모양을 본뜬 것이다. 그리고 ‘ㄱ’과 ‘ㄴ’은 둘 다 혀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으나 혀가 가만히 있을 때의 모양이 아니라 그 혀가 이들 소리를 낼 때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 ‘ㄴ’은 혀가 윗잇몸에 붙는 모양을 본떴다. 이를 상형의 원리라고 하는데, 발음기관을 상형으로 글자를 고안해 낸 발상은 세계적으로 가장 과학적이고 독창적이라고 한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점은 다섯 자음 외의 다른 자음은 기본자에다가 소리가 조금 더 세어지면 획을 하나씩 더하는 방식을 취한 가획의 원리라고 한다. 즉 자음을 만든 원리는 발음기관 상형의 원리에다가 소리세기예 따른 가획의 원리를 더하여 만들었다.
모음도 마찬가지 원리이다. 모음은 ‘·’는 하늘의 둥근 모양, ‘ㅡ’는 땅의 평평한 모양, ‘ㅣ’는 사람이 서 있는 모양을 본떠 기본으로 삼고, 나머지는 이것들을 조합하여 만든 것이다. ‘·’를 ‘ㅡ’의 위와 아래, ‘ㅣ’의 오른쪽과 왼쪽에 붙여서 초출자 ‘ㅗ, ㅜ, ㅏ, ㅓ’를 만들고 다시 ‘·’를 하나씩 더하여 재출자 ‘ㅛ, ㅠ, ㅑ,ㅕ’를 만든 것이다. 이처럼 한글은 스물여덟 자를 하나하나 만들지 않고 일단 기본자를 만든 후에 나머지는 기본자에서 파생시키는 이원적 조직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한글이 우수한 점은 한글은 모아쓰기를 한다는 것이다. ‘젊고’를 ‘ㅈㅓㄹㅁㄱㅗ’로 풀어쓰지 않고 ‘젊고’로 묶어씀으로써 ‘젊’만 보아도 그 뒤에 무엇이 붙든 이미 이 단어가 무슨 단어인지 알아차릴 수 있어 그만큼 빨리 의미 파악이 가능하다. 즉 독서능률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 한글은 쓰기 쪽과 읽기 쪽을 모두 고려하여 만든 글자로 이원적 조직으로 만든 것은 쓰기 쉽게 한 것이고, 모아쓰기를 한 것은 읽기 쉽게 한 것이다.
한글의 우수한 점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발음기관을 본뜬 점(발음기관 상형원리), 이원적으로 조직한 점(가획원리), 모아쓰기를 한 점이다. (이익섭, 「한글의 개성」 참조)
세계에서 가장 IQ가 높다는 한국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한글 때문이 아닐까? 보고 듣고 생각하는 속도는 우리가 평소에 쓰는 언어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언어를 빨리 눈으로 읽어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또한 책을 읽는 속도가 빨라 지식이나 문명을 받아들이는 속도도 빨라지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시민의식이 남다르고 민주주의 의식이 잘 발달되어 온 것은 우리 민족이 추구하는 인간형은 주변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교육적 이념과 한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한글을 누구나 읽기 쉽고 배우기 쉬우라고 만든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은 이미 백성을 근본으로 생각하는, 즉 모든 사람이 존엄하고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민주주의 사상이 그 바탕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반상의 구별없이 누구나 읽고 쓸 수 있어 자기의 의견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고 쓸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는 일은 백성의 의식을 자라게 하고 백성들을 현명하게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장영실 등 뛰어난 인재를 반상을 따지지 않고 등용해서 쓰던 그의 인재등용법과도 상통하는 사상이다. 때문에 훈민정음은 우리 민족의 언어 사용만 편하게 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은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민주주의 발전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요즘 많은 외국인들이 한글을 쉽게 배워 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에게도 여러 명의 외국인들이 편지를 한글로 보내오고 있는 실정이고 나도 한글로 편지를 보내고 있다. 그래서 영어가 서툰 나도 어렵지 않게 그들과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이처럼 외국인들은 한글의 가치를 점점 높이 평가하고 우리말과 우리글을 많이 사용하려고 하는데 정작 우리는 외래어와 외국어를 남용하고, 맞춤법에 맞지 않는 표기를 사용하는 등 우리말과 우리글을 경시하는 풍조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 체계적, 경제적인 글자인 우리글을 더욱 갈고 다듬어 아름다운 언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자세는 한국인이라면, 한국문학인이라면, 한국의 정형시 시조를 쓰는 시조시인이라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김민정 논문.평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0회 한국여성시조문학상 심사평: 따뜻한 정이 스민 일상을 노래한 우수한 작품 (0) | 2022.10.05 |
---|---|
국보문학 권두언 (2022. 10월호) (0) | 2022.10.05 |
공직자문학상 심사평(2022) (0) | 2022.08.25 |
보령해변시인학교와 한국문인협회 보령지부의 발전을 기원하며 (0) | 2022.08.02 |
163회 월간문학 시조심사평 / '고스란히'를 읽고 (0) | 2022.07.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