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자와 함께 걷는 유유함, 그 자동기술을 따라가다
노창수(시인. 문학평론가)
마음 상하는 온갖 일 눈앞에 있어, 추운 서재애서 밤새도록 잠 못 이루었네
옷걱정, 밥걱정, 근심은 그치질 않은데, 다시 병오년을 맞이하게 되었네.
(萬事傷心在日前 寒齌撤曉袛無眠 虞衣虞食虞無止 更與相逢丙午年)
- 남효온(南孝溫)의 시 중에서
1. 자동기술의 세계로 들어서며
마침, 여자 친구의 문자, ‘지금 뭐해?’ 그러자 명료한, 그러면서 다시 묻는
걸 차단하는 답, ‘나, 산책 중’, 또는 ‘사유 중’
지금은 트렌치코트를 입고 은행잎 우수수 지는 길을 걷는다. 그게 어울리는
계절이니까. 헌데, 이 글을 읽을 시점엔 눈보라 막는 돕바나 다운코트의 철이
겠다. 하면, 나도 옷의 일상으로 접어든다. 모든 유행의 아이콘이란 게 사실은
의상이다. 그 흐름이란 단순하다. 같은 이유로 시으이 유횅도 단순하다.
‘자동기술(automatic writing)인 의식의 흐름대로 진술하는 게 요즘 시의 컨셉
이자 유행인데, 따지고 보면 시인의 진솔한 감정 기록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
사유대로 좇아 쓰면 된다는 것, 이는 시인의 이장에선 구소갇을 바 없겠지만,
독자 쪽의 이해 과정엔 더 복잡한 장벽쯤일 수도 있다. 현대시인의 쓰기 행태는
목적하는 ’바‘는 주로 세 가지다. 즉 ’보이는 바, 생각하는 바, 행동하는 바‘에
따라서 쓰는 일이 그러하다. 필자는 그걸 ’횡단‘이란 말로 집약해 본다. 의식의
흐름엔 사유의 유동流動이거나 횡류橫流가 대세적이다. 하지만 목적지란 없다.
현상을 내키는 대로 기술하면 되는 것이니. 심지어 어떤 능력자들은 장르를 횡단
하면서까지 횡류를 감행한다. 무엇이든 전위적으로 범접하려는 무모한, 그 용기도
백배한 시인들이 한국 시단에 넘친다.
조너던 컬러(Jhonerdon Koller)는 『문학이론』과 『해체비평』을 통하여 대상에
관한 미학적 경험을 그만의 사유로 치받은 바 있다. 그는 다양한 매체와 진보성,
나아가 장르까지 싸잡아 ‘횡단’이란 용어로 몰던 게 그것이다. 이때 ‘자동기술’이란
진보적 시학으로 ‘전위시’를 추동하기도 한다. 하면 시조에서도 그런 용기(또는 무모)
를 지닌 시인이 등장하는지, 한번쯤은 눈여겨볼 필요는 있겠다. 물론 점잖은 전통 장르
라는 것에 다소 무리있는 연관이긴 하지만, 다음 몇 편으로부터 그런 낌새를 짐작하며
읽었다. 성급한 독자들이 뭐, ‘너무 앞으로 나간다’고 할까도 싶다. 해서, 나름 생각해 온
걸 조심, 그리고 슬슬 풀련다.
참고로 이 글 앞에 양지해야 할 게 있다. 현대시의 자동기술과는 다른 관점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시조에서의 ‘자동기술’이 그것이다. 위 머리 글 남효온으 시에서 보는 것처럼
시인과 화자의 처지를 주변의 환경.사물.사연에 조응시키며 시인이 스스로에게흘로오는
감정을 따라 기술하는 경우를 말하고자 하는 필자 의도가 있다. 말하자면 시인과 화자가
처한 현재적 환경에로 경도하는 이른바 현상적 감정 진술에 포인트를 두겠다는 뜻이다.
2. 바라다보이는 여자, 그 묵시의 자동교신
김민정 시인의 작품, 마치 낚시꾼처럼 오래 찌를 담그고 기다린 보람 속에서 이를 건져
낸다. 그는 ‘나래시조’의 지면에 단골로 자리해온 시인이다. 문학단체의 굵직한 직함을 지닌,
시조 문단에 종횡으로 뛰는 발 빠른 시인이란 것 말고도, 그의 순후한 작품들이 목하 현시顯示
중이거나, 수석시조壽石(水石)時調 같은 전문적 영역에 일가견도 있어서 기획 평설로 엮었을
법은 했다. 하지만, 그 뿐, 의도적으로 엮거나 읽혀지지 않았다. 어쩜 미안했다. 다만, 이 시인
의 작품을 매회 지나치면서, 어떤 밀회의 기회를 엿보았듯은 싶다. 그 벼르던 밀회를 포기하기
로 했다. 예전 작품과는 다른 ‘자동기술’류의 묘사 대열에서 번쩍 띄었기 때문이다.
머무는 것은 없다 시시각각 변한다
알면서도 사랑하고 알면서도 흔들리는
어쩌다
눈을 피해도
속내를 들켜버린
카페 유리문에 옆모습을 다 드러낸
한 여자의 긴 머리가 미세하게 흔들린다
누구를
기다리는 듯
양볼 더러 붉어지는
강물이 소리 없이 다가왔다 멀어지고
빛나는 눈썹 위로 아슬히 푸른 이마
한 동안
마주보다가
그만 서로 무색해진
- 김민정 「창과 창 사이」 전문
화자는 “창과 창 사이”로 비쳐 보이는 한 여자의 표정을 따라간다. 그건 시선 산책의 유유함
이겠다. 그러다 마주친 눈길이 “무색해”지는 “속내를 들키”기도 하고, “더러 붉어지”기도 하
여 그만 서로 잠잠해져버린다. 화자(관찰자)는 “미세하게 흔들”리는 여자의 표정을 따라
예의 자동기술로 그의 심리 상태를 전언한다. 그는 두 여자를 보며 ‘자기’의식과 상대의식의
‘여자’를 나란히 비교해 보인다. 바라보는 창과 비쳐 보이는 창은 두 여자를 사이에 두고 서로
의식 상황을 엿보는 심리적 경영鏡映에 빠진다. 화자가 보는 여자는 “시시각각 변하”고, “미세
하게 흔들리”다가 “소리 없이 다가왔다”가는 다시 “멀어”진다. 시조 속의 여자는 여유롭듯,
흔들리듯 아름다운 프로필을 지녔다. 그러므로 훔쳐볼만한 대상이리라.
사실 이 시조는 ‘의식의 흐름’말고도, 구도 면에서 시각화, 영상화가 돋보인다. 영상의 출발
시점은 묘사, 그리고 이후 진술로 발전된다. 묘사는 정지된 대상에 가하는 필력이고, 진술은
움직이는 대상에의 변환기술이다. 이를 근간으로 대상·장면에 시인은 자의식적 묘사와 진술로
옷을 입힌다. 시인은 시문詩文의 자동기술을 통해 독자의 추이 또는 전이가轉移價를 높인다.
이 작품은 여자의 흔들림에 대해 진술하지만, 사실은 정지된 실루엣을 배면에 깔았다. 화자는,
창 사이로 보이는 여자를 “알면서도 사랑하는”관계라는 걸 점묘한다. 흔들림이란 곧 떨리는
사랑의 감정일 수도 있을 터이다. 그게, “카페 유리문”을 통해 “옆모습”을 보이는 여자, 그
“긴 머리채가 미세하게” 날리는 여자, “빛나는 눈썹 위로 아슬히 푸른 이마”를 가진 여자라는
최고의 대상이듯 묘사되기 때문에 독자는 그림을 보듯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 한 모델에 대한
데생처럼 그리는 대목에서 생동하는 점사법漸寫法도 읽을 수 있다. 창문에 비치며 등장한 여자에
대한 관찰자적 방점은 셋째 수에 가 있다. 즉 “미세하게 흔들리는”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바다. “빛나는 눈썹”처럼 발하는 시의 눈은, “아슬히 푸른 이마”를 보는 그 즐거운 ‘기미’를 보임으
로서 독자에게 일으키는 시각미의 준동 또한 크다.
하여, 이 작품은 이지적 품격과 관조적 심리를 동시에 인식하도록 한다. 창을 통하여 본, 그리고
그 창에 비친 여자의 옆모습은, 종장에 각 이미지의 층을 누적시킴으로서 더 분명해진다. 시조의
자동기술적 호흡을 규칙적으로 이끄는 대목 즉, (1)어쩌다 눈을 피해도 속내를 들켜버린 모습
(2)누구를 기다리는 듯 양볼 더 붉어지는 모습 (3)한 동안 마주 보다가 그만 서로 무색해진 모습
등은 각각 차례화된, 그래서 화자와 여자의 암묵적으로 교환하는 눈짓의 호응관계로 점층된다.
이 시조는 그런 자동기술의 수순 앞에서도 다소 논리성을 견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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