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문학> 21세기를 여는 시인들 - <김민정 시인 편>>
시간이 농축된 견고한 서정
- 김민정 시인의 시세계 -
김병희
1.
시의 길은 어디로 나 있는 것일까? 김민정 시인의 시를 읽고 되새기며 그 발자취에 대해 간단없는 질문을 던진다. 흔히 시조란 무엇인가 또는 시란 무엇인가 그 정의를 내리려 온몸을 뒤채며 상념에 빠지곤 하지만, 걷어 올린 것은 늘 성긴 그물뿐이었다. 넓은 이 세상,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 그러나 모두가 각자의 길을 용케도 찾아내 쉼 없이 행보를 내디딘다.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은 시간을 쉼쉬고 있지만 그 길의 높낮이와 굴곡, 골목의 깊이, 기지개 켤 수 있는 도로의 폭이 각각 다르지 않던가. 그래서 시인의 가슴에 난 시의 길은 어떻게 아로새겨지는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기웃거리게 된다.
그것은 신작로를 내달리던 전찻길의 선로와도 같을 수 있으며, 때론 인적조차 희미한 덤불숲의 어느 지점과도 같을 수 있으리라. 김민정 시인은 어떤 길을 꿈꾸고 있을까? 아마도 오솔길을 더듬으며 한 귀퉁이에서 민들레도 발견하고 돌탑도 쌓고 곧이어 나타날 모퉁이에 설레기도 하면서 그렇게 발자국을 내딛고 있는 건 아닐까? 도중에 무엇을 만나 어디로 몸을 향하게 될지 섣불리 감늠해 보면서, 지나온 모퉁이에 무엇을 두고 왔는지 두리번거려 본다.
비울 것 다 비워낸 가벼운 몸짓으로
가지 사이 이는 바람
그도 모두 보내놓고
비로소
맑은 하늘 한 장
펼쳐드는
저 선사(禪師)
- 「지상의 꿈 - 용문사 겨울은행」 전문
얼마만큼 더 살아야 이런 자태를 흉내 낼 수 있을까. 선사(禪師)의 초월적 위엄 앞에서 고즈넉한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먼저 쫓아와 자리하고 있음을 감지한다. 위대한 사람들, 요즘 흔히 달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우리를 꿈꾸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말할 수 없이 죽눅들게 한다. 모두들 사는 게 힘겨워서일까? 용문사의 겨울 은행 나무를 떠올리면 그 기상이 너무도 푸르고 시려서 가슴에 섬뜩한 기운을 느끼게 된다. 오직 맑은 하늘만 이고서 그토록 의연한 고목의 자태를 과연 우리가 흉내낼 수 있을까. 인생의 이모작을 준비하라는 이 시대의 계명이 무겁다 못해 서러운 세대들에게 한 그루의 고목이 가슴에 새겨둘 표상으로 남아 준다면 겨울도 견딜 만하련만... 시인의 발걸음을 따라 청명한 공기를 심호흡하며 새삼스럽게 옷깃을 여며 보자. 그래서 시인들이 길을 내는 거라면.
김민정 시인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표정이 매우 다양하다. 그의 종결 어미들은 아기자기하면서도 서로 다른 표정과 색깔들을 엮어내기에 충분하다. 「지상의 꿈」에서는 모든 장과 구가 마지막에 제시되는 주체인 선사(禪師)를 향하고 있다. 간결한 표현으로 은행나무의 기상극대화하려는 몸짓이리라. 그러나 여타의 작품들에서 시인은 시시때때로 적재적소에 알맞은 종결어미를 사용하여 감정의 진폭을 조절하고 있다. 「마음 한 장」은 「지상의 꿈」과 대비해서 살펴볼 만한 단형시조다. 모든 것을 비워내고 도도하게 세월을 지켜온 선사(禪師)의 자태와는 지극히 대조적이면서도 결코 비루하지 않은 우리 인간들의 소박한 마음자리를 정겹게 짚어내고 있는 것이다.
펼치면
온 우주를
다 덮고도 남지요
오므리면
손바닥보다
작은 것이 되지요
마음과
마음 사이에서
웃고 울며 살지요
- 「마음 한 장」전문
마치 한 편의 동시처럼 느껴지는 이 작품은 선사(禪師)의 그것과는 달리 지상의 희로애락을 한 몸에 감수하면서 그 사이에서 작은 행복을 엮어가는 우리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있는 듯하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거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웃기도 울기도 하지만, 그 가슴엔 온 우주를 품어 안을 수도 있는게 우리들이 아니던가. 세상사의 귀퉁이 사소한 일상들에 일희일비하면서도 꿈꾸고 도전하고 마침내 이루어내는 역사와 문명의 위대함에 감탄하며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번민하지 않았던가. 인류의 위대한 업적들 앞에 자칫 초라해지기 쉬운 오늘날의 우리들, 우울증에 빠지지나 않을까 염려하는 곤고한 귓전에 대고 시인은 속삭인다. 겨우 한 발짝 정도 앞서 있는 누나처럼 고백하면서 등을 토닥여준다.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리고 그들 각각이 주인이다. 한순간 마음의 자락을 활짝 펼쳐 온 세상을 다 포용해 보면 어떨까? 용서 못할 것도 극복 못할 것도 없는 후련한 마음으로 잠깐 오수에 빠져보자. 졸음에서 깨어날 때 손바닥만한 세상은 다시 우리 곁에 와서 손짓할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또 발걸음을 재촉하며 같이 가 보자고. 김민정 시인의 짤막한 시행에 이끌려 군더더기로 얼룩진 마음을 비워내고 새로 채우기 시작하면 한결 가뿐해지지 않겠는가. 누군가 손을 내밀면 웃는 시늉이라도 하면서 떨치고 일어나고 싶은 계절이다.
2.
시인들은 때때로 동물적 상징들을 동원하곤 한다. 노천명은 <사슴>이라는 시를 통해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아름다운 사슴을 그려냈다. 마음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찾아낼 수 없는 그런 사슴이다. 가끔 동물원에서 만나기도 하지만 시인이 떠올려 주는 동물의 이미지들, 실은 그것이 살아있는 실체보다 훨씬 더 확고하게 우리의 뇌를 장악하고 있다. 노천명의 "관이 향기로운" 사슴이 아니라면 동화 속 아기사슴 밤비로서 말이다.
새는 우리에게 매우 친근하면서 다양한 상상력을 발동시키는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파랑새, 갈매기, 기러기, 비둘기, 제비, 까치, 그리고 까마귀까지도 문학적 상징으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김민정 시인의 <바다>에서 우리는 한 마리 물새를 만난다. 새는 자유를 꿈꾸게 한다. 우리의 뭉툭한 팔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깃털 풍성한 날개, 후드득 날아올라 금세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비상하는 몸뚱이라니. 인간의 신체적 열등감을 자극하는 이동성에다 우리는 수많은 가치와 추상들을 실어 보낸다.
흰 거품
물고 오는
한 마리 물새였네
오장육부
드러내며
온몸으로 와서 우는
내 죽어
촉루로 빛날
그대 하얀 가슴속
- 「바다」전문
시인은 바다가 "흰 거품 물고 오는 한 마리 물새"란다. 집 채 만한 파도 끝에서 자유롭게 일렁이다 스러지는 포말의 흔적을 우리는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바다는 한 마리 새처럼 다가와 비상하고픈 우리의 욕망을 머금고 어디론가 떠나간다. 우리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를 한 몸에 지닌 채 그 앞에 떨고 서 있다. 거대한 바다를 욕망하면서 육신의 나약함, 그 남루함에 지쳐 아우성만 파도에 실어 보낸다. 그저 마음만 물새의 등에 오른다.
자연이 산과 바다로 대별된다면 이제 새를 따라 산자락 깊은 숲으로 날아가 보자. 바다가 울렁임으로 우리를 위협한다면 산은 흔들림 없는 견고함으로 우리를 안심시킨다. 언제나 그 자리에 육중하게 버티고 있으리라는 믿음을 준다. 그곳에서라면 날아올라도 어지럽지 않으련만, 설령 떨어지더라도 수습할 수 있으련만. 그러나 산은 우리를 꿈꾸게 하기보다 왜소하게 만든다. 청명한 공기를 가득 주입하면서 우리의 존재를 일깨운다. 생각할 일이 있으면 숲으로 들어간다는 북유럽의 어느 나라 사람들처럼 우리도 숲으로 가서 백로 떼나 만나볼까. 시인은 겨울 숲을 날아오르는 백로 떼의 맑은 영혼과 우아한 자태를 이야기한다. 푸르른 열정도 스러지고 중후한 포용력도 메말라 버린 겨울 숲에서 백로 떼는 무엇을 찾아내 비상하는 걸까? 시인은 백로가 "단단히 물고 떠날" 어떤 것을 찾아내고는, "불현듯 그리워질" 어떤 것을 남겨둔 채 날개를 편다고 상상한다. 겨울 숲과 백로 떼의 이미지가 중첩되어 눈앞에 환상을 본다.
눈부시게
맑은 영혼
그 산에 살고 있나
그리움의
북소리
밤새 둥둥 울렸구나
이 아침
우아한 자태
날개 펴는 백로떼
단단히
물고 떠날
생각 하나 얻었는가
불현듯
그리워질
불씨 하나 묻었는가
이제 막
흰 날개 펴고
비상하는 겨울숲
- 「백로떼 날아오르는」전문
시인 유하는 날아가는 새떼를 향해 "숲의 내세"라고 노래했다. <나무를 낳는 새>에 나오는 구절이다. 새는 숲을 지키고 숲은 새를 어루만진다. 짝을 이루어 서로를 지키고 보듬어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눈물겹다. 황량한 계절, 실바람에도 바스락거리는 건조한 숲을 서성이는 겨울새의 체온은 얼마나 위안이 되겠는가. 어떻게 그립지 않겠는가. 겨울이 오면 봄 또한 멀지 않다는 흔하디흔한 상식에서 용기를 얻지 못하는 차가운 가슴벌판에 새들의 발자국을 찍으며 그 온기를 추억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 백로 떼가 날아오는 겨울 숲을 떠올리며 창밖이라도 한 번 내다보자. 거기서 무엇을 발견하든 마음엔 새의 발자국을, 가녀린 날개 짓의 여운을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3.
겨울은 뭐니 뭐니 해도 그리움의 계절인 것 같다. 바람이 자꾸만 체온을 나눠달라고 해서 우리는 가만히 견디기가 어렵다. 채우고, 여미고, 참고, 기다리고 그렇게 버티면서 나이를 먹는다. 김민정 시인의 「눈사람」은 그 제목만으로도 겨울 예감 때문에 긴장된 우리에게 포근함을 가져다준다. 첫 수에서는 "슬픔", "절해의 고도", "긴 기다림"이런 시어들을 일거에 덮어버릴 눈이 펄펄 내린다. 왜 아직도 눈이 내리면 설레는 것인지, 공기가 촉촉해져서 피부도 마음도 이완되는 탓일까 얄팍한 이론을 늘어놓아 보다 그만 둔다. 다음 수에 버티고 서 있는 망부석 같은 눈사람이 궁금해서다.
온종일
기다렸다
슬픔이 밀려왔다
전화벨도 울리지 않는 절해의 고도
나의 긴
기다림 속으로
펄펄 눈이 내렸다
마을 어귀
망부석처럼
서 있는 눈사람
그의 몸 구석구석을 휘돌아 흐르는
하이얀
그리움의 피돌기
순교의 절창이 빛난다
-「눈사람」전문
동화에나 나올 법한 눈사람을 세워놓고 김민정 시인은 지독한 그리움을 읽어낸다. 그리움이 온몸에 사무쳐 "하이얀" 피로 흐르다가 끝내 망부석이 된단다. 그러나 눈사람 망부석은 우리를 더욱 처절하게 만든다. 바람이 불면 눈가루가 쓸려나가고, 한줌 겨울 볕엔 녹아 일그러지기도 하면서 마지막 하나의 뼈 조각이 스러질 때까지 자리를 지킨다. 사라지는 것들이 더 아름다운 것일까. 김민정 시인은 그리움과 기다림에 대해 남달리 예민하면서도 초연하다. 「세월」,「그리움」,「기다리는 마음」등의 작품에서는 마치 그것이 인생이라는 듯 기다림에 대해 유연한 자세를 보여준다. 우리도 하얗게 밤을 새우곤 했던 시절의 어귀를 떠올려 본다면 순교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송이 꽃 정도는 기대할 수 있으리라. 김민정 시인은 벌써 거기에 가 있다.
기다리던
꽃소식에
마음이 온통 달아
찻잔으로
가는 손길
그도 한참 뜨겁더니
비로소
꽃 한 송이가
내 안에서 벙근다
-「기다리는 마음」전문
연을 거듭하는 시조 작품들은 감정을 지탱해 나가는 탄력 때문에 매력적이고, 간결한 호흡으로 결을 다듬은 단시조는 한 달음에 절정에 도달해 후련하게 만드는 장점이 있다. 꽃소식을 기다리다 마음에 꽃을 피운다는 설정은 특이할 것 없는 매우 익숙한 정경 같지만, 요즘 세태 때문인지 기다림을 열정으로 북돋워 꽃으로 피워낸다는 시인의 마음이 예사롭지 않다. 문밖에만 나가면 모든 어려움을 세상 탓, 남의 탓으로 돌리며 아귀다툼을 벌이곤 하는 터라 문득 선경(仙境)을 마주한 듯 망연해진다.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어느 먼 곳의 전설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한번 쯤 떠올리며 가다듬고 되새겨야 할 경구처럼 느껴진다.
시조를 쓰은 이유도, 시조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물론 다양하겠지만, 아주 오래 된 것 같으면서도 어쩐지 오늘 우리의 마음을 휘어잡는 데가 있다는 점, 그게 공통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김민정 시인은 의연히 발을 내디디며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 요란하지 않고 너무 예민하지 않으면서 마음과 마음들, 그 갈피를 엿보고 어루만지고 꽃들을 피워낸다. 화려한 수식이나 돌발적인 어휘들로 우리를 사로잡으로 하지 않고 키를 재보자고 발돋움하며 달려들지도 않는다. 그러나 흔들리지도 불안하지도 않다. 섬세하고 견고하게 길을 다지며 자신의 세계를 찾아나가는 모습이 우리를 끄덕이게 한다. 이 겨울을 지내고 나면 더욱 깊숙해진 눈을 들어 봄을 노래할 것 같다. 봄이 기다려진다.
<시조문학 2005년 겨울호 157권>
* <시조문학>에 게재된 내 논문을 찾느라 책을 뒤적이다가 오래 전에 써주신 김병희 평론가님의 시조평을 읽게 되었다. <시조문학>에서 부탁해서 실어준 것으로 평을 하고 나서도 인사조차 못했던 것 같다. 또 웬만한 평들은 거의 모아두고 보고 있는데, 이 작품평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다시 읽어보니 무척 잘 써 주셨다. 감사한 마음에 단숨에 워드작업을 하여 올려본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 부분은 내가 작품을 쓴 의도와는 조금 다르게 평가를 내리셨다. 이 부분을 읽으며 시는 읽는 독자에 따라 이렇게 다양하게도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작품 <바다>에서 물새는 사랑하는 사람의 비유이다. 그리고 작품 <백로떼 날아오르는>에서는 백로떼는 흰 눈이 덮힌 산의 비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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