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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시조평

김민정의 꽃섶에서 / 이도현 (시조문학 2018 가을호)

by 시조시인 김민정 2019. 3. 21.

꽃섶에서


움츠린 세상일들 이제야 불이 붙는,

견고한 물소리도 봄볕에 꺾여 진다

하늘은 시치미 떼고 나 몰라라 앉은 날


산등성 머리맡을 가지런히 헤집으며

내밀한 언어 속을 계절이 오고 있다

느꺼이 꺼내서 닦는, 다 못 그린 풍경화


고요한 길목으로 아득히 길을 내며

봉오리 꿈이 한 채, 그 안에 내가 들면

소슬히 구름 꽃 피우고 깨금발로 가는 봄날 (시조문학 2018 봄호)



  김민정 시인은 1985년 <시조문학> 지상백일장 장원으로 등단하여 시조와 수필 그리고 평설까지 두루 섭렵하고 문단에서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여류 시인이다. 먼저 그의 시작노토를 보자.

  "어느 새 신록 가득한 오월이 내 앞에 펼쳐진다. 연초록 잎새들이 꽃보다 더욱 어여쁜 오월 앞에 내가 서 있다는 것이 기쁘다. 오월을 바라볼 수 있고, 오월을 호흡할 수 있어 나는 참으로 행복하고 즐겁다. 오월같이 맑고 싱그러운 시를 쓰고 싶다." 그의 시작노트에서와 같이 5월르이 신록, 5월의 꽃섶을 찬양한다. 얼어붙은 겨울을 깨고 조용조용 봄이 오는 정경을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가락으로 미화하고 있다. 참으로 경쾌한 리듬이다.

  시조의 묘미는 종장에 달려 있다. 그러기에 시조를 종장의 미학이라 하지 않는가. 이 작품 세 수에서 종장을 보면 '하늘은 시치미 떼고 나 몰라라 앉은 날', '느꺼이 꺼내서 닦는, 다 못 그린 풍경화'. '소슬히 구름 꽃 피우고 깨금발로 가는 봄날'의 표현은 일품이다. 초장, 중장에서, 금시 내세운 말을 언제 했던가, 시치미 뚝 떼고 종장에서 반전(反轉)한다. 노련한 솜씨다.

  또한 종장 모두 명사로 종결하여 여운을 남기면서 독자들의 상상을 유도한 점 또한 놀랍다. 세 수 모두 정형을 철저히 지키면서 자연스럽게 유려한 가락으로 은유한 솜씨가 보통을 넘어 선다. 읽을수록 정감이 넘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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