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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黃金)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盟誓)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追憶)은 나의 운명(運命)의 지침(指針)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에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源泉)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沈黙)을 휩싸고 돕니다.
올해는 한국독립선언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일제 강점기의 저항시인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한용운의 대표시 ‘님의 침묵’이다. ‘님의 침묵’은 1926년에 발간된 한용운의『님의 침묵』의 표제시이며, 그의 대표작이다. 시집『님의 침묵』은 1925년 백담사에서 쓰였고 1926년 회동서관(匯東書館)에서 간행됐으며 88편의 연작시가 실려 있다. 이 시는 불교의 역설적인 진리를 바탕으로 하여 임과의 이별의 슬픔을 극복하고 새로운 만남에의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주제는 임에 대한 영원한 사랑이다. 시의 내용은 이별의 고통(正)→희망(反)→만남(合)으로 전개되는 불교적 변증법, 또는 만남과 헤어짐, 헤어짐과 다시 만남의 불교의 윤회사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개인적 의미의‘이별→고통․슬픔→희망→만남’으로 구성된 이 시의 원리는 사회적․공적 차원으로 확대되어‘국권상실→고통․슬픔→희망→국권회복’이라는 해석을 가능하게 하여 단순한 연애시가 아닌 저항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즉 이 시에서의 ‘님’은 연인이라는 개인적 의미일 수도 있고, 조국․민족 등의 규범적 의미일 수도 있으며, 정의․진리 등의 이념적․지향적 의미일 수도 있다. 은유와 역설을 탁월하게 구사한 이 시는 기·승·전·결의 형식상 특징도 지니고 있다. 한용운(1879~1944)은 충남 홍성에서 출생, 속명은 정옥(貞玉), 법명은 용운(龍雲), 법호는 만해(萬海)이다. 1896년 오세암에서 불교지식을 섭렵하고 시베리아 등지 여행 후 1905년 백담사 승려생활, 1918년 월간지 『유심』을 발간했다. 1919년 3.1운동 때는 33인을 대표하여 독립선언서 낭독 후 피검되어 3년간의 옥고생활을 하고, 1944년 성북동 심우장(尋牛莊)에서 입적했다. 저서는 『님의 침묵』『조선불교유신론』『십현담주해』『정선강의채근담』등과 사후에 간행된『한용운전집』『한용운시전집』이 있다. 한용운의 대표시 『님의 침묵』을 해석, 기고하게 된 문학박사 김민정 작가는 1985년 <시조문학>창간25주년 지상백일장 장원 등단, 시조집 『나여기에 눈을뜨네』『지상의 꿈』 『사랑하고 싶던 날』 외 다수 수필집 『사람이 그리운 날엔 기차를 타라』 평설집 『모든 순간은 꽃이다』 논문집 『현대시조의 고향성』외 다수 발간, 나래시조 문학상, 열린시학상, 한국문학작가상을 수상, 현재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펜한국본부 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 강동문인협회 부회장, 한국여성시조문학회 명예회장, 나래시조시인협회 회장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김 박사는 한국독립선언 100주년, 해방74주년에 즈음하여 독립운동가이며 저항시인이기도 한 한용운 선생의 대표시 『님의 침묵』을 음미해 보는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기고하게 되었다고 했다. 송파신문사(songpanews@naver.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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