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의 단시조평>
순수와 화해와 기다림의 시학
김민정(시조시인, 문학박사)
그의 단시조를 형식면에서 살펴보면 초장 3행, 중장 3행, 종장 3행의 구조를 보이고 있어 안정감을 준다. 정형시인 현대시조를 다른 시인들은 다양한 배행법을 사용하고 쓰고 있는데, 이헌 시인의 작품에서는 한 가지 배행으로 통일되어 있다. 먼저 9행의 배열은 삼각형의 구도를 보이고 있어 시각적으로 안정감이 있다. 이것은 우리의 민족시인 시조가 정형시인 만큼 나름의 구도로 자신만의 정형을 더 구체화시켜 보여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어의 느낌을 더욱 두드러지게 보이기 위해 또는 독자의 시선을 조금은 낯설게하기 위해 요즘의 시조시인들이 단시조 3장을 3행 배열, 6행 배열, 7행 배열, 9행 배열 등 다양하게 하는데, 이헌 시인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정형시의 특징이 더 짙게 나타난다. 시조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아도 금방 정형시이며 시조라는 걸 알 수 있는 장점이 있다.
1. 순수의 이미지즘 시조
이헌 시인은 순수한 이미지즘의 시조를 많이 쓰고 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의 이미지가 골고루 나타나며 순수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쓰고 있다. 이번의 새 시조집 『○○○』에는 시각적 이미지, 청각적 이미지가 나타나는 작품들이 많다. 자연친화적이고 밝고 긍정적인 비유를 통하여 순수를 지향하는 모습이 잘 형상화되어 있다.
황토길
재 넘으면
풀 섶에 노란 들꽃
고향집
가는 길을
등불로 밝혀주고
구불텅
소나무 어깨에
보름달이 걸렸다. - 「고향집 가는 길」 전문
자그만
꽃대 하나
불 밝혀 아침 열고
바람이
킁킁대면
갯버들 그네 타고
봄빛이
말랑말랑한
두렁길을 걷는다. - 「그냥 좋은 날」 전문
「고향집 가는 길」 이나 「그냥 좋은 날」은 그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다투어 피는 황토재의 풀 섶, 거기서 피어난 노란 들꽃이 고향집 가는 길을 등불로 밝혀준다고 들꽃을 등불에 비유하고 있다. 고향이란 어휘에서도 그리움이 배어나는데, 풀 섶의 노란 들꽃을 등불에 비유하여 고향의 정서를 한껏 불러오고 있다. 초장과 중장에서 고향의 정서들이 종장의 ‘구불텅 소나무 어깨’에 얹힌 ‘보름달’까지 오면 고향집 가는 길이 더욱 애틋해진다. 「고향집 가는 길」의 설레는 마음을 ‘황톳길’, ‘재’, ‘풀섶’, ‘들꽃’, ‘고향집’, ‘구불텅’, ‘소나무’, ‘보름달’이란 시각적 이미지즘의 시어들로 고향의 정감을 아주 잘 살려주고 있다. 고향의 이미지를 통한 감각적 언어들을 많이 씀으로 독자들의 감성에 쉽게 다가갈 수 있어 공감을 끌어올 수 있는 작품이다. 고향이란 누구에게나 정다운 이름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냥 좋은 날」은 어떠한가. 꽃대가 불을 밝히며 아침을 여는 날, 바람이 냄새를 맡듯 킁킁대며 갯버들 그네 타는 날, 봄빛이 말랑말랑한 두렁길을 걷는 날, 그날이 그냥 좋은 날이라고 한다. 모든 사물을 의인화하여 즐거움이 출렁이고 있는 봄날이다. 꽃대가 올라와 불 밝히듯 꽃을 피우는 아침이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또한 봄의 기운을 맡으며 킁킁대는 봄바람이 갯버들에 앉아 그네를 타고 있고, 따스한 봄빛은 말랑말랑한 두렁길을 걷고 있는 봄날이다. 마냥 평화롭고 고요한 봄풍경이 나타난다. 종장은 봄빛이 말랑말랑한 두렁길을 걷고 있다는 의미와 화자가 봄빛이 말랑말랑한 두렁길을 걷고 있다는 중의적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도 ‘꽃대’, ‘갯버들’, ‘봄빛’, ‘두렁길’에서는 시각적 이미지가, 그리고 ‘바람이 킁킁대며’에서는 후각적 이미지가, ‘말랑말랑한 두렁길’에서는 촉각적 이미지가 잘 나타난다. 이 작품은 초장의 시각적 이미지가 중장의 후각적 이미지, 종장의 촉각적 이미지로 이어지고 있는 작품이다. 이미지는 종류나 표현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지만, 이 두 작품에서는 순수서정의 자연친화적이며 부드러운 느낌이 지배적이다. 그러한 감각적 언어를 통해 사물에 대해 친근하게 접근하는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소나기
한 자락이
오후를 식혀내면
햇살은
빗금 치며
구름을 벗겨내고
상큼한
바람이 인다
쌍무지개 걸렸다. - 「소나기 지나고」 전문
허물을
벗겨내며
하루를 다시 열면
어깨를
들썩이는
또록또록 여문 칠월
햇살이
쨍쨍히 섰다
부라리고 노려본다. - 「삼복三伏」 전문
「소나기 지나고」 에서는 펄펄 끓는 여름날 오후 소나기가 지나고 난 후의 모습을 상쾌하게 표현하고 있다. 햇살이 빗금치고 상쾌한 바람이 일고 쌍무지개가 걸려있는 아름다운 풍경. 후덥지근함을 모두 벗어난 상태를 보여준다. 아프리카의 스콜(squall)처럼 소나기가 지난 후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오르는 모습이다. 원래 스콜은 일광에 의해 지표가 가열되면서 나타나는 대류현상에 의해 발생하는 늦은 오후의 소나기다. 특징은 벼락같이 비를 쏟아내다가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해가 쨍하고 날씨가 바뀌는 것이다. 한국의 여름 소나기는 찬 공기가 뜨겁게 가열된 지표 위를 지나가면서 나타나는 대류현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중위도성의 소나기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2014년 이후 여름에 단시간에 엄청나게 쏟아지는 소나기가 나타나면서부터 한국형 스콜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한 자연현상의 모습을 그려낸 작품이라서 시각적 이미지가 강하다. ‘소나기’, ‘햇살’, ‘빗금’, ‘구름’, ‘쌍무지개’등 시각적 이미지가 나타나는 어휘를 많이 쓰고 있고 있는 감각적 작품이다.
「삼복三伏」에서는 어제의 허무를 벗겨내며 하루를 다시 열면 또록또록 여문 칠월이 어깨를 들썩인다고 한다. 「삼복三伏」 이란 제목에서 보듯 한창 뜨거운 여름의 중심이다. 따가우면서도 부드러운 봄햇살을 지나 뜨거운 햇살이 한창인 칠월을 ‘어깨를/ 들썩이는/ 또록또록 여문 칠월’이란 표현으로 칠월이란 추상적인 개념을 눈에 보이도록 시각적으로 처리하여 참신함이 느껴진다. 햇살이 쨍쨍하게 비추는 칠월의 뜨거움을 시어에서 느낄 수 있다. 종장의 ‘햇살이/ 쨍쨍히 섰다/ 부라리고 노려본다.’도 햇살을 의인법으로 표현하여 신선함을 더해 주며, ‘부라리고 노려본다’에서 사람들이 피하고 싶은, 땀을 줄줄 흐르게 하는 햇살의 뜨거움을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어깨’, ‘들썩이는’, ‘햇살’, ‘쨍쨍히’, ‘부라리고’, ‘노려본다’ 등이 모두 시각적 이미지의 시어들이라 시각적 이미지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이헌 시인의 작품에서는 이미지나 비유의 묘사에 상당한 비중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슴 속
고인 시름
와불臥佛처럼 뉘어 놓고
잊어선
안 될 이름
속으로 불러보는
늦가을
저문 하루가
발갛게 물이 든다. - 「11월 첫날」 전문
「11월 첫날」은 아름다운 사랑의 시조다. 모든 것을 마무리하는 계절, 사색의 계절 가을 앞에서 가슴 속의 시름은 눈을 감은 부처처럼 뉘어놓고, ‘잊어서는 안 될 이름을 속으로 불러보는’ 하루, 그 하루가 발갛게 물이 든다고 한다. 붉게 물든 단풍처럼 붉게 물이 드는 마음, 그것은 아마도 사랑의 마음일 것이다. 사랑하는 이에 대한 그리움과 붉게 물이 드는 단풍이 사랑의 마음으로 동일시되고 있다. 단풍이 짙어지는 11월, 그 첫날에 느끼는 가슴속의 단풍이다. 그것이 지나간 날의 추억이었다 해도, 지금도 ‘잊어서는 안 될 이름’이라는 것이며, 현재까지 이어지는 사랑의 감정이다. 산천을 붉게 물들이는 단풍 빛보다 가슴이 더 붉게 물들고 있다. 초장에서 추상적인 시어인 시름을 ‘와불처럼 뉘’었다는 표현과 늦가을 저문 하루가 ‘발갛게 물이 든다’라고 표현함으로써 추상적인 것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시각적으로 구체화시켜 표현했다는 점이 이 작품을 돋보이게 한다. 시각적 이미지가 뛰어난 작품이다.
가을이
잘도 익어
제 한 몸 불사르면
귀뚜라미
밤을 새워
실을 잣 듯 시를 읊고
바람은
두 손 흔들며
낙엽 한 잎 놓고 간다. - 「가을 낙수落穗」
낙수落穗의 의미는 추수한 후 땅에 떨어져 있는 이삭을 의미한다. 밀레의 유명한 그림 ‘이삭줍기’가 생각나기도 하는 제목이다. 가을 추수 후의 낙수! 가을이 떨구고 간 것들이다. ‘가을이/ 잘도 익어/ 제 한 몸 불사르면// 귀뚜라미/ 밤을 새워/ 실을 잣 듯 시를 읊고// 바람은/ 두 손 흔들며/ 낙엽 한 잎 놓고 간다.’의 표현 속에는 풍성한 가을걷이 뒤에 남는 것들, 즉 귀뚜라미의 울음이 있고, 시가 있고, 바람이 있고, 낙엽이 있다. 귀뚜라미의 울음을 이 시인은 시를 읊는다고 보고 있다. 귀뚜라미 울음을 들으며 시를 쓰고 있는 시인을 생각케 하는 구절이다. 또 가을과 작별을 고하듯 바람은 낙엽을 떨구고 가고…. 가을이 남기고 간 쓸쓸함, 허허로움, 외로움 등을 줍고 있는 시인의 모습이 보인다. 풍성한 가을 추수 뒤에 오는 것들, 그 가을이 남긴 것들, 그것에 생명을 부여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시인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 다음 해를 위해 준비하며 떠날 때 그 남은 것들까지 알뜰하게 챙기며 의미를 부여하는 시인의 여유롭고 넉넉한 마음이 드러난다. 다른 작품들처럼 이 시조에서도 이미지즘이 나타나는데 이 시조에서는 청각적 이미지와 시각적 이미지가 함께 나타난다. 귀뚜라미가 ‘실을 잣 듯 시를 읊고’에서 청각적 이미지가, ‘바람은 두 손 흔들며 낙엽 한 잎 놓고 간다.’에서 시각적 이미지가 보인다.
까맣게
타든 마음
그믐처럼 어두운 밤
이승의
하루 길어
눈주름 더 패이고
항아리
깊은 속만큼
시름도 깊어간다. - 「불면不眠」 전문
누구에게나 불면의 밤은 있을 것이다. 인간은 근심과 고민이 있을 때 잠 못 들어 뒤척이며 전전반측하는 것이다. 안타까움, 괴로움, 간절함이 가슴에 있을 때, 시름으로 고뇌로 잠 못 들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까맣게/ 타든 마음/ 그믐처럼 어두운 밤// 이승의/ 하루 길어/ 눈주름 더 패이고// 항아리/ 깊은 속만큼/ 시름도 깊어간다.’고. 그 고민이 애정문제일 수도, 경제문제일 수도, 건강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떠한 것이든 그 고민의 무게는 다 동일할 것이다. 인간은 행복한 순간보다 크든 작든 고민이나 근심을 안고 살아가는 순간이 더 많은 지도 모른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인생을 고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던 것이다. 하룻밤에도 온 머리가 하얗게 쇠고 폭삭 늙는다는 말이 있다. 중장의 모습에서 잘 나타나듯이 시름은 인간의 모습을 아주 초췌하게 만든다. 항아리의 깊은 속만큼 깊은 시름, 불면은 그 속에서 눈 뜨고 있다. 이 작품에서도 ‘까맣게’, ‘눈주름’, ‘항아리’ 등의 시어를 통해 시각적 이미지가 나타난다.
이헌 시인의 이번 단시조집의 시조 속에는 인용한 작품 외에도 이미지즘의 시조들이 많다. 즉 감각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자연친화적이고 밝고 긍정적인 비유를 통하여 순수를 지향하는 시인의 마음이 잘 형상화되어 있다.
2. 기다림과 화해의 시학
이헌 시인의 작품에서는 현실의 힘든 상황에서 그것을 인내하며 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기다림과 또 세상에 대해 포근하게 감싸며 화해로 풀어가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을 형상화한 작품들이 많다. 아래 작품들을 통해 살펴보기로 한다.
기다림
끝이 없는
아릿한 그리움에
때로는
눈도 감고
그러다 귀도 멀고
언제나
가난한 마음
목발 짚고 일어선다. - 「눈감고 살기」 전문
「눈감고 살기」 이란 작품에서는 기다리다 지쳐 ‘눈도 감고/ 귀도 멀고’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또다시 목발 짚고 일어서는 굳센 마음을 표현했다. 언제나 기다림이란 아릿한 그리움인가. 「눈감고 살기」라는 작품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인내의 마음이다. 기다림은 간절한 그리움에 틀림없다. 간절하지 않다면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또한 쉽게 오지 않을수록 그리움은 더 커지는 법, 그래서 그리움과 보고픔에 눈도 감고 귀도 멀고 마음은 더욱 더 가난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발 짚고 다시 일어서는 마음, 그것은 기다림을 저버리지 않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인내의 마음이다. 그러한 인내의 기다림이 있기에, 좌절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언젠가는 그 그리움의 실체를 만날 것이라는 희망이 존재하는 작품이다.
실핏줄
툭툭 터져
어지럼 이는 세상
힘겨워
숙인 고개
아직 들지 못했지만
그래도
묵묵히 간다,
속울음 눌러가며. - 「내일」 전문
이 작품에서는 살아가는 날들의 어려움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내일을 위해 묵묵히 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사는 일이 피곤하면 여기저기 실핏줄이 터지고, 어지럼증도 생긴다. 피곤하면 눈의 실핏줄이 툭툭 터지며 눈이 충혈 되고 몸이 먼저 말을 한다. 그렇게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화자도 ‘힘겨워/ 숙인 고개/ 아직 들지 못했지만’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고 ‘그래도/ 묵묵히 간다,/ 속울음 눌러가며.’ 아픔과 고통을 눌러가며 가야만 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것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서이다. 「내일」이란 작품에서는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현재의 고난과 아픔을 헤치며 강한 의지와 인내로 내일을 향해 가는 의지적인, 긍정적인 화자를 만날 수 있다.
한치 앞
안 보여도
남은 길 아직 멀고
아무리
보채본들
넘지 못할 선이 있다
너, 요새
뭐하고 사냐?
그냥 웃고 말지요. - 「흰소리」 전문
목표가 길고 멀면 당장은 보이지 않는 법이다. ‘남은 길이 아직 멀고’란 표현 속에는 아직도 가야할 길, 목표가 멀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목표가 원대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속담에는 ‘대기만성’이라는 것이 있다. 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지듯, 크게 될 사람은 오랫동안 공적을 쌓아 늦게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그러니 아무리 빨리 가고 싶다고 보채도 ‘넘지 못할 선이 있다’는 것이다. 건너뛰어 갈 수 없음을 나타낸다. 한 걸음 한 걸음 차분하게 지나며 가야할 것임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한 상황을 모르는 주변의 사람들은 ‘너, 요새/ 뭐하고 사냐?’ 물어오면 일일이 답해 줄 수도 없을 때 그냥 웃고 만다는 것이다. 김상용 시인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의 끝구절 ‘왜 사냐건/ 웃지요’가 생각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할 말이 없을 때, 대답이 궁할 때, 아니면 그 대답이 너무 커서 답할 수 없을 때 씩 웃고 마는 행위. 가슴속에 세운 목표는 멀고, 설명하기는 답답하여 웃고 만다는 의미이다. 시인은 남모르게 고뇌하며 좋은 시조를 쓰고 싶어 고뇌하며 천착하지만 그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도 아니고, 남들에게 시조 쓰느라고 바쁘다는 말도 선뜻할 수 없는 상황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흰소리」라는 시제를 단 이유이다. ‘흰소리’란 실없는 소리, 허풍 떠는 소리, 즉 헛소리란 뜻이다.
무언가
그리우면
햇살 한 줌 안아들고
괜찮지
별일 없지
안부라도 물으련만
불감증
물들은 세상
도리질을 하고 만다. - 「궁금한 날」 전문
사는 날 누군가 그리워지고 안부가 궁금하여 물으려 하다가도 잘들 지내고 있겠지 하며 포기하며 살아가는 삶, 참으로 무덤덤한 세상이다. 불감증의 세상이다. 이러한 불감증의 세상을 안쓰러워하는, 아니 비판하는 정신이 들어 있는 작품이다. ‘불감증/ 물들은 세상/ 도리질을 하고 만다.’고 한다. 안부가 궁금하여 소식을 물으려다 그만 두고 마는 세상,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세상은 하도 큰일들이 많이 생겨 그냥 평범하게 하루를 사는 일에 너무 무덤덤해져 버린 우리가 아닐까. 하루가 무사함을 감사해야 하는데, 그리고 이웃들에도 신경을 써야하는데 다들 정신없이 시간에 쫓기며 살고 있다. 안부 전화 한 통이 괜히 상대방의 시간을 빼앗는 결과가 될 것 같아 망설이게 되는 현실이다. 잘 살고 있냐고, 잘 살아 있냐고 궁금해 하면서도 소식을 묻지 못하고 ‘도리질을 하고 만다.’는 표현 속에는 현대인의 삶에 대한 비판의 마음이 들어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의 마음에는 현실과 화해하는 긍정의 힘이 더 강해 보인다.
신경이
날카로워
머리 삐쭉 설 때마다
눈물샘
찔러 대면
물안개 피어나고
어둠이
장막을 치면
시간도 멈춰 선다. - 「신경통神經痛」 전문
일상의 생활모습을 담은 「신경통神經痛」에는 신경통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누구나 겪어봤을 것 같은 신경통, 우리 몸 어딘가가 순간적으로 신경통을 일으킬 때 꼭꼭 질러대는 것만 같은 아픔에 신경이 날카로워 머리끝이 쭈빗거리는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은 아픔을 ‘눈물샘/ 찔러대면/ 물안개 피어나고’라는 표현을 썼다. 이쯤 되면 모든 것은 이미 어둠이다. 아픔 때문에 다른 것은 이미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온통 그 쪽으로 모든 신경이 곤두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엔 가는 시간도 멈춰서는 것이다. 신경통의 고통을 머리끝이 삐죽 서고, 눈물샘으로부터 물안개가 피어나고, 어둠의 장막이 쳐 지고, 시간도 멈추선다고 표현했다. 뼈마디가 쑤시는 고통, 앓아본 사람만이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고, 표현해 낼 수 있다. 경험을 토대로 쓴 작품이다.
몸이 조금
불편하면
마음도 편치 않고
생각은
부질없이
들풀처럼 일어나도
사는 일
헤어지는 일
물음표만 늘어난다. - 「단상斷想」 전문
몸과 마음은 따로 노는 것인가. 같이 노는 것인가. 몸이 불편하면 마음도 편치 않고, 마음이 불편하면 몸도 편치 않은 것이 우리 삶이다. 한 편 몸이 상쾌하면 마음도 상쾌해지고, 마음에 근심이 없어지면 몸도 가벼워지는 것이다. 그러니 몸과 마음은 따로가 아닌 하나이다. ‘생각은/ 부질없이/ 들풀처럼 일어나도’ 마음속에 일어나는 생각들, 그것들이 부질없이 들풀처럼 일어난다고 해도 사는 일도, 헤어지는 일도 의문이 생긴다는 것이다.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과연 바르게 살고 있는 것인지, 늘 의문을 가지고 살아간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는지도 모른다.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을 달리 보이니 말이다. 사는 것도 어느 것이 정도(正道)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저마다 충실하게 메꾸어가야 하는 과정이 인생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갈 뿐이다. 목표가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다.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도 있겠고, 평범하게 인생을 살아가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어느 것이 더 가치가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아픔을
지우러나
슬픔을 덮으러나
다 아는
부끄러움
들춰내지 말일이다
포근한
잠 위에 누워
하얀 집을 지었다. - 「눈, 눈이 왔다」 전문
눈은 모든 것을 덮어준다. 세상의 지저분한 것들도, 부끄러운 것들도… 이 작품에서 시인은 눈이 내리는 까닭을 궁금해 한다. ‘아픔을/ 지우러나/ 슬픔을 덮으러나’며 초장에서는 그 궁금증을 보인다. 중장에 오면 ‘다 아는/ 부끄러움/ 들춰내지 말일이다’며 부끄러움을 덮어주는 너그러움을 화자는 눈에서 보고 있다. 즉 눈이 부끄러움을 덮어주기 위해 내렸다는 의미이다. 남의 잘못이나 부끄러운 일을 흉보기 좋아하고, 입방아 찧기 좋아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는 작품이다. 남의 부끄러운 일은 들춰내지 말고 덮어주라고…. 남의 흉을 보다가보면 내 마음이 먼저 피곤해 지는 법, 남의 잘못을 덮어주는 포근함을 보일 때 내 마음도 편해지고 포근한 잠도 잘 수 있는 법이다. 그렇게 포근한 잠을 잘 때 눈은 하얀 집을 지었다고 한다. 포근함을 추구하는 마음은 화해의 마음이다. 그리고 하얀 집이란 시각적 표현으로 눈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요컨대 이헌 시인의 작품세계는 순수하고 자연친화적이다. 그리고 외부세계에 대한 인식에는 대결과 투쟁보다는 긍정과 인내와 기다림과 화합을 원하고 있다. 물론 때로는 외부세계에 「궁금한 날」처럼 현실비판적일 때도 있지만, 외부의 못마땅함도 시인의 가슴에 품거나, 외부 대상에 육화시켜 자연친화적인 순수와 기다림과 화해의 시학을 구축하고 있다. 꾸준하게 노력하는 시인의 자세로 앞으로 더 넓고 깊은 시조세계를 구축해 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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