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 시조해설>
마모된 세월에 대한 안타까움, 자아성찰과 긍정의 시조
김민정(시조시인, 문학박사)
1. 마모된 세월에 대한 안타까움
이헌의 시조들을 살펴보았다. 이번의 시집에 실리는 작품들은 2수 연시조의 작품들과 단시조이다. 시조들은 내용에 있어 작품 수준이 고르고, 연시조는 형식은 2주 10행을 취하고 있다. 초장과 중장은 각각 1행으로 배열하고 종장은 3행으로 구분하여 종장에 힘을 실은 작품이라 볼 수 있다. 이것은 시조가 「선경후정」의 작품이라는 것을 시인자신이 잘 인식한 배열이라 느껴진다. 달리 말하면 시조가 초장, 중장은 풍경이나 배경 등 선경을 보여주고, 종장에서는 후정을 보여주어, 종장에서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작품을 썼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경보다 후정이 중요함을 인식하여 그 종장을 3행으로 나누어 그 휴지와 느낌을 강하게 하려는 시인의 의도이다. 그래서 이헌의 시조는 그 형식면에서는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느껴진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단시조는 9행으로 배열되어 각 장 3행으로 배열되어 있다.
시조는 단시조가 시조의 본연이다. 때문에 한 제목에 여러 수가 연결된 긴 연시조일수록 주제가 분열되어 주제 파악이 힘들거나, 아니면 여러 개의 주제가 나타나게 된다. 이런 면으로 볼 때 이헌의 연시조는 길지 않은 2수의 연시조라서 주제 파악이 어렵지 않고, 읽는데 부담스럽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그의 작품을 보면 계절에 대한 것이 많다. 이것은 생활 속에서 그가 작품을 꾸준히 써 왔음을 의미한다. 인위적으로 작품을 쓰려고 기교를 넣어 표현의 멋을 부린 작품이 아니라 일상의 생활에서 생활과 밀착된 시조작품을 창작하고, 그것이 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린 상태라 여겨진다. 그래서 자연인으로 살며 사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것을 바라보는 자연인의 심상으로 작품을 쓴 때문이라 생각된다.
까마귀 목쉰 울음 겨울이 그리 가고
도랑을 건너뛰어 서둘러 봄이 왔다
봄바람
달고 온 사연
젖니 나듯 움이 튼다.
햇살이 그리워서 비집고 나선 멍울
어둠을 들어내면 어떤 하늘 열어줄까
기다림
늘어선 길에
풋풋한 바람 인다. - 「봄바람」 전문
「봄바람」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을 보면 ‘까마귀 목쉰 울음’이라 하여 절망적인 겨울이 가고 희망의 봄이 옴을 말하고 있다. ‘도랑을 건너뛰어’ 봄은 그렇게 서둘러 오고, 또한 그 ‘봄바람 / 달고 온 사연 / 젖니 나듯 움이 튼다’고 하였다. 봄바람이 지나간 자리마다 잎과 꽃이 움트는 모습을 ‘젖니’라고 한 표현이 참신하다. 둘째 수에서는 ‘기다림/ 늘어선 길에/ 풋풋한 바람 인다.’고 하여 봄바람으로 하여 모든 것이 싹트기를 희망하며 기다리는 시인의 마음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옴팡진 세상얘기 양각으로 돋아나고
햇살이 장대같이 늘어진 복날 오후
빨갛게
달궈진 시간
시렁에 올려놓고
더위에 가위눌린 하루를 꽉 짜내면
짭조름 갯바람에 소금 꽃 피어나고
검푸른
들판을 건너
소나기 달려온다. - 「여름나기」 전문
더위에 허덕이는 여름의 모습, 그리고 소나기가 담겨 있는 시조다. 삼복 더위 속의 여름날은 ‘햇살이 장대같이 늘어진 복날 오후 / 빨갛게 / 달궈진 시간 / 시렁에 올려놓고’처럼 사람도, 사물도 축축 처지는 복날의 더운 시간을 ‘장대같이 늘어진’이라고 표현했다. 빨래가 많이 늘려 축축 처진 장대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들어온다. ‘더위에 가위눌린 하루를 꽉 짜내면’ 소금 꽃이 피어난다고 한다. 2018년 여름 같다면 정말 얼굴에서 땀이 마르면 소금기가 묻어날 것 같은 더위였다. 그럴 때 ‘검푸른 / 들판을 건너 / 소나기 달려온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더위와 씨름하다 소나기도 만나면서 여름은 지나감을 말하고 있다. 고통 속에서도 희망이 있음을, 또한 모든 것은 지나감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윗왕의 반지에 새겨진 솔로몬의 말,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글귀가 생각나기도 하는 작품이다.
단풍이 성큼 낼 건너 산 달궈내고
바람이 날을 세워 관절을 쪼아대도
일상은
늘 평범하다
가을이 누워 있다
한밤중 까만 하늘 거울처럼 닦아내고
잠든 별 깨워내서 방울방울 달아두면
풍경은
경을 읽는다
마음이 부처니라. - 「가을 암자」 전문
이 시조를 읽으면 상큼한 가을의 모습이 다가온다. 붉게 물드는 산을 ‘산 달궈놓고’란 표현으로 불이 타오르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그리고 소슬한 가을바람, 그 가운데 평온한 일상의 모습이 보인다. 또 밤에는 맑은 하늘 속에 별들이 반짝이는 모습을 ‘잠든 별 깨워내서 방울방울 달아두면’이라고 표현하여 마치 반짝이는 별이 반짝이는 물방울처럼 표현되고 있다. 풀잎에 이슬이 매달린 것을 연상하게 하는 발상이 참신하다. ‘풍경은 / 경을 읽는다 / 마음이 부처니라’라고 한 표현도 고요하고 명상에 잠긴 듯한 평온한 가을암자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가을 속의 한 폭의 산수화 같이 고요한 암자의 모습이 다가오고 그 암자 속에, 아니 각자의 마음속에 부처님도 한 분 앉아 계신 듯하다.
가을비
추적이는
아쉽고 허전한 날
말 못할
아픔 있나
풍경風磬은 혼자 울며
사는 게
다 그런 거야
선문답을 하고 있다. - 「가을이라 그런가」
가을비가 추적이는 날은 누구나 아쉽고 허전한 느낌이 든다. 이 시조의 화자도 예외는 아니다. 가을비가 내리는 날, 들리는 풍경소리까지 아픔으로 느껴진다. 평소에도 늘 울던 풍경이겠으나 어느 날 문득 와 닿는 풍경소리, 비 오는 날 듣는 소리는 어쩌면 더욱 처량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풍경도 아픔이 있는 가 보다고 화자는 상상한다. 그러면서 ‘사는 게/ 다 그런 거야/ 선문답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종장에 오면 허전함도 아픔도 모두 넘어선 해탈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소소한 일상에서 깨달음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세월이 구겨 놓은 지울 수 없는 아픔
나쁜 마음 가둬놓고 가슴을 쿵쿵 쳐도
멍들어
시퍼런 하늘
눈빛마저 차갑다.
움 추린 어깨 펴고 앙다문 입을 열고
들썩이는 어깨 위에 바람이 기대서면
양지쪽
마른자리에
겨울이 누워 있다. - 「겨울 단신短信」 전문
차갑게 다가온 겨울의 모습이다. 계절의 끝에 있는 겨울, 그것을 ‘세월이 구겨놓은 지울 수 없는 아픔’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새싹 돋던 희망의 봄도, 무성하고 무덥던 여름도, 그리고 풍요롭던 가을도 다 구겨 넣은 겨울 모습이다. 모든 시간을 감싸 안고 가는 겨울의 ‘멍들어/ 시퍼런 하늘/ 눈빛마저 차갑다.’란 표현 속에서는 절망이 느껴진다. 하지만 둘째 수에 오면 다시금 희망적이다. ‘움추린 어깨 펴고 앙다문 입을 열고/ 들썩이는 어깨 위에 바람이 기대서면/ 양지쪽/ 마른자리에/ 겨울이 누워 있다.’고 한다. 아마도 그 모든 것을 포용했던 겨울이, 봄이 되면 싹틔울 준비를 하는 겨울로 다가온다. 이렇게 늘 이헌의 시조에는 차가운 현실 인식과 그리고 그 속에서 희망을 기다리는 긍정적 마음이 들어 있다. 계절에 대한 시조에서도 그러한 것을 뚜렷이 느낄 수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사계를 노래한 작품들을 보면, 마모된 세월에 대한 안타까움이 드러난다.
2. 냉철한 현실인식과 자아성찰
회색은 도시의 색 불면은 도시의 삶
사는 게 무엇인가 사그라진 달빛인가
부러진
연필을 깎는다,
마음을 다듬는다.
외로워 더 외로운 펼칠 수 없는 마음
오늘은 바람 되고 내일은 비가 될까
조각난
하루를 줍는다
꾹꾹 눌러 담는다. - 「회색도시」 전문
‘회색은 도시의 색 불면은 도시의 삶’이란 표현 속에 도시의 색은 회색이란 말이 실감이 간다. 남부순환로던가, 길을 잘 달려오다가 보면 어느 새 아파트들이 길을 막고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 곳, 바로 잠실 삼전도 부근일 것이다. 사이사이로 길은 열려 있었지만 순간, ‘아, 도시구나.’하고 느껴지며 숨이 막힐 듯 답답하던 마음. 이곳이 도시라는 생각이 절실하게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지금도 그 곳을 지날 때면 가슴이 답답하다. ‘도시 계획이 잘 된 것일 텐데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이 시조를 읽으며 예전 여행하던 실크로드 우루무치에서 보던 도시의 모습, 도시의 사각으로 된 회색 건물들이 생각나서 퍽 실감이 가는 표현이란 생각을 한다. 그 회색 도시 속에서, 밤이면 휘황찬란한 불빛이 쏟아지고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영업을 하며 잠 못 드는 불면의 밤을 갖는 곳이 도시이다.
그 불면의 밤 속에서 시인은 시를 쓰기 위해 ‘부러진/ 연필을 깎는다,/ 마음을 다듬는다.’고 한다. 둘째 수에 오면 시인의 외로움이 드러난다. ‘외로워 더 외로운 펼칠 수 없는 마음’이라고 한다.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고 잘 지내다 보면 정작 시를 써야할 시간을 잃어버리고 시인은 시를 쓰지 못한다. 그래서 시인은 외로움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시를 생각해 낼 수 있는 시간, 시를 위해 갈고 닦아야 할 시간이 시인에겐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러자면 시인은 외로워야 하고, 그 외로움의 시간을 참고 견디며 ‘조각난/ 하루를 줍는다/ 꾹꾹 눌러 담는다.’고 시인은 무딘 연필 끝에 힘을 주며 시를 쓰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한 편의 시를 얻기 위해, 좋은 표현을 골라내기 위해 시인은 얼마나 고심을 하는가, 얼마나 불면의 밤을 밝히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외줄을
오릅니다
무작정 오릅니다
손은 곱고
발 저리고
현기증이 납니다
하늘은
꿈이었습니다
빗장 지른 세상에서. - 「담쟁이」 전문
담쟁이의 속성은 조금만 기댈 것이 있으면 무작정 오른다. 화자는 외줄을 타고 담쟁이처럼 무작정 오름을 말하고 있다. 외줄을 타자면 얼마나 아슬아슬하고 힘이 들겠는가? 어렸을 때 자주 꾸던 꿈처럼 아슬아슬한 모습, 그 줄타기의 힘듦을 화자는 ‘손은 곱고/ 발 저리고/ 현기증이 납니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렇게 올라가도 하늘은 멀기만 하고, 더구나 빗장을 질러놓아 가 닿을 수 없어, 꿈으로만 그치는 안타까움…. 삶에는 이런 빗장이 얼마나 많이 널려 있는 것인가? 결코 목표에 가 닿을 수 없는 장애물들, 그것을 넘지 못하고 좌졸하는 인간의 모습을 담쟁이로 상징하고 있는 작품이다.
벼랑 끝
세상에서
외줄로 버텨내어
잊으며
살아가도
잊히고는 싶지 않다
눈물로
반죽한 후회
온밤을 주무른다. - 「나, 그리고 너」 전문
이 작품에서도 ‘벼랑 끝/ 세상에서/ 외줄로 버텨내어’라는 표현이 나온다. 담쟁이처럼 삶은 늘 가파르고, 외줄타기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삶 속에서 ‘잊으며/ 살아가도/ 잊히고는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나 보편적으로 갖는 감정일 것이다. 삶에 바빠 너를 잊으며 살아가지만, 너에게서 내가 잊히는 건 싫은 법이다. 그래서 일까 종장에 오면 ‘눈물로/ 반죽한 후회/ 온밤을 주무른다.’고 한다. 잊혀지지 않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인간의 로망이다. 남이 되기 싫은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소망도 기다림도 꿈인 줄 잘 알기에
흙 한 삽 퍼낸 자리 모자란 생각 묻고
가끔은
혼자가 된다
틈새를 비워둔다.
몸 한 뼘 마음 두 평 깨지고 미어져도
시간과 시간 사이 공간이 자리 잡고
눈 감고
가만 누워도
해지고 달이 뜬다. - 「헛생각」 전문
시인의 겸손한 마음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소망도 기다림도 꿈인 줄 잘 알기에/
흙 한 삽 퍼낸 자리 모자란 생각 묻고/ 가끔은/ 혼자가 된다/ 틈새를 비워둔다.’고 한다. 시조를 쓰는 일은 외로운 일이기에, 그리고 스스로 ‘모자란 생각 묻고’로 표현하며 겸손함을 보인다. ‘몸 한 뼘 마음 두 평 깨지고 미어져도/ 시간과 시간 사이 공간이 자리 잡고/ 눈 감고/ 가만 누워도/ 해지고 달이 뜬다.’ 사는 일도, 시조를 쓰는 일도 쉬운 일은 없기에 수시로 마음이 깨지고 상처도 받는다. 누군들 좋은 작품이라 칭송받는 작품을 쓰고 싶지 않으랴? 그러나 생각뿐임을 시인은 잘 알고 있다. 그런 속에서 무심히 해지고 달이 뜨며 세월은 흘러가고 있다.
찰나를 밝히고자 제 몸을 모두 태운
별 하나 지고 있다 어둠 가로지르며
별똥별
떨어진 자리
가슴 쿵 내려앉고
날개를 떼어내고 그대로 직선으로
돌아도 보지 않고 기다리지도 않았다
별똥별
삼킨 하늘은
아무 말도 없었다. -「별똥별」 전문
별똥별이 떨어지는 걸 보면 누군가 죽는다고 했던가,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그런데 이 시인은 ‘찰나를 밝히고자 제 몸을 모두 태운/ 별 하나 지고 있다 어둠 가로지르며/ 별똥별/ 떨어진 자리/ 가슴 쿵 내려앉고’라며 별똥별을 보며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고 했다. 제 몸을 모두 태우고 지는 별, 망설임도 돌아봄도 없이 그대로 스러지는 별, 그런데 그 별을 삼킨 하늘은 아무 말도 없다. 시인의 허무 의식을 본다. 별똥별이 지는 자연현상을 본 시인은 가슴이 쿵 내려앉을 만큼 충격이었지만, 별 하나 떨어진 하늘은 아무런 이상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런 동요도 없이, 무심히 그렇게 세상은 돌아가고 있다. 시인은 그것에 더한 충격을 받고 있는 듯하다. 첫째 수에서는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에 대해, 삼라만상 속의 소멸에 대해 충격을 받지만, 둘째 수에 오면 하나의 생명이 스러져도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잘 돌아가고 천체도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에 시인은 내면으로 놀라고 있고, 존재에 대한 무상감과 허무의식을 보이고 있고 한편 그것은 냉철한 현식인식의 발로이기도 하다. 다음 작품에서도 그러한 의식이 나타난다.
편하게 앉을 자리 기댈 곳 하나 없고
올 한 해 각진 마음 다듬지 못했는데
등 시린
하루가 길다
웅크린 나를 본다.
바람이 날 세우면 입술만 바짝 타고
좌표를 더듬대는 하루가 눅눅해도
주름진
세월을 편다
맹물로 살아왔다. - 「세모歲暮」 전문
세모歲暮만 되면 자신의 한 해를 돌아보는 것이 우리 삶의 다반사이다. 이헌 시인도 다름이 아니다. 한 해를 돌아보며 ‘올 한 해 각진 마음 다듬지 못했는데/ 등 시린/ 하루가 길다/ 웅크린 나를 본다.’고 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의 마음이 이와 같지 않을까? 한 해의 끝자락에 와서 한 해를 돌아보며 한 해를 후회 없이 잘 살았다고, 마음 편히 살았다고 말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연초에 계획한 일들은 얼마나 이루었는지, 그리고 결심했던 일들은 얼마나 실행이 되었는지 모두 미흡한 마음으로 조금은 후회를 하게 되는 것이 세모이다. 둘째 수 종장에서 보이는 ‘주름진/ 세월을 편다/ 맹물로 살아왔다.’도 같은 맥락이다. 맹물처럼 싱겁게 살아온 삶을, 조금 더뜨겁게, 철저하게 살지 못한 삶을 후회하는 마음을 담아내고 있어 공감을 얻는다.
바람이 구름 풀어 그림을 그려대는
엎드린 산을 딛고 시름을 털어내면
눈물이
톡 튀어 올라
갈잎에 매달린다. 「살아가는 일」 부분
사람이 ‘살아가는 일’을 이헌 시인은 이렇게 표현했다. 운명에 휘둘려 살아가는 인생이지만, ‘살아가는 일은 기쁨만도 슬픔만도 아니라는 걸’ 프랑스 자연주의 작가 모파상은 『여자의 일생』 끝부분에서 말하고 있다. 살아가며 겪게 되는 시름, 그 시름을 털어내는 일, 그것은 ‘눈물이/ 톡 튀어 올라/ 갈잎에 매달’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결코 녹녹하지 않은 삶의 무게들이 이헌 시인의 작품 전반에서 드러나고 있다. 「종장」 이란 작품도 예외는 아니다. ‘도랑에 물이 괴듯 주름에 세월 들고/ 목울대 넘지 못해 멍울로 박힌 시름/ 이제는/ 내려놓을 때/ 그럴 때가 되었다.’ 온갖 시름들을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고 한다. 고민, 욕망 등에 의해 생기는 시름을 내려놓으면 마음과 몸이 편안해질 것이다. 제목 「종장」의 의미가 사뭇 크다. 생의 끝부분에 해야 할 일인 것이다. 그것이 시조의 종장만큼이나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현실인식을 아주 냉철하게 잘하고 있는 시인이라 생각되며 그 속에 자아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다. 삶아온 삶에 대해, 살아갈 삶에 대해 늘 생각하는 시인이다.
3. 희망을 찾아가는 긍정과 열정
아쉬움 접어두고 빈손을 툴툴 털면
어디서 어디까지 내 삶의 영역인가
거슬러
오르지 못할
벼랑을 마주한다.
실개울 몸살 앓는 스산한 바람 일면
기진한 불빛들이 달무리로 피어나고
굴레도
벗지 못한 채
작정 없이 길 나선다. - 「마음의 病」 전문
그는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희망을 찾아가는 시인이다. 이헌의 시조를 보면 생의 절망과 애잔함이 담기는 가운데서도 희망을 꿈꾸고 있는 작품이 많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어둡지 않고 긍정적인 삶의 자세가 엿보인다. 「마음의 病」 도 그런 작품이다. ‘거슬러/ 오르지 못할/ 벼랑을 마주한다.’라든가, ‘굴레도/ 벗지 못한 채/ 작정 없이 길 나선다.’에서도 그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거슬러 오르지 못할 벼랑일지라도 당당히 마주서고, 또 작정은 없어도 길을 나서고 보는 것이다. 절망이나 허무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마주하며, 또 길을 나서는 삶에 대한 용기와 긍정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는 늘 희망이 존재한다.
세월을
졸이는지
하루가 펄펄 끓고
찌든 삶
간간해도
내일이 궁금하여
까맣고
까만 하늘에
별 하나를 심는다. - 「그래도 내일은」 전문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푸시킨의 시가 아닐지라도, 오늘은 안 좋았어도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 오늘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 보여서 좋다. 우리는 누구나 하루를 바쁘게,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 세월을 간장 졸이듯이, 쥐어짜며 그렇게 펄펄 끓이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지지며 볶으며 살아가는 세월에도 내일은 또 궁금해 져서 밤하늘에 별을 심으며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다. 다른 연시조에서도 발견되듯이 늘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그렇게 노래하며 살아가는 긍정적 모습이 보인다.
늘어진 햇살들이 등대고 기대서고
꾸부정 드러누운 하루를 곧추세운
설렘은
무슨 색일까
빨강, 아니 연분홍.
졸라맨 허리 풀고 기지개 켜는 새벽
뭉툭한 그리움이 발끝에 툭 채이고
안개는
실눈 비비며
곰실곰실 피어난다. 「하루를 열며」 전문
「하루를 열며」 어제의 지친 모습이 아닌 희망의 모습으로 새날을 맞이하는 마음, 같은 24시간의 반복이지만 아침마다 새롭게 설레며 하루의 색깔을 생각해 보는 그 마음이 마냥 싱그럽다. ‘꾸부정 드러누운 하루를 곧추세운’다는 표현 속에는 어제의 꾸부정하고 눅눅했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의지도 있고, 긍정적으로 하루를 여는 삶의 자세가 건전해 보인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쥬스 반 잔을 마신 잔을 앞에 놓고 어떤 사람은 아직도 반잔이나 남았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을 갖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반잔 밖에 안 남았다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며 한 숨을 쉴 테니 말이다. 모든 것에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때 삶이 행복해 진다는 걸 알 수 있다. ‘안개는/ 실눈 비비며/ 곰실곰실 피어난다’는 그 표현도 예쁘다. 사물을 긍정적으로, 사랑으로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어깨가 시린 날은 가슴도 먹먹한데
밤 들어 감춰진 길 반달이 반쯤 열면
눈 감고
길을 묻는다
구름이 앞서 간다.
세상에 길은 많다 가야할 길 멈춰설 길
할 말도 다 못하고 딸꾹질만 해대다가
잊혀진
길을 찾아서
봇짐 다시 짊어진다. - 「길, 길을 간다」 전문
늘 삶에는 부정과 긍정, 햇빛과 그림자가 공존한다. 매일이 행복하지도 않고, 매일이 불행하지도 않은 우리들의 삶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같은 상황도 행복으로, 또 불행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헌 시인의 시를 읽으면 유난히 그런 작품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이헌 시인이 어느 정도 삶에 연륜을 지닌 것을 시인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세상물정 모르는 풋내기가 아닌, 세상의 돌아가는 이치와 삼라만상 현상의 모습을 두루 관찰한 시인의 모습이 느껴진다.
그리고 순간순간 절망도 하고, 지치기도 하지만, 또 다시 마음을 다잡고 애써 긍정적이고자 노력하는 삶의 모습이 작품 면면에 보이고 있다. ‘눈 감고/ 길을 묻는다/ 구름이 앞서 간다’, ‘세상에 길은 많다 가야할 길 멈춰설 길/ 할 말도 다 못하고 딸꾹질만 해대다가/ 잊혀진 길을 찾아서/ 봇짐 다시 짊어진다’하는 표현 속에는 절망과 망설임 속에서도 다시 길을 찾아나서는 용기와 긍정과 노력의 모습을 보인다. 우리의 삶이 나태 속에, 절망 속에 안주하는 삶이 아니라 늘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잊혀진 길이라도 다시 찾아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교훈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읽다가 보면 러시아 시인 푸쉬킨의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작품이 생각나기도 한다.
온밤을 뒤척여도 빼내지 못한 옹이
그래도 내려놓자 껍질도 벗겨내고
닳아져
뭉툭해진 삶
새살이 돋아날까. - 「삶의 행간」
이 작품도 살아가는 행간 속에서 희망을 가져보는 내용이다. ‘온밤을 뒤척여도 빼내지 못한 옹이/ 그래도 내려놓자 껍질도 벗겨내고/ 닳아져/ 뭉툭해진 삶/ 새살이 돋아날까.’ 며 옹이를 빼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시인이 빼내고자 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삶의 가장 중요한 알갱이 같은 것, 아니면 멋지고 참신한 시적 표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름답고 참신하게 표현하고 싶으면서도 거기에 맞는 정확한 어휘를 찾아내지 못할 때의 답답함, 가장 옹근 것을 찾아내지 못해 안타까워하면서도 닮아져 낡고 뭉툭해진 삶일망정, 아니 시심일지라도 그래도 새살이 돋지 않을까, 좋은 시를 쓰지 않을까 희망하며 우리 모두는 그런 바람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게 아닐까.
세월을 타고 넘는 바람 끝이 매섭고
외진 곳 눌러앉은 하루가 곤곤해도
보타진
입술 축이며
외로움을 벗는다.
어둠을 갈라치며 햇살이 내려앉고
바람이 설핏 일어 발그레 물든 마음
꽃등에
불을 밝힌다
눈망울이 또렷하다. - 「내일은」 전문
‘세월을 타고 넘는 바람 끝이 매섭고/ 외진 곳 눌러앉은 하루가 곤곤해도/ 보타진/
입술 축이며/ 외로움을 벗는다.’며 내일에 대한 소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인은 늘 외진 곳에 눌러앉은 곤곤한 하루지만 스스로 달래며 입술 축이며 외로움을 달래며 내일을 기다리고 있다. 그 내일은 바로 희망과 기다림이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시인은 설레며 내일을 기다린다. 마음 다해 기다리는 그 시간은 바로 ‘어둠을 갈라치며 햇살이 내려앉고/ 바람이 설핏 일어 발그레 물든 마음/ 꽃등에/ 불을 밝힌다/ 눈망울이 또렷하다.’ 밝고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 꽃등에 불을 밝히고 눈망울에도 반짝반짝 생기가 돌아 더욱 또렷해지는 것이다. 「못다 쓴 편지」 둘째 수 내용도 마찬가지다. ‘가만히/ 촛불을 켠다/ 사연을 펼쳐든다.’는 미래를 위해, 희망을 위해 다시금 시작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공원에서」에서의 종장들도 마찬가지다. ‘등 굽은/ 소나무 어깨/ 봄꿈을 얹어뒀다(첫수 종장)’ 이나 ‘마른입/ 축여가면서/ 불씨 다시 지핀다(둘째 수 종장)’도 그렇다. 이렇게 늘 긍정과 기다림이 느껴지는 작품은, 그가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늘 미래를 향해 마음을 열어놓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 이헌 시인의 시집에 실리는 작품들은 2수 연시조의 작품들이다. 내용에 있어 작품 수준이 고르고, 형식은 2주 10행을 취하고 있다. 초장과 중장은 각각 1행으로 배열하고 종장은 3행으로 구분하여 종장에 힘을 실은 작품이라 볼 수 있다. 이것은 시조가 「선경후정」의 작품이라는 것을 시인자신이 잘 인식한 배열이라 느껴진다. 선경보다 후정이 중요함을 인식하여 그 종장을 3행으로 나누어 그 휴지와 느낌을 강하게 하려는 시인의 의도이다. 그래서 이헌의 연시조는 그 형식면에서는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느껴지고, 2수의 연시조라서 주제 파악이 어렵지 않고, 읽는데 부담스럽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이헌 시인의 작품은 어느 작품을 읽어도 내용의 수준이 전체적으로 고르다. 그것은 그의 시조가 이미 시조로써 탄탄한 구성과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말한다. 그의 시조에는 마모된 세월에 대한 안타까움, 냉철한 현실인식과 자아성찰, 희망을 찾아가는 긍정과 열정이 들어 있다. 냉철한 현실인식 속에서도 삼라만상에 대한 따뜻한 감성과 애정을 지니고 있으며, 자신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성찰하며 보다나은 내일을 찾아가고자 하는 희망과 열정을 지니고 있다. 앞으로 그의 시조가 더욱 옹골찬 작품으로, 아름다운 작품으로 계속 탄생되어 독자의 사랑을 듬뿍 받은 시조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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