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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현대시 100년

김민정의 한국현대시 100년 제22회 - 승무 / 조지훈 (국방일보, 2014. 06. 09)

by 시조시인 김민정 2014. 6. 8.

 

 

 

 

세속의 번뇌를 잊으려는 춤사위에 취해

승무(僧舞) / 조지훈
2014. 06. 08 15:00 입력 | 2014. 06. 08 17:45 수정
               

승무(僧舞) / 조지훈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
(梧桐)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
히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
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속 거
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
(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너무나 아름다워 오히려 서러워…젊은 여승 고뇌·종교적 구원에 초점


 

 이 시는 1939년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장에 발표된 작품이다. 1946년에 발간된 3인(박두진·박목월·조지훈) 시집인 ‘청록집(靑綠集, 을유문화사)’에 재수록됐으며, 초기 그의 시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조지훈은 1938년 경기도 수원 용주사에서 영혼의 고뇌를 춤으로 승화시킨 승무를 참관하고 영감을 얻어 ‘승무’를 쓰게 됐다고 한다. 그가 승무를 시화해 보겠다고 생각한 것은 19세 때다. 그는 이 시를 구상하기까지 세 가지의 승무를 사랑했는데, 첫 번째는 한성준의 춤, 두 번째는 최승희의 춤, 세 번째는 이름 모를 승려의 춤이라 한다.

그러나 앞 두 사람의 춤은 그의 시심에 큰 파문을 던지지는 못했다. 열아홉 가을 어느 날 수원의 용주사에서 큰 재를 올렸다. 승무 외에 몇 가지 불교 전래의 고전음악이 베풀어지리라는 소식을 듣고 곧 수원 용주사에 갔으며, 재가 파한 후까지 넋 놓고 절 뒷마당 감나무 아래 서 있었다고 한다. 그 밤의 불가사의한 선율을 안고 서울에 돌아와서도 이듬해 늦은 봄까지 붓을 들지 못하다가 첫여름이 돼 예술전람회에서 김은호의 ‘승무도’를 보고 난 다음 78자의 스케치를 했고, 다시 몇 달이 흐른 10월 구왕궁 아악부에서 ‘영산회상’의 한가락을 듣고 구상한 지 열한 달, 집필한 지 일곱 달 만에 겨우 완성한 작품이라 한다.

승무라는 불교적 춤을 소재로 해 삶의 번뇌를 이겨내려는 젊은 여승의 모습을 시적으로 승화하고 있다. 세속을 떠난 젊은 여승의 고뇌와 종교적인 구원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오동잎이 떨어져 내리고 빈대에 황촉 불만 말없이 타는 밤에 ‘복사꽃 고운 뺨’ ‘두 볼에 흐르는 빛’ 등의 관능적 아름다움을 지닌 여승이 홀로 승무를 추며 세속의 번뇌를 잊으려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오히려 서러워 보인다는 의미다.

 조지훈(趙芝薰·1920 ~1968)의 본명은 동탁(東卓). 1920년 경북 영양 출생으로 엄격한 가풍 속에서 한학을 배우고 독학으로 혜화전문을 졸업했다. 1939년 ‘고풍의상’ ‘승무’, 1940년 ‘봉황수’로 ‘문장(文章)’지의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고전적 풍물을 소재로 우아하고 섬세하게 민족 정서를 노래했고, 박두진·박목월과 함께 시집 ‘청록집(靑鹿集)’을 간행해 ‘청록파’라 불린다. 시집 ‘풀잎 단장’ ‘조지훈 시선’ ‘역사 앞에서’ 등이 있고 유명한 ‘지조론(志操論)’이 있다. 1962년 고려대학 민족문화연구소 소장에 취임, ‘한국문화사대계’를 기획했으나 ‘한국문화사서설’ ‘신라가요연구논고’ ‘한국민족운동사’ 등의 논저만 남기고 그 기획을 완성하지 못한 채 사망했다. 서울 남산에 그의 시비(詩碑)가 있다.

<김민정 시조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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