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에 달 가듯이… 자연과 하나되는 발길
- [현대시] 나그네/박목월
- 2014. 06. 22 15:28 입력
조지훈의 ‘완화삼’ 화답으로 선사한 詩 한폭의 동양화 같은 유유자적 선비 그려
1939년 정지용의 추천으로 등단하고 당시 경주에 살았던 박목월은 1942년에 조지훈을 처음 만나 그 후부터 매우 친밀한 관계가 됐다고 한다. 조지훈은 박목월을 위해 ‘완화삼’이라는 시를 썼다. 박목월은 조지훈의 완화삼에 대한 화답으로 나그네를 썼다고 한다.
조지훈은 완화삼에 ‘목월에게’라는 부제를 썼고 박목월도 처음에는 시 ‘나그네’에 ‘술 익는 강 마을에 저녁 노을이여-지훈’이라는 부제를 붙였던 것이다.
‘차운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리(七百里)/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박목월은 이 시를 받고 한없이 울었다고 한다.
조지훈의 ‘구름 흘러가는’에 박목월은 ‘구름에 달 가듯이’, 조지훈의 ‘물길은 칠백리’에 박목월은 ‘남도 삼백리’, 조지훈의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에 박목월은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로 조지훈의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에 박목월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라고 표현해 대구 형식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시의 제목 ‘완화삼’은 ‘꽃을 보고 즐기는 선비’를 의미한다.
박목월은 ‘청록파’ 혹은 ‘자연파’로 불리는 시인으로서 그 유파의 이름에 걸맞게 ‘나그네’에도 자연에 대한 관심이 드러난다. 작품 ‘나그네’는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간결한 언어로써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그려내고 있다. 두 번이나 반복한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에서 행운유수(行雲流水)하는 유유자적이 나타난다. 강나루를 건너 밀밭 사이로 난 외줄기 길을 삼백 리나 걸어가서 만나는 것은 ‘술 익는 마을마다 / 타는 저녁 놀’이다. 무척 낭만적인 풍경이며, 정처없이 유유자적하던 방랑시인 김삿갓을 생각나게 하기도 한다. 또한 이 작품은 짧은 시를 많이 썼던 박목월 시인의 언어 경제가 이룩한 최고의 경지로 평가받고 있다.
박목월(1916~1978)은 경북 경주시에서 출생했고 본명은 영종(泳鍾)이다. 대구 계성중학교를 졸업하고 1939년 ‘길처럼’ ‘그것은 연륜이다’ 등의 시로 문장지에 등단한다. 박목월은 김소월과 김영랑을 잇는 향토적 서정시인으로 평가된다. 정지용은 박목월의 ‘윤사월’ ‘청노루’ ‘나그네’ 같은 시들을 보고, ‘북에 김소월, 남에 박목월’이라 했다. 박목월은 시를 쓸 때 항상 연필을 사용했고 한때 너무 가난해 자녀들 공책 사줄 돈이 없어 한지를 잘라서 공책을 만들어 줄 만큼 자상한 아버지였다고 한다. 계성중학교 교사를 지내고, 김동리ㆍ서정주 등과 1946년에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하고 조지훈ㆍ박두진과 함께 청록집을 간행, 1967년에는 한국시인협회 회장,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장을 역임했다. 시집으로는 ‘청록집’ ‘산도화(山桃花)’ ‘경상도 가랑잎’ 등이 있다.
나그네/박목월
강(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김민정 시조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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