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민정 시조평

시조의 達人 - 백수 정완영

by 시조시인 김민정 2012. 12. 2.

 

 

 

시조의 達人


백수 정완영(白水 鄭椀永)

 

  신년(乙酉) 벽두, 오는 봄을 어떻게 가늠하나? 하고 눈을 감고 앉았는데 느닷없이 김민정 (金珉廷)시인이 찾아와서 원고뭉치를 내밀면서 시집을 내겠으니 서문을 써 달라는 소청이 아닌가.


  내가 이런 청탁에서 손을 뗀 지도 오래 됐고, 또 요즘 시인(詩人)이라는 사람들이 당선이니 추천이니 받은 지 사흘만 되어도 ‘머릿말’이니 ‘시인의 말’이니 하여 자서(自序)를 부치기가 일쑤인 세상에서,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어 그만 둘까하다가 요즘 세상에서 이 시인만큼 숫된 사람도 드물거니와 이 시인이 백수론(白水論)을 써서 박사학위를 받은 문연(文緣)도 있고 해서, 몇 자 서문 아닌 소감을 얹기로 했다.

 

사진: 선바위와 심포초등학교, 이희탁

 

사진: 심포리의 선바위, 김진수

        기다리던

꽃소식에

마음이 온통 달아

 

찻잔으로

가는 손길

그도 한참 뜨겁더니

 

비로소

꽃 한 송이가

내 안에서 벙근다

                 -「기다리는 마음」전문

 

  시란 말 바깥의 말, 언외언(言外言)이다. 어떤 사상(事像)이거나 어떤 상황(狀況)만 보여주면 될 뿐, 중언부언해서는 안 된다. 시는 하나의 ‘제시(提示)’일뿐, 그것을 ‘판독(判讀)’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시가 해야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이 시인은 잘 알고 있다.

 

사진: 심포역의 백목련, 홍길순

 

꽃잎과

꽃잎으로

바람에 떨리우다가

 

불씨 묻은

재처럼

따뜻한 미련이다가

 

파문만

사름사름 앉는

깨지 못할 꿈이다가

              -「어떤 만남」전문

 

 

 

  시를 하는데 있어서 두 번째 요건은 바깥은 서늘하고, 속은 뜨거워야 한다는 말씀인데, 다시 말해서 재를 헤집다가 불씨에 손을 데는 듯 놀라움을 만나야 된다는 이야기인데, /불씨 묻은 재처럼 따뜻한 미련이다가/ 이 중장은 時調人의 警句, 불씨일시 분명하다.

 

 

사진: 심포리 대바위산 문필봉,홍성조

 

청산을

넘지 못해

물소리로

우는 강물,

 

강물을

건너지 못해

바람소리

우는 저 산

 

아득히

깊고도 푸른 정

한 세월을 삽니다

                    -「어라연 계곡」전문

 

  이 작품은 시인 김민정의 절창(絶唱), 그의 시의 절정(絶頂)이다. 시가 여기 와서는 더할 말을 잊는다. 보여주는 경개(景槪)에다가, 이기지 못하는 차탄(蹉嘆)에다가, 들려오는 물소리까지 어우러져 한 폭의 장관을 이룬다. 누가 그린 실경산수가 이만하다 할 수 있겠는가? 진실로의 가품(佳品)이다.

 

사진: 심포리 대바위산 문필봉, 김진수

 

                     아버지가 웃으시며

영동선을 가고 있다

 

가난도 햇살인양

눈부시게 받아 입고

 

물푸레

나뭇잎처럼

휘적휘적 가고 있다

            -가난도 햇살인양,영동선의 긴 봄날 4-

 

  어쩌면 이 한 수 단시조로 아버지가 걸어온 인생살이 뒷모습을 이렇게도 절실하게 그려낼 수 있었는가. 어버이에의 지정(至情)이 염의(染衣)처럼 가슴속에 묻어난다.

 

사진: 심포리 기찻길, 홍길순

 

 

  김민정은 강원도인(江原道人), 강원도는 산도(山道), 강원도에서 시조의 달인(達人) 한사람 나와 주기를 간구(懇求)하는 마음에서 두어 자 무사(蕪辭)로 서(序)에 대(代)한다.

 

2005년, 노백 정완영 지 (老白 鄭椀永 志)

 

 

사진: 심포리 기찻길, 201系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