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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시조평

김민정 시조론 - 기억과 회귀의 시학 <유성호>

by 시조시인 김민정 2011. 1. 5.

           

 

         

 

           김민정 시론 

-서정과 서사의 결속을 통해 부르는 사부곡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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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정(金珉廷) 시인의 신작시집 ?영동선의 긴 봄날?(동학사, 2008)은, 서정과 서사의 충실한 결속을 통해 부르는 일종의 ‘사부곡(思父曲)’이다. 강원도 삼척군 도계읍 심포리에서 태어난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 그곳에서 살아가셨고 지금은 고인이 되어 그곳에 누워계신 아버지에 대한 각별한 ‘기억’의 서사를 펼쳐 보여준다. 또한 시인은 아버지의 삶이 그려내는 동선(動線)을 따라 우리의 살아 있는 역사와 철로변의 구체적 경관을 섬세하게 재구(再構)하고 있다. 이때 아버지의 삶을 둘러싼 내러티브는 “영동선 철로변에 오래 사셨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서정성이 짙은 서사시조로 표현해보려고”(「시인의 말」) 했다는 시인의 의도처럼, 서정적 회상과 서사적 밑그림의 방식을 통해 완성되고 있다. 이는 이번 시집이 비록 서사를 뼈대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시인의 기억과 회상 그리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서정적으로 처리되고 있다는 뜻을 내포한다. 그 점에서 김민정의 이번 시집은 서정과 서사의 결속을 통한 절절한 노래라 할 것이다. 등단 20년을 훌쩍 넘긴 이 중견 시인의 필생의 역작(力作)이 될 이번 시집은, 아버지의 삶과 역사를 우리 민족의 보편적 역사로 확장시키면서 깊은 서사적 울림을 동반하고 있다 할 것이다.
 

 

 
   ‘영동선(嶺東線)’은 경상북도 영주에서 강원도 강릉까지 이어진 단선철도이다. 시인은 그곳에서 생을 이어오시고 마감하신 아버지의 삶을 일종의 일대기적 구성을 통해 재현하고 있다. 마침 올해가 아버지의 40주기가 되는 만큼, 시인으로서는 아버지의 생을 서정적 서사의 얼개를 통해 시적으로 재구성해보려 한 것이다. 앞에서도 암시하였듯이, 일제 시대에 태어나셔서 영동선과 함께 사시다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역사를 통해 우리 민족의 신산한 삶의 일면을 함께 부조(浮彫)해보는 것이 이번 시집의 또 다른 목표이다. 다시 말하면 아버지의 삶의 역정을 통해 식민지 시대, 한국전쟁, 4․19혁명 같은 격동기를 겪어왔던 우리 민족사의 경험을 적극 환기하려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서정적 회상의 방식은 시인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그곳 ‘영동선 철로변’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강렬한 ‘회귀’의 욕망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시인은 아버지에 대한 강렬한 ‘기억’과 그곳을 향한 ‘회귀’의 욕망을 이번 시집에 빼곡이 적어 넣고 있다. 이 길지 않은 글은 바로 그 ‘기억’과 ‘회귀’의 열망을 살피면서, 아버지가 지켜오신 그 “긴 봄날”의 시적 의미망을 추출해보려는 작은 기획이다.
 
2


  이번에 발표된 ‘영동선의 긴 봄날’ 연작들은, 그 한 편 한 편이 시인의 애잔하고도 근원적인 ‘서정적’ 감각을 담고 있으면서도, 일종의 ‘서사적’ 기억에 의해 한 줄기로 묶이는 속성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시인은 ‘시조(時調)’라는 단형의 서정 양식을 통해, 가파르게 살아오신 아버지의 생을 때로는 호활(浩闊)하게 때로는 섬세하게 재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시집의 서시(序詩)라고 할 수 있는 다음 시편은, ‘철로변 인생’이라는 제목을 달고는, 역사의 주변부에서 충실한 삶을 이어오신 아버지를 회상하는 작품이다. 이 시편을 시작으로 하여 시인은 시집 제1부에서 아버지의 생을 잔잔하게 점묘하고 있다.

 

 
                무심히/피었다 지는/풀꽃보다 더 무심히
                모두가 떠나버린/영동선 철로변에
                당신은/당신의 무덤/홀로 지켜 왔습니다

 
                살아서/못 떠나던/철로변의 인생이라
                죽어서도 지키시는/당신의 자리인 걸
                진달래/그걸 알아서/서럽도록 핀답니다

 
                시대가/변하고/강산도 변했지요
                그러나 여전히/당신의 무덤가엔
                봄이면/제비꽃,할미꽃이/활짝활짝 핍니다

 
                세월이/좀 더 가면/당신이 계신 자리
                우리들의 자리도/그 자리가 아닐까요
                열차가/사람만 바꿔 태워/같은 길을 달리듯이
 
                             ― 「철로변 인생 - 영동선의 긴 봄날 1」 전문
               
                시인은 아버지의 무덤가에서 깊은 묵상(黙想)을 하고 있다. 가령 시인의 상상력에서 “무심히/피었다 지는/풀꽃”의 형상은 “모두가 떠나버린/영동선 철로변”과 그 곁에 누워계신 아버지의 모습을 동시에 환기한다. 말하자면 ‘풀꽃’과 ‘영동선 철로변’과 ‘아버지’는 모두 한 시절 선명하게 존재하였다가 이제는 스러져버린 존재자들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삶과 죽음을 이 철로변에서 완성하신 아버지는, 이제 지천으로 핀 진달래와 제비꽃, 할미꽃에 둘러싸여 계시다. 마치 혜산(兮山) 박두진(朴斗鎭)의 명편 「묘지송(墓地頌)」에서 “금잔디 사이 할미꽃도 피었고, 삐이 삐이 배, 뱃종! 뱃종! 멧새들도 우는데 봄볕 포근한 무덤에 주검들이 누웠네.”라고 노래된 봄날의 환하고도 밝은 묘소 풍경이 감돌기까지 한다.

               

                하지만 세월이 더 흐르면 이 죽음의 풍경조차 낡아 사라져버릴 것이 아닌가. 마치 “열차가/사람만 바꿔 태워/같은 길을 달리듯이” 다른 이들의 삶이 이곳의 기억을 대체해갈 것이 아닌가. 하지만 시인은 ‘철로변 인생’을 살아오신 아버지에 대한 확연한 기억이 모두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있다. 오히려 아버지의 삶은 ‘영동선 철로변’의 화평한 자연 풍경과 함께 항구적 기억으로 남을 것이니까 말이다. 이러한 기억의 항구성은 “아이의 꿈이/노을처럼 깔리던 곳”(「철로변 아이의 꿈 - 영동선의 긴 봄날 3」)이었던 “상행선과/하행선이/교차하는 그 자리”(「흔들리던 풀잎처럼 - 영동선의 긴 봄날 2」)에 대한 시인의 오랜 ‘회귀’ 열망에서 비롯된다. 거기서 “가난도 햇살인 양/눈부시게 받아 입고//물푸레/나뭇잎처럼/휘적휘적 가고”(「가난도 햇살인 양 - 영동선의 긴 봄날 4」) 계신 아버지의 영상은, 김민정 시인의 “자아 밖의 세계를 대결과 긴장으로 인식하지 않고 화해를 추구하는 정신”(이지엽)에 감싸인 채 선명하고도 애잔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시인의 기억은 가족 모두가 만주로 떠났다가 다시 고향으로 귀환하게 된 내력을 향한다. 시인의 시선은 “열아홉/고운 어머니/첫딸 등에 들쳐업고//아버진 스물여섯/젊음을 끌어안고//산 설고/물 설은 땅에/꿈을 찾아 떠났”(만주 이민 - 영동선의 긴 봄날 6 )던 삶의 고통스런 역정을 향한다. 이때는 물론 시인이 태어나기 훨씬 전인 식민지 시대이지만, 시인은 자신의 존재론적 모태와 가족들이 그 이역(異域)에서 겪었을 온갖 간난신고의 경험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있다. 아버지는 그곳 환경이 너무 열악하여 “눈물겨웠던/자유조차 없던 그 땅”(「만주 탈출 - 영동선의 긴 봄날 8」)을 탈출하게 되는데, 이는 “눈물나게/다정한/사람들”(「이 땅 사람들 - 영동선의 긴 봄날 10」)이 살고 있는 ‘이 땅’을 찾아 다시 원점 회귀를 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식민지 시대의 ‘만주(滿洲)’가 남부여대(男負女戴)하고 쫓겨갈 수밖에 없었던 수난의 땅임을 기억하면서, 가족사적 경험이 민족사의 그것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후 시인의 기억은 만주에서 돌아와 영동선 철로변에 정착하신 ‘젊은 아버지’를 재현하는 데 바쳐진다. 그야말로 평범하기 그지없는 ‘시골 우체부’의 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버지는 일본어도 조금 할 줄 아셔서 “우체국에 취직되어//한과 꿈이 담겨 있을/몇 십 통의 우편물로//빼곡이/채워진 가방“(「큰 가방 메고서 - 영동선의 긴 봄날 11」)을 들고 소식을 배달하는 우체부의 생을 시작하신다. 문맹자가 많던 시절 아버지는 편지를 “소리내어 읽어주며//저마다/아픈 사연에/저려오던 가슴”(「함께 웃고 울며 - 영동선의 긴 봄날 13」)과 함께하셨다. 그 아버지의 생을 두고 시인은 “눈비 속의 만행(萬行)길”(「산골 우체부 - 영동선의 긴 봄날 15」)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런데 아버지가 사고를 당하시게 되고 급기야는 ‘건널목지기’가 되시어 심포리의 건널목을 지키시면서 가난하고 외롭고 힘든 삶을 이어가시게 되었다고 시인의 기억은 전한다. 말하자면 “선로반/수레 타고/침목에서 침목 사이//어긋난 곳 바로 잡고/못 빠진 곳 못도 박고//그 사이/긴 철로 위로/인생”(「선로반 이야기 - 영동선의 긴 봄날 17」)을 이어가시게 된 것이다.

               

               

              대바위산/가물가물/아지랑이 피워내면

              두메산골 심포에도/봄은 다시 찾아오고

              건널목/오랍뜰에는/옥수수와 감자 심고


              호랑나비/떼 지으며/그리움을 피워내면

              올망졸망 육남매를/꽃 가꾸듯 가꾸면서

              깊은 산/곤드레 나물/봄 한 철이 깊었네

              ― 「건널목을 지키며 - 영동선의 긴 봄날 20」 전문


               

                ‘영동선’을 타고 따라온 ‘긴 봄날’을 맞아 건널목 근처에 “호랑나비/떼 지으며/그리움을 피워내면”, 아버지는 그 다사로운 풍경과 함께 “올망졸망 육남매를/꽃 가꾸듯 가꾸면서” 살아가셨다. 그 ‘육남매’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김민정 시인은, 바로 그 따뜻한 봄날의 시선으로 아버지의 생을 회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살핀 시집 제1부의 서사는, 아버지의 묘소에서 회상을 시작하여 아버지가 건널목지기로서의 생을 이어오시게 되기까지의 과정과 내력을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 평범하지만 굴곡 많았던 아버지의 생애가 봄날의 따뜻한 햇살처럼 시인의 마음 속으로 가득 번져옴을 우리는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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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김민정 시인은 자신의 가장 친숙한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아버지에 대한 간절한 ‘기억’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하나하나 풀어간다. 말할 것도 없이 모든 ‘기억’은, 과거적 삶에 대한 사실적 재현이 아니라 주체의 현재적 욕망에 의해 선택되고 배제되고 재구성되는 어떤 것이다. 그 점에서, 김민정 시인이 선택하고 구성하고 배치하는 ‘기억’ 역시 지금 시인이 갈망하는 어떤 삶의 형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게 된다. 그 점에서 시집 제2부는 심포리 근처의 탄광촌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거기서 시인의 ‘기억’은 이제는 사라져버린 아름다웠던 어떤 풍경들을 재현하면서 우리가 잃고 살아가는 어떤 심미적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그러한 회귀의 욕망이 ‘기억’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 ‘기억’은 “막장 깊이/묻혀 있는/꿈을 캐어 내느라고//화약 속 불꽃 같은/청춘을 바쳐가며”(「탄광촌의 삶 - 영동선의 긴 봄날 24」) 사람들이 살았던 곳을 향하고, 나아가 “선인장/꽃보다 강인한/광부들의 숨소리”(「탄광촌의 숨소리 - 영동선의 긴 봄날 25」)가 들리던 그곳을 향한다.

               


              정적 속에/살아나던/산업 철도 기적 소리

              산마을 긴 적막이/수런수런 잠을 깨면

              탄광촌/노다지 캐러/전국에서 모여들고


              꿈을 실어/나르던 길/행복 실어 나르던 길

              영동선 화물 열차/끊임없이 오고가며

              역사의/수레바퀴가/요란하게 돌아가던

              ― 「탄광촌의 시작 - 영동선의 긴 봄날 22」 전문


                탄광이 몰려오자 그 오지 마을의 오랜 정적이 깨지면서 “산업 철도 기적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 결과, 산마을은 갑자기 각처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붐비게 되었고, 그들의 “꿈을 실어/나르던” 길이 새로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그 흥성스러웠던 “행복 실어 나르던 길”도, 이제는 “역사의/수레바퀴가/요란하게” 돌던 때를 증언하는 듯이 다시 적막에 감싸여 있다. 그렇게 시인은 “휘파람/불어도 좋을/막장 밖의 세상”(「간드레 불빛 속에 - 영동선의 긴 봄날 31」)을 갈망하면서 “식민지/아픈 역사가/만들어낸 막장 인생”(「식민지 탄광 노동자 - 영동선의 긴 봄날 35」)을 살아온 이들의 삶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인적 드문/산간 오지/탄광으로 모여들던

              하늘 아래 첫 동네/통리 고개 굽어서면

              한 장의/손바닥으로도/가려지던 하늘이여


              한때는 김지하도/몸을 피해 숨어들고

              산을 뚫어 하늘 만들/노다지를 꿈꾸던 자

              긴 꿈의/천국이었네/심포리와 늑구리는

              ― 「노다지의 꿈 - 영동선의 긴 봄날 39」 전문

               

               

                이 인적 드문 산간 마을에 ‘탄광’이 개발되어 일종의 붐(boom)이 조성되고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 시절 익어가던 ‘노다지의 꿈’은 이를테면 김유정(金裕貞)의 「금 따는 콩밭」이나 이태준(李泰俊)의 「영월영감」 등 금광을 소재로 했던 근대소설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물론 이 작가들 역시 강원도 태생이었기 때문에 훨씬 이 같은 경험적 직접성을 담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바로 그 ‘노다지의 꿈’이 익어가던 “하늘 아래 첫 동네”에서 “산을 뚫어 하늘 만들/노다지를 꿈꾸던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인의 어조는, 이제는 그 흥성스러움이 사라진 적막한 심포리의 외관을 에둘러 묘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 인적 드문 산간 마을에 ‘탄광’이 개발되어 일종의 붐(boom)이 조성되고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 시절 익어가던 ‘노다지의 꿈’은 이를테면 김유정(金裕貞)의 「금 따는 콩밭」이나 이태준(李泰俊)의 「영월영감」 등 금광을 소재로 했던 근대소설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물론 이 작가들 역시 강원도 태생이었기 때문에 훨씬 이 같은 경험적 직접성을 담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바로 그 ‘노다지의 꿈’이 익어가던 “하늘 아래 첫 동네”에서 “산을 뚫어 하늘 만들/노다지를 꿈꾸던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인의 어조는, 이제는 그 흥성스러움이 사라진 적막한 심포리의 외관을 에둘러 묘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어지는 시집 제3부 ‘흔들리는 풍경’에서는, 심포리 마을이 겪은 전쟁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치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을 연상시키는 오지 마을의 전쟁 서사가 삽화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어린 병사들이 전초병으로 적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군대의 선발대보다 먼저 보내졌다는 이야기나, 인민군의 어린 전초병도 가엾기는 마찬가지였다는 이야기도 가감없이 펼쳐진다. 가령 “몸에도/맞지 않는/커다란 군복 입고//마음에도 맞지 않는/철걱대는 철모 쓰고”(「소년 병사 - 영동선의 긴 봄날 41」) 소년 병사들이 전장을 헤매는 풍경은 “역사의/수레바퀴 속/울며 가는 작은 새”(「전초병 - 영동선의 긴 봄날 42」)들의 비극적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때 경험했던 ‘붉은 공포’를 시인은 다음 시편에서 감각적으로 잘 그리고 있다.

               


              마을을/건너가는/젊디젊은 산맥에도

              등성이를 넘어가는/바람 같은 포소리에

              장밋빛/붉은 공포만/노을처럼 번졌지요


              밀고 밀려/쫓고 쫓겨/서로 겨눈 총부리에

              우우우 산의 울음/뼈저린 슬픔 같아

              산골도/숨을 죽이고/해도 달도 숨죽이고

              ― 「산의 울음소리 - 영동선의 긴 봄날 44」 전문 
               

               
               빈발하는 포소리와 총소리는 “장밋빛/붉은 공포만/노을처럼” 온 마을을 번지게 하였다. 그것들은 때로는 “산의 울음” 소리가 되고 때로는 “뼈저린 슬픔”이 되어 그 시대를 살아온 이들의 ‘기억’을 온통 공포로 사무치게 한다. 그렇게 “산골도/숨을 죽이고/해도 달도 숨”죽였던 전쟁이 끝나고, 이제 영동선 철로변에도 다시 소소하고도 평화로운 일상이 다시 찾아왔다. 시인은 그때의 철로변과 역(驛)의 모습을 다사롭게 재현하면서, 이 한가한 간이역의 풍경도 이제는 자취가 사라진 옛 모습임을 서정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가끔은/묻고 싶은/지그재그 인생길

              이곳에 와서 보면/그 이치를 알게 된다

              영동선/기찻길에도/지그재그 있다는 걸


              가끔은/묻고 싶은/가도 가도 숨찬 인생

              이곳에 와서 보면/그 이치를 알게 된다

              때로는/바람도 숨찬/언덕길이 있다는 걸

              ― 「지그재그 철로 - 영동선의 긴 봄날 46」 전문

               

               

                철로가 지그재그의 형상을 가지고 있었듯이, 아버지의 생도 그렇게 “지그재그 인생길”이었다. 삶의 공간과 삶의 양상이 그대로 닮아버린 이 기막힌 이치를 알아가면서, 시인은 영동선의 지그재그 기찻길과 굴곡 많았던 아버지의 “숨찬 인생”을 유비적으로 연결한다. 그것이 곧 자신의 “때로는/바람도 숨찬/언덕길”과도 연결되는 것처럼 암시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돈 벌어/뜨겠다던/탄광촌의 뜨내기들//소박한 꿈 다시 묻혀/뿌리 내린 삶”(「나한정역 - 영동선의 긴 봄날 47」)으로 이어진 영동선 ‘강삭철도(鋼索鐵道, cable-railway)’가 그려지고, 그 로프형의 강삭철도를 따라 “수직의/가파른 길”(「강삭철도 - 영동선의 긴 봄날 52」)을 걸어간 사람들의 일화가 펼쳐진다. 그래서 “몇 개의/긴 터널로/사라져간 강삭철도”였을지라도 그 삶의 내음 진하게 번져가던 “그 한때 화려하던/까마득한 언덕길”(「흔들리는 풍경 - 영동선의 긴 봄날 60」)을 시인은 강렬하게 추억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김민정 시편에서 우리는 지난 시대의 탄광촌의 외관과 거기서 삶을 이어온 이들의 꿈과 절망 그리고 고단한 풍경을 접할 수 있다. 그렇게 아버지는 그들의 꿈과 좌절을 함께 나누시면서 삶의 이치를 알아가셨고, 그 꿈을 지금도 몸에 지닌 채 영동선 철로변을 지키고 계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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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개 한 편의 서정시에는 시인 자신의 절실한 경험과 깨달음은 물론, 시적 대상을 향한 시인의 한없는 그리움이 압축되어 담겨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시인의 각별한 경험들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반추해보기도 하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간접 경험을 풍요롭게 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번 시집을 통해 김민정 시편들이 ‘아버지’라는 시적 대상을 향한 한없는 그리움을 가진 채 씌어졌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자신의 ‘기원(origin)’으로 끊임없이 회귀하려는 강한 열망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래서 가없는 그리움의 대상인 ‘아버지’는 시인의 가장 원형적인 상(像)을 담고 있는 일종의 ‘기원’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그 아름다웠던 이름들을 일일이 호명하면서, 김민정 시편들은 아버지의 삶과 죽음의 ‘기억’을 완성해낸다.

               

               

                이제 마지막 제4부에서 시인은 그러한 아버지의 생을 아름답게 수습하면서, ‘기억’ 속에 가장 아름답게 재생되고 있는 심포 고개와 심포리 건널목과 그곳에서의 생활 이야기를 담아내게 된다.

               

               

              오십천/개울가에/버들가지 물오르면

              아이들은 다투어/풀피리를 불었었고

              어머님/당신의 꿈속엔/푸른 장(章)이 열리고


              나뭇짐/가지 끝에/춤추는 꽃잎 있어

              마중 온 막내딸은/아비보다 꽃 더 반겨

              아버님/당신의 웃음엔/그래도 귀여운 딸

              ― 「나뭇짐과 꽃 - 영동선의 긴 봄날 65」 전문

                

               

                이를테면 “산마루 쳐다보며/아버지를 기다리던//맑은 눈”(「도토리 줍기 - 영동선의 긴 봄날 75」)의 소녀는 “오십천/개울가에/버들가지 물오르면” 뛰어 놀던 기억을 새삼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때 “아이들은 다투어/풀피리를 불었었고” 어머니의 꿈속엔 “푸른 장(章)이 열리고” 있었다. 그 시절 “마중 온 막내딸”과 아버지의 각별한 해후가 시인의 기억 속에 아득히 번져간다. 그렇게 ‘영동선’의 삶을 이어가던 아버지는 어느 봄날 그 ‘영동선’을 지키시면서 잠드신다.

               


              긴 겨울/물소리가/깨어나고 있을 무렵

              아버진 가랑가랑/삶을 앓아 누우시며

              고단한/삶의 종착역/다가가고 있었다


              봄날도/한창이던/사월도 중순 무

              간이역 불빛 같던/희미한 한 생애가

              영동선/긴 철로 위에/기적(汽笛)으로 누우셨다

              ― 「영동선에 잠들다 - 영동선의 긴 봄날 77」 전문

               

                

                겨울이 지나고 물소리도 새소리도 다 깨어날 시절 아버지는 “고단한/삶의 종착역”에 도착하셨다. 시인의 기억 속에 그것은 “봄날도/한창이던/사월도 중순 무렵”이었다. 마치 간이역 불빛처럼 희미하게 이어져오던 아버지의 삶은 그렇게 저물어갔고, 이제 아버지는 “영동선/긴 철로 위에/기적(汽笛)으로” 누워계시다. 그렇게 ‘기적(汽笛/奇蹟)’처럼 누워계신 아버지의 삶과 역사가, 식민지 시대로부터 산업화 시대까지 고단하게 생을 이어온 우리 민족의 보편적 삶과 역사로 확장되면서 이번 시집은 그 기억을 아름답게 갈무리하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서정시는 시간에 대한 남다른 경험을 통해 ‘기억’을 재구성하는 양식적 특수성을 지닌다. 그만큼 서정시는 ‘기억’의 양상을 근원적으로 다루게 되고, 우리는 서정시가 수행하는 ‘기억’의 원리를 따라 삶의 어떤 근원에 대한 상상적 경험을 치르게 된다. 그 점에서 김민정 시편들은 ‘그리움’을 주조로 하는 ‘기억’과 ‘회귀’의 언어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가장 근원적인 삶의 이치를 밀도 있게 경험케 하고 있다.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시인 스스로 권말에 실어놓은 「작품과 관련하여」라는 산문은 이번 시집을 이해하는 ‘기억의 지도(地圖)’ 역할을 세세하게 담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 글이 남김없이 보여주는 서사적 선명성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각 시편마다 구현된 서정성 짙은 회상과 기억의 양상을 때로는 사실적으로 때로는 상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김민정 시학의 정수(精髓)를 느끼면서, 시인이 일일이 ‘그리움’으로 호명하고 있는 ‘기억’과 ‘회귀’의 심미적 기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필생의 작업이 세상에 나오게 될 즈음은 아마도 아버지께서 그 고단하고도 아름다웠던 생을 접으셨던 때로부터 꼭 40년이 지난 시점 어름일 것이다. 그 순간 아버지의 생은, 다시 한번 ‘진달래’와 ‘제비꽃’, ‘할미꽃’으로 둘러싸여 “긴 봄날” 동안 한참을 출렁일 것이다.

               

              11. Para 'Astor Piazzo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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