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민정 시조평

김민정 시조론 - 순수와 화해의 시학 <이지엽>

by 시조시인 김민정 2011. 1. 5.

                순수와 화해의 시학

                 - 김민정론

 

 

                                이지엽 (시인, 경기대학교 교수)

 

 

1. 순수의 이미지스트


김민정 시인은 이미지스트다.  대부분의 이미지스트가 그러하듯이 김 시인의 시 세계는 순수하고 아름답다. 이번의 새  시조집『지상의 꿈』에는 편편마다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와 자연친화적이고 부드러운 비유를 통하여 순수의 정점에 도달하고자 하는 시인의 희원이 잘 형상화 되고 있다.


하르르 무늬바람

하르르 무늬물결


그대 향기 하도 짙어

숨이 막혀 오는 날은


속눈썹 타들어가며

불 지피는 나의 연가

-「음악을 위하여」부분


물결소리 바람소리

산새소리 들려오고

내 사유의 뜨락에도

하얀 달빛 밤새 내리는

오, 푸른

종소리 같은

그대편지 오실까

-「가을편지 」부분

 


「음악을 위하여」나, 「가을편지」는 그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음악을 위하여」에는 “하르르”의 의태어가 바람이나 물결의 부드러움을 형상화 시키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 “무늬바람”이나 “무늬물결”은 얼마나 아름다운 단어인가. 바람이나 물결이 무늬를 이루면서 “하르르” 다가오는데 시인은 이 풍경을 통해 그대의 “향기”를 느끼며 숨까지 막히고 종국에는 눈썹까지 타들어가고 있다. 시각이 후각으로, 후각이 다시 촉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시는 철저하게 이미지를 통해 서정자아의 심리 상태를 그려내고 있는 셈이다. 「가을편지」는 어떠한가. 이 작품은 물결과 바람과 산새의 청각적 이미지와 “하얀 달빛”의 시각적 이미지가 접합되면서 “푸른 종소리 같은 그대편지”의 청각적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미지는 종류나 표현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기 마련인데 김 시인의 시에서는 자연 친화적이고  부드러운 느낌이 지배적이다. 이에 대한 이유는 우리가 살펴보아야할 문제 중 하나지만 이미지로만 국한해보자면 청각이나 촉각 등 다른 이미지보다는 시각적 이미지가 지배적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는 점과 무관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그리움의 빛깔은」에는 “눈부시게/ 쏟아지는/저 무량의 가을 햇살”과 “나비처럼/팔랑이는/저 노오란 은행잎”, “불처럼/타오르고 있는/저 빠알간 단풍잎” 이라고 하여 모든 시적 대상이 회화적으로 그려져 있다. 김 시인은 거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이미지나 비유의 묘사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   

 


하이얀/그리움의 피돌기/순교의 절창이 빛난다 (「눈사람」)

수련보다 더 고운/아련한,/연분홍 그리움이라는 걸 알았습니다(「연꽃 만나러 가는 길 1 」)

푸르른 하늘을 향해/싱싱한 꽃대궁을 밀어올리는 (「연꽃 만나러 가는 길 1」)

잔잔한 수면을 향해/힘차게 솟아오르는 푸른 잎과 (「연꽃 만나러 가는 길 2」)

보드라운/느티 속잎/푸드득 날개 펴면//저것 봐/저것 좀 봐/천지간의 초록 물결//생명 그,/만발하는 무지개/분수처럼 솟구치는(「남산의 봄」)

하늘하늘/ 아지랑이/온 서울을 휘감더니---연초록/고운 바람이/사운대고 있잖아  (「남산의 봄」)

남해 통영/달아 공원/이른 봄의/청매 향기 (「남해 봄빛」)

촉촉이/양수 터트려/푸른 봄을 낳고 있다 (「봄비 2」)

보오얀/꿈을 꾸는/아가의/솜털 같은//고요한/햇살 속에/터지는/초록 함성//팽팽히/부풀어 오르는 (「오, 눈부신」)

우체국 앞 하얀 목련/이영도를 닮았을까//푸른 말/울음소리에/노을이 또 타고 있다  (「유치환론-靑馬거리」)

잣나무 가지 끝의 푸름으로 일렁이며 ---별빛 담은 눈빛들이 싱싱한 풀빛들이  (「진달래 필 무렵이면」)

그리운 /그대 얼굴 같은/강변 하얀 갈대꽃 (「작별의 한때」)

물감처럼/풀어놓은//연보라빛/그리움이//송이송이/등 밝히고 (「등꽃 피는 날」)

맑고 깊게/울리는/선율처럼/부드럽다//익을수록 의연해져/스스로 둥글어져(「가을 박」)

맑고 환한/얼굴의/형형한 가을 눈빛//투명히/피어오르는/저/눈부신 사랑  (「사루비아」)


여기에 인용하지 않은 작품도 상당수에 이른다. 문제적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다음의 작품에서 시인의 의도는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저  길  을

    라

        서

가  을  이

오고  있다


저  길  을

    라

        서

가  을  이

가고  있다


오  가  는

   은

      하

         나

            다

시  간  들  이

다    를    뿐

 

-「저 길을 따라서」전문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포말리즘의 기법도 시인이 얼마나 이미지를 중시여기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예에 속한다. 물론 이 형태를 통해 시인은 “저 길”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시각적으로 보이고자 했을 것이다. “저 길”은 구불구불 하지만 그 길로 가을은 또 오고 가고 있다. 가고 오는 길은 시인은 “하나”라고 말한다. “시간”들이 다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여기서 “길”은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한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이 “길”의 존재를 찾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시인은 이미지스트이기 때문에 이 영원한 길에 대해 욕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냥 보여줄 뿐이다. 보여주는 것으로써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한다. 그러기에 시인은 “영혼의/젖은 음색/갈피갈피 부리면서//추억처럼/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는 밤//기다림/등불을 켜고/만리 밖을 비추네//”(「가을비 내리는 밤」부분)에서 보듯 청각적인 요소도 시각적 요소로 바꾸어 서정자아의 심경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이미지스트들은 대부분 생의 색깔에만 관심을 두고 깊이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살아가는 일이 어찌 보이는 것에만 있겠는가. 가슴 저미는 아픔과 고통과 고뇌가 드문드문 동반되는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김민정 시인은 이미지스트이면서도 이 점에 대해 분명한 인식을 하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다음의 작품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겨울성 가장자리

성가퀴로 돋아나면

그 높은 새둥지에도

등불 하나 걸리고

팔팔팔

끓는 백비탕에

녹아드는 한 생애

-「설야」부분


은은히 울리면서

빛이 되어 흐르는


천년보다 더 긴 세월

영혼의 기침소리


가파른

생의 계단을

이 밤 누가 오르는가

-「종」부분


이 작품들 역시 이미지 중심의 시이긴 하지만 단순히 이미지로만 설명할 수 없는 깊이가 느껴진다. 그 점은 어디에서 연유하고 있는가.「설야」를 먼저 검토해보면 이 작품 역시 초장과 중장은 다른 작품과 같이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겨울 “높은 새둥지”에 “등불 하나”를 내거는 모습이니 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문제는 바로 다음이다. “팔팔팔/끓는 백비탕에 /녹아드는 한 생애”에서 이 시는 의미심장하게 바뀐다.  “팔팔팔/끓는 백비탕”이라고 눈 오는 밤을 묘사한 새로움도 새로움이지만, 여기까지 형상화된 이미지를 일시에 “녹아드는 한 생애”로 바꾸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시의 표현기법을 이미지 중심에서 인생관 중심의 주제로 옮아왔기 때문이다. 이 점을 유념하고 「종」이란 작품을 보면 이 작품의 깊이가 어디에서 연유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시 역시 초․ 중장에서 형상화된 시각적 이미지 (“빛”)와 청각적 이미지(“영혼의 기침소리”)를 인생관 중심의 주제의식(“가파른 생의 계단”)으로 환치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들 작품들은 김 시인의 시가 앞으로 변모를 모색하는 증거로 보아도 좋을 듯싶다. 

 

 

 

                         

2. 화해의 시학


 앞서 우리는 김 시인의 작품세계가 자연친화적이고 부드러운 세계를 형상화 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는 자아 밖의 세계를 대결과 긴장으로 인식하지 않고 화해를 추구하는 정신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실제의 작품을 통해 이것이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 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기다리던 

꽃소식에

마음이 온통 달아


찻잔으로

가는 손길

그도 한참 뜨겁더니


비로소

꽃 한 송이가

내 안에서 벙근다


-「기다리는 마음」전문


비울 것 다 비워낸 가벼운 몸짓으로


가지 사이 이는 바람


그도 모두 보내놓고


비로소


맑은 하늘 한 장


펼쳐드는


저 선사(禪師)


「지상의 꿈-용문사 겨울은행」전문

 
 

  


 
주지하는 바와 같이 서정시의 가장 큰 장르적 특성은 동일화의 원리를 추구하고 있다는데 있다.  인용한 이 작품들은 이 동일화의 원리를 잘 수용하고 있다. 「기다리는 마음」에는 동일화의 방법 중 ‘동화’의 기법이 「지상의 꿈-용문사 겨울은행」의 작품에서는 ‘투사’의 기법이 쓰이고 있는 것이다. 동화는 자아 밖의 세계가 자아로 들어오는 것이고, 투사는 자아가 세계 속으로 투영되는 것이니, 자아와 세계는 한 몸이 되는 것이다. ‘투사’든 ‘동화’든 동일화의 기법은 근본적으로 세계와의 화해를 모색하기 마련이다. 이 시인의 작품이 전반적으로 따뜻하고 부드럽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 연유하고 있다. 

긴장과 대결의 현실인식이 그러면 김 시인의 시에는 과연 없는 것인가. 그러나 그렇지 않다.  김 시인의 시에는 고독과 그리움의 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이 두 개의 공간은 엇비슷하게 보이지만 김 시인의 작품에서는 이 두 공간이 상당히 상반된 모습으로 형상화 되고 있다. 말하자면 김 시인이 추구하는 화해의 시학으로 나아가는 과정들이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먼저 고독의 공간을 보기로 하자. 김 시인에게 고독의 의미는 「파도 」「정동진에서」파도 등의 이미지로 육화되고 있다. 「파도」에서는 “발돋움하다/발돋움하다/혼자 가만 불러보는//철썩이다/철썩이다/아픔으로 피멍드는//그리운/이름 하나를/끝내 묻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그리움의 대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고독은 자신으로부터 치밀어 오른 것이라기보다 외부 세계로 오는 요인이 더 크다고 생각된다. 이를테면「어떤 실직」에서 보듯 현실은 “선술집/유리창에/희미하게 번져나는/질펀한/생의 우수”이거나, “갈 곳 없는/시간들”이기 때문이다.「올가」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무책임한 인재 앞에/해해마다 겪는 난리”를 

 
그의 눈빛 스쳐간 자리
참혹해라 아, 몰골
둥둥둥 황토수 위를
떠다니는 저, 주검

 
으로 끔찍하게 재현해내기도 한다. 「평화의 댐 가는 길」에서는 6.25 때 전사한 수만의 젊은이들의 아픔을 대변하기도 한다.「서울의 밤」에서는 “거대한/바퀴를 달고/굴러가는/서울, 밤”을 읽어내기도 한다. 그의 현실인식은 이처럼 진실 쪽에 서있다. 그렇다고 해서 강도 높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비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고독의 순도」에서 보듯 고독의 절정과 빛깔과 침묵의 “그 뜨거운 파문”에 가 닿고자 하는 시인의 열원을 읽을 수 있다.

다른 한편 그리움의 공간은 대개 가족사와 유년에 대한 경도로 이어지는데  「영동선 철로변에」의 연작이나  「꽃피는 봄날에」등의 작품에서 형상화되고 있다. 「어린 날의 동화 」에서는 “내 유년의 뜰 안을 재재대던 어린 새떼”의 이미지로 나타나기도 하고 “싹 틔울 눈 키워가는/겨울나무 벗하면서/빛나는/미래를 꿈꾸는” 산정호수 (「산정호수」)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그리움의 공간에 놓인 작품들은 진실보다는 감성에 가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고독과 그리움의 상반된 의식을 통하여 시인이 이르고자하는 종착지는 어디일까.
 

 
푸른 꿈을 꿀 자유와
싱그러운 자존 위해
파아란 하늘 받친 숲 속의 나무처럼
튼튼한 뼈대 하나를 마음속에 세운다

 
제각각의 속도와
제각각의 방향으로
튕겨지고 달아나는 우리들의 삶이지만
희망은 망각 속에서 새눈 뜨는 초록별
-「뼈대를 세우다」전문

 
“튼튼한 뼈대 하나를 마음속에 세”우며 “망각 속에서 새눈 뜨는 초록별”에서 우리는 시인의 문학적 지향점이 어느 곳인지를 감지해낼 수 있다. 그곳은 “귀뚜라미 울음소리”에도 “생이 반짝 빛”(「귀뚜라미 내 가슴에 울다」 )나고 있는 세계며 ,「낙엽이 지다」에서의   “아, 다시//몇 번의 노래로//흔들리며 서는 언덕” 이다. 삶에 대한 고뇌와 뉘우침과 한숨과 망설임 속에서도 시인은 희망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 공간은 곧 사랑의 공간이다.  ‘달’과 ‘별’이 빛나고 ‘꽃’과‘ ’새’가 있는 행복의 공간이다. (「행복의 나라」) 동시에 “다사로운 하늬햇살/싱그러운 하늬구름”의 빛나는 공간이며 (「푸른 신호등」), 푸른색의 이미지가 지배하는 공간이다. 「음악을 위하여」에서는  “슬픔이 퐁당퐁당 /그대 늪에 던져질 때//그대 안에 자라나는/아, 푸르른 그리움//어둠을 밝히는 고요/깊은 그대 삶의 탄주”로 나타난다. 같은 그리움이라도 이것은 동화적인 세계나 가족사적인 그리움의 세계가 아니다.  “비 내려도/바람 불어도/꺼지지 않을/불씨 되어//언제든 어디서든/그대 향해 활활 타오를 //가슴”을 가지고 있으며 그 가슴에 “불잉걸 하나/간직하”려  (「불꽃이고 싶은」) 애쓰는 화해의 공간이다.
이 공간에 도달하기 위해 시인은 자신에 대한 존재를 가볍게 하려고 노력한다. 사랑의 무게를 측량해보는 「존재의 가벼움-사랑의 무게」에서는

별이 되어
반짝이는
기다림조차
날개를 단다

 
제 무게를
털어내는
장자(壯子) 꿈 속
나비처럼

 
가볍게
날아오른다
우화등선을
꿈꾼다

 
“우화등선”을 꿈꾸는 가벼움을 추구하고 있다. 욕심이 없다. 세계와의 대결은 어느 곳에서 생기는가. 욕망의 충돌에서 생긴다. 욕심이 없는데 어떻게 대결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시인은 “끊임없이 반복되는/출렁이는 삶의 무늬/물결에/지치지 않는/씻고 씻긴 삶”을 지향하며, “테 두르지 않아 좋은/마음 조릴 것도 없는/낯익어 향수 같은/투명한 저녁노을/그렇게/하루를 닫는/조용한 삶”(「가을에는」)이기를 간구하고 있다. 그러니 염려할 필요가 없다.
시인의 말에 나타나 있듯 김민정 시인의  시가 “生으로의 긴 긴 여행”을 지나와 “천 년을 넘나드는 저 깊은 바람을 뚫고” “휘파람 불며” 이 세상을 건너갈 수 있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의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김민정 시인의 작품세계는 순수의 이미지스트라고 할 만큼 감각적이다. 동시에 외부세계를 인식하는데 있어 대결과 투쟁보다는 부드럽게 바라보며 그것을 시인의 가슴에 품거나, 외부 대상에 육화시키는 자연 친화적인 화해의 시학을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시인의 시적 특성을 계속적으로 이어가면서 「설야」나, 「종」 등의 작품에서 보여주고 있는 때로 문득 다가서는 생의 아픔이나 고뇌에도 그 부드러움을 얹어내는 좋은 시인으로 우리에게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