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와 강우식의 4행시
김민정 (시조시인, 문학박사)
Ⅰ. 서론
강우식은 4행시를 30년 이상 써 오고 있다. 이 논고에서는 그의 4행시가 나타나는 시집『四行詩抄』, 『꽃을 꺾기 시작하면서』, 『물의 魂』, 『雪戀集』 등을 중심으로 그가 4행시를 고집하면서 4행시를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가 계속 쓰는 4행시가 3장 3행으로 된 평시조, 또 사설시조와는 어떤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는가 등을 살펴보려 한다.
우리는 보통 3행시하면 3장이 행별로 배행된 시조를 생각한다. 초, 중, 종 3장 3행으로 이루어졌던 것이 종래의 우리 시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4행시라고 하면 우리의 고전인 향가의 4구체를 생각하거나, 현대시에서는 김영랑의 시들을 떠올리게 된다.
Ⅱ. 4행시를 쓰는 이유
강우식 교수가 끈질기게 4행시를 쓰는 이유를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다른 시인과의 변별력을 갖고자 해서 4행시를 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을 갖기 위하여 다른 시인과의 변별을 시도하는 의미에서 형식적 차원의 4행시를 유지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시조의 3행시를 비롯하여 5행시, 6행시, 7행시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왜 하필 4행시인가.
그것에 대하여 『설연집』끝 권두환씨와의 대담에서 시인 자신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고전에 밝으시니까 잘 아시겠지만 4행시의 형태라는 것이 향가의 4구체가 모체가 아니겠습니까. 한국시의 모체가 4구체라는 데 착안점을 두고 그러한 모체가 고려가요, 시조 같은 데까지 맥을 이어 온 게 아닌가 하는 겁니다. 이런 데서 형태성을 잡아 놓고 좀더 시야를 넓혀서 외국의 경우를 살펴보니 동양뿐 아니라 페르시아의 오마르하이얌의 ≪루바이야트≫4행시, 영시가 가진 4행성들이 어떤 관계인지는 몰라도 4행시라는 것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의 모체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점들이 동기라면 동기입니다. 그래서 초기에는 시조를 염두에 두고 4행의 마지막 구를 시조가 가지고 있는 종장성을 살려서 파격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요. 물론 이 경우의 파격은 내용상의 문제가 되겠습니다마는, 이 근래에 와서는 그보다는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완결성과 압축미를 곁들였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장점이 되겠지요.”1)
이에 대해 권두환은 “이미 한 시대 전에 시조라는 형태가 있었으며, 그 시조 형태가 몇 백년간 담아오던 문학성 같은 것이 파괴되면서 사설시조가 나왔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四行詩抄』를 계속 쓰시는 동안 시형은 4행시를 고집하셨지만 내용면에서는 사설시조가 가지고 있던 내용을 또 다루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 시대 전의 사람들이 정형 속에서 담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만든 파격을 선생님이 다시 정형 쪽으로 되돌려보자고 노력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2)라고 하여 사설시조의 내용을 4행시라는 형식에 담고 있다고 피력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四行詩抄』의 발문에서 박재삼은 “그의 4행시는 행이 넷이라는 것뿐, 정형의 자수는 없다. 다만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고유의 시가에서 기본 율조를 이루고 있는 3.4조 혹은 4.4조의 리듬을 자유롭게 폭넓게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정형시(시조)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비교적 일정한 리듬에 구속되고자 하는 이 사실은 무엇을 지향하는 것일까. 내 나름의 해답은 언뜻 다음과 같은 사실을 떠올렸다. 정형시의 ‘구속’과 자유시의 ‘자유’를 다 같이 현대시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딘가 불만스럽기 때문에 그는 특이하게 4행시라는 반정형에 착안하지 않았을까 하는 그것이다. 이런 반정형은 자유시가 무턱대고 내세우는 내재율에 대하여 반기를 드는 것도 되고, 또한 시조가 자수율만을 앞세우는 그것도 아울러 배격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따라서 언어에 대한 혹은 율조에 대한 ‘허무한 구속’이나 ‘맹랑한 자유’에서 다같이 벗어나기 위하여 그는 4행시라는 반정형의 중간지대를 택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3)고 하여 강우식의 4행시를 반정형의 시라고 보고 있다.
강우식 역시 “ 좀더 4행시를 써 가려면 4행시에 대한 이론을 나름대로 갖고 싶었다. 내가 쓴 『四行詩論考』는 그래서 쓴 논문이다. 이 논문 속에는 한국시의 모체가 향가의 4구체라는 데서부터 한국시의 형식의 발달과정이 반절성을 지니고 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 시의 형식은 4구체이고 그것의 끊임없는 발전 계승으로서의 4행시 이론을 세워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4행시를 정형시라고 보지 않는다. 정형이면서도 정형이 아닌 시를 나는 4행시라고 본다. 4행시라는 틀은 틀림없는 정형이지만 리듬은 시조처럼 정형의 음수율을 두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리듬만큼 5.7조라도 상관없고 어떤 것이라도 무관하나 단 하나 쓰는 이의 생래적인 것으로 두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지금도 갖고 있다.”4)라고 하여 강우식 역시 ‘정형이면서도 정형이 아닌 시를 4행시’로 보고 있다.
이러한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강우식이 4행시를 쓰는 이유는 첫째, 다른 시인과의 변별력을 갖고자 해서 4행시를 썼다고 볼 수 있다. 둘째, 강우식은 한국시의 모체가 4구체인 향가라고 보고 있으며 나아가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시의 모체는 4구체라고 보았기 때문에 4행시를 쓰고자 했던 것이다.
Ⅲ. 3행 단시조와 4행시
그의『四行詩抄』를 중심으로 그의 4행시에서 3행시인 시조를 닮아 있는 부분을 찾아보기로 한다. 그의 말대로 초기에는 시조를 염두에 두고 4행의 마지막 구를 시조가 가지고 있는 종장성을 살려서 파격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음을 아래의 몇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다. 시조의 종장격인 네 번 째 행에서 시조의 종장 음수율인 3/5/4/3을 닮아 있는 작품이다.
바람의∨ 순리대로∨ 쓸리는∨ 풀잎이듯
잠결에도∨ 아내쪽으로∨ 돌아∨눕는다.
무심으로∨ 하는∨ 이 하찮은∨ 일들이
오늘은∨ 내 미처 몰랐던∨ 사랑이∨ 된다.
-『四行詩抄』, 아흔아홉 전문
어디∨ 내 핏줄로써∨ 자식이나∨ 키우듯
세상∨ 살아가는∨ 것만이∨ 다이랴.
부처님∨ 어깨너머∨ 후광이듯이
이승을∨ 닷곱장님처럼∨ 보고 가는∨ 이도 있네.
-『四行詩抄』, 일흔여덟 전문
빛살도∨ 들어오다∨ 곯은 물길로∨ 빠지고
황금의∨ 씨앗들도∨ 다 물러∨ 주저앉은
자궁을∨ 가진∨ 황참외 같은∨ 계집과
살림난∨ 세상이라도∨ 속 없이야∨ 살으리.
-『四行詩抄』, 여든 셋 전문
눈 내리는∨ 탄실리∨ 주막집∨ 구들목에
바깥양반은∨ 거문고로∨ 앉아서
또∨ 한해를∨ 흥타령으로∨ 보내는지
산창엔∨ 박가분처럼∨ 쌓이는∨ 정이여.
-『四行詩抄』, 일흔 셋 전문
아래의 나열된 것은 132편의 작품 중에서 4행에서 시조의 음수율을 닮아 있는 작품의 4행들이다.
넋이야 괴로울 거 하나 없는 황토 되겠네. -『四行詩抄』,여섯
국화꽃 줄거리 같은 목청으로 오르내리고……. -『四行詩抄』, 열여섯
마음은 가을 바람 속에 맑게 씻겼다. -『四行詩抄』, 쉰여덟
그 가을 바람의 맛을 알 것 같네. -『四行詩抄』, 예순
산창엔 박가분처럼 쌓이는 정이여. -『四行詩抄』, 일흔 셋
모두 다 인연으로 와서 우는 거나 아닌지. -『四行詩抄』, 아흔
계집의 배 위 같은 데서 내려오는 바람이여. -『四行詩抄』, 아흔 넷
꿈속을 들여다보는 약인양 술을 마신다. -『四行詩抄』, 백하나
뼈 속의 물기도 다 빼고 보석이 된다. -『四行詩抄』, 백둘
바람아, 늬 운명 같은 역마살이 내게도 있다. -『四行詩抄』, 백열하나
육신이 죽은 뒤에도 살아 있는 아픔이리. -『四行詩抄』, 백열다섯
입산한 동자승처럼 햇살이 부끄럽다. -『四行詩抄』, 백열여섯
더러는 ○으로 뜨는 달무리도 보게 되리. -『四行詩抄』, 백열여덟
남도의 한 고을이 물이 되도록 울어 버리자. -『四行詩抄』, 백열아홉
어쩌다 달리 생각하면 눈물 나리니. -『四行詩抄』, 백스물
아내여, 그대 얼굴을 맑게 씻으며 달이 뜬다. -『四行詩抄』, 백스물넷
이제와 은사죽음이라 탓할 게 뭐 있으리. -『四行詩抄』, 백스물다섯
앞의 인용 작품들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4행시들은 대체로 4음보의 율격을 닮아 있다. 그렇다고 인용 작품 「일흔 셋」처럼 4행이 모두 4음보의 율격을 지니지는 않는다. 대체로는 시조에서 보여주는 3.4조, 4.4조의 자수율과 4음보, 즉 우리의 전통 율격을 지키고 있지만, 100%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앞의 예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마지막행인 4행에서 3/5/4/3의 잣수율을 지닌 시조의 종장을 보이고 있는 작품들도 있다. 그러나 그의 첫시집인 『四行詩抄』 132편의 작품에서 시조의 종장을 닮아 있는 것으로는 위의 작품과 아래에서 보여주는 종장들이 전부이므로 시조의 율격을 일부러 지키려고 했다거나, 그것에 얽매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즉 마지막행인 4행이 시조의 종장을 닮아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Ⅳ. 사설시조와 4행시
강우식의 4행시에 대해 강우식과 박재삼의 주장은 4행시는 정형이면서 정형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반정형이라는 것이고, 권두환은 내용이 사설시조에 가깝기 때문에 형식이 없던 사설시조를 다시 형식이 있는 4행시로 환원시키고 있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권두환이 내용에 있어서 사설시조와 가깝다고 주장한 것은 강우식의 시에서 보여주는 성에 관한 어휘의 묘사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먼저 조선시대의 사설시조에 중에서 성을 강하게 다룬 작품5)을 몇 편 살펴보고 나서, 강우식의 시를 몇 편 살펴보기로 한다.
1. 성을 주제로 한 조선시대의 사설시조
조선의 사설시조 중에서 성애를 묘사하거나 성적인 것을 표현한 작품을 살펴보면, 『진본 청구영언』6)에 다음과 같은 작품들이 있다.
드립더 바득 안으니 셰 허리지 자늑자늑
紅裳을 거두치니 雪盧之豊肥하고 擧脚踆坐하니 半開한 紅牧丹이 發郁於春風이로다
進進코 又退退하니 茂林山中에 水舂聲인가 하노라
-『진본 청구영언』 519
이 작품은 남녀간 성애의 모습을 남성의 입장에서 노골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중장에서는 ‘半開한 紅牧丹이 發郁於春風’이라고 여성에 대한 성적 묘사와 또 종장에서는 ‘進進코 又退退니’라고 하여 성애의 직접적인 장면묘사를 하고 있다.
半여든에 첫 계집을 하니 어렷두렷 우벅주벅 주글번 살번 하다가
와당탕 드리다라 이리져리 하니 老都令의 마음 흥글항글
眞實로 이 滋味 아돗던들 긜적부터 할랏다
-『진본 청구영언』 508
이 작품도 성애를 나타낸 작품이다. 어떤 노총각이 장가를 가서 첫날밤 당황하며 일을 치루고 나서 마음이 즐거워서 종장에서는 “眞實로 이 滋味 아돗던들 긜적부터 랏다”라고 하여 성애의 즐거움을 말하고 있다. 의태어와 의성어의 사용에 의해 그의 순박함이 나타나고, 또한 해학성도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와당탕’은 의성어로 무엇을 부술 때 나는 소리인데, 여기서는 남녀의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효과를 내고 있다.
白華山 上上頭에 落落長松 휘여진 柯枝 우희
부헝 放氣 뀐 殊常한옹도라지 길쥭넙쥭 어틀머틀 믜뭉슈로 하거라 말고 님의 연장이 그러코라
쟈
眞實로 그러곳 할쟉시면 벗고 굴물진들 셩이 므슴 가싀리
-『진본 청구영언』 545
이 작품은 여성화자가 남성에 대한 것을 표현하고 있다. ‘옹도라지 길쥭넙쥭 어틀머틀 믜뭉슈로’ 하지 말고 님의 연장(남성 상징)이 그렇다면 언제나 벗고 굴러도 좋겠다는 것이다. 남성에게서 강한 성적 욕구를 채워보고 싶은 여성의 심리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님의 연장이 ‘길쥭넙쥭’, ‘어틀머틀’, ‘믜뭉슈’7) 했으면 좋겠다는 의태어를 써서 자기만족의 어휘로 삼고 있다.
얽고 검고 킈 큰 구레나룻 그것조차 길고 넙다
쟘지 아닌 놈 밤마다 배에 올라 죠고만 구멍에 큰 연장 너허 두고 흘근 할젹 할 제는 愛情은 커
니와 泰山이 덥누로는 듯 잔 放氣 소릐에 졋먹던 힘이 다 쓰이노매라
아므나 이 놈을 다려다가 百年同住하고 영영 아니온들 어내 개딸년이 싀앗새옴 하리오
-『진본 청구영언』 569
이 작품은 여성화자가 성애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으나, 화자는 이 작품에서 그것을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지긋지긋해 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길고 넓고 큰 연장(남성 상징), 죠고만 구멍(여성 상징) 등 남녀가 성애를 하는 모습을 그대로 그리고 있으며, 이러할 때 애정은 커니와 방기소리 잦고 젖먹던 힘까지 쓰이니 누구든지 이놈을 데려다가 백년을 같이 산다한들 시앗새옴, 즉 질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육체적 관계’란 양쪽이 다 알맞아야지 한쪽의 정력이 넘칠 때라든가, 또 정신적 사랑이 밑받침되지 않을 때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힘들고 짜증나는 고통임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한 편으로는 작품을 골계적, 해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언덕 문희여 조븐 길 몌오거라 말고 두던이나 문희여 너른 구멍 조피되야
수구문 내다라 豆毛浦 漢江 露梁 銅雀이 龍山三浦 여흘목으로 다니며 나리 두져 먹고 치두져 먹는 되강 오리목이 힝금커라 말고 大牧官 女妓 小名官 쥬탕이와 당탕내다라 두 손으로 붓잡고 부드
드 떠는 내 므스거시나 힝금코라쟈
眞實로 거러곳 할쟉시면 愛夫ㅣ 될가 하노라
-『진본 청구영언』 574
이 작품은 언덕을 무너뜨려 좁은 길 메우지 말고, 낮은 둔덕이나 무너뜨려 넓은 구멍(여성 상징)을 좁혀, 여흘목으로 오르내리며 먹이 찾아 먹는 되강 오리목이 힝금커라(즐기지?) 말고 부드드 떠는 이 내 무스거시나(남성 상징) 힝금코(즐기고?) 싶다. 진실로 그럴 수 있다면 애부가 될까 한다는 내용이다.
쳥울치 뉵날 메투리 신고 휘대長衫 두루혀 메고
瀟湘斑竹 열두 마듸를 불흿재 빼쳐 집고 마르 너머 재 너머 들 건너 벌 건너 靑山石經으로 흿근
누은 누은 흿근 흿근동 너머 가옵거늘 보온가 못 보온가 긔 우리 난편 禪師즁이
남이셔 즁이라 하여도 밤즁만 하여셔 玉人갓튼 가슴우희 슈박갓튼 머리를 둥글껄껄 껄껄둥글 둥
굴둥실 둥굴러 긔여올라올 져긔 내사 죠해 즁書房이
-『진본 청구영언』 577
이 작품에서는 부도덕한 윤리가 부끄럽기는커녕 오히려 자랑하고 싶은 심리까지 곁들여 있다. 물론 대처승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그렇게 공인된 부부관계인 것 같지는 않다.
지금 화자는 갖출 것 다 갖추고 점잖게 차려입고 산을 넘어 가는 그 멋진 선사중이 나의 남편인데, 보는가 못 보는가, 남들은 중이라 놀려도 밤중에 옥 같은 가슴 위에 수박 같은 둥근 머리로 기어오를 때는 나는 중서방이 좋다고 말하고 있다. 솔직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의태어에서 희화된 느낌을 받을 수 있고,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골계 작품으로, 해학 작품으로 작품을 창작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엄격한 윤리사회였던 조선사회에서 신분을 밝히지 않고, 이름을 밝히지 않은 데서 이렇게 적나라하게 성의 묘사를 할 수 있었던 작품들이 있었던 것이다.
![](https://t1.daumcdn.net/blogfile/fs6/12_30_30_18_02Gmi_IMAGE_10_1025.jpg?original&filename=1025.jpg)
2. 성을 주제로 한 강우식의 4행시
강우식의 4행시집 네 권 중에서 특히 세 번째 시집 『꽃을 꺾기 시작하면서』와
『물의 魂』에 특히 성에 관한 작품이 많다.『꽃을 꺾기 시작하면서』모두 백다섯 편의 4행시가 실려 있다. 그 전에 나온 다른 시집들의 시들은 일렬변호만 아라비아 숫자를 달았으나 처음으로 4행시 한 편마다 제목을 단 시집이었다. 꽃을 주제로 한 시편들이 단순하게 꽃이름을 제목으로 붙인 시집이기도 하다. 이 시집은 ‘꽃이라는 정적인 대상에 섹스’를 주입시킨 시집인 까닭에, 이 시집이 나오고 나서 세간에서 그의 시를 ‘섹스시’, ‘포르노시’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 나를 오입장이라 하시지 않겠지요.
나는 마지막으로 당신과 붙고 싶습니다.
세상에 이런 사람 나 말고 또 있나요.
수선화 하나가 살랑살랑 머리를 흔든다.
이것은 해석자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볼 수 있다. “나는 마지막으로 당신과 붙고 싶습니다.” 이 표현은 첫 행의 ‘오입장이’란 말 때문에 선입견이 먼저 지배를 한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과 연애를 하고 싶다는, 하나님과 성애를 하고 싶다는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평론가의 입에 오르내렸던 것이고, 이것에 대해 강우식은 “같이 시를 쓰는 동료시인이 이 시를 평가하기를 ‘절대적인 신의 존재를 하잘 것 없는 성교대상의 여성으로 비하시켜 마지막으로 당신과 붙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시로서 기능을 전혀 배제하고 단순히 윤리적인 측면으로 볼 때 그의 작품은 차라리 성도착 환자의 잠꼬대가 될지도 모르며, 기독교 정신을 모독한 정신착락 환자의 비속한 외설 짓거리가 될 것이다라고 했다. 내 시 때문에 멀쩡한 내가 정신착란 환자나 성도착 증세를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은 상관없다. 그 시인의 자유니까. 하지만 ‘하나님을 여성으로 비하시켰다’는 단순 이전의 평 밖에 할 수 없었을까. 이 시인은 아마 강우식은 남자인데 어떻게 하나님이라는 남자와 남자끼리 붙을 수 있느냐 해서 성도착증의 나로 본 모양이다.”8)
이러한 세간의 평에 대해 강우식은 다음과 같은 해명을 하고 있다. “성은 인간끼리 접촉하여 일으키는 가장 뜨거운 불꽃이다. 아니 폭탄이다. 이 폭탄이 터질 때 이 지상에서 인간으로서의 태어난 기쁨과 인간의 위대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인간됨의 자격이 없다. 이 폭탄이 터질 때 어느 만물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의 그 무한한 사랑과 희열과 침잠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스스로 인간됨을 포기한 자이다. 우리는 이 작열하는 폭탄으로써 우리 정신의 질병을 극복하고 또 생명의 신비한 탄생과 인간의 특권을 누려야 한다. 그러면 성의 폭탄의 구조는 어떤 것으로 만들어야 하느냐. 반드시 시적인 구조를 가져야 한다. 시가 고도의 정제된 언어로 은유와 직유를 직조하여 어떤 틀에 집어넣듯이 성의 폭탄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특히 성이 가지는 어쩔 수 없는 동물적인 특성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시적인 구조를 가지는 폭탄이 되어야 한다.”9) 이것은 어쩌면 우리가 은폐하고 싶어하는 성에 대한 건강하고 건전한 생각인지도 모른다.
계집을 두고도 어떤 밤에는 수음을 한다.
좆물처럼 흘러내리는 이슬 몇 방울.
사랑도 이제는 내 살갗의 초록만으로는
너를 보듯이 권태롭구나.
-『꽃을 꺾기 시작하면서』,「사철나무」전문
이 시도 성에 대한 묘사가 나타나 있다. ‘수음을 한다’, ‘좆물’ 같은 성적 어휘가 읽는 이의 얼굴을 붉게 한다. 숨기지 않는 솔직함이 나타나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얼굴이 붉어질 수도 있는 작품이다. 그의 작품 중에는 조선시대 사설시조처럼 성애의 직접적인 장면을 묘사한 작품은 없지만, 이 작품처럼 어휘에서 강하게 어필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시가 ‘섹스시’로 불리는 것이다.
세상은 약 오른 고추 하나를 만지던 손으로
불두덩이에 대어야 폴짝폴짝 뛰는 놈들뿐이더라.
물을 모르는 이들에게 천만 번 젖은
손가락을 보여줘도 모르더라.
-『물의 魂』, 세상은 전문
이 작품에서도 ‘고추, 불두덩이, 물, 젖은’ 등의 어휘를 사용하여 ‘섹스시’로 어필하고 있다.
이브가 따서 몸 가리던 초록잎 같은
그 싱싱한 꿈들은 다 어디 갔을까.
햇빛도 땀처럼 젖어 내리는 봄날에
알몸으로 허허 웃는 내 가시내.
-『물의 魂』, 20 전문
이 작품에서도 ‘이브’, ‘알몸’ 같은 어휘를 구사함으로써 역시 알몸을 연상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초가집 한 채가 사내의 벌떡한 물건으로 서 있다.
그녀의 질 속에서는 밤새도록 눈 녹는 소리.
앞 개울도 힘좋은 사내와 계집이 어우르는 소리.
이 땅의 봄은 참말로 뭐하드키 옵니다요이.
-『꽃을 꺾기 시작하면서』「봄」전문
이 작품에서도 초가집 한 채를 ‘사내의 벌떡한 물건’(남성 상징)으로 보고 있다. 봄이 오는 자연 현상을 남녀의 질탕한 성애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작품에 대해 독자의 반응도 가지가지 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독자에게 강하게 어필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이러한 ‘섹스시’를 썼다고 볼 수도 있다. 그의 말처럼 ‘물의 흐름처럼, 물의 순리성처럼 늘 출렁이고 깨어 있는 시를 갖고 싶어서, 생명의 원천이고 싶어서’ 그는 이런 시를 쓰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성을 주제로 한 그의 시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여러 가지이다. 독자들의 반응에 대해 강우식은 “어떤 미지의 독자는 어떻게 시를 이렇게 모독할 수 있는가라며 마치 나들이하러 흰 옷을 입고 나갔다가 흙탕물을 맞은 기분이라고 팬레터를 보내왔다. 또 어떤 시인은 시인이면 시인답게 시를 좀 고상하게 쓸 수 없느냐고 다그치며 마치 외설책을 읽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마치 천둥벌거숭이 하나가 겁도 없이 고상한 대한민국 시단을 온통 흐려놓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또 칭찬을 아끼지 않은 선후배동료 시인들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선배 시인 한 분은 요즈음은 내 시를 읽는 재미로 산다고도 말씀해 주셨다. 이 시집이 나오자 증정본으로 동양화 그리는 친구에게 주었더니 아이들이 볼까봐 숫제 감춰 두었다는 말도 들었다. 또 어느 여류는 시집을 열심히 키득거리며 읽으니까 남편이 뭘 그렇게 재미있게 읽느냐고 해서 부부가 즐기면서 읽었다고도 했다.”10)고 쓰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엄격한 윤리사회였던 조선시대의 사설시조에서 성애장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이름을 밝히지 않는데서 자유롭게 성에 대한 묘사를 하고 싶은 강한 욕구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사설시조와 강우식의 성에 대한 시의 차이점이 있다면 사설시조는 이름을 밝히지 않아 작가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반해, 강우식은 그의 개인시집에서 당당히 작가의 이름을 밝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설시조에서는 성애의 직접적인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데 반해, 강우식의 경우는 어휘 사용에서 성을 연상하게 하는 어휘를 많이 썼다는 것이다.
Ⅴ. 강우식이 추구하는 사랑시
그러나 그가 그의 시에서 추구하는 것이 육체적인 사랑, 즉 섹스만을 위주로 하는 사랑이냐하면 그렇지는 않다. 역시 4행시집인 『雪戀集』을 통해서 그는 순수한 사랑을 노래하고 싶어한다.
사랑하는 사람아, 눈이 풋풋한 해질녘이면
마른 솔가지 한 단쯤 져다놓고
그대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싶었다.
저 소리 없는 눈발들이 그칠 때까지…….
- 『雪戀集』, 세 수 전문
그리운 사람을 생각할 때는 기억기억 눈이 내리고
외로워서 외로워서 목이 젖으며
겨울 강에 빠져 죽고 싶은 사람들에겐
백두루미로 백두루미로 눈이 내린다.
-『雪戀集』, 다섯 수 전문
산 하나를 온통 젖게 만드는
소쩍새 울음 같은 목청 한 자락도 틔우고 싶으나
서산의 반달로도 떠올릴 수 없는 그대 눈썹이여.
눈바람 소리에 쓸쓸히 쓸리는 아릿한 목젖.
-『雪戀集』, 일백일곱 수 전문
이상에서 보는 시편들처럼 『雪戀集』에는 『꽃을 꺾기 시작하면서』나 『물의 魂』에서처럼 성을 주제로 했다기보다는 정신적인 사랑을 지향하는 경향이 보인다. 젊은 날의 혈기를 지나서 조금은 나이든 후의 작품이라 정신적인 것을 중시했을까. 이에 대해 강우식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雪戀集』을 쓰면서 생각하게 된 것은 이 시에 어떤 대상이 있건 없건 이것은 차치문제고 다만, 지순한 사랑의 얘기를 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좀 건방진 얘기일는지 몰라도 오늘날의 시 자체가 지순한 사랑에 대한 얘기 같은 것들은 많이 등장하고 있지를 않아요. 그래서 내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는 다른 면에서 지순한 사랑 얘기를 해 보고 싶다 이런 것을 생각했는데 이것은 근거 없는 다른 한 세계를 가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고시가의 출발이라는 <황조가>라든지 <공무도하가>라든지 하는 시가들이 거의 사랑의 패턴 아닙니까. 그래서 한국 전통시가의 맥 같은 것들을 일별해보면 거의 자연위주<강호가도류>라고 하지마는 또 다른 일면에서 내용적으로 보면 사랑을 읊은 것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가령 <노인헌화가> 같은 것들도 신라시대에 오며는 다르게 보입니다. 사랑에 대한 노래이면서도 한국시가에 최초로 나타나는 꽃을 바치는 양상이 됩니다. 이런 꽃을 바치는 양상 같은 것들이 우리가 생각하기에 서구식 사랑의 표현이거든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렇게 서구식인 사랑의 양상이 활달성은 우리 신라시대 때 <노인헌화가>에도 그런 것이 나타나고, 극렬한 사랑으로 말하면 <만전춘>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얼음 위에 대닙자리 보아 님과 함께 얼어죽을 망정 정든 이 밤을 더디 새오시라”는 극렬성이나, 시조 쪽에서도, 무슨 돌이 옷자락에 스쳐서 다 사라진다는 내용의 시조들도 있지요. 빅토리아 왕조 때 브라우닝이라든지 알프렛 테니슨의 연가조 같은 시들을 이 땅에서의 새로운 사랑 얘기로 한 번 써보고 싶은 것이 내 욕심이랄까, 그래서 이런 쪽으로 『雪戀集』이라는 것을 한번 시도해 보았지요.”11)
또한 그는 언젠가는 이 땅의 누구나가 읽을 수 있고 좀 통속적일지는 모르지만 눈물을 글썽거릴 수 있는 사랑의 얘기를, 예를 들면 ≪에반젤린≫ 같은 시를 한 번 써 보고 싶다는 것이다.
바람의 순리대로 쓸리는 풀잎이듯
잠결에도 아내쪽으로 돌아눕는다.
무심으로 하는 이 하찮은 일들이
오늘은 내 미처 몰랐던 사랑이 된다.
- 『四行詩抄』, 아흔아홉 수 전문
마음도 텅비어 빈 절터일 때
내 속셈까지도 다 짚어 주시듯
항시 말갛게 떠오르는 햇살을 지닌
부처님 같은 계집애를 모셔 오리.
- 『四行詩抄』, 쉰일곱 수 전문
위의 시들은 참 아름답다. 사실은 이 시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내가 외워온 시다. 고등학교 때 중학교 동창이던 친구와 교환일기를 쓰면서 친구가 일기에 적어 놓고 좋다고 하기에 나도 무조건 외웠던 시인 것이다. 이러한 작품을 읽으면서 강우식의 시가 『에반젤린』보다 못하지 않다는 생각도 해 보곤 한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아름다운 작품을 창작하여 『에반젤린』보다 더 연인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작품집이 탄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결국 그는 “언젠가는 이 땅의 누구나가 읽을 수 있고 좀 통속적일지는 모르지만 눈물을 글썽거릴 수 있는 사랑의 얘기를, 예를 들면 ≪에반젤린≫ 같은 시를 한 번 써 보고 싶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육체적인 사랑과 정신적 사랑이 혼연일체가 된, 가장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지순한 사랑의 시를 써 보고 싶어하는 시인임을 알 수 있다.
Ⅵ. 결론
앞에서 강우식의 4행시들을 살펴보았다.
강우식이 4행시를 쓰는 이유는 첫째, 다른 시인과의 변별력을 갖고자 해서 4행시를 썼다고 볼 수 있다. 둘째, 강우식은 한국시의 모체가 4구체인 향가라고 보고 있으며 나아가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시의 모체는 4구체라고 보았기 때문에 4행시를 쓰고자 했던 것이다.
그의 4행시는 대체로 4음보의 율격을 닮아 있다. 대체로는 시조에서 보여주는 3.4조, 4.4조의 자수율과 4음보, 즉 우리의 전통 율격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앞의 예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마지막행인 4행에서 3/5/4/3의 잣수율을 지닌 시조의 종장을 보이고 있는 작품들도 있으나 시조의 율격을 일부러 지키려고 했다거나, 그것에 얽매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즉 마지막행인 4행이 시조의 종장을 닮아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사설시조와 강우식의 성에 대한 시의 차이점이 있다면 사설시조는 이름을 밝히지 않아 작가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반해, 강우식은 그의 개인시집에서 당당히 작가의 이름을 밝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설시조에서는 성애의 직접적인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데 반해, 강우식의 경우는 어휘 사용에서 성을 연상하게 하는 어휘를 많이 썼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육체적인 사랑과 정신적 사랑이 혼연일체가 된, 가장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지순한 사랑의 시를 써 보고 싶어하는 시인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는 “시인은 프로정신이 있어야 한다. 철저한 프로정신이 있어야 한다. 그저 옛날 우리 조상들이 여기나 심심파적으로 또는 자기 심성을 닦는 것으로 하던 시대는 지났다. 시가 반드시 돈이 되어서 프로가 아니라 전문 시인으로서의 자기의 심혈을 기울일 수 있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조금은 서툴더라고 자기의 세계를 구축하고 굳건한 시인됨의 정신으로 맥을 이어가는 시인들이 많아졌으면 싶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시인관이 철저한 한 사람의 시인임을 알 수 있다.
(수형강우식박사정년퇴직기념논문집, 2007, 고요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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