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기차가 도착했네!
宇玄 김민정
서울시교육청 제24회 스승의 날 행사기념축시 (2005년 5월 15일)
서울시교육청 제25회 스승의 날 행사 영상편지 (2006년 5월 15일)
최종철 선생님께
올해도 변함없이 아름다운 오월이 되었습니다. 해마다 스승의 날이 되면 제가 만났던 많은 스승님들을 생각하고, 또 제자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수많은 만남을 통해 저의 인격이 성숙했고, 지혜가 자랐으며, 지식이 쌓였습니다. 교육부에서, 교육청에서 스승의 날에 대한 원고 청탁이 오면 저는 늘 많은 스승님들 중에서도 선생님을 가장 먼저 생각하곤 합니다. 그건 아마도 선생님과의 인연의 긴 연륜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선생님을 만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지금부터 40여 년 전입니다. 선생님은 그 전에 다른 직장에서 근무하시다 늦게 교육대학에 진학하셔서 교직을 택하여 부임한 첫 학교였고, 저희들이 첫 제자이기도 하셨지요. 저는 선생님이 담임이셨던 초등학교 4학년 초에 아버님을 여의었고, 그래서인지 선생님은 저에게 더 많은 신경을 써 주셨고, 저도 선생님을 참 많이 따랐습니다. 책을 많이 읽으라는 선생님 말씀에 늘 학교도서실에 드나들면서 책을 읽었고, 그러한 인연으로 저는 지금 시인이 되었고, 국어교사가 되었고, 국문학자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늘 보살펴주신 덕분에 저는 학교생활이 즐거웠고, 구김 없이 밝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완행열차로 거의 2시간 거리인 도경역에 사시면서 출퇴근을 하시고 계셨지요. 저는 언제부터인가 아침이면 멀리서 오시는 선생님을 마중 가는 것이 큰 즐거움이 되었었지요. 나한정역에서 심포리로 오르는 길, 그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나한정에서 기차가 정차하는 것이 보였지요. 저는 속으로 ‘아, 기차가 도착했네! 선생님이 저 기차에서 내리셨겠지!’하며 좋아했고, 기차가 떠난 후에 학교를 향해 철길을 따라 타박타박 걸어오시는 선생님이 보이면 달려내려가 선생님의 가방을 방아들곤 했었지요. 때로는 제가 늦어 선생님은 거의 학교근처까지 오시기도 했고, 제가 안 보이면 선생님은 제가 어디 아픈가 걱정하며 오셨다는 말씀도 하셨어요.
선생님!
알고 계셨어요?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30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선생님께 연말이면 카드, 연하장, 달력 등을 보내드렸다는 사실을! 평소엔 잊고 지내다가도 연말이면 생각나는 선생님. 스승의 날보다 오히려 연말에 더 생각나는 분이 선생님이셨답니다. 30년이 지나고는 선생님께도, 다른 분들께도 카드나 연하장을 거의 보내드리지 못했습니다. 아마 제가 박사논문을 쓰느라 너무 바빴거나, 메일편지들이 유행해서 카드를 보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늘 제 눈높이로 사랑을 주시던 선생님!
중고등학교 시절 선생님댁에 놀러 가면 어느 때는 아이스크림집, 또는 팥빙수집에 데려가셔서 제가 먹고 싶은 만큼 실컷 먹으라고 아이스크림을 사 주셨고, 또 제가 오면 주시려고 천 원짜리 새 돈으로 바꾸어 놓으셨다면서 깨끗한 1,000원짜리 지폐 10장을 용돈하라고 가방에 넣어주시던 모습, 또 사모님은 제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정성껏 만들어 주셨고, 제가 편지를 보내드릴 경우 선생님이 바쁘시면 선생님 대신 사모님이 꼬박꼬박 써주시던 답장편지. 그 성실함을 저는 은연중에 본받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40년 동안 이어지는 선생님과의 인연, 다시 생각해도 전 그동안 얼마나 행복한 제자였나요?
지금도 책 등을 보내드리면 어김없이 전화를 하셔서 헛된 명예나 권세보다 건강과 행복이 최고라며 늘 그것을 염려해 주시는 선생님!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지를 늘 깨우쳐 주시는 선생님! 감사합니다! 때문에 저는 지금껏 헛된 명예만을 위해서 살지도 않았고, 권세나 부를 지나치게 탐내지도 않았으며, 그때그때 인생에서 만나는 인연에게 최선을 다하며 매순간 성실하게 살아왔음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주신 큰 사랑과 은혜 언제나 제 가슴속에 간직하고, 앞으로도 제가 사는 마지막 날까지 이 세상을 긍정하며 사랑하며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2009년 5월 15일
제자 김민정 드림.
(nomura sojiro) - 숲의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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