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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기차가 지나가면 흔들리던 풀잎처럼 - 오빠의 편지 - 편지글 3

by 시조시인 김민정 2009. 8. 22.

기차가 지나가면 흔들리던 풀잎처럼

 

 宇玄 김민정

 

 

 

 

 

 

 

 

 

 

 

    오빠!

    중3때 받은 오빠의 편지, 30년도 더 지난 이제야 답장을 씁니다. 오빠의 정성어린 편지말씀을 얼마나 잘 실천하며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주 나의 머릿속에는 오빠의 편지가 떠올랐고, 그때마다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며 지금껏 살아왔습니다. 잘되든 못되든 어떠한 경우에도 제 인생은 제가 100% 책임진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온 것도 오빠의 편지에서 받았던 영향 덕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은 오월, 어디다 눈을 주어도 온통 초록입니다. 예쁜 초록잎들이 이제 무성한 여름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옅으면 옅은 대로, 짙으면 짙은 대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들의 싱그러움을 한껏 펄럭이는 잎새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잠깐 지나온 것 같은데 벌써 제 반평생이 지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철길가에서 놀다보면 기차가 한 번씩 지나갈 때마다 철길가 잎새들이 파르르 떨리며 흔들리는 것이 보였지요. 아마 기차속도의 바람 때문에 그랬을 거예요. 철길에 난 작은 풀들도 역시 흔들리고 있었지요. 그러한 것을 보면서 기차를 타고 한없이 어디론가 떠나고 싶던 마음, 지금쯤은 많이 누그러졌겠거니 생각했는데 아직도 기적소리가 들리면 제 마음은 어렸을 그때처럼 막연한 그리움에 쌓이고 가슴은 뛰고 있네요.

    워어즈워어드의 ‘무지개’란 시가 생각납니다.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볼 때마다 어렸을 때 그때처럼 내 가슴은 뛰누나.’라는. 요즘은 거의 보지 못한 무지개는 물론이요, 기적소리만 들어도 어렸을 때 그 때처럼 제 가슴은 뜁니다. 그리고 봄이면 물오르는 나무들처럼 그리움이 가득 밀려오곤 합니다. 특히 안개라도 끼는 여름날이면 기적소리는 더 멀리서부터 더 짙게 들려오고 그리움도 더 짙게 마음속에 깔려오지요. 초등학교 시절에는 멀리 서울에 와 있는 오빠, 언니들이 그리웠고 고향에 온다는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기도 하던 시절이 있었지요. 보고 싶은 사람이 멀리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우리는 보고픔과 그리움을 갖게 되고, 나이들면서 가족에게서 연인에게로 그 그리움은 전이가 되었겠지요.

 

    떠나던 기적을 향해/ 손 흔들고 손 흔들면

    상행선 기적소리는/ 서울을 향해 달리고

    애릿한/ 그리움들만/ 수액처럼 흐릅니다  

                          - 흔들리던 풀잎처럼, 둘째 수 

 

    제게는 늘 성실하게만 느껴지던 오빠의 삶을 보면서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이란 소설을 생각합니다. “한 인간이 참으로 보기 드문 인격을 갖고 있는가를 발견해내기 위해서는 여러 해 동안 그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가져야 한다. 그의 행동이 온갖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그 행동을 이끌어 나가는 생각이 더없이 고결하며,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런데도 이 세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것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한 잊을 수 없는 인격과 마주하는 셈이 된다.”라는. 비록 뚜렷한 업적이 없는 평범한 오빠의 생이었다 할지라도,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셔서 효도를 못 하셨겠지만 어머니께는 참으로 보기 드문 효자였고, 올케 또한 효부였지요. 누나들, 동생들도 늘 너그럽게 아끼고 보살폈고, 아내와 자식들도 많이 사랑하는 한 모범적인 가장이었어요.

 

 

 

    오빠!

    오빠는 늘 제게 많은 힘이 되었어요. 제가 인생에서 피곤하고 지칠 때면 늘 정신적인 위로와 격려를 주었지요. 늘 제 꿈을 지켜주고 키워주려고 노력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언제나 제가 하고 싶어하는 일들을 긍정하고 격려해 주셨으니까요. 

    대체로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오랫동안 꾸준함을 간직하면서도, 한편으로 늘 새로운 무엇인가를 추구해 가는 제 삶의 태도는 고여서 썩어지는 물이 아니길 스스로에게 바랐기 때문이지요. 늘 퇴보가 아닌 발전하는 삶을 위해 노력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한 저의 성격을, 행동을, 새로운 시도를 오빠는 늘 긍정해 주었어요. 결과는 어떻게 나올지 모르면서도…. 때문에 저는 늘 새로움에 도전하는 용기를 잃지 않고 제 인생을 지금껏 살아왔습니다. 늘 새로운 꿈을 준비하며 ‘꿈 너무 꿈’을 꾸는 나의 마음은 오빠가 심어준 긍정적 태도 때문일 거예요. 삶을 살면서 긍정적인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긍정적인 사람 옆에 있어야 힘이 난다는 사실도 저는 잘 알고 있답니다. 때문에 적어도 해보지도 않고 힘들어 하거나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삶은 살아놓고 보면 별것도 아닌데 부대끼는 순간에는 왜 그리 애가 타고 서글프고 한없이 초라한지요. 그러나 그것은 금방 지나가는 바람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지나치게 기뻐하거나, 지나치게 슬퍼하지 않게 되었지요.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는 사실은 삶의 연륜이 가르쳐준 지혜겠지요.

 

    오빠! 아파트 담장너머로 줄장미가 피어 아름답습니다. 늘 화단을 가꾸고, 장미를 심고, 철쭉을 심고…. 정성들여 가꾸던 오빠가 있었기에 제 정서가 메마르지 않고, 지금도 꽃을 아주 좋아하는 성격으로,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시인으로 자랐나 봅니다. 같은 햇빛을 주어도 받아들이는 식물에 따라 다르게 꽃을 피우듯이, 같은 사랑을 주어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작용을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100% 다 받아들인 사람은 더 아름다운 사랑을 꽃피울 것이고, 50%만 받아들인 사람이 있다면 50%의 사랑을 꽃피우겠지요.

  행복도 불행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란 생각을 합니다. 생은 그렇게 행복한 것만도 불행한 것만도 아니라는 『여자의 일생』끝구절을 늘 생각하면서 제가 살아온 날들을, 그리고 살아갈 날들을 그윽이 바랍봅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오빠의 생이 행복으로 충만하길 기원합니다.  

   

                                                     2009년 5월 29일

                                                     막내동생 김민정 드림.

 

(nomura sojiro) - 숲의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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