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송리 해변과 정동진
宇玄 김민정
돌 구르는 밤의 저쪽 퍼덕이는 검은 비늘
등솔기며 머릿결에 청청히 내린 별빛
저마다 아픈 보석으로 이 한 밤을 대낀다.
낙지회 한 접시에 먼 바다가 살아 오고
맥주 한 잔이면 적막도 넘치느니
물새는 벼랑에 자고 漁火燈이 떨고 있다.
당신의 말씀 이후 살이 붙고 피가 돌아
삭망의 별빛 속에 드러나는 능선이며
때로는 샛별 하나쯤 띄울 줄도 아는 바다.
가슴속을 두드리며 깨어나는 말씀들이
맷돌에 갈린듯이 내 사랑에 앙금지면
바다도 고운 사랑 앞에 설레이며 누웠다.
-「예송리 해변에서」전문
아무도 없고, 달빛조차 없는 밤마다 앞에 그대 서 본 적이 있는가. 먼 하늘에 별빛만이 반짝이는 밤, 우주의 거대한 자연 앞에 인간은 얼마나 왜소한 존재인가. 끊임없이 철썩이는 파도소리……. 그 파도소리는 우리가 태어나기 몇 천 년, 몇 만 년 전부터 철썩였을 것이고, 우리가 가고 없는 몇 천 년 몇 만 년 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자연에 비해 100년도 안 되는 짧은 인생을 살다가는 인간은 자연의 영원성 앞에 서면 겸허해질 수 밖에 없는 미약한 존재이다. '예송리 해변'은 보길도에 있는 해변으로 소나무가 예술적으로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시조시인 윤선도가 유배생활을 하면서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를 지은 곳이다. 이 해변의 특이한 점은 검은 자갈해변이라는 점이다. 작고 고운 자갈이 깔려있는 몽돌해변에선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갈 때마다 '짜르륵짜르륵'하고 이곳만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파도소리를낸다. 예송리 해본은 내가 본 몽돌해수욕장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대학 3학년 때인 1984년에 쓴 이 작품은 1985년 '시조문학창간25주년기념 지상백일장에서 장원'으로 나의 등단작품이기도 하다.
심사위원이었던 리태극, 정완영, 유성규,박경용,김제현 선생님은 "「예송리 해변에선」는 그 감성이 빼어난 작품이다. 하나의 즉물적 기행시로 떨어질 위험을 거뜬히 극복, 인생론적 깊이를 불어넣은 저력이 만만찮게 보였다. 신선도가 꽤 높은 당당한 작품으로 첫발을 내딛는 시인에게 거는 우리 심사위원의 기대는 크다. (1985년 여름, 시조문학 43호)"라고 평하였다. 정동진의 밤 파도 우르르 몰려왔다 재빠르게 달아나며 어린 날 기억 속으로 나를 잡아 이끈다 옷 젖는 줄 모르고 뛰어놀던 백사장에 발자국 지워가며 따라오던 하얀 포말 까르르 자지러질 듯 배꼽잡고 웃고 있다 아련한 영상 속에 그리움의 집을 짓고 잠시 만단 동심에서 아스라이 멀어지는 그대는 삶의 바다에 또 얼마나 젖었는가 두 발을 적시고 온 몸을 적시고 영혼까지 다 적시며 살아온 세월들이 정동진 바닷가에서 철썩이고 있었구나 -「정동진에서」전문 기차에서 내려 바닷가에 도착하기 바쁘게 흰 파도를 보며 즐겁게 달려가 파도에 발을 적시고, 손을 적시며 놀고 있는 두 딸을 보면서, 위의 시를 구상해 보았다. 정동진은 ‘모래시계’로 유명해진 정동쪽에서 해가 뜨는 곳이다. 때문에 주로 시인들은 아침을 노래하는 곳이다. 나도 정동진에서 뜨는 새해 아침해를 보고 싶어 새벽에 정동진에 도착했다. 정동진에서 해가 뜬다고 특별히 달라보일 것은 없다. 동해안을 둘러보고 저녁에 다시 찾은 정동진의 밤바다…….어린 날의 바닷가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곳이었다. 물론 나의 고향집이 있던 심포리와 바닷가는 한참 떨어져 있었지만, 가끔 기차기관사였던 오촌 아저씨가 사시는 북평(동해) 바닷가에 가서 놀다온 적이 있다. 수없는 발자국을 만들며, 조개껍질을 주우며, 몰려왔다 몰려가는 파도와 장난을 치며 뛰어놀던 어린 날의 즐겁던 바닷가, 아련한 영상 속의 모습들이다. 아무런 걱정근심이 없었던 어린 날의 바다와 많은 질곡 속에 살아가는 인생의 바다를 오버랩시켜 보았다. 인생의 바다에 깊이 빠지며 살아왔을 나의 삶, 나아가 우리 모두의 삶을 생각해 보았다. 아직도 펄펄 살아 퍼덕이는 바다, 그 바다처럼 내 삶도 저렇게 펄펄 살아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도 계속 퍼덕이려니……. 나는 또, 생의 한가운데에서 온 몸을 적시며, 온 영혼을 적시며 변함없이 뜨겁게 살아가리라……. 어느 누가 온 몸을, 온 영혼을 적시지 않고 인생의 바다를 건너갈 수 있겠는가? 이 세상 모든 삶은, 모든 인생은 오늘도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인생의 바다를 건너가고 있을 것이다. 사진: 서울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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