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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자유로운 정신과 간결한 언어 - 사람이 그리운 날엔 기차를 타라 중에서

by 시조시인 김민정 2009. 8. 20.

<나의 시세계> 

 

자유로운 정신과 간결한 언어

 


                                                          宇玄 김민정 

 

1. 나의 문학관


    나에게 있어 문학은 어떤 존재일까?

  그것은 무조건 옳다고 믿고 섬기는 하나의 종교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제삼자가 보면, 한낱 자기도취, 자기위안, 또는 이기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문학은 어떤 것일까? 문학은 종교가 아니고, 철학도 아니며, 도덕도 아니다. 문학은 문학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문학에서 추구하는 것은 진(眞)이며, 선(善)이며, 미(美)이다. 문학은 인간다운 진실을 추구하고, 남에게 도움이 되는 착함을 추구하고, 감동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종교를 초월하고, 철학을 초월하고, 도덕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이 문학이라면 그것은 어느 것에도 속박되어서는 안 되는 자유인의 표상, 자유정신의 표상이어야 한다. 종교, 철학, 도덕, 권력, 재력,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때만이 어느 것에도 구애됨이 없고, 어느 것에도 속박됨이 없는 자유로운 문학정신이 나타날 것이며 문학다운 문학이 창작될 것이다. 

  내가 쓰는 한 편의 시 속에는 나의 모든 사유와 생활이 담겨 있을 것이다.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나타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초월하고 싶은 자유정신이 녹아 있을 것이다. 조선 시대 허난설헌의 작품보다도 황진이의 작품을 사람들이 더 좋아한다면 그것은 황진이의 작품이 더 진솔하고 속박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면 더 쉬운 언어로 쓰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모든 위대한 작품들은 쉬운 언어로 쓰였다. 지금껏 그렇게 작품을 써 왔지만, 앞으로도 나는 자유로운 정신속에서, 쉽고 간결한 언어로 작품을 쓸 것이다.

 

 

 

2. 시의 형식 


   시의 형식에는 자유시와 정형시가 있다. 시를 쓰기 시작하던 고등학교 시절, 나는 자유시를 썼었다. 그리고 대학초기에도 자유시를 썼던 적이 있고, 발표했던 작품들도 꽤 있고, 발표를 미루어 두었던 작품도 꽤 있다. 그러나 시조를 습작하고, 창작하게 되면서 자유시는 거의 쓰지 않고 있다.

 

  마냥 풀어 헤쳐진 자유시보다 조금은 틀이 정해진 정형시 속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현대시조 속에서도 사설시조를 쓰고 있는 경우가 있고, 그것을 자유로운 정신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자유시에 가까운 것이라 생각한다. 조선후기의 사설시조를 서구의 자유시가 들어오기 전, 우리 스스로의 자유시 태동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니까 말이다. 나도 몇 편의 사설시조를 쓴 적이 있지만, 내가 쓰는 시들은 대체로 3장 6구 12음보의 정형에 어긋남이 거의 없는 작품들이다.

 

   형식에서 어긋난다면 그것은 이미 시조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앞으로도 나는 정형에 맞는 작품을 쓸 것이다. 정형시인 우리의 시조는 12음보만 잘 맞춘다면 한 음보 안에서 한 두 글자가  많거나 적어도 자연스러운 시조작품이 되기 때문이다. 자수를 잘 맞추면서도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 시조이다. 다만 얼마나 적절한 낱말을 그 자리에 앉혀야, 말은 짧고 뜻은 긴 언단의장(言短意長)의 문장이 될까하고 고민해야 하는 문학이다. 시조시인은 정말로 언어의 조련사가 되어야 하고, 군더더기의 말은 과감하게 생략할 줄 아는 결단력도 지녀야 한다.

 

    초장․중장․종장에 다 무겁고 비중 있는 낱말들만 써도 안 되고 적절히 풀어주고 적절히 조일 줄도 알아야 한다. 초장․중장에서 풀어주고 종장에서는 조이면서 하고 싶은 핵심적인 말을 하는 것이 시조작품의 묘미이다. 시조를 선경후정(先景後情)의 작품이라고도 하는데, 초장과 중장에서는 경치를 읊고, 종장에서 자기감정을 읊어야 좋은 시조, 시조다운 시조가 된다는 것이다.

 

    여러 이론을 알고 있다고 하여 수학공식처럼 일일이 대입해 가면서 작품을 쓰지는 않는다. 작품창작은 느낌과 감동이 우선이기 때문에, 사물에 대한 느낌과 감동이 있어야 영감이 떠오른다. 그 영감들을 놓치지 않고 문장으로 가다듬을 때, 한 편의 시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시는 이론보다 먼저, 감성이다.

 

『사랑하고 싶던 날』100편의 시를 풀꽃시화로 만들어 준 천숙녀 시인과 함께<김천직지사경내 전시>  

  

3. 시의 내용

 

  나는 어떠한 내용을 시로 쓰고 있는가.

   내가 쓰는 시는 대체로 서정시이다. 그것은 생활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희로애락이다. 시를 위한 생활이 아니라 생활 속의 잡다한 생각, 감정, 번뇌들이 시의 주제가 되고 있다. 때문에 결국 나의 시는 내 생활의 반영이다. 아름다움을 보고 감탄하고, 만남을 기뻐하고, 이별을 슬퍼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을 나는 노래하고 있다. 사랑, 이별, 그리움, 슬픔, 기쁨 등 순간마다 바뀌는 인간의 보편적인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고 싶고 표현해 보고 싶다. 시에 있어 ‘사랑’이나 ‘그리움’이란 낱말은 특별한 새로움은 없다. 하지만 이 낱말만큼 많이 쓰인 낱말은 없을 것이며, 앞으로도 인류가 존재하는 한, 남녀가 존재하는 한 이 말만큼 많이 쓰일 낱말도 없다. 또한 사랑이나 그리움은 문학의 영원한 주제가 될 것이다.

 

   그리스의 서정시인 사포나 조선시대 황진이보다 더 멋진 사랑시를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랑시를 쓴다. 그리하여 영원히 남을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랑노래’가 탄생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사랑의 시는 자칫 흔하고 가치 없는 시가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시인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다 써보는 주제가 ‘사랑’이라서, 아주 뛰어난 작품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단점이 있다. 그래서 아주 강렬하거나 애절하거나 진솔하거나 아름답거나 할 때만이 ‘사랑의 시’로서 생명을 얻을 수 있고, 만인의 사랑을 받는 작품이 될 수 있다. 나는 사랑을 주제로 한 아름다운 작품, 오래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작품,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으므로 그러한 작품을 탄생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리하여 시집『사랑하고 싶던 날』『지상의 꿈』『나, 여기에 눈을 뜨네』등이 거의 사랑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그러나 내 시의 소재가 ‘사랑’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영동선의 긴 봄날’은 연작 서사서정시조집이고, 때로는 사회적 주제를 다루기도 한다. 그러나 어떠한 주제든 내 것으로 소화하여 내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생각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그것이 사랑시든, 서사시든, 참여시든…. 그리하여 요즘은 테마를 정하여 시를 쓰고 있다. ‘사랑하는 이여’라는 연인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형식의 연작 단시조를 계속 쓰고 있다. 다른 시인과의 변별화 작업을 통해 나만의 개성, 즉 나만의 특성을 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좀더 긍정적인 시선으로, 좀더 열정적으로 인생을 사랑하고 주변을 사랑하며 내가 만나는 인연들을 사랑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반영으로써 시를 쓸 것이다. 하지만 시의 내용이 내 삶을 100% 반영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문학이므로, 나의 삶과 나의 상상력이 함께 만들어 내는 가상공간이며, 나는 그곳에서 자유롭게 유영하고 싶다.

 

 

 

 

4. 앞으로의 시세계


   나는 지금까지 서정시, 그 중에서도 사랑시를 많이 썼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사랑의 시만이 가장 오래 인류에게 살아남을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설령 그것이 살아남기 힘든 것이라 할지라도 나는 도전하고 싶다. 사람들의 가슴을 오래도록 적셔주는 아름다운 사랑시를 꼭 탄생시키고 싶다.

 

   또한 날이 갈수록 짧은 단시조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계속 단시조를 많이 쓰면서 단시조의 미학을 유감없이 발휘할 것이다. 더욱 시상을 압축하고 함축하여 짧은 글에 깊은 뜻을 싣는 언단의장(言短意長)의 미학, 단시조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의 가슴에 심어주고 싶다.


<시세계 47, 2008.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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