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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가 있는 병영

남자와 여자 / 이지엽 - 시가 있는 병영 38

by 시조시인 김민정 2008. 10. 17.

 
<2008년 10월 13일 국방일보>
 
詩가 있는 병영 - 남자와 여자 <이지엽>

                               남자는 가슴에다 산(山) 하나 세우고 살지
                          소리 내어 울지 않는 것은
                          바위 같은 자존 때문
                          아픔이 절벽이어도 폭포처럼 내리꽂히지

                          문 걸고 묵묵부답 위엄을 곧잘 위장해도
                          새가 되는 푸른 메아리
                          철없이 날기도 하지
                          부석(浮石)의 절 한 채 짓고 햇살 찧는
                          물빛 산빛

                          여자는 가슴에 강물 하나 흐르게 하지
                          남모르게 눈물 흘리는 건
                          모래알 같은 사랑 때문
                          앞섶에 물 주름진 삶 잔잔하게 흘려 보내지

                          가벼운 입, 얇은 귀 유혹에 위태로워도
                          안개비 속 휘는 갈대,
                          물 위에 길을 내지
                          속울음 잎 진 자리에 불러 앉히는
                          달빛 별빛


   작가는 시인, 문학박사, 경기대학교 교수. ‘열린시학’ ‘시조시학’ 편집주간. 한국시조작품상·유심작품상·중앙시조대상 등 수상. 시집 ‘씨앗의 힘’ ‘샤갈의 마을’ ‘다섯 계단의 어둠’ ‘해남에서 온 편지’ ‘떠도는 삼각형’ 등

   남자와 여자를 한 작품 안에서 정의 내리고 있는 재미있는 발상의 시다. ‘남자는 가슴에다 산 하나 세우고 살지’ 그것은 어떤 산일까? 남자의 가슴에 지니고 사는 삶의 목표일까? 아니면 자존심일까? 아니면 위장된 위엄일까? ‘소리 내어 울지 않는 것은 바위 같은 자존 때문’이라고 한다. 그 말 속에는 남자도 울고 싶을 때가 많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남녀를 불문하고 쉽지만은 않다.  남자라고 울고 싶은 순간이 없겠는가. 생물학적으로는 남녀의 눈물샘이 달라 남자가 눈물 흘리는 모습은 겉으로 잘 안 보인다고 하기도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남자는 자존심 때문에 울지 않고, 곧잘 위엄을 위장해도 때로는 철없는 새가 된다고 한다.

  또 여자는 가슴에 강물 하나 흐르게 한다고 한다. 그것은 사랑의 강일까? 눈물의 강일까? 또 ‘남모르게 눈물 흘리는 건 모래알 같은 사랑’ 때문이라고 한다. 모래알처럼 많은 사랑 때문일까? 아니면 잡고 싶지만, 손가락 사이의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사랑에 대한 아쉬움일까? 여자는 유혹에 약해 갈대처럼 휘기도 하지만, 부러지지 않는 강한 근성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남자와 여자, 과연 그런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시를 쓰는 건 시인의 자유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건 독자인 우리의 몫이다.

<시풀이:김민정-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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