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무릎 접고 시집을 읽는 시간
시정의 말갈피를 영혼으로 닦아낸
으늑한 내통의 길에 혼을 깊이 들이듯
그가 걸은 우주에 나를 포개는 시간
바닥을 길어낸 듯 피 묻은 자리마다
말들의 음핵을 찾아 살뜰히 헤매는 밤
우주의 오솔길에 시의 알을 슬 동안
그 안팎 온 말들이 다시 붙어 노닐고
내 안도 저와 같아야 밤새 붉어 뛰놋다
작가는 1984년 세종숭모제전 전국시조백일장 장원 등단. 중앙시조대상, 한국시조작품상, 수원문학상 등 수상. 시집 ‘저녁의 뒷모습’ ‘저물녘 길을 떠나다’, 저서 ‘한국현대시인론’(공저), ‘중국조선족문학의 탈식민주의 연구1’(공저)
제목에서 보여주듯 타인의 ‘시집을 읽는 시간’이다. 어느 한 사람의 시집에는 그 사람이 지금껏 겪어온 삶이 녹아 있고, 닦아온 언어의 조탁이 있고, 그 사람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한 권의 시집에는 그러한 작품을 쓰기 위한 그 사람만의 고통의 시간이 있다. 그래서 화자인 시인은 다른 사람의 시집을 읽으며 ‘그가 걸은 우주에 나를 포개는 시간’을 갖는다.
한 권의 시집 속에는 그 시인이 걸어온 온 우주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영혼의 바닥을 길어낸 듯 피 묻은 자리마다/ 말들의 음핵을 찾아 살뜰히 헤매는 밤’이 된다. 화자는 한 편의 시 쓰기가 얼마나 고통인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시인의 시집을 읽으면서도 그러한 고통을 이해하고 그 시 속에 들어 있는 ‘말들의 음핵’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 시인이 ‘우주의 오솔길에 시의 알을 슬 동안’ 즉 시를 빚어내는 동안 ‘그 안팎 온 말들이 다시 붙어 노닐고’처럼 한 시인의 내면에 있는 모든 언어들을 동원해 붙여 보고 떼어 보는 짓을 되풀이한다. 한 사람의 독자인 화자도 ‘내 안도 저와 같아야 밤새 붉어 뛰놋다’라고 해 그 시인의 심정이 돼 그 시인을 이해하고자 하고 있다. <시풀이:김민정-시인·문학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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