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길 짧은 돌계단을 잠언의 발길로 내딛는다 떠난 줄 알았던 가을이 여기 모여 앉아 논다 덜고 또 훌훌 덜어내면 무위 극락 다다를까
낡고 낡아 황량함도, 비좁아 옹색찮은 절집 가끔 늙은 팽나무며 은행나무 늙은 그리메가 낙낙한 묵언 수행의 안마당을 쓸고 간다
무위사 극락보전 눈동자 없는 관음보살 먹지도 자지도 않고 창살문 걸어 잠근 환쟁이 늙은 스님, 아미타 후불 벽화에 주야장천 매달리던 떠돌이
환쟁이 그 스님, 세상에, 노승은 간 데 없고 입에 붓을 물고 탱화 그리던 파랑새 한 마리, 지금 막 극락보
전 관음보살 눈을 그리려다 그리려다 인기척에 놀란 새가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지, 어디론가 훨훨 날아
가 버렸지.
무위사 관음보살은 여직도 당달봉사라나?
작가는 1966년 공보부 신인예술상과 196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중앙일보 대상·가람시조문학상·이호우시조문학상·고산문학대상·현대불교문학상 등 수상. 시집 ‘네 사람의 얼굴’ ‘해남 나들이’ ‘땅끝’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주몽의 하늘’ 등.
시인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남도답사일번지’에 나오는 월출산의 무위사에 대해 쓰고 있다. 첫째 수와 둘째 수에서는 어쩌면 시인 자신의 비유일 수도 있는 가을, 조용한 무위사 절집 풍경을 읊고 있다. 셋째 수에 오면 무위사의 눈동자 없는 관음보살에 대해 말하고 있다. 화룡점정이라고…. 눈동자 그리기가 가장 어려워 남겨두었다 여직 못 그렸는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첫째 수와 둘째 수를 평시조의 형식으로, 셋째 수를 사설시조의 형식을 취해 한 작품 안에 평시조와 사설시조가 함께 존재하는 형식의 옴니버스를 취하고 있다. 그림 그리는 노스님이 그리려다 못 그린 관음보살의 눈, 파랑새도 그리려다 놀라 날아가 버린 그 눈, 그래서 ‘무위사 관음보살은 여직도 당달봉사라나?’고 의문형으로 끝내고 있어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한다. <시풀이:김민정-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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