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망설임 없이 몫에서 빠져나간 가엾은 시간들이 옛집에 부서져 있네 들추면 먼지만 날릴 폐지 같은 추억으로
멀수록 팽팽하게 당겨지던 그리움은 지붕 위 새떼에 묻어 가뭇없이 날아가고
퇴색된 유년의 뜰엔 낯선 눈길만 갇혀 있네
헛되어라, 푸른 꿈은 낮달로나 떠돌다 사립문 슬쩍 밀고 들어서는 바람인가, 예정된 침묵에 내린 빗살무늬 햇살 한 장
작가는 시인, 경기 안성 출생, ‘시조문학’지로 등단, ‘시조문학’지 편집장 역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 시집 ‘때로는 하루도 길다’
이 시는 제목처럼 과거를 그리고 있다. 어린 시절의 옛집이라든가, 옛날의 시간들. 그러나 화자는 지나간 과거를 아름다움이나 짙은 그리움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가엾어 하는 동정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즉 관조적 자세를 취함으로써 자신의 과거에 대해 객관적 거리를 두고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들추면 먼지만 날 것 같은 폐지 같은 추억이라고 단정한다. 그리움의 시간들도 날아가는 새떼와 함께 날아가 버리고, 바래고 퇴색한 유년만 거기 남아 있다. 어렸을 때 가졌던 푸른 꿈들을 바람으로 형상화했다. 또한 ‘헛되어라, 푸른 꿈은 낮달로나 떠돌다/ 사립문 슬쩍 밀고 들어서는 바람인가’라고 도치법을 씀으로써 지난 날의 푸른 꿈이 헛되다는 것을, 허무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 허무함의 공간에 빗살무늬 햇살처럼 따뜻한 시선이 머물고 있다.
<시풀이:김민정-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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