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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이집트 문명을 만나다 4 - 아스완 댐, 미완성 오벨리스크, 콤옴보 신전

by 시조시인 김민정 2025. 4. 17.

이집트 문명을 만나다 4

- 아스완 하이 댐, 미완성 오벨리스크, 콤옴보 신전

 

김민정(시조시인·수필가,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아스완 하이 댐 상류쪽

 

   2025311일 오늘은 아스완 하이 댐을 보러 가는 날이다. 오전 6시 우리는 웨딩준비를 하고 호텔로비에 모였다. 어젯밤 크루즈에서 잠을 잤기 때문에 오늘은 크루즈에서 웨딩촬영을 할 것이다. 다른 날은 일찍 출발하여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갖는 여성회원들만의 즐거운 시간이다. 아침을 먹기 전에 우리는 로비에서 웨딩촬영을 할 예정이다. 로비 및 계단에서 자신이 입은 옷으로 몇 컷씩의 촬영을 한 뒤에 우리는 선상으로 올라가 촬영을 했다. 아침해가 피어나기 시작하는 시간이라 밝은 햇빛을 받으며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선상에서의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특별히 즐거운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이렇게 서로 만나 함께 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즐거운 것이다. 건강한 다리로, 몸으로 이렇게 웨딩옷을 입고 서로를 찍어주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그 자체로 행복한 것이다. 우리는 한 시간 가까운 시간을 즐기고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가게 되었다. 웨딩옷을 갈아입기 귀찮아 그냥 갔더니 식당의 모든 손님들이 쳐다본다. 이미 몇 번의 경험이 있어 그들의 시선이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 부끄러움도 없이 뻔뻔해지는 걸까? 아무튼 그들의 미소와 축하를 받으며 우리는 식당의 뷔페음식을 먹었다. 보는 사람도 즐겁다면 그들에게 일조하는 것이 아닌가?

 

아스완 하이 댐 상류쪽

아스완 하이 댐 상류쪽 (수시로 이사장님과 업무 논의 중)

 

   아침식사 전의 행사를 마치고, 각자의 방으로 올라와 옷을 갈아입고, 짐을 챙겨 9시에 버스에 올랐다. 오늘은 아스완 하이댐과 미완성 오벨리스크를 관람할 예정이다.

   아스완 하이댐은 나일강을 가로지르는 석회 댐으로, 나일강이 범람하면 물이 10배로 불어난다고 한다. 나일강은 정기적으로 범람하며 7~10월이면 70% 나일강 강물이 들어온다. 강물이 범람하면 퇴적토는 천연비료가 되어 나일강 삼각지 주변은 비옥한 옥토가 된다. 이것을 이용하여 이집트인들은 범람기 4개월, 파종기 4개월, 수확기 4개월 이렇게 농업을 기준으로 3계절로 나눈다고 한다.

아스완 하이 댐 상류 앞에서 (김민정 부이사장, 김호운 이사장, 이자야수필가, 김무웅수필가)

   

   우리는 아스완 하이 댐에 도착하여 버스를 내려 아스완 댐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관람했다. 넓게 펼쳐진 댐은 바다처럼 느껴지게 했다. 나세르호와 반대편으로 나일강이 흘러간다. 댐 건설로 인해 유적지들이 물에 잠겨서 옮겨지는 등 관련한 에피소드들이 많다. 어제 관광한 아부심벨도 이곳 공사 때문에 옮겨간 것이다. 그리고 가까이 있는 가게에서 나는 시원하게 뵈는 여름 원피스를 하나 샀더니 사람들이 예쁜 것을 잘 골랐다고 한다. 나는 이곳에서도 머플러 몇 개를 샀다.

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들

 

   아스완 댐은 이집트 나일강의 아스완시에 위치한 댐이다. 아스완 하이 댐(아랍어: Arabic: السد العالي;as-Sad al-'Ally)과 아스완 로우 댐이 크게 댐의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이집트 정부의 아스완 댐 건설 목적은 나일강의 범람을 막고 관개 및 농경을 위한 전력발전이다.

나일강은 매 여름마다 범람한다. 고대 때와 마찬가지로 수천 년간 반복된 이러한 홍수는 유역의 토양을 옥토로 만드는 한편 많은 이로운 광물을 배출하면서 농경의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해주었다. 하지만 강 주변 거주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목화재배지와 농경지를 보호하고 한편으로 조절할 필요성이 커지면서 댐의 건설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가장 처음 구조물은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이 1889년 시작하였으며 그들의 공사는 1902년까지 계속됐다. 공사 기공식은 19021210일에 열렸으며 공사에는 영국 내 저명한 건축가 다수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1910년대에 이르러 처음의 공사 양식이 적합치 않다는 판단이 대두하면서 한 차례 증축 공사를 하여 댐의 높이를 높인다.

1946년 댐이 범람하면서 세 번째로 한 번 더 공사를 하게 되며 둘째 번에서 6km정도 높이를 더 끌어올리게 된다. 기초 공사는 1952년 시작됐으며 가말 압델 나세르의 쿠데타 이후로 미국과 영국이 혼란기를 틈타 자금 제공에 합의한다. 27천만달러를 차관 제공하기로 한 것은 나세르가 아랍 세계-이스라엘 전쟁 기미를 막는 데 협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미 양국은 나세르를 정치적으로 무력화하고자 비밀 회담을 열면서 19567월 차관 제공을 철회한다.

아스완 하이 댐 하류쪽

아스완 하이 댐 하류쪽

 

   1960년 현대적 의미의 댐 건설이 비로소 시작됐으며 11년 뒤인 1970721일에 공사가 완공된다. 사실 공사 완공 전인 1964년 미리 수원 저장을 시작하였으며 총 수원 한계량을 1976년에 처음으로 채우게 된다. 그러나 수원 저장의 계속적인 증가는 인류학자들의 우려를 자아냈다. 주위에 산재했던 고고학적 유물 때문으로 60년대 유네스코는 문화재 구조 작업에 나선다. 문화재 유적지 탐사 밑 24곳의 주요 장소가 옮겨졌다. 중요한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대표적인 곳이 아부심벨 신전(Abu Simbel Temples)이다. 아부심벨은 람세스2세가 건설한 거대한 암굴 신전으로, 라 신과 람세스 자신, 하토르 여신에게 헌정된 것이며 원래 위치에서 약 65미터 위, 200미터 뒤로 옮겨 거대한 돔 구조 아래 재조립되었다.

필레 신전(Philae Temple)은 이시스 여신에게 바쳐진 신전으로 원래는 필레섬에 있었으나, 댐 건설로 수몰된다. 국제적 도움으로 아길키아 섬으로 이전했다. 섬 지형을 원래와 비슷하게 재현한 뒤 섬 전체를 옮겨갔다. 필레 신전은 로마시대까지 사용된 이집트 마지막 신전 중 하나이다.

칼라브샤 신전(Temple of Kalabsha)은 누비아 지역의 맨두리스(Mandulis)신에게 바쳐진 신전이다. 아스완 근처의 고지로 이전되어 현재는 나세르 호수 근처에서 관람이 가능하다.

암다 신전(Temple of Amada)은 투트모세 3세와 아멘호텝 2세가 세운 오래돈 신전이다. 원래 자리에 있었지만, 구조물 전체를 잘라내어 통째로 옮겼다. 내부의 채색과 비문이 잘 보존되어 있다.

데르(Derr) 신전 및 페르베르(Penout) 무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아부 심벨 부근의 소규모 유적들 역시 함께 이전되었다.

이러한 유적 이전은 1960~1980년대 초반까지 UNESCO주도로 이루어졌고, 현대 고고학과 문화유산 보존의 전범(典範)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드리드와 뉴욕 등 세계 여러 기관과 국가들은 적극적인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이집트 자체로는 아랍계의 오스만 아메드가 발굴 작업을 주도했으며 그의 경쟁자를 물리치며 작업을 해나갔다. 그는 소련이 당시 제공한 물자에 대해 불평을 많이 했으며 소련 기술자들을 결국에 내쫓아버렸다고 전한다. (위키백과 등 참조)

수력발전은 1967년 시작됐으며 당시의 수력전기는 이집트의 총 전력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했다. 사상 최초로 이집트 전역의 모든 마을에 전기를 제공하게 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한편, 1964년과 1973년의 대홍수를 진정시키는 데 절대적인 공헌을 했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나세르 호 주변으로는 새롭게 어업이 활기를 띠게 되기도 했다.

나일강 지류에 댐을 설치한 것은 수많은 환경적, 문화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90,000명의 주민이 이주해야 했으며, 지금의 나세르 호 자리에 위치하던 귀중한 고고학적 유산은 자취를 감추었고 묻혀있을지도 모를 유산의 가능성은 사장되었다. 더군다나 댐이 지어지기 전에 홍수로 인해 토양이 비옥해졌던 것이 이제는 옛말이 되면서 원성을 사기도 한다. 특히 아부심벨 신전을 막대한 금액을 들여 이동시키기도 하였다.

관개 목적이라는 정부의 목표에도 불구하고 관개를 위해 강이 자연적으로 배출하던 광물은 없어졌고 되려 염기가 농작지로 스며들어 염해 피해를 야기한다는 지적도 있다. 지중해 연안 어업은 댐 건설 이후 실적이 급락하였으며 이는 나일강의 풍부한 자연 광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농부들과 광부들의 보상 요구가 극심하였다.

충분한 비가 내리지 않기 때문에 이집트의 농업은 전적으로 관개(물 끌어들이기)에 의존하고 있다. 관개가 이뤄지면 이모작이 가능하다. (사탕수수 제외) 아스완 하이 댐은 평균적으로 매년 55억 평방미터의 물을 배출하며 그 중 4600의 수원이 관개 목적으로 충당된다. 나일 삼각주와 계곡 일대 8백만 페단(1 feddan = 4,200m2)의 농경지 중 대부분은 이 혜택을 입어 한 해 2회 경작한다면 1.8정도의 수확을 올린다고 한다. 따라서 그 효율성이란 세계 평균을 보더라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러나 사실 단일 경작지로 통계자료를 돌려보면 그렇게 효율성이 높은 것은 아니며 실상은 관개 용도의 물이 하류로 내려가면서도 계속해서 사용되기 때문에 부풀려졌다는 지적이 있다. (위키백과 등 참조)

아스완 하이 댐은 높이 111m, 길이 3.6km. 아스완 하이 댐 하류는 물의 양이 적은 편이다. 아스완 하이 댐의 문제점은 지하 수위가 점점 올라 카타르 분지가 인공호수, 자연 호수, 신전들의 바닥이 젖고 있고 기후에도 영향을 끼친다.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3번이나 공사를 하였고, 공사로 많은 유물이 물에 잠기고 10만이 넘는 이재민이 생겼다. 아스완 댐 물은 남에서 북으로 흘러간다. 이집트엔 나일강물이 유일한 물줄기다.

미완성 오벨리스크

붉은색 화강암이 아름다워 보이는 채석장에서의 김민정

외국인이 관광하고 있는 화강암 채석장

 

버스로 이동하여 오전 11 미완성 오벨리스크 채석장으로 갔다. 이집트 아스완의 채석 지대 북부에 자리한 거대한 옛 오벨리스크 채석장이다. 미완성된 채 바닥에 누워있는 상태의 돌 등, 깨다만 돌들이 있는 화강암 책석장이다. 오벨리스크 모양도 하나 있었는데 돌로 바위를 때려서 큰 바위를 떼어내는 작업을 하다가 바위에 금이 가서 포기한 것이다.

화강암의 고대 채석장은 도시에서 약 2Km 떨어진 곳에 있다. 채굴한 면적을 의미하는 흔적들은 물에 젖어온 나무의 쐐기석을 부착하여 왔다. 여기서 유명한 미완성의 오벨리스크는 핫셉수트 여왕의 오벨리스크라고 하는데 높이 41m이고 무게는 1,267톤이라 한다. 단단한 화강암의 돌에 문자를 새겨 오래 남기를 기원하면서 남기고 싶은 내용을 돌에 새기는 것이다. 화강암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붉은색이 깃들어 있는 것들은 무척 색상이 아름답다. 또 매우 단단해 보이는 고급돌이다.

오벨리스크 채석장 버스에서 가이드가 가방 한 개에 1달러씩 팔아서 많은 회원이 사고 나도 하나 샀다. 또 책갈피를 팔아서 사기도 했다. 물건들이 비교적 싼 편이다. 식사시간을 기다리며 회원들은 사진을 찍기도 한다.

선물가게에서 회원들이 물건을 구경하고 있다 (김민정, 김의배, 최원현)

 

신의 음식이라는

이집트 정통요리

 

넉넉한 한 그릇을

우리는 받아 들고

 

내 나라 야채비빔밥

불현듯 떠올린다

 

서민들이 오고가는

시장 어귀 들어서면

 

부지런한 손놀림의

친근한 즉석 요리

 

한끼를 건네받는다

이역만리 배부른 정

- 김민정 시조 쿠샤리Kushari

 

식사시간을 기다리며 한 컷

 

식사시간을 기다리며 한 컷

 

크루즈 저녁 식사 후(이향희, 박원명화, 권남희, 김민정)

 

 

우리는 배로 돌아와 기다렸다가 130분쯤 선상식당에서 뷔페식 점심을 먹었다. 유명한 이집트 요리 쿠샤리라는 것에 대해 시조를 한 편 썼다. 오후 230 크루즈가 출항하여 나일강을 항해했다. 출항하고 나서 잠깐 권남희회장과 전수림 이사가 함께 쓰는 방에 가서 조금 감상하며 대화를 나누다가 나는 나의 방으로 왔다. 배가 출항하자 옆 배가 없어졌으므로 전망이 트였고 나일강을 미끄러지듯 배가 움직이고 나일강 강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야자수의 모습도 보이고, 거의 비슷한 강변 풍경들이 지나갔고, 신전 같은 풍경도 지나갔다. 나는 나일강을 감상하며 한 편 클레오파트라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의 수필 한 편을 완성했지만 미약하여 다음에 다시 다듬어야 할 듯하다.

나일강변 풍경, 신전들이 보인다

크루즈에서 감상한 나일강변 모습

나일강 크루즈 안에서 김민정

 

강 위에서 삼박사일

신세계의 밤풍경

 

별들이 불러내서

선상에 올라가니

 

마주친 맥주잔 가득

챙그랑, 별의 합창

 

칠흑 같은 머릿결로

물결은 찰랑이고

 

시인의 이야기가

바람결에 녹아든다

 

길고 긴 강줄기 만큼

한밤중이 익는다

-김민정 시조, 나일강 크루즈

 

악어 미이라관에서 악어 미이라를 보다

 

   우리는 크루즈를 타고 가서 콤옴보 신전을 보기 위해 내렸고, 우리는 악어미이라 전시관에서 악어미이라를 구경했다. 그리고 우리는 어두워지기 전에 콤옴보 신전을 구경하기 위해 서울로 콤옴보 신전을 향했다. 이미 황혼녘이라 노을이 지고 있었고 땅거미가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불이 켜지기 시작한 신전을 열심히 훑어보며 상형문자들을 만들고 태양력 달력을 만든 그들의 능력에 감탄하였다. 태양력을 만든 것에 대한 설명이 되어 있는 듯한 부분이 있었는데, 어둑어둑한 상황이라 더 오래 감상할 수가 없었다. 그 옛날에 이런 것을 생각해 내고 문자로 남길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감탄을 했다.

콤옴보 신전

콤옴보 사원에서(김민정 부이사장, 권남희 수필분과회장, 김호운 이사장)

콤옴보 신전 야경

  에드푸와 아스완 사이에 있었던 콤옴보는 고대 파-세백(Pa-Sebek)이다. 세백의 거주지를 말하고, 프레디나스티카 시대에 악어신을 숭배했었다. 이곳 콤옴보에서는 보기 드문 설계로 된 신전의 유적이다. 사실상 신전은 전체적으로 두 개의 신전이 나란히 붙어 있다. 오른쪽에 있는 신전은 풍요의 신인 세백 신에게 바쳐진 것으로 그 신을 세상의 창조주로 생각하였었고, 왼쪽에 있는 신전은 하로에리스신에게 바쳐진 것으로 전투적인 태양의 신이다. 이 신전도 역시 토오트-모시스 3세 지배하에 먼저 건축되어진 신전을 전체적으로 다시 적합하게 만들기 위해 프톨레마이오스가 재건하였다. 이 두 신전은 거대한 벽에 의해 막혔었고, 나일강 쪽으로 두 개의 입구가 열려 있었다. 다주식 방에는 두 줄의 기둥들이 있고, 나란히 있는 두 성지를 원래의 방법으로 나누기 위해 중앙에도 한 줄의 기둥을 세웠으며, 성지들을 따라 틈에 의해 정확하게 나뉘어졌다고 한다. (위키백과 등 참조)

이향희, 김민정, 권남희, 이자야

 

 

콤옴보 신전에서 김호운 이사장

콤옴보 신전 달력을 만든 원리의 상형문자 앞에서 김민정 

상형문자들 앞에서 김민정

 

콤옴보 신전

콤옴보 벽화들 

콤옴보 신전의 우물터, 달이 비치고 있다

 

콤옴보 신전의 깊은 우물에 달이 비취고 있다. 몇 천년 전에도 이렇게 이 우물에 달이 비췄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니 인생이 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은 그대로인데 인간은 그동안 얼마나 많이 오고 갔는가? 이집트에 왔다갔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오늘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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