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호 권두칼럼>
한국문학의 브랜드, 시조
김민정(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회장)
우리 민족에게는 우리글과 우리말이 있다. 세계의 많은 민족 중에서 고유의 말과 글을 가지고 있는 민족은 많지 않다. 얼마 전 573돌 한글날을 맞으며 한글의 고마움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한글의 가치를 가장 먼저 서구에 알린 사람은 조선 최초의 근대 관립학교인 육영공원에 교사로 와 있던 미국인 헐버트(Hulbert, Homer Bezaleel)이다. 그는 조선의 문화를 서양에 알리는 영문 잡지를 창간하고, “이보다 더 간략하게, 이보다 더 과학적으로 발명된 문자는 없다.”라고 한글을 극찬하는 논문을 실어 서양에 한글을 학술적으로 처음 소개하였다. 서재필은 한글의 가치를 깨닫고 한글체 “독립신문”을 발간하여 국민 계몽에 나섰고, 그의 제자 주시경은 국어와 국사를 연구하고 가르쳤다. 그리고 주시경의 제자들은 조선어 학회를 결성하고 한글날을 제정하였다. 또한 1929년부터 조선어 대사전의 편찬을 시작하고 한글 맞춤법 통일안과 같은 어문 규정을 만드는 등 우리말과 글의 연구, 정리, 보급을 위해 노력해 왔다.
한국어는 쓰는 인구가 8천만이 넘어 세계15위권의 언어가 되었다. 또한 한글은 정보화 시대에 컴퓨터, 휴대전화 등 소프트웨어 산업에도 유리해 다시금 그 우수성과 과학성이 입증되고 있다. IT강국으로 발전해 가는데 한글의 공헌이 컸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유네스코는 1989년 ‘세종 대왕 상’을 제정해 1990년부터 문맹 퇴치 운동에 힘쓴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하고 있고, 1997년에는 한글의 가치를 인정하여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록하였다.
이렇게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 체계적, 경제적인 글자를 가지고 우리의 전통시인 시조를 쓰는 것이 자랑스럽다. 일본에 ‘하이꾸’가 있고, 중국에 ‘율시’가 있다면 한국에는 ‘시조’가 있다. 시조는 3장 6구 45자 내외라는 짧은 글이라 외우기 편하고 기억하기 좋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한글이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라 배우고 쉽고 익히기 쉽듯 시조도 그렇다. 기본 글자수만 알면 우리의 언어를 그것에 잘 맞추어 얼마든지 활용 가능하다. 시조는 신라의 향가에 그 뿌리를 두고, 고려중엽에 생겨나 고려말 역동 우탁에 의해 완성되었다. 시조 작품을 쓰는 시조시인만의 자랑이 아니고 우리 민족의 큰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말, 우리의 글, 우리의 문학을 우리는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정서에 맞는 문학양식이 있어 그것을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는 것에 긍지를 느낀다.
그런데 이런 시조가 1920∽30년대 들어온 자유시에 밀려 제 자리를 못 찾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의 문학인이라면 누구나 시조를 알고 시조를 창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내가 속한 강동문입협회에서는 시조시인은 4명밖에 안 되는데도, 이번 선사문화축제 시화전에는 8편의 시조작품이 나왔다. 잣수도 정확하거니와 내용도 훌륭하여 형식이나 내용에서 모자라는 작품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듯 시조는 한국에서 문학을 하는 문학인이라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간단한 양식이다.
우리는 시조의 정서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왔고 어려서부터 시조를 알고 배워왔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친숙한 문학이다. 세 글자 네 글자로 의미 단위들이 끊어지는 것들이 우리말에는 많고, 그러한 우리말 음절이 자연스럽게 우리의 생활 속에 배어 있음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기에 처음에 잣수 익힐 때까지가 어렵고 그 다음은 오히려 형식이 풀어져 있는 자유시보다 쓰기가 쉽다. 자기가 말하고 싶은 주제를 가장 짧은 형식으로 독자들에게 알릴 수 있는 시조, 얼마나 매력적인가. 이렇게 좋은 우리의 문학인 시조가 있는데도 그 시조 한 수조차 창작하지 못하고, 시조를 무시하면서 한국의 문학을 논할 수 있겠는가. 한국의 문학인이라고 세계에 명함을 내밀 수 있겠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시조가 일본의 하이쿠나 중국의 율시처럼 우리의 브랜드문학으로 자리할 수 있도록 시조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문학인들은 모색해야 한다. 그것이 자존심 있는 한국문학인들이 해야 할 일이다.
시 속에 하나의 작은 분류로 시조를 인식해서는 안 된다. 무릇 생명에는 존재의 어머니가 있듯, 한국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우리 문학의 어머니격인 우리의 전통시인 시조를 외면할 수는 없다. 시조는 우리 문학의 어머니로서 대접을 해야하고, 우리의 전통시로서 하나의 큰 장르로 인정해야 한다. 또한 시조는 우리 국민 모두가 사랑해야 할 우리의 문학임을 인식해야 한다.
모든 정치인들, 교육인들, 기업인들, 대중매체전달자 등이 시조에 관심을 가지고 시조를 널리 보급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협조와 지지를 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홍보하고, 교육부, 교육청 차원에서 교사들에게 시조연수를 시켜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에서 시조를 열심히 가르쳐야 한다. 기업인들이 시조에 관심을 가지고 기업차원에서도 우리를 시조를 널리 사랑하고 보급해야 한다. 모두가 일심동체가 되어 시조사랑에 동참한다면 국내에서 시조는 금방 활성화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시조를 세계화시켜야 한다. 우리의 전통시인 시조를 하이꾸처럼 세계로 널리 퍼지게 하는 방법을 모색해애 한다. 우리를 문화를 세계에 심는, 한류열풍을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에 문학으로서는 시조가 있어야 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제펜한국본부, 한국문학번역원 등 정부차원의 지지를 얻고, 경제적 후원도 받아내어 적극적으로 시조를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할 필요가 있다.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일어, 중국어, 스페인어, 몽고어 등 세계 각국의 언어로 시조를 번역하고 그들이 우리의 시조를 읽고, 그들의 언어로 창작까지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행히 이번에 처음으로 앤솔로지 형태의 영문번역시조집(303人) 『해돋이(Sunrise)』가 (사)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에서 출간(19.10.15)되어 국제펜과 교류하는 154개국과 문학창의도시 28곳에 보낼 예정이라 시조가 세계에 조금씩 알려질 전망이다.
시조를 국내에서 사랑하고 널리 보급해야 함은 물론이고, 이제 세계화로도 뻗어 나가야한다. 한국적인 정서를 시조로 표현하고 우리의 시조로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도록 도전해야 한다. 한글이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에 문화재로 등록되었듯이 한국의 독특한 문학인 시조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재로 등재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힘을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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