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
김 민 정
겨운 삶 등에 지고 모래밭을 타박이며
얼마나 느린 발길로 너는 걸어왔을까
시간은 모래바람 속, 온 길이 다 묻힌다
너를 통해 흘러왔을 나의 강을 바라보며
뜨거운 고도 향해 휘파람을 불어가며
흑처럼 굽은 생애가 신기루로 흐른다
오랜 어둠을 깨고 멀어지는 밤 같은
한 생애 푸른 비단을 펼쳐놓은 저 달빛
속눈썹 짙게 적어든 외로운 등이 휜다
2015년 <올해의 좋은 시> <삶과 꿈> 펴냄.
언젠가 나는 과천 대공원에 가서 낙타를 본 일이 있다. 낙타의 껌벅이는 눈을 유심히 보았다. 그 슬픔에 젖은 눈은 어쩌면 광막한 초원을 그리워하는 눈이 아니라,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아득한 사막을 그리워하는 눈빛이 분명했다. 사막을 걷다가 사막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 낙타의 본성일 것이다. 낙타의 본거지는 사막이다. 초원이나 숲이 우거진 산속이 아니기 때문이다. 낙타는 사막으로 가려는 슬픈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낙타의 모든 구조는 사막에 적응하도록 꾸며져 있다. 발바닥은 뜨거운 모래밭에서 견딜 수 있도록 두텁게 되어있고, 사자나 호랑이처럼 날렵하지 못한 대신 인내심을 갖고 사막의 바다를 건널 수 있는 지구력을 神은 낙타에게 하사했다. 아무리 용맹한 사자나 호랑이라 해도 사막에서는 나약한 존재다. 도저히 사막을 건널 수 없다. 낙타만이 유일하게 사막을 정복할 수 있다. 동물 중에서 낙타보다 더 굼뜨고 느린 동물이 또 있을까. 낙타만이 사막을 정복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그래서 隊商들이 사막을 횡단하는 것은 낙타가 있음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낙타가 길을 인도해주기 때문이다.
김민정 시인이 <낙타>란 시를 썼다. 그 시를 감상해본다. 그 많은 동물 중에서 김민정 시인은 낙타에서 무언가를 찾아보려고 했던 것 같다. 우리가 낙타의 모든 것을 안다고 할 수는 없다. 이 시를 통해서 조금은 알게 된다. 이 시는 첫 수에서 낙타가 걸어온 모래바람의 긴 여정을 제시한다. 비록 거북이처럼 느린 발길이지만, 밤에 하늘의 별을 읽으며 모래에 묻힌 길을 예감으로 찾아내 목적지를 향해 전진하는 끈질김을 보여준다. 둘째 수에서 낙타가 걸어온 길이 단순히 낙타만의 여정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온 고난의 여정과 다를 바 없음을 깨우쳐준다. 어느 정점에 이르는 길이 얼마나 힘겹다는 것을 낙타를 통해서 상징적으로 입증한다. 가다가 중지하면 아예 출발이 무의미하다는 암시가 아닐까. 셋째 수에서 길의 끝은 보이지 않아도 인내심을 갖고 걸어갈 수밖에 없다는 결의가 보인다. 낙타의 젖은 눈썹의 슬픈 외로움을 통해서 지친 육신을 보게 되지만, 종착의 목적지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감지하게 되는 극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낙타여, 너는 사자나 호랑이처럼 되지 말라. 자신의 본성대로 살라. 그게 낙타의 길이고 神이 내려준 길이니...<정일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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