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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시조평

휘굽은 계절과 가을 한 잔의 환한 침묵 - <스토리문학 김민정 특집- 정용국>

by 시조시인 김민정 2014. 8. 5.

<김민정 특집 - 스토리문학>

휘굽은 계절과 가을 한 잔의 환한 침묵

                                 - 김민정 시인의 계절과 향기 -

                                                                                정용국 (시인)

칠레의 민중시인이자 사회주의 정치가였던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의 시 「침묵 속에서」는 수많은 문제들을 천착(穿鑿)하며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삶을 어디론가 몰고 가는 것에/ 그토록 열중하지만 않는다면/ 그래서 잠시만이라도 아무 것도 안 할 수 있다면/ 어쩌면 거대한 침묵이/ 이 슬픔을 사라지게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이 슬픔// 죽음으로 위협하는 이 슬픔을./ 그리고 어쩌면 대지가 우리를 가르칠 수 있으리라./ 모든 것이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이제 내가 열둘을 세리니 / 그대는 침묵하라./ 그러면 나는 떠나리라. - 「침묵 속에서」 부분 -

바쁜 우리의 눈엔 ‘모든 것이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이제 걸음을 멈추고 자연의 침묵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네루다의 경구를 마음에 새기고 있던 차에, 김민정 시인의 근작 중‘시간과 계절’이 지나가는 소리에 주목하고 있는 시편들에 마음을 붙잡혔다. 김민정의 다섯 작품 속에는 계절의 언어들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네루다의 말처럼 시인이 ‘삶을 어디론가 몰고 가는 것에’서 한 발 물러서서 ‘침묵’의 눈으로 자연과 조응하고 있음을 보았던 것이다.‘아카시아 꽃내음’을 맡고 ‘휘굽은 봄’을 건너서 ‘먹빛 구름 여름 한낮’의 안부를 묻기도 한다. ‘잘 익은 가을 한 잔’을 다소곳이 전하는 자연의 변화와 순리들을 녹여 낸 작품들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말갛게 언 산사 아침 감나무 끝 앉은 까치

동백 숲에 내린 햇살 담뿍 받아 입에 물고

이른 봄 / 푸른 적막을 / 하늘에다 옮겨 심네

 

선명하게 도드라져 빗금으로 그어지는

귀퉁이 두어군데 헤지고 닳아져도

음각된 / 울음소리가 / 하늘 가득 번지네    -「선운사 아침」전문 -

 

조사를 말끔하게 지워버리고 문을 연 첫 수에는 겨울의 한기가 서려있는 이른 봄 산사의 아침 정경이 소담하게 그려져 있다. 옅은 수묵으로 한가득 펼쳐진 고요를 ‘울음소리’가 조용히 흔들어 놓고 간다. 한지에 스민 농담(濃淡)이 아련하여 까치 울음소리마저도 ‘음각’이다. 양각은 자신을 드러내고 부각시키지만 음각은 자신을 감추면서도 깨끗하고 오롯하게 자신의 모습을 전하는 기법이다. 고창 선운사는 대웅전 뒤 붉게 피는 동백으로 유명한 사찰이다. 그러나 시에서 동백도 감나무도 그저 조연이고 까치와 울음소리가 주인공이다. 주인공 까치는 ‘동백 숲에 내린 햇살’을 ‘하늘에다 옮겨 심’고 있다. 아마 까악까악 우는 모습을 멀리서 보고 이렇게 표현한 것인데 하늘과 까치의 교신으로 상징된 자연의 조화로운 봄 풍광 속에 상서로운 기운의 힘이 느껴진다. 하늘이 보내는 기운을 까치소리를 빌려 다시 하늘에 올리는 응답은 ‘선명하게 도드라져’ 맑고 투명한 모습이지만 ‘귀퉁이 두어군데 헤지고 닳아져’서 오히려 은근하고 친밀감이 증폭되는 모습으로 독자들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선다. 맑은 하늘같은 화폭에 소리가 번져 가는 공감각의 이미지들이 서로 조응하고 얽히며 엮어내는 직조 기법이 아름답다.

현대 문명은 대체적으로 자연의 순리에 역행한다. 지금부터라도 인간중심의 개발과 혁신을 자연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 절실하다. 그 상생의 길 위에 김민정의 시가 있다. 하늘과 소통하고 슬기롭게 조응하며 우주의 기운을 서로 나누는 자연과 인간의 길이 조붓하게 그려진 시는 다시 보면 가볍지 않고 가늠하기 어려운 깊이를 가지고 있다.

「선운사 아침」이 아직 한기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의 정경이었고 이번에 소개할 「휘굽은 봄」도 동백꽃이 피어 있으니 엇비슷한 계절로 보여 진다. 동백꽃이야 겨울에 핀다지만 봄까지 오래 남았다가 어느 날 목을 꺾고 뚝 떨어지는 무정한 분이시니 ‘직활강의 햇살’과는 궁합이 잘 맞는다 해야겠다.

 

해미읍성 호야나무 / 구부정히 자라온 봄

순교의 가지마다 / 잎눈이 늘 새롭다

휘굽은 / 해안선 너머 / 흰 피를 쏟는 파도

동백꽃에 내려꽂는 / 직활강의 햇살들도

침묵도 모자라는 / 원적외선 네 사랑도

굽어져 / 생이 서러운 / 호야나무 닮았다     -「휘굽은 봄」전문 -

 

‘휘굽다’라는 단어는 사전에 없는 말이지만 우리는 ‘휘어지고 구부러진’이라고 쉽게 해석할 수 있다. 이 형용사는 해미읍성 회화나무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나무가 휘굽어 있는 상태는 물론이고 멀리 보이는 해안선에서 ‘봄’의 처절한 상황까지 의미를 확장하며 중의적으로 쓰이고 있다. 일명 호야나무라고 불리는 해미읍성 회화나무는 병인박해 때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교수형에 처해지거나 이 나무에 매달린 채 화살을 맞기도 해서 교수목(絞首木)이라 불렸다니 얼마나 많은 죽음을 목도했을 것인가. 그랬으니 나무도 휘어지고 이것을 바라보는 시인의 봄마저도 휘굽어졌다. 순교라는 단어는 극 존칭어이다.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다른 어느 것과 바꾼다는 것이 일반인들에게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지대한 말씀을 붙여 예우한 것이리라. 그 호야나무는 ‘순교의 가지마다’ ‘잎눈이 늘 새롭’게 오랜 세월 동안 살아남아서 잎을 내밀고 슬픈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휘굽은’ 죽음의 나무가 ‘휘굽은’ ‘해안선 너머’ ‘휘굽은 봄’을 지탱하며 ‘동백꽃에 내려꽂는/ 직활강의 햇살들도// 침묵도 모자라는/ 원적외선 네 사랑도’ 주인공의 어느 슬픈 사랑에 와 닿고 있음에 독자들은 놀랄 것이다. ‘직활강’과 ‘원적외선’이라는 시에서는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전문용어들이 강력하게 ‘네 사랑’을 받들고 있다. 비탈을 곧바로 질러 내려가는 ‘직활강’과 가시광선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살균력이 강한 열을 품고 있는 ’원적외선‘의 힘이 당도한 곳은 바로 호야나무이다. 얼마나 강한 사랑이기에 그 모진 박해를 이겨낸 호야나무를 닮은 것일까. ‘침묵도 모자라는’ 상황은 얼마만큼 혹독한 상황일까. 네루다가 말한 ‘거대한 침묵’의 뿌리가 호야나무에 닿아 있다. 모든 생명이 살아나고 생명을 잉태하는 ‘봄’에 ‘휘굽은’이라는 슬픈 형용사의 올가미를 씌워 놓았지만, 결국 그 혹독한 봄을 닮은 사랑도 슬픔을 극복하고 수백 년의 생명을 이어 온 해미읍성 호야나무와 같이 무장무장 질기고 푸른 목숨을 지켜 갈 것이다.

김민정 시인이 이번 특집에 보내 온 시조 다섯 편 속에는 각각 계절의 향기가 가득 들어 있었다. 계절의 아름다움뿐만이 아니라 그 속에 숨어 있는 아픔과 역사까지도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이번에 소개할 작품에는 유년 시절 아버지 모습과 계절의 이미지가 섞여 있는 모습이 보인다. 사람들은 누구나 부모님과의 특별한 장면들을 간직하고 있고 그 유년의 추억들은 성년이 되어 재인식되고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기찻길 아스라이 / 한 굽이 돌 때마다

아카시아 꽃내음이 / 그날처럼 향기롭다

아버지 / 뒷모습 같은 / 휘굽어진 고향 철길

 

돌이끼 곱게 갈아 / 손톱 끝에 물들이고

새로 깔린 자갈밭을 / 좋아라, 뛰어가면

지금도 / 내 이름 부르며 /아버지가 서 계실까     -「심포리 기찻길」전문 -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 있는 심포리역은 지금은 폐역이다. 근처는 해발 720미터의 통리재가 있어서 청량리에서 출발한 기차들이 예전에는 스위치백 시스템으로 고개를 넘을 수 있었다. 여기가 김민정 시인의 고향이다. 『영동선의 긴 봄날』이라는 시조집을 낸 바 있는 그에게는 철도청에 근무하셨던 아버지가 계셨다. 그래서 철도와 관계가 깊은 작품들을 연이어 쓰며 유독 고향과 자신의 유년을 그리워하고 있다. 이 작품에선 봄이 지난 초여름의 모습이‘아카시아 꽃내음’이라는 후각 이미지를 통해 전해진다.

‘휘굽어진 고향 철길’이 나오는데 낯이 익다. 호야나무 휘굽어진 모습과 겹쳐진다. 강원도의 철길이니 휘굽기 일쑤다. 그런데 ‘아버지/ 뒷모습 같은’이라는 수식어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무슨 연유로 아버지의 인생은 ‘휘굽어진 ’것일까. 따지고 보면 어느 누구의 인생도 다 휘고 굽어진 법이니 곧고 반듯하기만 한 삶은 아마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버지 세대는 일제 강점기와 전쟁과 가난, 그리고 재건이나 중흥의 발자국으로 시끄럽고 고단한 실정이었으리니 눈을 감으면 부모 세대의 곤고함이 손에 잡힐 듯 빤한 시절이었다. 고단하고 힘들었던 시절일수록 추억의 그림자는 짙게 마련이다. 가난과 배고픔까지도 아련하게 번져오는 향기려니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은 지금의 상황이 당시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부유해졌기 때문이리라.

첫 수에서는 고즈넉한 철길의 풍경이 다소곳이 놓여 있는 가운데 아버지의 뒷모습과 철길을 아스라이 대치해 놓으며 부친의 생을 부각시키다가 둘째 수에서는 자신의 과거를 펼쳐놓으며 긴 시간 사이를 서성이고 있다. 봉숭아로 들이는 손톱물이 아니라 드물지만 돌이끼에 침을 발라 으깨면 끈적끈적하게 생기는 이끼로 손톱에 물을 들이던 기억과 철길에 자갈이 새로 깔려 좋아했던 유년의 추억을 복기하며 돌아올 수 없는 아버지를 호명하고 있다. 그저 평온하고 늘 같은 모습인 철길에서 시인은 아버지를 간곡하게 그리워하고 있는데 마치 그 그림은 소면을 끓여 찬 물에서 건져 발우에 담아내고 곁에 양념간잔 하나만 얹어 낸 소반을 보는 느낌이다. 아카시아 향과 고향 철길, 손톱물과 자갈돌 등의 소품들은 모두 양념간장 속에 고춧가루와 깨소금과 참기름으로 들앉아 있기 때문이다.

이른 봄에 떠난 김민정 시인의 발길은 소나기 내리고 무더운 한 여름에 이르러 있다. 조용하기만 하던 분위기도 조금씩 들뜨고 일렁대며 고조되는 듯하다.

 

소나기를 머금은 듯 먹빛 구름 여름 한낮

적막도 접어놓고 안부를 묻고 있다

웃음도 / 울음도 아닌 / 무더운 날의 악수

 

내 명치 / 한가운데 / 감히 네가 들어앉다

불길은 불길대로 물길은 물길대로

그렇게 가고픈 곳으로 흐르거라 마음껏,   -「의 문부호」 전문 -

시인은 잠시 발길을 멈추고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본다. 이른 봄의 정경과 휘굽은 봄과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눈길을 거두고 자신의 내면세계로 돌아와 침잠해 있다. ‘소나기를 머금은 듯/ 먹빛 구름 여름 한낮’으로 문을 여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곧 소낙비 한 줄기가 쏟아질 형상인 듯, 마음의 울화가 폭발 할 듯 ‘웃음도/ 울음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으로 ‘무더운 날의 악수’가 이루어진다. 서로 인정할 수는 없지만 일단 손을 잡고 한 숨을 돌리고 있다. 서로 묻는 ‘안부’ 앞에 ‘적막도 접어놓고’ 질풍노도가 몰아치려는 순간에서 첫 수를 접고 있다.

그러나 이도 잠시 둘째 수 초장은 단도직입이다. ‘내 명치 한가운데/ 감히 네가 들어앉다’ 핵심어는 당연히 부정 의미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는 ‘감히’라는 부사이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자신의 신분이나 능력 따위를 넘어서서 주제넘게) 그것도 다른 곳이 아닌 ‘명치’에 들어와 앉아버리다니 시인의 감정은 일순 폭발 직전이다. 목숨의 문이라고도 할 만큼 중요한 급소라 불리는 ‘명치 한가운데’ ‘감히’ 들어앉은 ‘너’의 정체는 무엇일까. 뒤늦게 달아오른 열정일 수도 있겠고, 늘 골머리를 않게 하는 자식의 문제일 수도 있겠고, 늘 관조하고 직시하며 키워오던 시의 씨앗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인은 다급하게 감정을 방출하고 만다. 초장의 긴박함을 조금만 더 뜸을 들였으면 싶었는데 ‘불길은 불길대로/ 물길은 물길대로’ 화끈하게 정리해 놓고 감성의 벽을 허물고 있다. ‘너의 정체’와 폭발 직전의 감정을 모두 묻어 두고 방출해 버린 시인의 의도를 궁금해 하며 자꾸 뒤돌아보는 눈길에 ‘의문부호’가 빙긋 웃으며 혀를 내밀고 있다. ‘먹빛 구름 여름 한낮’ 소나기는 내렸는지 그냥 개고 말았는지 시는 끝까지 ‘의문부호’를 남기고 있다. 여기까지가 시인의 의도된 작업이라면 독자들은 이미 큰 주먹 한 방을 먹은 것이다.

 

 

하늘은 마냥 높고 / 물빛마저 여문 계절

가을햇살 등에 업고 / 유유히 날고 있는

잘 익은 / 가을 한 잔을 / 그대에게 따릅니다

 

내미는 손길마다 / 디디는 걸음마다

꽃등처럼 환해지는 / 저 가을 한가운데

더러는 / 열매로 남는 / 기도가 있습니다     -「가을 한 잔」 전문 -

 

어느덧 시인의 발길은 한적한 가을에 와 있다. 들끓던 어질머리와 분노의 감정들이 모두 가라앉고 시인은 뒷짐을 진 채 고향 철길 옆을 걷고 있는 듯하다. ‘하늘은 마냥 높고’로 시작하는 모습에 ‘이거 너무 가라앉은 거 아닌가’ 하다가 시인이 느닷없이 내민 ‘잘 익은/ 가을 한 잔’을 받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게 된다. 이 작품을 지면 제일 뒤로 넘긴 것은 글을 열며 네루다의 침묵을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레 그리 되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어디론가 몰고 가는 것에/ 그토록 열중하지만 않는다면/ 그래서 잠시만이라도 아무 것도 안 할 수 있다면/ 어쩌면 거대한 침묵이/ 이 슬픔을 사라지게 할지도 모른다’라고 외친 네루다의 ‘침묵’은 과연 위대하였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가을 한 잔’ 쯤의 여백이, 목마름을 거두어 줄 국화차 한 잔 쯤이 절실하였던 것이다.

다급하지 않고 여유롭게 ‘내미는 손길마다/ 디디는 걸음마다’ 거대한 슬픔을 삭혀주고 등을 두드려 감싸 안는 ‘꽃등처럼 환해지는/ 저 가을 한가운데’ 분명 우리들의 기도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김민정의 시를 따라 걷다 보니 이제 가을이 한창이다. 그의 계절들과 향기가 아직 코끝에 남아 있다. 화려하지 않고 세련되지 않으면서도 환했던 김민정의 ‘가을 한 잔’은 이미 침묵에 가깝다. 이 시대에 상처 받지 않고 세상을 건너기란 쉽지 않다. 유난하게 답답하고 먹먹했던 봄과 여름의 마른장마를 견딘 몸들과 정신들이여. 너무 안쓰럽고 고단했다. 모두 ‘열매로 남는/기도 ’를 주워들고 네루다의 침묵을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의 마지막 구절을 되뇌며 글을 맺는다. 침묵은 위대하다.

이제 내가 열둘을 세리니 / 그대는 침묵하라./ 그러면 나는 떠나리라.

정용국 : 경기 양주 생. 2001년 계간 『시조세계』로 등단. 2014 아르코문학상 수상. 시집『명왕성은 있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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