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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시조평

철책선과 휴전선, 그리고 시 - 박기섭 (『월간문학』 2014. 8월호 시조평)

by 시조시인 김민정 2014. 8. 3.

철책선과 휴전선, 그리고 시 / 박기섭

 

  세상에는 참 시인도 많다. 어제까지 시의 독자요 햐유자였던 사람이 오늘 갑자기 명함을 바꿔 들고 나타난다. 먼 길의 동행을 자처하며 함께 어깨를 겯자 한다. 어떤 위는 귓불 붉은 청춘의 피를 받아 오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생의 해거름에 비낀 햇살을 쓸어 담아 오기도 한다.

  지금 이 땅에 존재하는 시인의 유형은 참으로 천차만별이다. 존재의 본질에 한 발짝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잠을 설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끊임없이 자연을 찾고 자연과 교감하며 생태 환경이나 생명의 비의를 모색하기에 여념이 없는 이들도 있다.

  그뿐인가. 때로 들끓고 때로 요동ㅊ는 사회 현실에 밀착해서 그 속에 옹송그린 생존의 진실을 끄집어내는 데 진력하는 부류도 있다.

  어느 경우에건 시인 자신의 감각이나 사유에 문제가 생기면 그가 쓴 시에도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어련무던한 감각은 어련무더한 시를 낳고, 두리뭉실한 감각은 두리뭉실한 시를 낳는다. 첨예한 사유가 첨예한 시상을 일깨운다면, 웅숭깊은 사유는 웅숭깊은 시의 세계를 이끌어 낸다.

   핵심은 자기 갱신에 있다. 자기 타협을 일삼거나 타성에 빠진 이는 그만큼 햠량 부족의 시인으로 평가받을 개연성이 높다. 이미 한 사람의 창조자로서 그 존재 가치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 달에는 앞에서 말한 여러 부류 가운데 현실 인식이 두드러진 몇 편의 작품을 살펴보기로 한다. 

 

  비무장지대/ 화해와 긴장 속에 철책선은 뻗어 있다/ 보고가 필요 없는 갈매기들 이착륙이/ 사는 건 공존이라고 끼룩끼룩 일러 준다

 

  상팔담/ 천 년을 곰삭여도 사랑은 늘 아픈 것/ 적막강산 달이 뜨면 선녀는 돌아올까/ 개골산 수척한 그림자 나뭇꾼이 얼핏 뵌다

                                - 김민정, 「금강시편」부분

 

  우리 나라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다.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이라면 누구나 분단 현실에 자유롭지 못하다. 생래의 부채의식이 작용하는 까닭이다. 동족상잔의 상흔은 세월이 가도 아물지 않는다. 인용한 작품에서도 그 상흔의 일단을 읽을 수 있다. 그것은 분단국가의 시인이 아니고는 상상하기 힘든, 이른 바 '날 것의 사유'다.

  「금강시편」은 일종의 기행시편인데, '비무장지대'를 넘나든다는 점에서 그 여정은 다른 여느 경우와는 사뭇 다르다. "화해와 긴장 속에" "뻗어 있"는 "철책선이" 남북의 대치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여기서 말하는 '화해와 긴장'은 이데올로기의 양측면이자,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끼룩대는 "갈매기들"을 그냥 무심코 바라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감정도 막상 금강산에 닿으면 사정이 달라진다. 눈길이 곳곳의 비경을 좇기에 바쁜 것이다. 이는 온전히 금강산이 가진 자연의 힘이다. 구룡폭포 위쪽에 펼쳐진 '상팔담'은 '나무꾼과 선녀'의 배경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이 작품 또한 그 설화의 잔흔에서 출발한다. 문제는 "적막강산 달이" 떠도 "선녀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데 있다. 재회의 꿈은 한낱 헛된 기대일 뿐이요, 현실은 다만 겨울 금강산에 "얼핏 뵈"는 "수척한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알기는 칠월 귀뚜라미'라는 속담이 있다. 무슨 일이든 안다고 자랑하며 나서는 사람을 꼬집어서 하는 말이다. 또 '아는 법이 모진 바람벽 뚫고 나온 중방 밑 귀뚜라미라'는 말도 있다. 세상 이치에 달놏하여 매사를 훤히 꿰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앞의 것은 부정의 뜻이 강하고, 뒤의 것은 긍정 쪽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 땅의 시인들이여. 왕이면 '칠월 귀뚜라미' 말고 '중방 밑 귀뚜라미'가 될 일이다. (월간문학, 2014. 8월호 시조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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