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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시조평

철도시인 김민정, "철도는 나의 영원한 고향" (뉴시스 인터뷰)

by 시조시인 김민정 2014.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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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철도시인 김민정 "철도는 나의 영원한 고향"
등록 일시 [2014-06-24 06:00:00]최종수정 일시 [2014-06-24 06:50:52]
【태백=뉴시스】홍춘봉 기자 = 철길 옆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철도관련 시를 쓰고 있는 국내 유일의 철도와 ‘숙명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김민정(55) '철도 시인'이 지난 22일 서울숲 길에서
철도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14.06.23. casinohong@newsis.com 2014-06-23
태백=뉴시스】홍춘봉 기자 = 국내 유일 '철도시인' 김민정(55·여·사진)씨는 철길 옆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철도관련 시를 쓰고 있는 철도와는 숙명적 관계를 맺고 있다.

김민정씨는 "부친이 철도 공무원을 하시다가 (열차 때문에)부상을 당해 건널목지기를 하신 탓에 철도는

항상 애잔하고 고향처럼 포근한 단어"라며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심포리 철도 건널목 근처가 고향이고

태어난 곳이기에 철도는 나의 운명"이라고 말했다.

'영동선의 긴 봄날', '추전역', '도계역' 등 그는 철도와 관련된 시를 100편 이상 발표해 한국철도공사로부터

유일하게 '철도시인' 공로패를 받기도 했다.

사실 태백과 삼척 정선 등 태백탄전지역은 철도를 떠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태백선 철도는

태백탄전과 국내 석탄산업에도 큰 기여를 해왔다.

태백과 삼척, 정선 등 삼척탄전은 해방이후 국내 석탄산업을 주도한 에너지 보고였으며 자연히 철도가

속속 개설되면서 수도권으로 무연탄 수송이 원활해 졌기 때문이다. 탄가루 풀풀 날리는 철도변에서

사춘기를 보낸 문학소녀 김씨는 요란한 기차 소음과 궤도와 마찰하는 쇳소리조차 오히려 정겨울 정도로

남다른 애환을 품고 소녀시절을 보냈다. 지난 4월 국내에서 가장 높은 태백 추전역에 그의 시비가 세워진

뒤 지난 22일 오후 서울 숲길에서 철도시인을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철도시인이라는 표현이 생소하다.

 



"어린시절 철도는 저의 모든 것이었다. 부친이 철도 공무원을 하셨고 열차로 부상을 입고 건널목 간수로

근무하다가 정년을 맞았다. 당연히 나는 심포리 철도변에서 철도와 함께 생활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기찻길을

보고 기적소리를 들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철길을 걷고 철길 옆에서 살며 철도에 애정과 사랑이 깃들었다고

생각된다. 여고시절 시를 쓰며 문학소녀 꿈을 키웠다.이후 시인으로 등단한 뒤에 철도 관련 시와 시조를 많이 쓴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도계역과 흥전 심포 통리 역 등 폐선된 역을 시에 달고 ‘영동선의 긴 봄날’이라는 시집도 발표했다. 지난 2009년

경의선 복선전철이 개통될 때는 축시도 했고, 지난 5월 4일 평화열차(서울역~도라산역)개통 때는 이를 기념하는

시도 발표했다. 철도 관련 시를 자주 그리고 많이 쓰다보니 철도공사에서 철도시인으로 인정해 준 것으로 생각한다.

아버지의 산소도 고향 철도변에 모셨다. 나는 철도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는 인연을 가진 사람인 것 같다."

 



-철도에 남다른 애정과 사연이 많다.

"그렇다. 1988년 부친의 묘소에서 당신에 대한 그리움이 많이 사무쳤다. 그러면서 영동선의 긴 봄날은 20년만에

시를 완성했다. 스위치백으로 유명한 도계 심포리에서 태어나 철도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철도가 놀이터

였고 생활의 모든 것이었다. 스위치백 노선이 폐선돼 아쉬웠는데 다행히 스위치백리조트(추추파크)가 오는 8월

개장하게 돼 너무 기쁘다. 영동선 철도는 과거 탄광촌의 희노애락을 담고 있는 역사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고향 심포리에 제 시를 시비로 세워주시겠다고 하여 더욱 기쁜 마음이 들고 설레이고 있다.철도가 생기

 

면서
무연탄이 수도권과 전국에 대량 수송됐고 지역도 발전했다. 탄광촌의 역사는 철도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

 

으며
탄광촌에서 철도는 생명이나 마찬가지였다. 철도공무원인 부친으로 인해 우리 6남매가 생계를 해결했다.

 

철도변에
집을 마련하신 부친 때문에 철도는 생활의 전부가 되기도 했다. 친구들과 놀이도 철길에서, 학교를

 

다녀 올 때도  철길로
다녔다. 지금도 고향에 가면 철길을 둘러보며 그 때를 회상하고 있다."

 



-아직도 문학소녀의 순수함이 살아 있다.

"부끄럽다. 취학 전에도 기억나는 것은 철길에서 놀며 꿈을 키웠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유난히

 

글읽기와
쓰기를 좋아했다. 등교와 하교시간에 철길을 따라 걸으며 문학소녀의 꿈을 키웠는지도 모르겠다.

 

철길이 그렇게 포근했고
항상 놀이기구나 이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여중에 다니면서는 시를 읊고 시를 쓰기

 

위해 고민하던 꿈 많은 문학소녀였다.

6남매의 막내인 나는 서울에 사는 오빠 덕분에 중고등학교는 서울로 유학을 와서 '촌티 가득한' 도시소녀로

 

지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겨 26살에 성균관대 국어

 

국문학과에 진학했다.
늦은 진학이었기에 더 열심히 공부했다. 부전공으로 교직을 택했고 1985년 꿈에 그리던

 

시인으로 등단했다. 아름다운 완도
보길도 예송리 해변을 노래한 시인데 샛별을 바다에 띄우고 있는 바다가

 

너무 아름다워 이를 표현했다. 시조문학 창간 25주년
기념 지상백일장에서 장원에 뽑혀 등단하면서 문학소녀

 

의 꿈이 이뤄졌다."

 


-철도문학에 대해 포럼에서 발표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 철도사를 살펴보니 철도와 관련된 시가 여러 편 나와 있다. 가장 최초로는 최남선 선생이 1908년에 쓴 창가

'경부철도가'로 다양하게 철도를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인 1933년 김기림 선생이 발표한 '심장 없는

 

기차'는
당시의 시대와 민족 상황을 가슴 아프게 기록하고 있다. 철도는 우리에게 봉건시대의 굴레를 벗겨내는

 

촉매 역할도 했고
전국을 단일한 경제권과 의사소통 공간으로 바꿔 놓은 역사적인 사건을 만들었다고 본다.

지난 2009년 7월 1일 경의선 복선전철 복선화 되는 날은 ‘경의선 기적소리여’란 시로 경의선 기적소리가 북한까지,

 

유라시아까지  이어지기를 원했다. 

 

 

그리고 지난 5월 4일 서울역과 도라산역 간의 평화열차 개통식 때는 'DMZ 평화열차' 개통축시도 발표했다. 아쉬운

기억으로는 지난 2012년 6월 26일 통리역, 심포리역, 흥전역, 나한정역 폐선되는 날이라고 생각한다. 강릉에서 청량

 

리까지
운행되는 마지막 열차가 운행되던 날 초청돼 영상시를 낭송 한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앞으로 꿈이라면 국내 철도 문학을 정리해 발표해 보고 싶다. 많은 날과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지만 어차피 철도시인

 

으로
불려지는 사람으로서 꼭 해보고 싶은 작업이다. 지난 1988년 심포리 부친의 묘소를 찾았을 때 나는 철도와 떼려

 

야 뗄 수
없는 인연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는 성균관대 문학박사, 상지대학교 대학원 강사를 거쳐 현재는 서울 강일중학교 부장교사로 재직하며

한국여성시조문학회장, 강동문인회 부회장,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 서울교원문학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한국본부, 여성문학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 그는 공간시인 본상, 성균문학 우수상, 나래시조문학상, 열린시학상, 철도시인 공로상 등을 수상했다.

casinoho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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