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요 혹은 고요
대개 시조 양식이 노래하는 것은 격렬한 파열음이 아니라 완경성 있는 어떤 화음의 세계이다. 그 점에서 거칠고 가파르고 시끄러운 것보다는 부드럽고 완만하고 고요한 세계가 단연 시조미학의 정수 권역으로 채택된다. 그래서인지 시인들은 '적요' 혹은 '고요'의 세계를 즐겨 발견하고 구성한다. 이 때 시 안에 단정하게 들어앉아 있는 사물들은 소리를 내지 않고, 그것을 안으로 웅크린 채 고용하게 출렁히고 있을 뿐이다.
마애석불
홀로 앉는
도솔암 댓돌 위에
흰 고무신 한 켤레 누구를 기다리나
그리움
뒷짐지고서
눈만 내리 감은 날
- 김민정 「도솔암 적요」전문 (『나래시조』 2007. 여름.)
마애석불만이 홀로 앉아 있는 도솔암 댓돌 위에는 소리 하나 없이 "흰 고무신 한 켤레"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아니 그냥 그저 그렇게 있을 뿐이다.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마애석불과 그저 한 켤레 신발로 은폐된 채 비유되고 있는 어떤 사람의 대조를 통해,시인은 "그리움/ 뒷짐지고서/눈만 ㄴ매리 감은 날"의 그 선명한 적요를 구성해낸다. 뭇 사물들은 숨죽인 채 그 적요에 모두 동참하고 있을 뿐이다. 그 순간 그 침묵을 비집고 뒷짐진 '그리움'은 소리를 철저하게 안으로 숨긴 채 침묵으로 역동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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