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서가 / 박선양 시인이 뽑은 신간
"청산을/ 넘지 못해/ 물소리로/ 우는 강물,//
강물을/ 건너지 못해/ 바람소리/ 우는 저 산//
아득히/ 깊고도 푸른 정/ 한 세월을/ 삽니다."
-김민정 '어라연 계곡' 전문
"호박, 버섯 볶아놓고// 오이, 계란 송송 썰고//
국수 삶아 건져내고// 김까지 뿌린다고//
아내가 멸치를 까란다,// 베개를 홱 뺏으며."
-채천수 '단란' 전문
조선왕조에서는 선비가 갖추어야 할 덕목의 한 축으로서 詩․書․畵를 필수로 삼았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詩․書․畵에 능한 선비시인을 만날 수 있다.
물론 가정이지만 위 두 분의 시를 각각 그림으로 그리고 그 위에 위 작품을 얹는다고 한다면 한 분의 詩는 한 폭의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가 될 것 같고, 또 한 분의 詩로는 風俗畵로 꾸미면 썩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번에 만나게 되는 일곱 분의 작품들이 모두 위 두 분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읽는 즐거움과 보는 즐거움까지 더해줄 것이기에 시화전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자세로 천천히 음미해 보기로 하자.
먼저 김민정 시인의 『지상의 꿈』(고요아침, 148쪽, 값 6,000원)은 지금도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시는 노 시인 백수선생이 서문을 쓰셨고, 시인 스스로 白水論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는 점에 특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 글 머리에 뽑아 실은 「어라연 계곡」도 물론 김민정 시인의 작품이다.
이지엽 "라고 선생은 시인의 작품을 해설함에 있어 "김민정 시인은 이미지스트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과연 시인은 이미지스트답게 기쁘다고 들뜨지도 않고, 슬프다고 가라앉지 않으며 절망과 좌절까지도 한 폭의 수채화로 그려내고 있다. 그렇다면 시인의 절망과 마주할 때는 또 어떻게 심성을 다스릴까.
선술집 / 유리창에 / 희미하게 번져나는 /
질펀한 / 생의 우수 / 무너지는 한숨 소리 /
찢겨진 / 한 자락 삶을 / 저 사내는 우는구나 //
과육처럼 / 달콤했던 / 한 때의 꿈이었나 /
갈 곳 없는 / 시간들을 / 줍고 있는 어떤 실직/
아득한 / 절망 한 잔을 / 쓰디쓰게 마시는 //
- '어떤 실직' 전문 (풍경'98)
위의 작품은 「풍경'98」이라는 부제가 붙은 것으로 자칫하면 음산하고 칙칙한 분위기로 떨어질 수 있는 내용을 시인 특유의 솜씨로 "갈 곳 없는 시간들을 줍고 있는 실직"이라고 차분하게 재기의 희망을 빚어내고 있다.
이 외에도 시인의 시집에 실린 거의 모든 작품들이 그 어떤 경우에 처하더라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있으니 시어 선택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인이나, 시인 지망생들이라면 옆에 두고 소리 내어 낭송해 보면 정신건강에 유익하리라. (나래시조 78호, 2006 여름호)
'김민정 시조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타클라마칸 사막 - 가슴으로 읽는 시조 / 정수자 (조선일보, 20140618) (0) | 2014.06.19 |
---|---|
황지연못 시비 건립 - 국방일보 (0) | 2014.04.16 |
이미지, 혹은 역사와 시간의 향연 <김민정 시조평 - 황치복 교수> (0) | 2013.11.08 |
시조의 달인을 간구하며 / 정완영 (0) | 2013.09.20 |
예송리 해변에서 (0) | 2013.09.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