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시인의 박물지(博物誌)
-金珉廷의 「사람이 그리운 날엔 기차를 타라」
소설가 산정 김익하
시인 정일남 회장님이 5월(2010년) 삼우회 모임이 있기 전, 저에게 귀띔을 했습니다.
"삼우회에 젊은 피가 수혈될 것 같아. 50대고 도계출신 김민정 시조시인이야. 요번 모임에는 참석하지
않지만 다음에는 분명 올 거야. 그의 블로그를 찾아 봐. 작품도 아주 좋아."
외로운 산행을 하는 심마니가 하늘의 것을 찾아낼 때처럼 목소리에 흥분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50대가
젊은 피라?! 하기야 회원 평균 연령이 6 ‧ 70세를 넘나드니 과장은 분명 아니었지요.
숙제를 떠맡은 저는 염탐꾼처럼 김 시인의 블로그에 숨어들었습니다. 그리고 강아지가 전봇대에다
가랑이를 들듯 다녀간 표시로 토막 댓글을 남겼지요. 그게 5월 중순의 일입니다.
그리고 손위처남의 부음을 받아 고향에 내려갔다가 돌아오니 김 시인의 수필집 「사람이 그리운 날엔
기차를 타라」가 우렁이처녀처럼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더는 김 시인에 대한 궁금증을 가질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 책 하나로 그에 대한 궁금증은
후련하게 해소되었기 때문입니다. <도서출판 고요아침>에서 펴낸 302쪽인데, 4부로 나눠져 있었지요.
요즘 영상세대의 독서 경향을 반영하듯 사진을 삽입하기 위해 고급지질을 택했고, 그 사진에 대한 출처를
분명히 밝혀 시적(詩的) 외연(外緣)에도 깔끔히 정리하여 그것으로도 성격의 디테일함을 읽어낼 수 있었
습니다. 그 4부에는 그 동안 써 발표했던 시조들이 본문과 연관되어 마치 배추김치 양념 속처럼 갈피갈피
맵싸하게 숨어있었지요. 제가 자란 곳에서 가깝고, 또한 같은 연대의 강원도의 정서의 영향인지 1부의
「내가 타고 온 기차」를 읽어나갈 때는 제 자신의 일기를 읽는 듯 연상착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시조로써 풀어내지 못한, '때로는 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산들이 여미며 여미며 틔워놓은 것 같이 아스라이
보이던 이름다운 도계읍과 심포리(본문 58쪽 내가 타고 온 기차 -스위치백 철로에서) '의 철로변의 박물
(博物)들을 국어교사답게 산문적인 논리를 해치지 않고 정교하면서도 명쾌하게 묘사해서, 그 대상을 어루
만져 보지 않아도 능히 그것들의 형체와 정서를 꿰뚫어 읽는 이의 눈앞에 옮겨놓았던 탓입니다. '마끼(강삭
철도(鋼索鐵道)’니, 어린 것을 등에 업고 산탄(散炭)을 줍는 여인이, 또 ‘너와집’"코클’, 아니 ‘밥만
먹고 똥만 쌀 줄 아는 도계년’(본문 57쪽)까지.
그것들은 세월의 삽질로 우리 주변에서 잊어지고 묻혀가는 박물이기에 애련함이 각별하여 명치끝에 걸리는
것들이지요. 그러기에 읽은 뒤의 글맛은 아주 오래도록 남았습니다.
그에게 그의 스승인 김구용(金九庸) 시인이 일렀지요.
'문학을 하는 것은 외로운 일이다. 아니 외로울 때라야만 문학다운 문학이 나오는 지도 모를 일이다. 혼자서
깊은 생각에 잠겨야 하고, 다른 작품을 많이 읽고 작품에 대하여 끝없이 고뇌하고 다듬고 고치면서 새롭게
창작해야 하는…… 문학을 한다는 것은 자신과 끝없는 싸움이며, 고독한 작업이다.'
원전은 당송의 팔대가 구양수(區陽修)의 글에서 비롯되었지요. '글을 잘 짓자면, 많이 보아야 하고, 많이
써야 하고, 많이 생각해야 한다.(爲文有三多; 看多, 做多, 商量多)'이지요. 문학을 했다하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봄직한 말이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다시 한 번 맞닥뜨리는 이 말의 진의(眞意)를 새삼 깨달아 얼치기로
설렁거리는 글쓰기에 쓴 약이 될 것 같았습니다.
하기야 몇 천 년을 넘어오는 말이라 새삼 그 진의에 뭐라 토를 달아 보태겠습니까.
다음은 그의 등단작품입니다.
(188쪽에서 189쪽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예송리 해변에서
돌 구르는 밤의 저쪽
퍼덕이는 검은 비늘
등솔기며 머릿결에
청청히 내린 별빛
저마다 아픈 보석으로
이 한 밤을 대낀다
낙지회 한 접시에
먼 바다가 살아오고
맥주 한 잔이면
적막도 넘치느니
물새는 벼랑에 지고
어화등(漁火燈)이 떨고 있다
당신의 말씀 이후
살이 붙고 피가 돌아
삭망의 별빛 속에
드러나는 능선이며
때로는 샛별 하나쯤
띄울 줄도 아는 바다
가슴속을 두드리며
깨어나는 말씀들이
맷돌에 갈린 듯이
내 사랑에 앙금지면
바다도 고운 사랑 앞에
설레이며 누웠다
그가 고백하듯이 그의 작품은, 자존심 하나로 나무를 다듬는 정원사의 손길로 다듬어낸 정원수처럼
골격만 드러나서 잡티 없이 간략합니다. 문학으로 보면 꽤나 성깔이 있는 냄새마저 풍깁니다.
왜 문학을 하고, 어떤 문학을, 또 그것을 어떻게 하는가에 그는 이런 답을 들려줍니다.
'문학은 종교가 아니고, 철학도 아니며, 도덕도 아니다. 문학은 문학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문학에서 추구하는 것은 진(眞)이며, 선(善)이며, 미(美)이다. (중략) 내가 쓰는 한 편의 시 속에는
나의 모든 사유와 생활이 담겨 있을 것이다. (중략) 모든 위대한 작품들은 쉬운 언어로 쓰였다. 지금껏
그렇게 작품을 써 왔지만, 앞으로도 나는 자유로운 정신 속에서, 쉽고 간결한 언어로 작품을 쓰려고 한다.
무한히 펼쳐나갈 그의 문학세계에 기대를 실어보며 삼우회에서 만나길 회원 모두 기다립니다.
참고로 약력을 적어놓습니다.
- 강원도 도계 산
- 1985년 「시조문학」지상백일장에서 <예송리 해변에서>로 등단
- 성균관대 문학박사
-「국방일보」시작품 해설 연재
- 시집 「영동선의 긴 봄날」「사랑하고 싶던 날」「지상의 꿈」「나 여기에 눈을 뜨네」외
- 시 해설집 「시의향기」
- 논문집 「현대시조의 고향성」「사설 시조 만횡청류의 변모와 수용 양상」
- 현재 서울 명일중 부장교사로 재직 중
- E-mail : sijokmj@hanmail.net
- 블로그 : http:/blog,daum.net/sijokm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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