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정갈한 눈빛처럼 보리밥상은 정갈하다 보리밥에 갖은 나물과 새빨간 고추장을 버무려 세상의 병을 깊게 하는 고독과 가난 그리고 가장 두려운 불확실성까지 넣고 비빈다 너의 그 수수께끼 같은 웃음에도 참기름을 살짝 치고 나는 너를 비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먹는 보리밥 오늘 저녁의 흐뭇한 밥상 앞에서 왜 나는 목이 메는 거니 겨울을 이기고 푸르게 생명의 팔을 뻗던 보리 앞에서 요만한 아픔에도 주저앉아 맥을 놓는 나는 보리밥을 먹는 것조차 부끄럽다 오늘은 봄날의 푸른 보리밭이 되어 준 널 정성껏 비벼야지 날 속여 온 세상도 함께 말이다 시뻘겋게 밥 한 공기를 더 시켜 잔뜩 비벼댄다 두 그릇을 먹고 불어난 배처럼 나는 행복하다 이 행복을 너와 나눌 수 있을까 지나가는 숲길에서 아무나 떠 마실 수 있는 샘물처럼 내 삶도 누군가의 갈증을 덜어 줄 수 있을까 나는 다만 너의 마르지 않는 샘이고 싶은 걸
작가는 1991년 문학공간 등단. 탄전문화연구소장. 한국문협 태백지부장. 현 강원대학교(삼척캠퍼스) 및 강릉대학교 강사. 시집: 『꿈꾸는 폐광촌』『박물관속의 도시』 편저: 『한국탄광 시전집』
시풀이 宇玄 김민정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보리밥을 비벼 먹으며 행복해하는 화자를 만난다. 물론 그 비빔밥에는 세상의 병을 깊게 하는 고독과 가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까지도 들어 있다. 긴 겨울 추위를 이겨낸 푸른 보리를 생각하며 작은 아픔에도 주저 앉는 자신을 부끄러워한다. 그것은 보리보다 더 푸르게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화자의 깨달음일 것이다. 또한 화자는 자신의 삶이 ‘누군가의 갈증을 덜어 줄 수 있는 샘’이고 싶어 한다. 건강한 의식의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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