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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북경의 천안문, 자금성, 천단공원 - 내가 본 비단길 8

by 시조시인 김민정 2009. 8. 3.

13. 북경의 천안문, 자금성, 천단공원 

 

 

 

 중국 자금성  

천안문 광장

 

 

 

    1995년 8월 10일. 북경에 도착하다. 사해통 여관이라는 곳에서 묵었고, 오주에도 갔었으나 너무 피곤하여 잠을 자다. 1995년 8월 11일. 천안문, 자금성, 천단공원, 이화원을 구경하다. 저녁에는 북경의 한국식당에서 불고기를 먹었다.

 

   천안문은 중국 북경에 있는 자금성의 정문이다. 천안문 광장의 북쪽에 있다. 천안문의 장소에 지어진 최초의 성문은, 1417년에 건설된 승천문(承天門)이다. 이 문은 1457년 낙뢰로 소실되고 1465년에 재건되지만, 1644년의 이자성의 북경공격으로 명조가 멸망했을 때 같이 소실되었다. 현재의 문은 청나라 순치제 1651년에 재건된 것으로, 이 때 〈천안문〉으로 개명되었다. 이 명칭은 ‘천상의 평화로운 문’이라는 의미보다 만주어 명칭인 ‘천명을 받아서 안정된 나라를 다스린다’는 뜻이다. 명나라․청나라 두 왕조 시대에 큰 법률이나 명령을 공표할 때 최초로 이 문에서 발표되었다. 또 출전하거나 개선하는 군대를 황제가 알현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1949년 10월 1일에 시행된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식에서 모택동은 이 문 위에서 〈건국선언〉을 하였다. 그 후 이 문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1952년과 1970년에는 대규모 개수를 하였다. 이전에는 자금성의 정문이었지만, 현재의 고궁박물원 정문은 조금 더 북쪽에 있는 오문(午門)이다.

    구조를 보면 5개의 통로를 뚫은 성벽 위에 목조 누각을 지은 중국의 대표적인 성문 건축이다. 누각 가운데는 현재, 중국 정부요인이 여러 행사일에 천안문에 설 때의 전후 휴식을 취하기 위한 의자나 소파가 놓여 있다. 이전에는 성벽 5개의 통로 가운데, 중앙의 큰 통로는 황제용이었다. 길이는 27m, 현재는 중앙의 통로 이외는 닫혀 있을 때가 많다. 가운데에는 모택동의 초상화가 걸려 있고, 양쪽에는 간자체로 각 中华人民共和国万岁(중화인민공화국만세), 世界人民大团结万岁(세계인민대단결만세)라고 쓰여 있다. 

 

 

 자금성

 

    자금성은 베이징의 중심에 있는 명과 청 왕조의 궁궐이다. 자금성의 규모는 궁궐로는 세계 최대의 규모이다. 지금은 고궁박물원으로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자금성을 둘러보는데 금으로 된 종이 여러 개 나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금으로 된 세숫대야 같은 것도 있었다. 다른 것들보다 그들이 눈에 띄었다. 역시 대국다운 규모라고 생각되었다. 자금성 규모도 커서 인상적이었지만, 그 안에 진열되어 있던 것들도 역시 큰 나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금성은 동서로 760m, 남북으로 960m, 72만m²의 넓이에 높이 11m, 사방 4km의 담과 800채의 건물과 9999개의 방이 배치되어 있다. 1961년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고, 1987년 "명·청 시대의 궁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곳의 중문인 오문의 가운데 문은 황제만 사용하고 현재도 일반인의 출입을 엄금한다.

    자금성의 주위에는 해자와 장벽들로 둘러싸여 있다. 해자의 너비는 52m이며 깊이는 6m에 이른다. 해자에는 동서남북으로 해자를 가로지르는 4개의 다리가 있다. 궁궐 주위 장벽의 길이는 3km에 이르며 높이는 10m나 되며 4개의 큰 출입구가 뚫려 있다. 자금성의 지붕은 대부분 황색 기와로 되어있다. 하지만 황실 서가의 지붕만은 검은 기와로 되어 있는데, 검은색은 물을 상징한다고 하여 검은 기와가 화재로부터 서가를 지켜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자금성은 1900년에 일어난 의화단 운동으로 유럽 열강 연합군의 주둔이 있었고 1908년 즉위한 선통제는 1924년 군벌 세력의 쿠데타로 영원히 자금성을 떠났다. 바로 그 직후 고궁박물원이 되었다.

 

    천단공원은 우리나라 사직공원과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는 내국인에게는 입장료가 1원이지만, 외국인에게는 60원을 받는다. 즉, 60배를 받는 것이다. 

    천단(天壇)은 베이징 시에 있는 사적으로, 명청시대 중국에서 군주가 제천의식을 행하던 도교 제단이다. 매년 풍년을 기원하는 것은 황제의 연례행사였고,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냈다. 고대 규모로는 가장 큰 제단 규모로 만들어졌으며, 대지면적은 약 273만m2로 고궁인 자금성의 네 배이다. 1998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1406년에 시작하여 명의 영락제 18년인 1420년에 완공되었다. 영락제는 자금성을 건설했던 왕으로, 이곳의 건설 당시는 천지단(天地坛)이라고 불렸고,1530년 가정제 9년에는 3개의 제단을 더 추가함으로써 천단이라고 불리게 된다. 동쪽으로는 일단(日坛)을, 북쪽으로는 지단(地坛)을, 서쪽으로는 월단(月坛)을 추가하였다. 현재의 규모로 확장된 것은 청대의 건륭제 연간이다. 1860년 제2차 아편 전쟁으로 영프 연합군, 1900년 북청사변으로 8개국 열강의 점령이 있었다. 1914년 원세개(袁世凱)가 중화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를 칭하며, 천단에서 대제를 열었다. 이는 원세개 자신이 삼황오제로부터 내려오는 중국 전통 왕조의 계승자임을 상징적으로 의미하는 것이다. 1918년에 공원으로 개관하고, 정식으로 일반에 공개되었다.

 

 

 

  천단은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 첫째가 원구단(圓丘壇)이다. 황제가 하늘에 제를 올리기 위한 의식을 거행한 장소이다.명나라 가정(嘉靖) 9년인 1530년에 만들어졌으며, 건륭제 14년, 1749년에 층축되었다. 매년 동지에 풍작을 감사하는 의식을 행하고, 가뭄이 든 해에는 기우제를 지냈다. 형태는 중국의 우주관을 따르고 원형이다.또 난간 계단 등이 음양 사상을 따라 지어졌으며, 양수의 9나 그 배수로 구성되고 있다.각 단의 직경을 합계한다면 45장이고, 이것은 단지 9의 배수라고 한 의미뿐만 아니라,구오지존이라는 의미도 갖는다. 바깥쪽은 4각, 안쪽은 둥근 2중의 담으로 둘러싸인 3층의 원형 대리석 단을 말한다. 공원 남천문(南天門) 입구 근처에 있다. 원구단의 한가운데에는 황제가 기도를 올리는 원심(圓心)이라는 둥근 대리석 판이 있는데, 그곳에 서서 소리를 지르면 자기의 귀에만 크게 반향음이 되돌아오는 음향현상이 있다.

    다음으로는 원구단의 북쪽에 있는 황궁우(皇穹宇)이다. 제천 시 사용하는 신패 등, 역대황제의 위패를 모셔 둔 곳이다. 명나라 가정제 9년인 1530년에 짓기 시작하여 1538년에 끝났다. 건륭제 17년에 이곳도 증축되었다. 높이는 19.02m, 직경은 15.6m의 둥근 건축물이다. 이곳은 회음벽(回音壁)과 삼음석(三音石)이 유명하다. 회음벽은 황궁우를 둥그렇게 둘러싸고 있는 담으로 속이 비어 있다. 그래서 담을 향하여 소리를 내면 반대쪽의 담에 선 사람에게 들린다고 한다. 벽에는 시험해 보려는 듯 귀를 담벽에 대고 있는 관광객들로 항상 붐빈다. 삼음석은 황궁우 앞의 상석을 말하는 것으로, 이곳 역시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상석은 여러 개가 나란히 서 있지만, 북쪽에서 세 번 째까지를 삼음석이라고 한다. 이곳이 붐비는 이유는 돌 위에서 한 번 손뼉을 치면, 첫 번째의 돌에서는 1회, 두 번째에서는 2회, 세 번째에서는 3회 반향음이 되돌아온다고 하여 호기심이 있는 사람들이 시험해 보려고 해서 몰리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기년전(祈年殿)이다. 중국에서 군주 제천 행사를 맞기 위해 지은 제단 중 가장 유명한 건축물 중의 하나로서 천안문, 자금성과 함께 베이징의 심벌이다. 기년전은 직경 32m,높이 38m,25개의 중심에 유지된 제단으로 현존한 중국 최대의 제단이다. 중국 건축 사상 중요한 건축물로 간주 된다.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에 황제가 오곡풍작을 기원하는 제를 올렸다. 3층의 원형 기단 위에 우산을 편 듯한 3층 지붕인 원형 건물이다. 목조에다가 금도금을 입혔으며, 삼층 지붕기와는 유약을 칠한 유리기와를 올려 지붕을 만들었다. 여기의 기와 빛깔은 검정이 섞인 듯한 푸른빛이다. 기년전의 지붕은 멀리서도 그 빛깔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눈에 띈다. 명나라 시대에는 위에는 청색과 황녹색으로 되어 있었지만, 건륭제가 1751년에 중건을 하면서 전부 청색으로 바꾸었다. 1889년 낙뢰에 의하여 한번 소실되었지만,1906년에 다시 재건되었다.이 건물은 대들보나 마룻대를 사용하지 않은 중국의 독특한 건축방법이 쓰였다. 기년전 건물 바로 밖으로 붉은색의 뚜껑을 가진 기둥이 있고, 그 주위에 12개씩의 원주가 2중으로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4개의 기둥에는 꽃무늬가 그려져 있어 4계절을 나타내고 있다. 안쪽의 12개는 1년의 12개월, 바깥쪽의 것은 12간지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내외합계 24개의 지붕기둥은 24절기를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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