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이유가 없어요(L'amour,C'est pour rien) 당신은 사랑을 살 수 없지요
도솔암 적요 / 宇玄 김민정
마애석불
홀로 앉은
도솔암 댓돌 위에
흰 고무신 한 켤레 누구를 기다리나
그리움
뒷짐지고서
눈만 내리 감은 날
사.랑.이.란 ?
전설속의 불도마뱀처럼 경이롭고,
불새처럼 다시 살아나는 것이지요
어떠한 것도 사랑의 생명을
끌 수는 없답니다 다만 망각의 바다만이
사랑의 불을 끌 수 있지요
사.랑.은. 값.을. 매길수 없습니다
당신은 사랑을 팔 수 없지요
당신이 사랑에 눈뜰 때면
근심이 시작된답니다
단수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글은 짧아도 그 의미는 길다. 동양시학에서 말하는 언단의장(言短意長)을 잘 살려냈다. 초장은 상황의 제시다. 핵심 시어는 '댓돌'이다. '댓돌'은 무엇인가? 댓돌은 집채의 낙숫물이 떨어지는 곳 안쪽으로 돌려 가며 놓은 돌이란 뜻과 '섬돌'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섬돌의 의미다. 그 댓돌은 안과 밖의 경계가 되는 곳이며 방안으로 들어갈 때 신발을 벗어두는 곳이다.
중장은 그 댓돌 위에 무엇이 있는가를 제시한 것이다. 그렇다면 흰 고무신을 신고 온 그 누군가가 그 방에 있다는 것이다. 미루어 짐작컨대 암자의 방안에는 그 흰 고무신의 주인인 어느 스님이 앉아있을 것이다. 문맥으로야 흰 고무신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만, 사실은 그 고무신의 주인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다. 도솔암에서 수행을 하는 스님이 그 흰 고무신의 주인이라면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지도 않을 것이다. 시의 화자가 느끼는 감정일 뿐이다. 스님들이 누군가를 기다리기만 한다면 수행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암자는 적적하다. 그래서 누군가가 와 주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 작품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흰 고무신 한 켤레'가 그것이다. 그것이 적요다.
종장은 때를 가르킨다. '그리움/ 뒷짐지고서/ 눈만 내리 감은 날'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뒷짐'이란 시어에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는데 '뒷짐'은 사전적으로 '두 손을 등 뒤로 젖혀 마주 잡은 것'을 가리키는 데 매우 여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움'을 뒷짐진다는 것은 대단히 초연한 자세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것을 수사하는 '눈만 내리 감은 날'과 연결되면, 현실을 초월한 그 어느 시간이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의 구조를 분석한다면 '언제, 어디서, 무엇을'로 요약될 수 있다. 그것이 초장, 중장, 종장으로 연결되지 않고 종장, 초장, 중장의 순으로 연결되어 전체적으로는 도치법이 활용되었다. 만약 이 작품을 이해하기 쉽게 그 자리를 옮겨 놓는다면 "그리움 뒷짐지고서 눈만 내리 감은 날/ 마애석불 홀로 앉은 도솔암 댓돌 위에/ 흰 고무신 한 켤레 누구를 기다리나"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한 수의 시조 속에 도솔암 적요를 다 담아내고 있으니 어찌 3장 6구 시조 한 수가 작거나 적다고 할 수 있겠는가. 특히 이 작품에서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은 우리가 감각하기 어려운 적요를 '댓돌 위에 놓인 흰 고무신 한 켤레'로 표현한 것이다. 초장과 중장을 거쳐 드러나는 이 이미지의 제시가 아니라면 이 작품은 독자의 가슴에 가닿지 못할 것이다. 댓돌 -고무신- 뒷짐 이라는 시어들이 초 중 종장에 배치되면서 도솔암의 적요를 우리 눈 앞에 그려주는 것이다. 그 절간의 적요가 우리를 사색의 숲으로 밀어 넣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수작이 되는 것이다. 문무학, 문학평론가 <나래시조문학, 2007,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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