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편지>
사랑한다, 얘들아!
宇玄 김민정
소백산 비로봉 (1994)
며칠 전 학교에서 1박2일의 연수가 있었다. 2005학년도 학교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준비 토론 및 토의를 위한 것이었다. 열띤 토론을 마치고 우리는 다음날에는 산정호수를 산책하고 광덕산 등산을 하였다. 응달에는 조금씩 눈이 보였고 산 정상에 올라갈수록 눈을 조금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아직 서울에는 첫눈이 조금 뿌리다 만 상태여서 올해 처음 밟아보는 눈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포근한 겨울날이라 멀리 보이는 겨울산은 겨울나무와 함께 아름다운 능선을 한껏 보여주고 있었다. 산 정상을 오르니 기상관측소가 있었다. 습기가 적고 공기가 맑은 곳에 세워지는 기구이다.
기상관측소를 보니 문득 10여 년 전 소백산 등산이 생각났다. 구산중학교에 근무하고 있을 때다. 한 학년을 1학년부터 3학년까지 3년 동안 가르쳤는데, 그 때 제자들은 중학교 2학년이었다. 1학년 때 담임을 맡았던 녀석들이다. 대학 수능일이라서 집에서 쉬게 되었는데 녀석들이 여행을 가자고 졸랐다. 그 해에는 여학생반을 담임하고 있어서 여학생도 같이 가자고 하였더니 집에서 반대를 하셔서 남학생만 세 명을 데리고 소백산을 가게 되었다.
우리는 기차를 타고 갔고, 소백산 입구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희방폭포가 가까운 곳이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우리는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을 향해서 등산을 하기 시작하였다. 등산을 안 해 보고 도시에서만 주로 자란 아이들은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는데 나보다 더 힘들어했다. 더구나 우리는 정상에서 점심을 해 먹기 위해 물과 버너 등을 준비해 가지고 짊어지고 가느라 더욱 힘이 들었다. 연화봉을 넘고 능선을 지나고 기상관측소도 지나 우리는 마침내 정상인 비로봉에 도착하였다.
11월이었지만 산 정상이라 바람도 차고 추웠다. 그런데도 배가 고팠기에 돌탑 옆에서 우리는 버너를 피우고 바람을 막아가며 카레밥을 하여 맛있게 먹었다. 배가 많이 고픈 상태에서 먹는 밥은 아주 맛이 있었고 우리는 커피까지 끓여 마시며 추위를 가시게 한 후에 하산을 서둘렀다. 풍기에서 6시 차표를 미리 예매해 두었기에 그 시간에 맞추자면 서둘러 하산을 하여야만 했다. 우리는 서둘러서 내려왔는데 풍기까지 가자면 도로를 따라 4Km 이상을 걸어야 했다.
집 서재(2005)
그런데 산을 내려오면서 지혁이가 다리를 삐끗하는 바람에 걸음을 빨리 걸을 수가 없었다. 차 시간은 그렇게 넉넉하게 남아있지 않아서 걱정을 많이 하게 되었고, 내일 학교에 못 가면 어떡하냐고 모범생들은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걱정을 하며 차도 드문 길을 걷고 있는데, 마침 빈 택시 한 대가 지나갔고 우리는 반가운 마음에 얼른 타게 되었다. 천우신조! 풍기역에 도착하니 이제는 여유가 생겼다. 차 시간까지는 4~50분의 여유 시간이 남아 있었다. 등산을 했으니 목욕을 하고 싶다고 하여 목욕탕에 다녀오라고 하고, 나는 그 시간, 역 대합실에 앉아 책을 읽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우리는 자기들의 장래에 대한 희망 등을 이야기하며 서울에 도착하였다. 추억의 1박 2일 여행이었다.
철쭉나무 낮게 깔린 능선과 능선 사이엔
안개와 구름과 건너산의 눈부신 햇살
사랑도 너와 나 사이 낮게낮게 깔리더라
소백산 정상에서 카레가 끓는 동안
빨갛게 녹아내린 우리들의 겨울하늘
모두가 아름다워라 꿈결처럼 고와라
투명한 건 눈부신 건 햇살뿐이 아니었어
푸른 웃음 푸른 얘기 싱그러운 너의 눈빛
또 하나 능선을 그려 놓고 오늘밤은 별로 뜨자 <소백산 일기 1>
그 때의 추억을 생각하며 썼던 작품이 위의 시조다. 10년이 지나 나는 늙어가고 그 제자들은 군대를 다녀온 늠름한 청년들이 되어 대학에 복학하여 다니고 있다. 지금도 인연은 이어져 스승의 날이면 잊지 않고 찾아오는 고마운 제자들, 그 때의 귀엽던 모습들이 아직도 눈에 어린다.
사랑한다. 얘들아!
<희망을 담아온 소백산 등정 . 새교육, 2005. 2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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