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간이역
宇玄 김민정
용문사에서
눈부시게
맑은 영혼
그 산에 살고 있나
그리움의
북소리
밤새 둥둥 울렸구나
이 아침
우아한 자태
날개 펴는 백로떼.
단단히
물고 떠날
생각 하나 얻었는가
불현듯
그리워질
불씨 하나 물었는가
이제 막
흰 날개 펴고
비상하는 겨울숲.
「백로떼 날아오르는」전문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이사갈 집에 가서 청소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교감선생님이 신청하라고 하여 무심코 신청했는데 교육부에서 교과서검정위원에 선발이 되었다며 며칠 후에 9박 10일 동안 양평한화콘도에서 묵을 준비를 하고 출장을 오라는 것이다. 얼떨결에 대답은 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겨울방학 중이었고, 박사학위논문을 쓰기 위해 미리 소논문을 하나 발표해야한다고 하기에 그것을 준비하느라 바쁜 와중이었다.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고 호주로 어학연수를 간 상태였고, 나는 소논문을 준비하는 한편, 혼자서 이사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다행히 출장가기 전 며칠간의 여유가 있어 이사는 하였지만, 짐은 미처 정리하지 않은 어설픈 상태에서 자의반 타의반의 검정위원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1년 동안 8번의 검정을 했고, 32일의 낮과 밤을 그곳에서 보내야 했다. 검정이 끝나던 날 평가원장님이 하신 말씀은 “여러분은 안개와 같은 존재입니다. 여기에서 있었던 모든 일은 흔적없이 사라지는 안개처럼 여러분도 이제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마시고 일상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라는 무척 멋있고 인상적인 구절이었다. 내 인생의 기차가 잠시 머물렀던 아름다운 간이역, 참 멋진 자리였기에 세 번째 만남이었던 6박7일간의 일기를 간략히 소개한다.
양평 한화콘도
2002년 5월 29일 수요일 맑음
오늘은 세 번째 교과서검정을 위해 양평 한화리조트에 오다. 두 시간의 수업을 끝내고 서둘러 양평으로 오는 길은 아름답다. 오,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여! 해방이여! 자유여!
차를 타고 남한강을 따라 양평의 산속까지 운전하는 1시간 반 정도의 시간만큼은 내 사유는 자유롭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달리는 동안 시원한 강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고 시야는 온통 오월의 신록으로 물결친다. 신록으로 둘러싸인 공기 좋은 이곳에 6박 7일의 일정으로 일하러 온 것은 정말로 행운이다. 일하러 온다기보다는 나의 바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꼭 휴양을 하러 온 기분이 드니까 말이다. 더구나 우리팀, 일명 드림팀은 다들 성격이 좋아 만나면 너무 행복해 하는 사람들이고, 헤어질 땐 아쉬워하며 다음 만남을 기다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만남의 순간은 다들 즐거운 표정이었고, 보고 싶었다는 첫인사를 나누다. 위원장이신 박영순 교수님과 최용기 연구관님이 오늘 못 오시는데, 박영순 교수님은 너무 바쁘셔서 토요일날 오시겠다는 것이고, 최용기 선생님은 내일 오시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두 시에 협의실에 모여 일을 분담하고 각자의 몫을 가지고자기 방으로 헤어지다. 나는 큰 방을 혼자 쓰게 되었다. 원래 김정자 교수님과 원진숙 교수님이 쓰게 되어있는 방이었으나 김정자 교수님께서 독방을 원하시고, 원진숙 교수님은 박영순 교수님 방에 묵게 되어 본의아니게 큰 방을 차지하게 되었다. 앞에는 숲이 보이고 거실도 크며 큰 탁자까지 있어 공부하기에는 안성맞춤, 너무나 좋은 방이다. 이렇게 조용하고 아름답고 가족에 대한, 살림에 대한 부담없이 1년만 있으라고 한다면 금방 박사논문을 다 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는 곧 지도서 검토라는 작업을 시작하고, 저녁 식사 후엔 김정자 교수님, 원진숙 교수님, 나 세 사람이 모여 선녀탕 쪽으로 올라가 중미산을 산책하다. 맑은 산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는 즐거움은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기쁨 그 자체다. 저녁 9시 반쯤에 원진숙 교수님과 나는 김정자 교수님으로부터 요가를 배우기 시작하다. 어깨가 뻐근했지만 우리는 요가를 배운다는 즐거움으로, 날씬해 질 수 있다는 희망으로 6박 7일 동안 열심히 하기로 결심하다. 저녁에는 내일부터 등산을 하기로 합의하고 운동화를 한 켤레 사기로 결심하다. 일상으로부터 벗어난 기쁨으로 즐겁고 가벼운 하루이다.
용문사
2002년 5월 30일 목요일 맑음, 오후엔 비
우리는 각자의 방에서 자기가 맡은 부분에 대해 책임을 다해 부지런히 검토작업을 하고 나서 저녁에 모여 유명산 등산을 하기로 합의하다. 샌들을 신고 온 나는 서둘러 매점에 내려가 운동화 한 켤레를 새로 사다. 집에도 별로 신지 않은 새 운동화가 두 켤레나 있지만 당장 아쉬우니까 할 수 없지…. 하루 종일 숲을 바라보며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게 생각되다. 갖가지 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와서 상쾌한 기분을 더해 주다. 검은등 뻐꾸기는 퉁,퉁,퉁,퉁 네 박자의 소리를 내고 벙어리 뻐꾸기는 퉁,퉁 두 박자로 운다고 김정자 교수님이 가르쳐 주시다. 아침부터 두둑새, 먹뻐꾸기, 꾀꼬리, 비비새, 까치, 소쩍새 그 외의 새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있다. 산은 첩첩 쌓이고 물은 맑게 흐르는 곳, 중국과 호주를 돌아보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나라의 산, 계곡, 바다가 정말로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는데 오늘 다시 한 번 느끼다. 저녁엔 등산을 계획하였기에 각자의 방에서 자기가 맡은 부분을 열심히 검토하다가 보니 어느새 저녁시간이 되다. 그런데 어라!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우리는 아쉬움에 우산을 쓰고 산책을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이훈 선생님이 차를 타고 강가에 나가 보자고 제안하다. 워낙 단합이 잘되는 우리는 흔쾌히 승낙, 8명 모두가 모여 양평 남한강을 향하여 차를 몰다. <전망 좋은 찻집, 카사블랑카> 앞에 차를 세웠더니 웬걸 수리중이라나! 다시 차를 달려 <지중해>라는 곳에 차를 세우고 우리는 강을 바라보면서 저마다 생각에 잠기다. 임지룡 교수님이 공자의 시경에 나오는 시의 내용을 알려주시다. 대학 다닐 때 교양과목으로 대학, 중용, 장자, 맹자, 노자 등을 조금씩은 주워들었는데 공자가 편집한 시경(詩經)의 내용을 들으니 그 때 들은 기억들이 새롭다.
제주도
2002년 5월 31일 금요일 맑음
월드컵 서울개막식이 있는 날이라 서울은 서울대로 바쁘고 부산하겠지만, 양평 한화리조트에 모인 아홉 명(최용기 선생님 어젯밤 도착)도 우리대로 바쁘다. 아침을 먹고 8시에 정문 앞에 모인 우리들. 이훈 선생님이 앞장서고 우리는 선녀탕을 향해 등산을 하기로 결정해서 찾아가는데, 웬걸, 가도 가도 선녀탕은 보이지 않고, 우리는 산꼭대기만 찾아 올라가다. 노익장 (김정자, 임지룡 교수님)이 제일 잘 올라가고 계시다. 그들보다는 젊은(?) 나도 헉헉 거리면서 올라가는데 땀이 쏟아지고 화장한 얼굴에서 화장품이 눈에 들어갔는지 눈이 아파오기 시작해서 천천히 걷다. 그래도 어제 산 운동화 덕분에 미끄러지지 않고 끝까지 올라갈 수 있었는데 꼭대기까지 갔더니 땀이 마구 쏟아지다. 길을 잘못 잡아든 임지룡 교수님 덕분에 우리는 좋은 등산을 하게 된 것이다. 구두를 신은 최용기 선생님과 샌들을 신은 원진숙 교수님이 뒤에 처지셨지만 박우현 선생님도 열심히 올라오고 계시다. 우리가 올라간 곳은 무척 가팔라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산길이다. 최용기 선생님은 끝까지 올라오셨지만, 원진숙 선생님은 안타깝게도 도중에서 다시 내려가시다. 박형우 선생님이 원진숙 선생님을 찾아 그 길로 다시 내려가셨고 다른 분들은 정상에 도착하여 범바위 길로 내려오다. 그 길이 오를 때보다는 훨씬 수월하고 편하다. 우리는 땀을 흘려 다시 샤워를 해야했지만, 몸무게가 조금이라도 빠졌으리라는 희망 때문에 나는 무척 즐겁다. 목표를 세우자. 일주일 동안 2Kg을 빼는 거다. 최면을 걸자.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저녁을 먹고 또다시 산책, 유명산 쪽을 꽤 많이 걸어갔다가 내려오다. 저녁의 아름다운 새울음 소리를 들으며 억새, 칡넝쿨, 다래넝쿨, 질경이, 싸리꽃, 소나무, 상수리나무 등을 보며 우리는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만끽하다. 숲은 우거지고, 세상은 평화롭다! 자연은 아름답다! 그것을 인간이 훼손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영원이 아름다울 나의 강산이여, 우리의 조국이여. 이 땅 위에 평화 있을진저!
우리가 처음 만난 며칠 후, 저녁모임에서 김정자 교수님이 복사하여 우리 모두에게 한 장씩 돌려주고 읽어주신, ‘문학 평론가 김정자 교수의 00교과서 검정팀 인물 평전’을 아래에 소개한다.
박영순 위원장님: 깔끔하고 하얀 얼굴에 수줍은 미소로 우리들을 대한다. 대수롭잖은 일도 교수님 앞에서는 진지한 논의의 테마가 된다. 덕분에 우리는 건중거리며 넘어갈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 그 치밀한 구조와 논리성에 건배! 그러나 추진하는 속도가 느려 성질 급한 사람을 초조하게 할지언정 식사 속도는 우리들의 추종을 불허하는 초스피드식 실력을 가진 분이다.
임지룡 선생님: 그 스마트한 모습과 경상도의 구수하고 매력 있는 어투로 우리들을 제압한다. 기민하고 민첩한 추진력! 박진감 있는 말솜씨에 카리스마가 있다. 그러나 의외로 속도가 느려 식사 시간에 제때 나타나지 않으시어 그 얼굴을 알현하지 못할 때가 많다. 뿐만 아니라 이제부터 웃어가면서 일하기로 했다는 그는 우리들이 진작부터 웃으면서 일했다는 사실도 까마득히 모르는 그런 어눌함이 있다!
최용기 선생님 : 빈틈없고 정확한 사무 능력과 분석력에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일상 언어는 부드럽고 온유하며 그의 약간 기울어진 눈썹선과 두드러진 앞니 덕분에 우리의 마음은 한결 즐거워진다.
안상근 선생님 : 그의 얼굴은 제주도 바다 위로 떠 있는 구름처럼 훤하다. 신수가 좋고 드라이로 잘 다듬어진 머리칼은 비록 염색소의 도움을 받았을지언정 우리를 즐겁게 한다.
박우현 선생님 : 자기 방을 두고 큰 방을 차지하고 싶어 7135 협의실을 통째로 누리고 있는 그는 우리 가운데서 가장 튀는 터프가이적 인물이다. 베란다에 나가 줄담배를 피우고 매일 아내가 보고 싶다고 빨리 나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그는 억센 경상도의 어투를 거침없이 발설한다. 독방을 차지한 덕분에 박형우 간사님의 권한 대행을 맡아 간식을 나눠준다. 그때 그의 까만 손이 어찌 그리 귀엽게 보이던지!
이훈 선생님 : 그를 바라보면 북에서 내려왔던 김신조가 생각난다. 깡마르고 날카로우나 몸에서 빛이 나는 그는 따뜻함을 넘어서서 빛이 난다고 ‘훈’이라 이름 하였던가. 임지룡 선생님께 기죽지 말고 그의 현명한 눈빛이 영원하기를 빈다.
김민정 선생님 : 정말 ‘시조’하는 분답게 아름답고 따뜻한 성품을 가진 분이다. 말씨도 부드럽고, 착한 마음씨가 얼굴에 속속들이 묻어 있어 아무도 그를 미워할 수 없게 한다. 그의 좋은 시조가 우리를 더욱 기쁘게 할 것을 바란다. 그럼에도 그는 아침식사를 끝낸 후 샤워를 할 정도로 아침에는 마냥 비실거리는 편이다.
원진숙 선생님 : 푸근하고 상냥한 그의 분위기와는 달리 하는 일은 꼼꼼하고 매섭다. 그는 은사님을 깍듯이 모시는 예의바른 여성이다. 때로는 자줏빛 쇼올을 걸치고 나와서 잘난 척하며 자신의 우아한 맵씨를 과시하는 그 앞에서 우리는 그만 기가 꺾이곤 한다.
박형우 선생님 : 신선하고 패기만만한 그의 모습을 보면 언제나 기운이 난다. 잘 생긴 그의 얼굴에 못지않게 자리를 잡는 그의 원형 탈모증에 대해 머리가 유난히 잘 빠지는 평론자 자신도 동병상련을 느껴야 한다. 야참을 가지고 와서 5층을 두루 누비고 다니는 그가 불쌍하기도 했지만 그런 시절을 여기 모인 어느 누가 겪어오지 않았으랴. 그의 앞날에 건배!
나, 김정자(金亭子) : 멍청하고 띨빵한 데가 많지만 이따금 똑똑하다. “인생은 40부터도 아니요, 40까지도 아니며 어느 나이고 간에 다 살 만하다!”는 피천득 선생의 지론을 절대로 숭배하는 그는 우리 작문 팀에서 가장 모자라기도 가장 뛰어나기도 한 부적격과 적격의 접점 지대 인물이다. 더 이상 거론하면 본성이 드러날 것 같아 이하 생략한다. 박영순 위원장님과 우리 검정위원팀에게 건배! 하면서 인물 평론가의 소임을 끝내는 바이다! 그녀의 유머와 재치는 우리를 결속시키다.
통영 유치환문학관과 달아공원
2002년 6월 1일 토요일 맑음
오늘부터 아니 어제부터 몸무게를 빼기 위하여 사우나를 하기로 하다. 그래서 오늘아침은 큰맘 먹고 여섯 시에 일어나 사우나탕을 향해 가다. 원진숙 교수는 벌써 와 있다. 그녀의 부지런함, 상냥함, 명랑함, 말솜씨 등에 나는 반하고 있다. 본받을 것이 참으로 많은 사람이다. 나도 사우나 실에 가서 땀을 빼기로 하다. 더 이상 몸무게가 늘지 않도록 최소한 관리는 할 수 있다.
3시가 넘어서 우리팀의 회장님이신 박영순 교수님이 오셨다고 전갈이 오다. 우리는 교수님을 반갑게 맞았고, 사온 과일들과 양주를 마시며 즐겁게 환담을 하다. 국어학계의 거목이시면서도 언제봐도 인자하고 겸손하신 교수님, 늘 자상함과 덕담으로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신다. 그래서 주변이 화목할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되는 분이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늘 좋은 쪽으로 발전한다고 말씀하시며, 우리의 모임에 희망과 행복을 주시는 분이다.
큰 방을 박영순 교수님과 원진숙 교수님이 쓰도록 배려하여 방을 바꾸어 드리다. 처음 사용하던 방은 넓고 조용한 방이었는데, 작은 방은 아래 사우나실의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로 조금은 시끄럽다. 그래도 혼자 쓴다는 홀가분함이 있어 여가시간에 시집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박영순, 김정자, 원진숙 세 교수님 참으로 부지런하고 인품도 좋으시다. 그들에게 본받아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지금까지 게을렀던 나는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 아직도 달려야 할 거리가 많이 남은 인생은 장거리 마라톤 경기이다. 사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면서 시를 써야겠다. 논문부터 빨리 쓰고 그 이후엔 작품을 쓸 것이다. 시조문학사에, 아니 한국문학사에 남는 좋은 작품을 쓰고 싶다. 아니 꼭 쓸 것이다.
각자가 맡은 일을 낮시간 각자의 방에서 열심히 하고 나서, 저녁에는 모여서 파티. 낮시간 아주 열심히 각자가 맡은 일을 완수했으므로 우리는 충분히 즐길 권리가 있다! 즐겁고 재미있고 좋은 밤이다. 또한 각자의 개인숙제를 다들 열심히 해서 더 즐거웠던 시간이다. 숙제는 다름이 아니라 모두 자기 노래 한 곡씩 준비해 오는 것이었다. 나는 내 단골메뉴‘남행열차’라는 노래를 불러, 열심히 착실하게 숙제를 해 간 셈이다.
박영순 교수님, 김정자 교수님, 임지룡 교수님, 원진숙 교수님, 최용기 연구관님, 안상근 선생님, 박우현 선생님, 이훈 선생님, 박형우 선생님, 나 김민정, 저마다 숙제를 열심히 해 오는 바람에 모두 한 곡 이상의 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하다. 여자들은 물론이고, 남자들도 다들 성격이 너무 좋아 우리는 만남이 곧 즐거움 자체이고 축복이라 생각하다. 아주 능력이 뛰어난 분들이며 서로 좋은 점들을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는 참으로 바람직한 인품의 사람들이다.
속리산 법주사
대구 동화사
제주도 추사관
2002년 6월 2일 일요일 맑음
오전에 그동안 내가 분담했던 내용들을 다시 한 번 검토하여, 자료를 정리해서 넘기고 나자 조금 한가해진다. 모두 유능한 분들이라 작업을 무척 꼼꼼하게, 빈틈없이 하신다. 때문에 다시 한 번씩 검토하다 보면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들도 정확하게 잡아내신다. 다른 분들이 내 것을 검토할 동안은 나는 자유시간이다. 다시 연락이 올 때까지 정완영씨의 시집들을 읽기 시작하다. 3권의 시집을 읽고 오후 3시경에는 기계로 달리기를 하다. 18분 정도를 달렸더니, 아니 정확히 빨리 걷기를 했더니 땀이 비 오듯 쏟아지다. 제일 많이 나는 곳이 얼굴이다. 뚝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을 보면서 나는 쾌감을 느끼다. 600칼로리 이상을 뺀 것이다. 적어도 600g의 몸무게는 빠졌겠지! 야호! 신난다!
나는 나의 방으로 돌아와 그동안에 검토를 하시고 지적해주신 것들을 고쳐 나갔다. 그리고 남은 시간에는 다시 시집을 읽기 시작하고, 다섯 시 반부터는 다른 선생님들과 유명산을 오르다. 즐겁게 환담을 하면서 한 시간을 오르고 우리는 다시 내려오다. 그곳은 산책코스로는 더없이 좋은 길이다. 각종 산새들의 울음과 갈대와 산뽕 등의 나무들이 눈과 귀를 한없이 즐겁게 해 주기 때문이다.
제주도 마라도
2002년 6월 3일 월요일 맑음
새벽 우리는 중미산으로 ‘들꽃 100가지전’사전 답사를 가다. 신나고 즐겁고 산뜻하게 드라이브를 즐기며 우리는 중미산 언덕에서 내리막길로 2킬로미터쯤 가자 드디어 전시장이 있었는데 아직 문은 닫혀 있다. 장소만 알아두고 저녁에 다시 올 것을 다짐하고 돌아오다. 덕분에 아침 8시 30분경에는 한화리조트까지 돌아오다.
우리는 수정지시사항을 통일하는 작업을 하기로 하고 책을 다시 한 번 검토하기 시작하다. 어젯밤에 피곤해서 일찍 잤기 때문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확인을 해서 넘겼는데, 곧 검토된 내용이 다시 돌아오다. 교정된 부분만 부지런히 컴퓨터로 편집하다. 그리고 오후에는 무려 서른 한 곳에나 싸인을 하다. 저녁 평가원의 허락된 시간보다 조금 일찍 산책을 나가려는데 평가원 사람들이 눈치 채고 못 나가게 하는 바람에 9명이 가기로 했던 중미산행은 무산되다. 그러나 용감한(?) 여자들만 가기로 결정하고 우리는 강행하여 드디어 풀꽃도 구경하고 계곡을 내려다보며 따뜻하고 맛있는 코코아를 마시며 아름다운 환담 시간을 갖다. 우리는 1년에 한 번씩 만나 수필집을 내자는 의견을 내었고, 그렇게 하자고 결정하다. 부지런하지 못한 내가 과연 그들과 함께 동행할 수 있을까? 물론 나는 그들보다는 문학에 가까운 사람이긴 하지만, 그런데도 걱정이 된다. 워낙 게을러서!
어제 저녁에 많이 먹어서 아침에는 몸무게가 하나도 빠지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자신에게 실망하다. 그러나 여전히 오늘 오후 3시경에도 나는 운동을 하다. 땀을 흘리고 샤워를 하고… 몸무게를 많이 빼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더 찌지는 않았다고 스스로 위로할 수 밖에…. 무엇이든 결심만 하면 실천할 수 있다는 걸 스스로에게 믿으며….
제주도
2002년 6월 4일 화요일 맑음
6박 7일의 일정이 모두 끝나 아침을 먹고 우리는 헤어지다.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면서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제주로, 부산으로, 대구로, 인천으로, 서울로…. 각자의 일터를 향해 일상으로 돌아가다. 아직도 작업을 다 끝내기 위해서는 다섯 번의 모임이 더 남아 있다. 그 시간을 위하여 파이팅!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고, 즐거운 시간이시기를!
모두 10명 중에서 고려대 박영순교수님과 부산대 김정자교수님은 정년퇴임을 하셨다. 아래 작품은 박영순 교수님퇴임기념으로 쓴 작품이다.
만남의 기쁨 있어 서로서로 기다렸고
이야기꽃 만발하던 양평의 눈 덮힌 산속
다정한 북한강물이 가슴속을 흐르고
몇 날 며칠 갇혀있던 그 좁은 공간에서
용기있게 탈출하여 여유있게 마신 커피
유명산 개울물들이 함께 깔깔 웃어주던
양평의 가을숲길 추억 속을 걷노라면
함께 어울려 용문산 은행나무가 되고, 봄밤의 달아공원 매화가 되고,
박수치는 맘마미아 관객이 되고, 그 옛날 경복궁 풍경이 되고, 그윽
한 평창동 솔바람이 되고, 굽이도는 하회마을 강물이 되고, 넘실대는
제주앞 푸른 바다가 되고, 먼 속리 법주사 풍경소리가 되고, 가슴마
다 한 편의 아름다운 시가 되어,
아득한 그리움으로 출렁이며 흐르네.
「시간의 강물」 - 박영순교수님 퇴임축시
위의 작품은 『꿈과 열정이 있는 풍경』(박영순 편저, 한국문화사, 2008)이라는 책 속에 실려있다.
유명산
갈대밭 위
가을이 지나간다
날개 쉴 줄
그는 몰라
지칠 줄도
그는 몰라
단단한
허공을 가르며
새 한 마리 날고 있다
「세월」 전문
맨 앞의 작품은 어느 겨울아침 눈 내린 유명산을 바라보며 쓴 작품이고, 마지막 작품은 단풍든 유명산을 바라보며 쓴 작품이다. 유명산의 사계(四季)를 바라보며 많은 생각에 잠겼던 1년의 시간, 참으로 행복하게 느껴진다. ‘교과서검정’이라는 국가적인 차원의 일을 하기 위해 우리는 모였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그 시간을 기다렸던 건 그 모임의 구성원들 때문이다. 아무도 모난 성격이 없었고, 서로서로 인격을 존중해 주었고, 일의 분담에 대해서도 불평하는 이가 없었고, 자기가 맡은 일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하는 책임감 강한 사람들의 모임이었기 때문이다.
일하는 사람들에 따라 그 일이 즐거울 수도,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소중한 만남, 양평의 시간들은 내 생의 아주 행복한 간이역이었다. <2009. 8. 12. 최종 고치다>
제주도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4.강삭철도(鋼索鐵道, Cable-Railway)- 시조로 쓰는 영동선 철길 따라 4 (0) | 2009.04.07 |
---|---|
사랑한다, 얘들아! / 김민정 (0) | 2009.04.03 |
스위치백(switch back) 철로 - 시조로 쓰는 영동선 철길따라 제3회 (0) | 2009.02.15 |
탄광촌의 삶 - 시조로 쓰는 영동선 철길 따라 제2회 (0) | 2009.01.24 |
어린 날의 삶 - 시조로 쓰는 영동선 철길 따라 제1회 (0) | 2008.10.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