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詩가 있는 병영

밤벚꽃 / 이승은 - 시가 있는 병영 31

by 시조시인 김민정 2008. 9. 27.


2008년 08월 18일 국방일보
 
詩가 있는 병영 - 밤벚꽃 <이승은>
 

별납으로 날아온
무작위의 우편물처럼

그저 맹목이던
사랑의 허울들이

봄 한때 꽃잎 흩는다, 소인마저 지운 날


어둠 쪽에 닿을수록
더듬이는 예민해진다

분분한 너의 몸짓 멈칫거리다 말고

한사코 벽이란 벽은 밀어젖히다 말고


   작가는 시인. 1979년 민족시 백일장 장원으로 등단. 한국시조작품상, 이영도 문학상, 중앙시조대상 수상. 시집 : ‘시간의 물그늘’ ‘길은 사막 속이다’ ‘술패랭이 꽃’ ‘시간의 안부를 묻다’ ‘환한 적막’ 등.

   위 시는 사랑의 이미지를 몽환적인 밤벚꽃에 얹어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시조다. ‘별납’으로 날아오는 무작위의 우편물이란 화자에게만 특별히 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보내지는 우편물이다. 이렇듯 무작위로 선택되고, 맹목이던 사랑, 그 허울들이 밤벚꽃 꽃잎 흩듯 흩고 있다. 소인처럼 찍혔던 사랑의 기억, 그리움의 기억마저 지운 날에.
   밤벚꽃이 지는 것을 사랑이 지는 것으로 비유해 말하고 있는 시다. 둘째 수에 오면 사랑이 희미할수록 사랑을 감지하는 능력, 그것을 찾고자 하는 능력은 예민해진다. 그것을 찾으려는 노력은 예민해 질 수밖에 없지만, 떨어지는 꽃잎처럼 사랑의 모습도 멈칫거리다 마는 몸짓이 된다. 벽이란 벽도 한사코 밀어젖혀 보려 하지만 그것은 노력일 뿐 돌아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된다.
<시풀이: 김민정-시인·문학박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