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익 <에코팜 통신 / 298>
대상에 숨겨진 '보물' 찾기
-견자(견자)로서의 김민정 시인, 그의 시세계-
시인이 도달해야 할 이상형으로 '견자(견자)를 제시한 19세기 프랑스 시인 랭보. 대상의 내면에 숨겨진 '비밀스런 암호'를 찾아내고 해독해 보여줘야 할 의무와 능력을 지닌 자가 견자로서의 시인이다. 그런 점에서 김 시인은 견자이며 현자(현자)이다.
이번 열두 번째 시조집을 낼 때까지 시조 장르를 세상에 대한 망원경 혹은 현미경으로 택한 시인의 의도는 어디에 있었을까. 매우 절제된 언어구사와 깔끔한 이미지를 통해 대상의 미적 골수(골수)를 펼쳐 보여야 하는 시조 특유의 어려움. 그 난제를 잘 소화해 낼 자신감 때문이었으리라. 따스하면서도 날카로운 관찰의 시력을 쉼없이 벼림으로써 대상에 숨겨진 비밀스런 보물들을 오롯이 캐낼 수 있었던 것이 견자로서의 김 시인이 갖고 있는 최대 장점이다.
예컨대, '역(역)을 노래한 시들을 보자. 역들을 지나는 열차는 공간과 시간의 변화를 체현하는 대상이다. 역들을 통과하는 열차의 움직임은 단순히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의 직선적 흐름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시간에 따른 공간의 변화들을 보여주고, 그 변화는 복잡하게 엉기면서삶의 진실로 구체화된다. <협곡열차>는 '언덕 아래 홍시'를 통해'가을'의 시간대를 표상하지만, 폐광촌 마을 어귀를 '어루만져' 주기도 한다. 치열했을 삶의 한 부분을 쏜살같이 달리는 기차 안에서 내다보는 견자의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의도적으로 사이사이 배치한 듯한 불교 시들은 또 어떤가. 부처의 가르침을 자연의 캔버스에 풀어쓴 달관의 시상들. 장광설로 교리의 심층을 설명하는 대신 몇 글자로 비밀스런 내면의 핵심을 찔러주는 김 시인의 시들이야말로 불립문자(불립문자)로 오도(오도)의 종착역을 보여주는 선문답(선문답) 그 자체가 아닌가.
긴 말 필요 없다. 이상의 언설들 모두는 표제시 <펄펄펄, 꽃잎>에 집약되어 있다. 다음은 그 시.
순한 햇살들이 초록숲을 만들 동안
바람에 지는 벚꽃, 천지가 꽃안개다
나이테 둥근 시간도 새떼로 날아간다
움직이는 모든 것엔 둥지 트는 사랑 있지
실시간 반짝이는 봄볕 속 너를 본다
봄이다, 꽃불자락이 들녘마다 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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