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긍정의 시학 - 김민정 시인론(문무학 시조시인, 문학박사)

열정과 긍정의 시학

  

                                 문무학 (시조시인, 문학박사)

  

1. 현대시조 100주년과 단시조 100편

   

    2006년은, 현대시조 창작 100주년이 되는 해다. 김민정 시인이 개인적으로 현대시조 100주년을 기념하여 단시조 100편을 묶은  “사랑하고 싶던 날”이라는 한 권의 시집을 상재한다. 이 사실은 무엇보다도 김민정 시인의 시조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아름답게 보인다. ‘시조’는 어떤 의미에서든 우리 민족이 창조한 고유한 시의 형식이고, 그 속에 우리 민족의 삶과 미의식이 갈무리되어 전승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김민정 시인의 단시조 100편의 시집 상재는 단순히 개인적 차원에만 머무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이 시집이 가지는 특성은 외형적으로 시조의 원류인 단시조 100편만으로 묶어진다는 것이다. 김민정 시인의 단시조 100편만으로 한권의 시집을 묶겠다는 발상의 근원은 어디 있을까. 그는 시집 첫머리 ‘시인의 말’에서 

  

  “단시조는 시조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다. 순간의 감정을 진솔하게 노래하는 단시조는 정서 중 절정의 한 순간을 집약적으로 드러내기에 가장 적절한 형태이며, 언단의장(言短意長)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3장 6구 12음보의 짧은 글이지만, 그 의미만은 얼마든지 길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짧아서 읽기 쉽고 외우기 쉬워 독자들에게 더욱 사랑 받을 수 있다. 거기에 단시조의 진정한 매력이 있다.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점점 간편한 것을 좋아하는 현대인에게 있어 짧은 시가 선호될 수밖에 없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단시조는 그 만큼 매력이 커질 수밖에 없는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고 단시조집을 묶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이 글을 통해 우리는 김민정 시인의 시관을 엿볼 수 있다. 이 글의 핵심을 간추린다면

 

  1. 단시조는 시조의 본령이다.

  2. 단시조는 서정시의 본질인 순간성을 포착한다.

  3. 단시조는 언단의장(言短意長)의 형태이다.

  4. 단시조의 짧은 형식이 독자와 시대의 요구에 부합한다.

 

 

는 것이 된다.

 

    이상은 단시조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신뢰를 갖게 한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피면

 

    1. 단시조가 시조의 본령이라고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시조는 민족의 역사와 함께 흘러오면서 3장 6구 12음보로 정제된 것이다. 이것이 시대 상황과 맞물려 그 시대 의식을 드러내기에 적합한 형태로 변용되어 왔지만 단시조가 본령이라고 하는 것은 틀림 없는 일이다.

 

    2. 단시조가 서정시의 본질인 순간성을 포착한다는 것도 시론의 기본이다. 시가 순간의 장르이며, 한 순간 속에 강렬하고 집약된 형태로 자아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은 단순한 순간이 아니다. 시인의 의식상에 있어서 현재의 순간에 많은 과거들, 체험들이 동시적으로 공존해 있는 순간이거나, 이 순간 속의 사항들이 무엇이든 이것들이 결합되어 하나의 의의 있는 패턴을 가지게 되는 연속적 순간인 것이다.

 

   3. 단시조가 언단의장(言短意長)의 형태라는 것도 재론의 여지가 없다. 언단의장의 형태를 갖추어야 하는데 시조 창작의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4. 단시조가 독자와 시대의 요구에 부합할 수 있다는 주장도 일리 있는 일이다. 독자와 시대의 요구에 적합하지 않은 예술 장르의 앞날은 캄캄하다. 시대를 외면하고 독자를 외면하고 성공할 수 있는 예술의 장르는 없다. 

     따라서 김민정의 이 같은 단시조관을 읽으면 시조 사랑의 한 투사가 나타나 그 열정을 쏟아놓은 것이 이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이 시집에 실리는 작품들을 ‘100편의 얼굴’이란 제목으로 형식을, ‘100편의 내용을 가슴’으로, 형식과 내용을 떠받치는   ‘시조 미학’을 ‘100편의 다리(脚)’ 로 나누어, 시조라는 건강한 미의식으로 무장한 몸의 형체를 살펴보려고 한다.

 

 2. 단시조 100편의 얼굴 

     김민정 시인의 단시조 100편을 묶는 이 시집은 적어도 두 가지 면에서 두드러지는 점이 있다.

     첫째는 3장 6구 12음보에 대단히 충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조 형식의 미는 어떤 천재가 나와서 만든 것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민족의 지혜로 갈고 다듬어져 온 형식이다. 그런 점을 잘 알고 있는 김민정 시인이 그것을 작품으로 잘 구현해 내고 있다. 정격에 의한 작품만을 쓰고 있고, 파격의 작품을 창작하지 않았다. 이 사실은 단시조 100편을 묶는다는 데서 짐작되는 일이었다.

    둘째는 시상을 전개하며 다양한 배행법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고시조의 경우는 띄어쓰기 없이 3장을 줄글로 쭉 이어 기사했다. 그러다 3장의 형태로 기사되었고, 최남선의 ‘백팔번뇌’에서 6구의 형태로 기사되어 왔다. 그 이후 다양한 기사법이 활용되었다. 김민정은 단시조의 배행법에서 있을 수 있는 모든 배행법을 활용했다고 할 정도로 다양하게 하고 있다. 

  가)

  청매화 가지 사이

  햇살 참 부신 날은

  그대 위한 고운 노래

  목청껏 부르고파

  푸르른

  하늘 가득히

  마음

       둥둥

          띄워

               놓고

                         -청매화 피는 날- 전문

나)

청초한 꽃망울을

                          촉촉촉 적시면서

그대 가만 내릴 때면

                          세상 참 아득해라

천지엔 환희가 트네

                          눈부셔라 아, 봄날

                                  -봄비, 그대- 전문

다)

말하고

   싶었었다

      고백하고

            싶었었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너무도

   너는

       순수했고

          푸르렀고

                맑았다

                         -오월- 전문

라)

  저   길  을 

  따

      라

          서

  가  을  이  

  오고 있다

 

  저   길  을

  따

      라

          서

  가  을  이  

  가고 있다

  

오  가  는

 길

   은

     하

       나

           다

시 간 들 이

다   를   뿐    

                      -저 길을 따라서- 전문

   작품 가)는 초․중장을 구별로 표기하다가 종장에 와서 결구를 어절 별로 띄우고 행갈이를 하고 있다. 단순히 행갈이만 한 것이 아니라  “마음 둥둥 띄워 놓고” 라는 구를 4행으로 나누어 마지막 두 행을 들여쓰기를 통해 시각화하고 있다. 

   작품 나)는 구별 표기의 변용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인데 각 장 첫 구의 행을 바꾸고 첫 구가 끝나는 데서부터 둘째 구를 시작하는 형태로 종장까지 표기하고 있다. 그것은 봄비라는 시제에서 답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그것은 가느다란 봄비의 빗줄기를 연상시키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작품 다)는 음보별로 표기하면서 각 음보마다 한 칸씩 들여쓰기를 통해 변화를 꾀하고 있다. 중장에서 접속사 ‘그러나’를 네 번이나 반복하여 놓았다. 망설임을 더욱 절실하게 하기 위함이다.

   작품 라)는 시제에서 ‘길’을 시각화한 배행을 하고 있다. 따라서 길을 시각화하기 위해서 띄어쓰기를 무시하고 한 글자씩 띄어쓰기도 했다. 행갈이를 통해 시의를 넓히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시도들이 처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이를 두고 우리는 포말리즘의 기법으로 읽기도 한다.

   김민정 시인의 이런 배행법 활용은 시조 형식 운용에 매우 열린 의식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시조가 3장이나 6구의 표기법만으로 배행된다면 얼마나 지겨울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너무나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 그것은 낯설게 하기의 방법일 것이다.

   시조의 배행은 시조라는 형식 때문에 형식적 분절, 이를테면 장별, 구별, 음보별로만 표기해야 한다는 의식에서 벗어나 있다. 3장 6구 12음보라는 시조의 형식이 있지만 그 형식을 변용하여 작품마다 그 작품에 걸맞는 배행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3. 단시조 100편의 가슴

    제1부, “매화향기 바람에 날리고” 에는 25편의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실려 있다. 자연을 통해 우리 삶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따뜻한 시인의 마음이 드러난다. 자연, 그것은 우리들의 영원한 스승이다. 인간이 만든 책만이 인간의 스승이 아니라, 그냥 보여주기만 하는 자연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미국의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 집을 짓고 살며 자연 속에 산 경험이 있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자연에게 배운 것’이라는 시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았다.

    “여기 전에 알지 못하던/ 어떤 분명하고 성스러운 약이 있어/ 오직 감각뿐이던 내게 분별력이 생겨/ 신이 그러하듯 사려 깊고 신중해 진다.//    

   전에는 듣지 못하던 귀와 보지 못하던 눈에/ 이제는 들리고 보인다./ 세월을 살던 내가 순간을 살고/ 배운 말만 알던 내가 이제는 진리를 안다.// 소리 너머의 소리를 듣고/ 빛 너머의 빛을 본다./ 태양이 그 빛을 잃을 만큼. "

    자연을 노래하는 문학 작품에서 무엇인가를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문학 작품은 아름다움을 창조하여 그 느낌을 전해주는 것이다. 그 느낌을 통해 아름다움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따라서 가르치려는 문학은 진정한 문학이 아니다. 김민정의 시는 그런 점을 훌륭히 소화해내고 있다.

  기다리던

  꽃 소식에

  마음이 온통 달아

  찻잔으로

  가는 손길

  그도 한참 뜨겁더니

  비로소

  꽃 한 송이가

  내 안에서 벙근다

        -기다리는 마음- 전문

    사람의 일생은 어쩌면 기다림의 연속일지 모른다. 이 시에서 시인이 기다리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사람이든 계절이든 또 문맥에 드러난 것처럼 꽃이든 그 대상이 무엇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그 대상에 대한 시인의 기다리는 마음은 붉고 뜨겁다. 붉고 뜨거운 마음은 간절함이고, 그 간절함은 무엇인가를 기어이 일구어 내고 만다. 종장 첫 음보의 ‘비로소’ 라는 시어가 주는 느낌은 ‘많은 어려움을 딛고’ 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성취의 환희를 노래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미학적 측면에서 개성적인 면을 갖는다. 환희를 시조의 형식 속에 담아내기는 쉽지도 않거니와 그것이 미학적 구조를 갖추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그런 난관을 극복하여 그야말로 한 송이 꽃을 피우고 있다.

  양지쪽에

  볼쑥볼쑥

  볼우물이 예쁜 소녀

  갸웃갸웃

  환한 웃음

  서둘러 온 봄나들이

  보랏빛 고운 자태가 눈부시게 상큼한

                                      -제비꽃 산책- 전문

     봄 산책길이었을 것이다. 길섶에 제비꽃을 보고 그 제비꽃에 시인의 마음을 얹은 것이다. 의인법을 통해서 이미지를 만들고, 마치 제비꽃을 닮은 소녀가 우리들 앞으로 걸어오는 듯한 느낌을 주는 시다. 그 감각적 표현이 산책의 즐거움과 함께 밝은 연상을 가지게 한다. 이 또한 앞에서 언급한 ‘기다리는 마음’과 같이 기쁨을 시로 승화시키고 있다. 김민정의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확연히 보인다. 긍정적이다. 그 긍정 속에 아름다움을 피워내고 있다. 우리 시조가 비교적 비장미에 기댄 바가 많았다는 것을 돌아본다면 김민정의 시는 그 나름의 공간을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제2부 “봄비, 그대”  역시 25편의 시조를 담고 있다. 1부가 자연물에 대한 소재를 취한 것이라면 2부는 자연 현상에 대한 소재가 많다. 비, 장마, 안개, 달빛, 파도, 가을 등의 소재에 우리 삶의 모습을 담거나 포근함에 기대는 시인의 정서가 노래되고 있다. 

  기척 없이 다가와서

  마음 깊이 잠기는 이

  첩첩이 사로잡아

  마구마구 흔드는 이

  누굴까

  어디로부터

  내게 오는 손님일까

                 -안개- 전문    

  ‘안개’ 는 지표면 가까이에 있는 아주 작은 물방울들이 부옇게 떠 있는 현상이다. 다가와서 사로잡고 마구마구 흔들지만 시인은 그런 안개를 손님으로 생각한다. 손님은 내가 보내는 것이 아니고 내게로 오는 것이다. 손님도 반가운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지만 ‘안개’를 손님으로 비유하는 시인의 가슴은 따뜻하기 그지없다.  

   발돋음하다

  발돋움하다

  혼자 가만 불러보는

  철썩이다

  철썩이다

  아픔으로 피멍드는

  그리운

  이름 하나를

  끝내 묻지 못하는

           -파도-  전문

    ‘파도’는 초장에서 ‘발돋음하다’를 반복하고 중장에서 ‘철썩이다’를 반복하면서 파도의 동일한 움직임을 드러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운 이름 하나를 묻지 못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종장 결구의 ‘묻지 못하는’이 중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어서 더 생각하게 하는 묘미가 있다. 그리고 각 장의 끝을 ‘~는’으로 끝낸 것도 재미가 있다. 이런 방법이 언단의장의 시조 형식적 특성을 살리는 것으로 이해된다.

    제3부는 ‘사랑하고 싶던 날’ 이라는 부 제목으로 25편의 시를 담았다. 시제에 유독 사랑이란 단어가 많이 띈다. ‘사랑하고 싶던 날’을 비롯하여 ‘사랑, 영원한 길’, ‘사랑’.‘우리 사랑은’ 등이 있고 사랑에 가까운 제목으로 ‘마음 한 장’, ‘인연’, ‘그리움의 빛깔은’, ‘어떤 만남’ 등도 있다. 따라서 사랑이 주제가 되는 부로 보인다.

   ‘사랑’을 사전적으로 해석하면  ‘이성의 상대에게 끌려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 마음의 상태’를 가리키기도 하고 ‘부모나 스승, 또는 신이나 윗사람이 자식이나 제자, 또는 인간이나 아랫사람을 아끼고 소중히 하는 마음’ , ‘남을 돕고 이해하려는 마음’,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열렬히 좋아하는 이성의 상대’ 등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이 어휘가 가리키는 모든 것은 우리 삶의 전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민정 시인의 ‘사랑’ 은 무엇일까.

   비가 오면

  비가 와서

  그리운 사람이여

  눈이 오면

  눈이 와서

  보고픈 사람이여

  마음에

  늘 고여와서는

  떠나잖는 당신이여 

                -사랑- 전문

   ‘사랑’은 그렇다. 늘 가슴에 고여 있는 것이다. 어디 비나 눈이 올 때만 그립고 보고프겠는가. 언제나 마음속에 차 있는 것이다. 초장과 중장이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짜여져 있지만 그것들이 간절함과 절실함을 더 해 주고 있다. ‘사랑한다’ 는 말은 결국 ‘살아간다’ 라는 말의 다름 아니라고 필자는 읽는다.  

  비 내려도

  바람 불어도

  꺼지지 않는

  불씨 되어

  언제든 어디서든

  그대 향해 활활 타오를

  가슴에

  불잉걸 하나

  간직하며

  살고 싶은

                - 불꽃이고 싶은- 전문

   ‘불꽃이고 싶은’ 그 열정으로 시인은 사랑하며 살아간다. 그 사랑의 대상이 사람이어도 좋고 시여도 좋다. 또 그것 아닌 것이라도 아무 상관없지만 불꽃처럼 뜨겁게 살고 싶은 마음은 삶을 긍정하는 태도가 아니면 안 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좇아가고 있다. 그 마음을 담아 “그대와/ 내가 있어/ 달도 별도 빛납니다// 그대와/ 내가 있어/ 꽃도 새도 예쁩니다// 그대와/ 내가 있어서/ 행복의 나라 있습니다.” 라는 '행복의 나라'를 건설한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단순한 생각이지만 절실함이 담긴다.

   그리고 서정시가 갖는 순간성을 반영하는 것이고 김민정 시인이 앞에서 밝힌 것처럼 짧고 쉬워서 쉽게 외워질 수 있는 장점을 가진다. 사랑은 고상한 언어로만 미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절실한 언어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각 장의 첫구를 ‘그대와 내가 있어’ 로 반복하면서 사랑을 절실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은 분명 ‘함께 있고 싶은 것’에서 출발되고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제4부는 ‘함께 가는 길’ 이다. 1부와 2부가 자연물과 자연 현상 3부가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제4부의 주제는 ‘길’로 상징된 삶의 고뇌들이다. 그 고뇌는 제3부의 사랑과 함께 이어지는 길이다.

   어디일까

  알 수 없는

  지금 내가 서 있는 곳

  세상은 나로부터

  얼마나 멀리 있고

  나는 또 중심으로부터

  얼마만한 일탈일까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전문

   그렇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이 같은 의문을 갖고 있다. 그것을 굳이 실존주의라는 철학적 용어를 빌리지 않더라도 쉬이 짐작되는 일이다. 세상 속에 있으면서 세상에서 떨어져 나온 것 같은 우리네 삶들, 김민정 시인은 이렇게 시를 통해 존재를 확인하고자 한다. 시가 그 대답을 하지 않아도 좋다. 그것은 의문 그 자체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기 때문이다.

   시상 전개에서 이런 기법은 독자의 몫을 충분히 남겨두는 미덕이 될 수 있다. 시인이 스스로 질문하고 거기다 스스로가 대답까지 표현해 버린다면 시를 읽는 맛이 줄 것이다. ‘길’이란 작품에서도 같은 기법을 적용하고 있다. “마음은/ 얼며 녹는/ 황태덕장 황태처럼//부풀었다 꺼져가고/꺼졌다가 또 부푸네// 꿈꾸는/ 자유, 그 먼 땅/ 어디쯤에 있는가.”

   그렇게 살아갈 게

  그렇게 사랑할 게

 

  조금은 모자란 듯 다 채우지 않을 게

 

  달빛도 공간이 있어야 출렁이지 않겠니

                                           -그렇게-  전문

    자기 존재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세상에 존재하는 법을 시인은 탐구하고 있다. 삶이 곧 사랑하는 것이며, ‘조금은 모자란 듯 다 채우지 않’ 고 사는 것이 삶의 방식이라고 암시한다. 여기서 그런 삶이 아름답다고 강조하는 것은 멋쩍은 일이다. 그런 의식은 ‘가을 박’ 이란 작품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맑고 깊게/ 울리는/ 선율처럼/ 부드럽다// 익을수록 의연해져/ 스스로 둥글어져// 속조차/ 텅텅 비워가는/ 저 겸허한/ 삶의 방식” 이른바 비우며 사는 것, 그것을 굳이 닮으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김민정의 시법이다.  

4. 단시조 100편의 다리 

    김민정의 단시조 100편이 한 권의 책으로 묶어져 시조문학사에 남게 되는 것은 김민정 시인의 시조 사랑의 열정에서 빚어진 것이며 그 열정은 ‘시조’가 가진 매력을 속속들이 파헤쳐 다시 그것들을 가다듬어 놓았다. 어느 한 작품이라도 가락에 소홀한 것이 없다. 그래서 시조의 맛을 제대로 살리고 있다. 깊은 의미를 담기 위하여 가락을 죽이지 않았다. 시조가 가져야 할 중요한 속성은 그 유연한 가락의 흐름을 제대로 살리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민정의 시조는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시는 철학이 아니다. 그리고 도덕도 아니다. 시는 그냥 시일 뿐이다. 순간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다. 순간성을 중시한다고 해서 깊이가 없는 것이 아니다. 시를 통해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시의 본질이며 시인은 그래서 표현의 묘를 터득해야 한다. 보이게 하고 들리게 하며 만질 수 있게 하며 냄새가 나고 맛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색안경을

  벗어놓고

  세상을 볼 일이다

  스쳐가는

  바람의 말도

  새겨들을 일이다

  생각을

  되새김질하여

  가다듬을 일이다 

                     -시인은-  전문

   이 작품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김민정 시인은 감각적인 시를 쓰고 있다. 초장은 시각을, 중장은 청각을 종장은 동작 이미지를 동원한 촉각의 이미지를 동원하고 있다. 그만큼 감각적이다. 시가 감각을 통해 이미지를 제시하는 일은 기본적이지만 그 활용이 그리 만만한 건 아니다. 그래서 김민정 시인을 이미지스트로 부르게 한다.

   이 작품은 또한 시인이 견지해야 할 정신적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메시지를 중심으로 볼 때 시인은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되며, 모든 사물을   함부로 대해서도 안 된다. 이것은 세밀한 관찰을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섣부른 생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인식하고 있다.

 

    감각적 이미지를 통해 시상을 엮어가는 김민정의 시는 대체로 우아미를 창출하고 있다. 우리 문학사에서 시조의 미의식은 숭고미, 비장미, 우아미로 파악되어 왔다. 정병욱이 “한국고전시가론”에서 파악한 것이다. ‘숭고미’는 ‘숭고한 느낌을 주는 아름다움’이고,  ‘비장미’는 ‘슬픈 감정과 함께 일어나는 아름다움’, ‘우아미’는 ‘고상하고 기품이 있는 아름다움’이다.

    김민정 시조의 미학을 ‘우아미’ 한 곳으로 몰아가기는 곤란하지만 그가 구현하고 있는 시조미학은 우아미 쪽에 가깝다. 그의 단시조 작품들이 자연을 소재로 했다고 해서 그렇게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김민정의 세계관은 매우 따뜻하고, 그의 시각이 대체로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따뜻하고 긍정적인 세계관과 시조에 대한 열정이 현대시조 100주년에 100편의 단시조를 꽃으로 피워올렸다. 그 꽃밭에서 나는 향기는 우아하다. 그것들을 온전하게 받치고 있는 힘 , 그것을 굳이 줄여낸다면 필자는 열정과 세상을 읽는 긍정적 시선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그것이 김민정 시인의 시를 받치고 있는 건강한 다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