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01. 02>
국방일보 신년축시
새아침의 노래
宇玄 김민정
용맹하되 분별 있고
영리하되 의리 있는
그대의 모습처럼 푸르고도 싱그러운
병술년 크고 밝은 해 우리 앞에 솟고 있다
만주벌판 말 달리던
고구려의 기백 지닌
새 희망의 푸른 물결 줄기차게 출렁이는
씩씩한 얼굴 내밀며 또 한 해가 태어난다
튼튼하게 가꾸는 건
풍요롭게 가꾸는 건
두려움을 물리치며 새로움에 도전하는
청춘의 푸른 꿈이다 용기이다 힘이다
냉철한 머리 위로
지혜의 샘이 솟고
뜨거운 가슴 속에 열정의 꽃이 피는
창조의 눈부신 한 해 그대 안에 빛난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의 문 활짝 열어
희망, 용기, 사랑, 젊음 그대 속에 품으며
병술년 눈부신 아침, 머리 높이 치켜들자
<2006년 1월 4일, 수요일>
난(蘭)을 보며
정근옥
저녁 노을
비스듬히 스쳐가는 창가
술보다 독한
가슴 속 향을 뿜어내는
조선여인의 아름다운 눈매여
잎새 끝
하늘 향해 뻗다가
다시 땅을 향해 수굿이 휘어져
직선보다 곧은 삶을 살아온
조선여인의
그 자혜로운 몸짓이여
아름답게 향기나는 동양란을 조선여인에 비유하고 있는 작품이다. 화자는 난향을 ‘가슴속 향을 뿜어내는 조선여인의 아름다운 눈매’로, 하늘 향해 위로 뻗다가 다시 수굿이 휘어지는 난잎의 곡선을 ‘직선보다 곧은 삶을 살아온 조선여인의 자혜로운 몸짓’으로 표현하고 있다. 난잎의 생김새에 대한 시각적 묘사와 난잎의 우아하고 아름답고 기품있는 모습을 조선여인의 아름다움으로 표현한 심미적 묘사가 뛰어나다.
<2006년 1월 9일, 월요일>
산정호수
김민정
어느 머언 기슭 돌아
그대 모습 펼치는가
의연히 버틴 바위들
병풍처럼 둘러치고
그림자
드리운 능선
가슴 속에 품으며
푸른 잎도 다 떨구고
다시 봄을 기다리며
싹 틔울 눈 키워가는
겨울나무 벗하면서
빛나는
미래를 꿈꾸는
그대 푸른 눈동자
초겨울 교직원 연수로 찾은 산정호수. 호심 속에 그림자로 품는 산이며 바위며 하늘이며 구름이며…그들을 품고 산정호수는 무엇을 꿈꾸고 있었을까. 차가운 바람은 수면을 스쳐가고 앙상한 나뭇가지들은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하늘을 향해 꿋꿋하게 서 있는 모습이 너무나 의연했고 그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꼈다. 푸른 잎을 다 떨구었지만 다시 새 봄을 준비하는 의연한 겨울나무들과 함께, 빛나는 미래를 꿈꾸고 있는 듯한 깊고 푸른 눈동자의 산정호수 모습을 표현해 본 작품이다.
<2006년 1월 11일, 수요일>
남산 마애석불
강우식
이 문둥아, 코 뭉그러지고 볼 떼어지고, 눈썹도 바람에
뜯겨나간 이 문둥아. 저 佛에도 천년을 바람이 깎고,
비가 훑어내려서 사람 같은 천형이 깃들었구나.
서역 하늘에 놀이 타는데 부처님 코 같은 남산이 온통
불에 졌는데 佛이기보다는 문둥이더라도 사람이기를
소원한 이 문둥아!
경주 남산에 가면 많은 불상이 있다. 목이 없는 불상도 있고 코가 뭉그러진 불상도 있고, 볼이 떼어져나간 불상도 있고, 눈썹이 바람에 뜯겨나간 불상도 있다. 그 불상들의 모습에서 화자는 마치 눈썹이 으깨지고 코가 뭉그러지는 문둥병을 앓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고 이러한 불상을 문둥이라고 부르고 있다. 바위를 깍아 만든 부처도 오래되면 바람이 깍고 비가 훑어내려서 천형이 깃들었다고 말함으로써 돌부처에게 생명을 부여하고 있다. 또한 화자는 존귀하고 엄숙한 부처의 모습이라기보다 소박한 인간의 모습에 더 가까운 그들을 ‘佛이기보다 문둥이더라도 사람이기’를 더 소원한 문둥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손상된 불상에 대한 애정과 함께 인간에 대한 애정도 함께 나타나는 작품이다.
<2006년 1월 16일, 월요일>
하늘재 눈 내리다
민병찬
어둔 밤 불빛 속에 홀연한 왈츠 리듬
너울너울 쏟아지며 말씀의 저자 서느니
길 떠난 장꾼 모이듯 들에 길에 하얀 손님.
사랑의 빙점(氷點)에서 얼지 않은 꽃잎으로
이 겨울 황사에도 결지 않은 저음(低音)으로
오소서 첫사랑 약속인양 설레이는 몸짓으로.
내리는 첫눈으로 깊은 밤이 눈을 뜨듯
적막한 영혼의 숲에 하얀 길을 내는 불빛
포개며 더욱 포개며 쌓여지는 말씀의 탑.
화자는 문경새재의 하늘재에서 첫눈이 내리는 모습과 감회를 말하고 있다. 밤하늘에 내리는 눈, 불빛 속에 바라보는 눈은 꼭 왈츠의 리듬을 타고 춤을 추는 모습이다. 그 너울거리는 모습을 말씀의 저자가 서고 장꾼들이 모여들고 있다고 화자는 보고 있다. 눈 내리는 모습을 꽃잎으로, 저음으로 첫사랑 약속인양 설레이는 몸짓으로 표현하여 첫눈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적막한 영혼의 숲에 하얀 길을 내는 불빛’이라고 하여 첫눈 내리는 날의 포근한 대화의 말씀들이 쌓여짐을 얘기하고 있다.
<2006년 1월 18일, 수요일>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정 현 종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그렇다. 삶은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한다. 지나고 보면 그 모든 것들에 조금만 더 정성을 기울였다면 좀더 나은 결과를 가져왔을 텐데...하는 후회를 할 때가 많다. ‘노다지’는 황금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황금처럼 소중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화자는 이 작품의 말미에서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이라고 말하고 있다. 삶을 다 살고 난 다음에 이러한 것을 깨닫는다면 이미 늦는다. 일찍 깨달아 순간순간 성실하게, 보람있게 살아간다면 더 좋지 않을까.
<2006년 1월 23일, 월요일>
돌마저 핏빛인가
이승현
무너진 적석총 옆 검붉은 거친 돌밭
처음 밟는 이 땅에
눈시울 붉어, 붉어서
칼칼한
속울음 운다
고구려여, 고구려!
목청껏 부르짖으며 오녀봉 깨워놓고
돌 틈에 갇힌 함성
처연히 일깨운다
압록강
휘몰아치며
몰려오는 말발굽 소리
천년을 속으로 울어 돌마저 핏빛인가
지금 밟고 있는 이 흙
서러워 서러워서
철쭉꽃
만개 하는 날
저 가슴에 불 지르리
*오녀봉 : 중국 집안에 있는 제일 높은 다섯 봉우리를 일컬음.
집안이라는 고구려의 유적지를 돌아보며 쓴 작품이다. 푸른 기상을 지녔던 고구려, 그 고구려를 중국은 자기네의 역사라고 우기고 있다. 고조선 이후 넓은 대륙을 차지했던 것이 삼국 시대의 고구려가 아니었던가. 말타기와 활쏘기를 즐겨했던 그들의 씩씩한 말발굽 소리를 화자는 압록강에서 듣고 있다. 또한 옛고구려 땅을 밟으며 그때의 역사를 생각하고 우리 역사의 현실을 생각하며 칼칼한 속울음을 울고 있다. 그것은 옛조상의 넓은 삶의 터전을 돌아보며 작은 땅덩이에, 남북마저 분단된 현실의 옹졸함에서 느끼는 서러움을 것이다.
<2006년 1월 25일, 수요일>
낚시
김경수
바늘 끝으로
물을 낚는 자 누구인가
한번쯤 누군들 물살 당겨 보지 않았던가
누군들 한번쯤 던져 보지 않았던가
적막으로 밀려오는 어둠을 거술러
잠식된 의식을 낚아 챌
이 밤 바늘 끝은 流露처럼
헛물을 켜 대며
쏟아지는 별빛에 일격을 가하지만
어느 골짜기 대대로 자리잡은
저수지 고인 물을 퍼 올리기란
새벽까지도 어찌 하지 못하는
욕망의 눈빛으로
파동을 일으키는 사람 사람
사람들 마음일거다.
우리는 무엇을 낚기 위해 늘 낚시 바늘을 드리우는가. 그것은 물에만 드리우는 것이 아닐 것이다. 삶의 바다, 삶의 강물에도 끊임없이 낚시 바늘을 드리우고 있다. ‘한번쯤 누군들 물살 당겨 보지 않았던가/ 누군들 한번쯤 던져 보지 않았던가’ 대어가 낚기기를 소망하면서, 우리가 꿈꾸는 욕망...
시인은 잠식된 의식을 낚아채고 싶어하지만 ‘이 밤 바늘 끝은 유로처럼 헛물을 켜 대며’ 쏟아지는 별빛에 일격을 가할 뿐이다. ‘저수지 고인 물을 퍼 올리기란/ 새벽까지도 어찌 하지 못하는/ 욕망의 눈빛’으로 괴로워할 뿐이다.
<2006년 2월 1일>
이슥하여라
김홍일
잔설 다 녹인
따사로운 햇볕이
질퍽거리는 어린이 놀이터 흙바닥에
개구쟁이처럼 뒹굴고 있다
유난히 부드러운 머드팩의 속살
금빛 비늘이 떨어진다
할 일 없는 놀이터 미끄럼틀이 꿈속에서
개구쟁이 동네 아이들을 만난다
해 바른 담 아래,
동면에 지친 은둔의 욕망이
눅눅한 생을 말리고 있다
동토를 껴안은 겨울나무의
초연한 의지
저 깊은 침묵의 언어를 듣는다
아, 한겨울 속에서도 정녕
소리없이 봄은 움트고 있었다
아직 겨울이 다 가지 않은 어린이 놀이터, 그러나 입춘이 다가오고 있다. 눈이 녹아 질퍽거리는 진흙바닥을 따뜻한 햇살이 비추고,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진흙을 머드팩의 속살로 시인은 비유하고 있다. 긴 겨울을 나듯 힘든 삶을 ‘동면에 지친 은둔의 욕망이 눅눅한 생을 말리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화자는 인내하며 ‘동토를 껴안은 겨울나무의 초연한 의지’로서 침묵의 언어를 듣고 있다.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라는 시구를 떠올릴 것이다. 그리하여 화자는 한겨울 속에서도 소리없이 봄이 움트고 있음을, 희망이 다가옴을 노래하고 있다.
<2006년 2월 8일>
매화향기 바람에 날리고
김민정
이 봄 다시
피, 겠, 어, 요
그대 깊은
가슴 속에
뜨거운
눈맞춤의
설레었던
그, 때, 처, 럼
하아얀
항기 날리며
봄날 가득 메울래요.
이 작품의 화자는 매화이다. 매화의 매력은 차가운 겨울바람이 채 가시기도 전에, 꽃망울을 맺고 꽃을 피운다는 점이다. 때문에 매화는 불의에 굴하지 않는 지조와 절개를 지키는 지사(志士)를 상징하기도 한다. 봄소식을 알려주는 꽃으로 예부터 동양인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온 꽃이기도 하다. 범석호(范石湖)는 《매보(梅譜)》에서 ‘천하에 으뜸가는 꽃’이라 하였고, 강희안(姜希顔)은 화목을 9품으로 분류한 《양화소록(養花小錄)》의 화목9등품론에서 소나무, 대나무, 연꽃과 함께 1품으로 분류하고 높고 뛰어난 운취는 취할만하다고 하였다. 또한 매화는 매난국죽(梅蘭菊竹)의 사군자 중 으뜸이기도 하다.
찬바람과 눈보라를 이겨내는 매운 맛이 느껴지는 꽃, 꿋꿋하면서도 청초함이 느껴지는 꽃, 진한 향기가 사방으로 퍼지는 아름다운 꽃이다.
<2006년 2월 13일>
첫눈
이근덕
산새도 날지 않는 고즈넉한 첩첩 산중
적요한 산자락에 설렘이 내리는 밤
벽난로 장작불꽃은 밤새 활활 타오르고
법화경 한 소절이 고운 인연 빚었을까
감잎에 놓인 찻잔 저토록 정겨울까
은은한 설록차향이 몸에 가득 배이는 밤
솔바람 솔솔 불어 애간장을 다 녹이고
촉촉이 젖는 이 마음 하늘마저 아는지
하늘엔 흰 꽃이 피네 범종소리 퍼지네.
첫눈이 오는 산속의 정경이 잘 나타나는 작품이다. 첫째 수에서는 고요한 산속의 눈이 내리는 정경을 묘사하고 있다. 화자는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을 ‘설렘이 내리’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으며, 눈 내리는 바깥 정경과 함께 안의 정경은 벽난로의 장작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어, 차가움과 뜨거움의 대조이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고, 또한 서정성이 짙게 나타난다.
둘째 수에서는 설록차향을 음미하는 밤의 정겨움이, 그리고 셋째 수에서는 눈 내리는 밤의 낭만에 젖는 마음과 흰 눈이 내리는 모습을 하늘에 피는 꽃으로, 세상을 향해 퍼지는 범종소리로 묘사하고 있는, 눈 내리는 밤을 정감있게 표현한 작품이다.
<2006년 2월 15일>
풍천장어
김인구
어느 강가 한 귀퉁이를 몽유하다
이 곳에 누웠을까
내장까지 말끔히 발리어진 몸매를
자랑이라도 하듯
소금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발랑 누워 있다 아니 나를 향해 서 있다
몸을 지탱하는 중심축 뼈대까지 제거된
무척추증으로 벌건 숯불을 등에 지고
나를 바라보며 서 있다
어느 강기슭을 거슬러 올라가다
인간의 덫에 걸리었을까
축소된 세상으로 녀석을 교란시켰을 수족관에서
열닷새를 굶주리며 토해낸 세상살이
녀석이 살다 간 흔적이
뿌옇게 부유하는 공간에서
소주잔을 들어 녀석의 어느 한 생애
둥근 몽유의 고리를 끊는다
끊어준다.
지금 화자는 풍천 장어를 앞에 놓고 그 풍천 장어가 화자의 앞까지 온 과정을 생각한다. 인간은 한 생명을 즐기며 먹고 있지만 그 한 생명이 살아온 과정은, 그렇게 녹녹하지가 않을 것이다.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어느 강기슭을 거슬러 올라가다/ 인간의 덫에 걸리었’고, 인간에게 잡힌 다음에도 ‘수족관에서 열닷새를 굶주리며 토해낸’ 녀석이 살다 간 흔적으로서 뿌옇게 부유하는 공간이 있을 뿐이다. 인간은 ‘녀석의 어느 한 생애 둥근 몽유의 고리를 끊는다/ 끊어준다’고 하여 인간과 장어와의 관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화자는 그것이 ‘옳다, 그르다’의 판단은 내리지 않는다. 다만 그 모습을 제시만 하고 있는, 사물의 이면을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이다.
<2006년 2월 20일>
바람이 쉬어 가는 섬
김인숙
먼 바다 항해에 지친
바람이 쉴 수 있는 섬
거센 파도를 다둑이는
작은 섬이 되고 싶다
그 섬은 산림녹화 중
아직은 황량한 돌섬입니다
천지를 주유하던 바람이
세상이야기 들려주면
가만히 귀 기울이며
들꽃처럼 웃고 싶다
작지만 아름다운 섬
아직은 척박한 돌섬입니다
지금 화자는 자신이 바람이 쉬어갈 수 있는 편안한 섬이기를 꿈꾸고 있다. 그 바람은 항해에 지치기도 하고, 천지를 주유하기도 하던 바람이다. 그래서 세상이야기도 들려주면 들꽃처럼 가만히 웃으며 귀 기울여 주고 싶은, 거센 파도를 다둑이는 작지만 아름다룬 섬이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황량한 돌섬이고, 척박한 돌섬이라고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겸손을 보이고 있다. 또한 지금 산림녹화 중이라고 희망을 보이고 있다. 언젠가는 숲이 우거지고 맑은 물이 흐르는 숲이 되어 온갖 새가 지저귀는 낙원이 될 것이다.
<2006년 2월 22일>
그대에게 가는 법
- 간비오산* 봉수대에서-
이옥진
가막한 산봉우리 눈 멀도록 바라보며
늑골 안 생솔가지 울면서 태우는 날
그립다 깃발 달고서 수상한 배 떠 온다.
산 너머 *남산봉수 전할 방법 이것 뿐
병든 심장 꺼내어 섶에 넣어 태우리라
솟아라 푸른 나비 떼 그대에게로 날아라.
홀연히 는개 구름 산정을 둘러치고
내 사랑 비 속에서 길을 잃어 버렸다
쉼 없이 나부껴다오 깃발 다섯 꽂는다.
*간비오산 봉수 : 해운대에 있는 봉수대
*남산 봉수 : 부산 기장군 남산에 있는 봉수대
화자는 옛날 봉수대를 보면서 '그대에게 가는 법'을 생각했다. 그대에게 내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 그것이 곧 그대에게 가는 방법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멀리 있는 그대에게 전할 수 있는 방법은 산정상에 불을 피우는 것, 나비떼처럼 파란 불길이 솟을 때 그대에게 소식은 전해지리라. 그런데 는개가 둘러치고, 비가 내릴 때면 그러한 방법으로도 그리운 그대에게 소식을 전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안개와 비와 바람 속에서도 꺼지지 않고 전해지기를 바라고 다섯 곳에나 깃발을 꽂는다.
봉수대는 봉홧불을 올리는 곳이다. 변란을 알리기 위해, 큰일이 있음을 알리기 위해 봉화를 올리던 봉수대를 보며 화자는 산 너머 있는 사랑하는 이에게 마음을 전하는 방법이듯 표현하고 있다. 즉 산 너머의 ‘남산봉수’와 ‘그리운 그대’를 동일시하고 있어 중의법이 사용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표현법은 독자로 하여금 두 가지를 동시에 생각하게 하는 효과적인 표현법이다.
<2006년 3월 8일>
강을 노래하고 싶지 않은가
허명
안개비가 내릴 때마다
강변에는 외로움이 모여든다
바람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가
강을 노래하고 싶지 않은가
참았던 울음 와락 터뜨리듯 그렇게
삶이란 때때로 기대해 볼만 하다며
취한 듯 바라보며
흐르는 강물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강 둔치에는 눈물이 쏟아진다
아침을 깨우며 눈을 부비고
밤을 재우며 별을 노래하듯
아직도 매달려 흔들리고 있는 목숨을
바람에 서걱이는 나뭇잎 달래며
뜬금없이 밀려오는
추억속의 그리움
끝내는 검푸른 강물위에
달빛 무리되어
싱그러운 바람으로 숨을 쉬는데
강이나 마음껏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화자는 한강을 바라보며 외로움과 그리움을 달래고 있다. 특히 비가 내리는 날에 강변에 서면 더욱 외로움이 몰려옴을 말하고 있다. 강변에 서서 바람을 이야기하고 강을 노래하고, 취한 듯 바라보는 강물…
아침과 밤을 반복해 맞으며 아직도 매달려 흔들리며 목숨을 바람에 서걱이는 나뭇잎, 그리고 인생…, 추억 속의 그리움…. 반복되는 일상 속에 다시 싱그러운 바람으로 숨을 쉬는 화자는 강이나 마음껏 바라보며 외로움을, 그리움을 달래고 싶은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2006년 3월 15일>
김시습의 푸른 기침
김남환
한 가닥 생각을 타고
바람을 거슬러 가면
복사꽃 자욱히 드는
한 필지 봄이 열려
극명한 임의 무지개
성큼성큼 다가온다.
피 묻은 모반의 땅에
눈물 뿌린 하얀 등뼈
목숨을 삭발하고
깊은 절망을 건너
청산을 걸어 잠그고
홀로 뚫은 피리 구멍
무시로 휘청거리는
창백한 강물 아래
불현듯 살아 서는
조선의 심줄 하나
두고 간 푸른 기침 소리
가슴 깊이 울린다.
지금 화자는 김시습의 삶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세조의 모반에 눈물 뿌리며 돌아섰던 김시습, ‘목숨을 삭발하고 / 깊은 절망을 건너’ 그는 끝내 세조의 유혹에도 돌아가지 않는다. ‘청산을 걸어 잠그고 / 홀로 뚫은 피리 구멍’으로 그는 방외문학인으로 살아간다.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은 무시로 휘청거리는 창백한 강물인지도 모른다. 그의 지조만이 ‘조선의 심줄 하나’로 강하게 서고, 그의 ‘푸른 기침’만이 가슴 깊이 울린다는 화자는 그의 지조, 그의 정신을 그리워하고 있다.
<2006년 3월 20일>
길
김삼환
누군가
걸어오고 있다
열리는 새벽 바다 그 꿈의 자리로
옹이 진 시간의 돌멩이를 닦으며
길 위에 길을 만들어
누군가
걸어오고 있다
멍울져 내린 깃발 그 어둠을 툭툭 털어
물결 없는 지평선에 둥실 뜨는 푸른 희망으로
망각의 날개를 접는
섬 같은 그리움으로
무심한 벽을 넘어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며
불끈 솟는 힘줄 마디마디에
깊고 깊은 노동의 환한 미소로
길 위에 길을 만들듯
누군가
걸어오고 있다
길 위에 길을 만들어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새로운 날일 수도 있고, 내 앞에 다가오는 새로운 운명일 수도 있고, 희망일 수도 있다. 우리가 걸어가야 할 인생길, 그것은 이미 정해져 있다기보다는, 언제나 우리가 새로운 각오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만들며 가야 하는 것이다. ‘멍울져 내린 깃발 그 어둠을 툭툭 털’며, ‘물결 없는 지평선에 둥실 뜨는 푸른 희망’과 그리움과 아픈 상처와 환한 미소를 간직하며 삶의 길이 걸어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망각의 날개를 접는/ 섬 같은 그리움으로/ 무심한 벽을 넘어/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며’ 오는 그것은 절망과 어둠을 넘어 오는 밝음이다.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지닌 화자를 이 시에서 만난다.
<2006년 4월 3일>
봄비, 그대
김민정
청초한 꽃망울을
촉,촉,촉,촉 적시면서
그대 가만 내릴 때면
세상 참 아늑해라
천지엔 환희가 피네
눈부셔라 아, 봄날
막 피려는 꽃망울에 봄비가 내리는 모습은 아름답다. 봄비를 맞고 난 꽃망울은 곧 활짝 필 것이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그 봄비를 맞으며 자양분을 함뿍 빨아들이고 있는 봄꽃들의 모습…. 유채화, 매화, 산수유, 진달래, 제비꽃, 벚꽃…남쪽으로부터 꽃소식은 서서히 전해질 것이다. 조용히 봄비가 내리는 날은 아늑함과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곧 피어날 어여쁜 꽃들을 상상하면 공연히 마음 설레는 눈부신 봄날이 다가온다.
<2006년 4월 5일>
목련, 너 너는
정성채
부스스 일어서며
너의 웅크린 겨울
솜털로 떨고 있지
제 속의 자랑
저리 감추고
때를 기다리며
묵묵히 준비하는 속으로의 열정
가슴에 담고 담아
인생의 고단한 긴장
모처럼 풀어헤쳐
튀밥 터지는 분주함으로
뜨거운 가슴
풍성히 열어야지
내일을 심어
희망으로 속내 다 보이며
스러지고 있다 영원히.
눈부시게 하얀 순결처럼 피고 있는 봄꽃의 여왕, 목련. 화자는 목련송이의 모습을 ‘웅크린 겨울이 솜털로 떨고 있는’으로 보고 있으며, 그러한 가운데서 묵묵히 준비하는 속으로의 열정으로 인생의 고단한 긴장을 참고 기다렸다가 때가 되면 하얗고 눈부시게 튀밥처럼 터지는 뜨거운 가슴을 지닌 생명으로 표현하고 있다. 속내를 다 드러내 보이며 아름답게 피었다가 또한 금방 스러지는 목련, 하지만 그 스러짐을 화자는 ‘내일을 심어’라고 하여 희망으로 보고 있다. 꽃의 짐은 내년을 기약하는 기다림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목련이 피는 4월, 국군장병들께도 아름다운 봄날이기를 기원해 본다.
<2006년 4월 10일>
가곡리(佳谷里)에서
리강룡
하늘 그리운 사람들이 / 산새, 멧새 데불고 산다.
동해 속살 그 빛 같은 / 물빛 투명한 풍경 속에
순수로 마름질한 옷을 / 편히 입은 사람이 산다.
별 보기만 가르쳐 온 / 뉘우침의 십여 년을
꽁지 깃 하얀 새 / 부리 끝에 물려 보내고
무채색 / 도화지 한 장 / 사서 들고 앉는다.
때때로 적막을 우는 / 먼 산꿩 / 풀빛 목청 따라
멧미나리 파란 눈이 / 봄을 여는 그 소리에
하던 일 / 일손을 놓고 / 귀를 높이 세운다.
가곡리라는 곳에는 멧새들을 데불고, 물빛 투명한 풍경 속에 순수로 마름질한 옷을 편히 입은 사람이 산다고 한다. 얼마나 세속에 때묻지 않은 순수한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그들의 마음은 아이들의 마음 마냥 무채색의 도화지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사람들이 사는 산골에 ‘때때로 적막을 우는/ 먼 산꿩’이 있고, 멧미나리 파란 눈이 봄을 열고 있다. 그리하여 화자는 ‘하던 일/ 일손을 놓고’ 봄이 오는 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높이 세운다고 한다. 가곡리라는 한 순박하고 조용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오는 평화로운 봄을 화자는 말하고 있다. 영화 ‘동막골 사람들’의 그 순박한 모습이 떠오르는 작품이다.
<2006년 5월 3일>
나 무
김윤성
한결같은 빗속에 서서 젖는
나무를 보며
황금색 햇빛과 개인 하늘을
나는 잊었다.
누가 나를 찾지 않는다.
또 기다리지도 않는다.
한결같은 망각(忘却)속에
나는 구태여 움직이지 않아도 좋다.
나는 소리쳐 부르지 않아도 좋다.
시작도 끝도 없는 나의 침묵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
무서운 것이 내게는 없다
누구에게 감사 받을 생각도 없이
나는 나에게 황홀을 느낄 뿐이다.
나는 하늘을 찌를 때까지
자라려고 한다.
무성한 가지와 그늘을 펴려고 한다.
성인은 혼자 있어도 행동이 게으르지 않으며 칭찬과 비난에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모든 사람이 다 성인은 될 수 없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개성과 자존심을 지니고 살고 있다.
다른 이에게 자랑하거나 칭찬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닌,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스스로에게 황홀을 느끼는 나무의 견고하고 의연한 자세처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아름답게 삶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사랑하고 때로는 자신을 위로하는 삶의 자세도 필요함을 이 시는 보여주고 있다.
<2006년 5월 10일>
카네이션
서정택
빠진 지 참, 오래된
빗살무늬 내 어금니
혓바닥 스칠 때마다 그리움 샐샐 샌다
따뜻한 커피 안에서 닮은 맛을 찾는다
연하디 연한 컵의 물
온통 휘저어 놓고
본딧말 숨겨 놓은 가루 설탕처럼
비밀 저, 밀림스러운 아득한 아마조네스여
종이 컵 운도에 걸린
월척짜리 여운 한 모금
크게 버둥거리다 달콤한 맛 밀어 올린다
어머니 생애만 같은 겹겹 포갠 빨간 향,
이 작품은 커피맛 속에서 카네이션을 찾는, 그리고 어머니를 떠오르게 하는 참신한 발상을 하고 있다. 화자는 커피를 마시며 그 닮은 맛을 찾고 있다. 달콤한 가루 설탕이 커피에 섞여지듯 자연스레 나의 삶에 녹아있는 어머니의 달콤함,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목에 걸리는 ‘월척짜리 여운 한 모금’ 그것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리라. 화자는 카네이션을‘어머니 생애만 같은 겹겹 포갠 빨간 향,’이라고 표현하여 어머니와 카네이션을 오버랩시키며 어머니를 간접적으로 떠오르게 한다.
<2006년 5월 18일>
어떤 경영 1
서벌
목수가 밀고 있는
속살이 환한 각목.
어느 고전의 숲에 호젓이 서 있었나
드러난
생애의 무늬
물젖는 듯 선명하네.
어째 나는 자꾸 깎고 썰며 다듬는가.
톱밥
대팻밥이
쌓아가는 적자더미.
결국은
곧은 뼈 하나
버려지듯 누웠네.
시를 쓰는 일, 그것은 목수가 속살이 환한 각목을 만들 듯, 시인의 의식이라는 숲 속에 있던 생각들을 깎아내고 썰고 다듬어서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해야하는 것이리라. 속살이 환한 각목이란 잘 다듬어진 시조이리라. 그 작품 속에는 나이테 무늬가 들어가듯 시인 생애의 무늬가 들어가 있게 된다. 즉 시인의 삶도 작품 속에 훤히 드러난다는 의미이다.
그러한 의미는 둘째 수에 오면 확연히 드러난다. 결국 시를 쓴다는 일은 ‘톱밥/대팻밥이/쌓아가는 적자더미’인지도 모른다. 생활에 도움이 안 되는 시를 쓰는 가난한 시인의 삶에 대한 표현이다. 종장의 ‘결국은/ 곧은 뼈 하나/ 버려지듯 누웠네.’라는 표현 속에는 그러한 힘든 삶 속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썩지 않고 남을 ‘곧은 뼈 하나’임을 의미하고 있다. 이러한 경영이 시작(詩作)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 모든 예술, 모든 삶의 전반적인 모습으로 확대 해석해 볼 수도 있는 작품이다.
<2006년 5월 22일>
풍장(風葬)
이원식
유리창에 갇히어
박제가 된 무당벌레
화려한 계절은
아쉬움만 남기고
창 열자 꽃잎이 되어
날아가는
칠보단장(七寶丹粧)
화자는 유리창을 열다가 그 속에 갇혀 박제가 되어 있는 무당벌레를 발견하고 있다. 무당벌레의 아름다운 색상, 그 색상을 펼치며 아름답게 생활했던 지난 날 화려했던 무당벌레의 계절은 아쉬움 속에 가고…. 창문을 열자 바스라져 꽃잎이 되어 날아가는 칠보단장의 무당벌레…. 무당벌레의 죽음을 바람에 장사 지내주고 있는 화자는 곧 한 작은 미물에게도 무심하지 않는 다감한 시인의 마음이다.
우리들의 모든 과거도, 우리들의 모든 지난 사랑도 박제된 무당벌레의 모습으로 비유해 볼 수 있다. 우리의 삶도 매일매일 어제를 풍장하며, 오늘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리라.
<2006년 5월 24일>
목어(木魚)
-백담시편 7
권갑하
길 잃고 산에 들어
문득 깨친
저
득음(得音)!
입 쩍 벌리고
금빛 비늘 벗어두고
생(生) 밖의
파란 하늘 길
영원으로 날고 있다.
목어(木魚)를 보고 화자는 무엇을 느낀 것일까. 입도 벌리고 금빛 비늘도 벗어두고,‘생(生) 밖의/ 파란 하늘 길/ 영원으로 날고 있다.’하여 절집에 매달려 영원히(?) 살고 있는 나무로 만든 물고기(목어)를 노래하고 있다.
목어는 나무를 깍아 잉어 모양으로 만들고 속이 비게 파낸 것으로 불사에 사용되는 법구의 일종이다.
목어를 물고기 모양으로 만든 데 대한 근거는 없으나 옛날 어떤 스님이 스승의 가르침을 어기고 죽은 뒤에 물고기가 되었는데 그 등에서 나무가 자라났다고 한다. 어느 날 스승이 배를 타고 바다를 지나갈 때, 한 마리의 물고기가 바다에서 나타나 전에 지었던 죄를 참회하며, 등에 자란 나무를 없애 주기를 애걸하므로, 스승이 수륙재(水陸齋)를 베풀어 물고기 몸을 벗게 하고 그 나무로써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 달아놓고 스님들을 경책(警責)하였다고 한다. 또 물고기는 밤낮 눈을 감지 않으므로 수행자로 하여금 졸거나 자지 말고 늘 깨어서 꾸준히 수도에 정진하라는 뜻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둥근 것을 목탁이라 하고 긴 것은 목어라고 구분하여 부른다.
<2006년 5월 29일>
오월
하순명
어디선가 소식이 날아올 것 같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싱그러운 향내
나무 사이를 걷다가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에게로 가고 싶다.
이른 새벽
갓 세수한 얼굴
그 사이를 몰래 끼어다니는
바람이고 싶다.
버석거리는 가슴에도
물이 차오르는 소리
날마다 저 잎새들만큼만
파아란 생각으로
기다리고 싶다.
오월은 곧 어디선가 좋은 소식이 올 것 같은 설렘이 있는 달이다. 미풍에 살랑이는 나뭇잎들이 풍기는 향기, 그러한 나무들이 우거져있는 길을 거닐다 보면 만나는 모든 이가 정답고 싱그러워 보인다. 5월의 바람도, 오월의 햇살도 마냥 푸르다 보니 그 사이를 걷는 사람의 마음도 자연을 닮아 마냥 푸르고 싱그러워진다. 그래서 화자는 날마다 오월의 잎새들만큼 파아란 생각으로 기다리고 싶다고 한다.
<2006년 6월 5일>
그대에게
추창호
사랑의 찌 드리운 그대의 낚싯대에
나, 정말 못 이긴 척 입질을 할까보다
가야할 물길 아득해 몸 지친 이런 날에
그려, 손잡아 마음 하나 튼다는 거
상처 많은 이 시대에 얼마만한 위안일까
보내온 이 봄빛 따라 마음껏 취할거나
날실 씨실 엮어간 그대 생각의 둘레
‘머리 맞댄 동행으로 행복한 길이었음’
물어본 느낌만으로도 세상 한결 푸르네
만남의 끝에서 ‘머리 맞댄 동행으로 행복한 길이었음’을 말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한 더 부러울 게 없는 만남일 것이다. 모든 만남이 이와 같다면 세상에는 불행한 일이 아주 많이 줄어들 것이다. 세상의 불행 중에는 사랑하다가 헤어지게 되어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랑의 찌 드리운 그대의 낚싯대에’, ‘나, 정말 못 이긴 척 입질을 할까보다’라고 하여 조금은 진지하지 못하게, 심드렁하게 시작하는 사랑일지라도…
‘손잡아 마음 하나 튼다는 거, 상처 많은 이 시대에 얼마만한 위안일까’라고 하여 화자는 삶에서 외롭지 않기 위하여, 위안을 받기 위하여 사랑을 한다는, 사랑의 의미 내지,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그래서 사랑이나 기쁨은 나누게 되면 행복이 배가되고, 괴로움이나 슬픔은 나누게 되면 반으로 줄어든다고 했다.
<2006년 6월 15일>
첫 면회
김양수
양구의
꽃샘바람은
날이 선
칼날이다.
바라보는 눈길만으로
체온이 뜨겁다.
이윽고
쏟아지는 고백
가슴이 열린다.
아름답고 소중한
숨가쁜 하루가
멈춰진 시간 속으로
바쁘게 달려온다
그러나
강물처럼 말없이
아침은 흘러간다.
이 작품은 제목에서 보여주듯 ‘첫 면회’에 대한 설렘이 들어있다. 군에 간 아들에 대한 첫 면회의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다. 아들을 군에 보낸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이 한 번쯤은 경험해 본 내용일 것이다. 첫 수에서 강원도 양구에 있는 아들 면회를 간 날은 꽃샘바람이 칼날처럼 차가왔던 날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바라보는 눈길만으로도 뜨거운 가슴이 되어 그 칼날바람쯤은 녹이고도 남음을 암시하고 있다. 더구나 뜨거운 말문이 열리며 사랑의 말들을 쏟아낼 때 가슴도 활짝 열림을 말하고 있다. 이렇듯 소중하고 가쁜 하루, 숨가쁘게 달려온 시간이 아침이면 강물처럼 말없이 흘러가며 하루의 짧은 면회의 시간이 끝나 아쉬움을 남김을 화자는 말하고 있다.
<2006년 6월 19일>
바다
김민정
흰 거품
물고 오는
한 마리 물새였네
오장육부
드러내며
온 몸으로 와서 우는
내 죽어
촉루로 빛날
그대 하얀 가슴속
바다를 사랑의 형상으로 상징하여 표현해 본 작품이다. 바다를 ‘흰 거품 물고 오는 한 마리 물새’로, 또 하얗게 파도치는 모습을 ‘오장육부 드러내며 온 몸으로 와서 우는’사랑하는 이의 모습으로 표현해 보았다. 그러한 바다에 대응하여 하얀 뼛가루를 그 바다에 묻으며 마지막 빛을 발하며 스러질 순결한 촉루의 모습으로 시적 화자를 표현해 보았다. “이 시편은 파도치며 밀려오는 물거품을 단순한 정경으로 묘사한 서정시는 아니다. 시인의 절절한 마음을 아주 짧은 한 순간의 파도치는 모습에다 영원한 사랑을 담아낸 격조 높은 시편이 아닐까 한다. 단시조에 불꽃같은 사랑을 담아낸 고농축의 절절한 절명시다.”*
*시인 이승현의 '내가 읽은 좋은 시조' (2005. 12. 04) 인용
<2006년 6월 21일>
외사랑
김수자
나는 안다 그의 속내 날 버거워 한다는 걸
맘 상해 울다 보니 그가 불쌍해진다
잔등에
날 지고 사는
그는 나의 달팽이.
‘외사랑’은 짝사랑의 또다른 말이다. ‘짝사랑만 하고 있다고… 상대방은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늘 툴툴거리며 우리는 살고 있지 않을까. 부부 사이에서도, 연인 사이에서도 늘 내가 더 많이 사랑하고 있다고…, 주는 것만큼 받지 못한다고 섭섭해 하면서 우리들은 사는 것이 아닐까. 사랑은 같은 비율로 주고받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그렇다고 대가를 바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가를 바란다면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닌 나의 이기주의에 지나지 않기에… 상대방이 전혀 관심이 없는데도 한쪽에서만 하는 사랑인 짝사랑은 문제가 있겠지만, 이 작품에서는 내가 준 마음만큼 돌려받지 못함을 서운해 하다가도, ‘잔등에/ 날 지고 사는/ 그는 나의 달팽이’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달래고 상대방을 안쓰러워하는 사랑의 마음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남편을, 아내를, 연인을 그런 눈으로 바라본다면 사랑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2006년 6월 26일>
외출
김복근
집을
나설 때는
창 하나
열어둔다
나 없을 때
찾아오는
길손을 위하여
나 대신
방에 들어올
내 작은
달을 위하여
시인의 넉넉한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집을 나설 때 ‘창 하나 열어두는’ 마음이 현대인들의 삭막하고 타인에 대해 신뢰성 없는 삶에서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때문에 시인의 그 마음이 더욱 귀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나를 찾아오는 귀한 친지들인 길손을 위하여 창문을 열어 둠으로써 그들은 내가 없는 시간에도 나를 찾아왔다가 허탕치고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를 찾아오는 친지가 없다고 할지라도 창문을 열어두면 내가 없는 동안에도 내 방에 들어와 환하게 비춰줄 작은 달을 위하여 시인은 창문을 열어두겠다고 한다. 시인의 넉넉한 마음이 담긴 친인간, 친자연, 친환경의 시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강호가도의 시조를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2006년 6월 28일>
난(蘭)
양점숙
꽃이파리 벌었다
애쓰는 줄 몰랐는데
정갈한 마음일까 대물린 열망일까
조촐한 꽃 한 송이에 그 하루는 환한 봄
햇살 알갱이 삼킨 꽃망울에
금이 간다
파열의 흔적일까 적멸의 여진일까
또 한 번 이별을 위해 꽃대 하나 올린다
꽃이 하나 피기 위해서는 얼마나 오랜 세월의 인내와 노력이 필요한 것인가. 우리가 무심히 보아 넘기는 보잘 것 없는 들꽃 하나에도 그 꽃을 피우기 위한 들꽃 나름대로의 애씀이 있었을 것이다. 화자는 난이 핀 것을 보면서 그동안 꽃잎을 열기 위한 ‘애씀’을 생각하며 화려하지 않은 ‘조촐한 꽃 한 송이에’환한 봄을 느끼고 있다. 또한 꽃이 피어남을 ‘또 한 번 이별을 위해 꽃대 하나 올린’다고 하여 아름다움의 순간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피는 꽃을 보면서 지는 꽃을 상상하는 시인의 깊은 통찰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2006년 7월 4일>
감자밭을 매다가
김보영
감자꽃 / 필 무렵에 / 처연한 뻐꾸기가
꽃 지면 / 망연스레 /울어 예던 생각에 젖어
야릇한 / 비감에 잠긴다 / 전설 속의 사연에
예사로 / 들어 넘긴 / 멧새의 그 여운에
어쩌면 / 꿈만 같은 / 그림을 그리다가
휘황한 / 석양 원반만 / 감자밭에 심는다.
6월 21일은 ‘하지’로 낮이 가장 긴 날이다. 그날은 햇감자를 처음 먹는 날이기도 하다. 유월이 되면 감자꽃이 피고, 하지무렵엔 ‘하지감자’라 하여 감자밭에서 감자가 얼마나 굵었나, 잘 크고 있나를 점검해 보는 날이며, 첫감자를 먹어보는 날인 것이다. 물론 그 후에도 감자는 계속 자라야 하므로 뿌리부분의 흙을 부드럽게 긁어서 감자알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하면서 굵은 감자 한 두 알을 캐내고 다시 흙을 북돋아 주어야지만 캐지 않은 감자는 계속해서 자라고 여물게 된다.
지금 화자는 감자밭을 매다가 감자꽃이 필 때쯤 뻐꾸기가 많이 울던 생각을 하고, 그 전설을 생각하며 비감에 잠겨본다. 또한 멧새의 울음도 예사로 들어 넘기며 농사를 지으며 사는 산골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특히 둘째 수 종장의‘휘황한 석양원반만 감자밭에 심는다’고 하여 황혼녘의 아름다운 석양을 ‘감자밭에 심는다’는 뛰어난 표현으로, 힘든 노동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밀레의 ‘만종’을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다.
<2006년 7월 11일>
운주사에서
오만환
솔밭 밑으로 내려가면
옷도 걸치지 못하고 달려온
한 오백년
전원일기의 식솔들
묘옥은 누구이며
장길산의 한은
어디에 잠들었던가
누이, 삼촌, 이모
복길이 아빠
금동이는 가재를 잡아오고
분가했던 둘째는
맞벌이를 위해 아기를 맡긴다
의를 세우기 위해 배를 타고
머리를 거꾸로 누우신
미륵님 미륵님
우리들의 미륵 부처님
그만 일어나셔서
우리 양촌리에
큰 어른이 되십시오
운주사에 가면 여러 형태의 부처의 모습이 있다. 이 작품의 화자는 그러한 운주사에서의 부처의 모습을 인간의 사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그것은 <전원일기>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 같은 수더분한 분위기의 사람들이다. 그런가 하면 황석영의 대하 역사소설 <장길산>과 묘옥 등을 생각하기도 한다. 그것은 조선시대 민중들의 힘없는 삶과 그 안에 미륵신앙의 유토피아적 의식을 또한 부처들의 모습에서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곳에 누워있는 미래에 나타난다는 부처님인 미륵보살에게 <전원일기>속의 평화스럽고 평범한 사람들의 살아가는 양촌리의 큰 어른이 되어 의를 세우고 실현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2006년 7월 18일>
달과 함께
이근구
땅거미 짙어
쟁기놓고 들어와
늦은 저녁 식사
상추쌈 입에 넣다
열하루
고운 달님께
들키고 말았네
달도 나도 외론 행복
한 마디 말 없어도
이 한밤 길동무되어
동행하는 청한(淸閑)이여
초부는
선(禪)에 잠기고
풀벌레는 시를 읊고
정년 퇴임을 하고 나서 농막에서 농사를 지으며 욕심 없이 살고 있는 시인의 넉넉한 삶이 느껴진다. 도시의 번잡한 삶에서 벗어나 깨끗하고 한가롭게 사는 것에서 행복을 찾는 시인은 ‘달도 나도 외론 행복’이라고 읊고 있다. ‘상추쌈을 입에 넣다’달에게 들키고 마는, 달이 뜬 조용한 산골의 정경, 적막하지만 평화로운 산골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정감이 가는 작품이다.
<2006년 7월 25일>
다도(茶道)
옥경국
선비의
붓끝에서
피어나는 난향을 닮아
여백의
너른 공간
펼쳐진 녹향을 따라
서둘던
구름 한 무리
찻물소리에 귀를 씻네
이 작품은 ‘다도’를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이다. 다도는 차를 우려 마시는 풍속을 지닌 한국·중국·일본을 비롯한 동양권에서 발달한 차문화다. 작품에서 난이 피어 있는 고풍이 짙은 서재에서 단아한 차림새의 선비가 정좌해 차를 마시는 모습이 연상된다. 선비는 차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선비의 기질과 정신과 기품을 마시고 있는 듯하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마시는 한 잔의 차 속에는 ‘서둘던 / 구름 한 무리 / 찻물 소리에 귀를 씻고’ 있는 여유로움이 있다.
<2006년 8월 1일>
별을 위한 연가 宇玄 김민정
맑은 밤하늘에서 반짝이는 나의 별아 찬란한 빛 아니어도 영광의 빛 아니어도 오롯한 존재만으로 내 하늘은 빛난단다. 내 영혼의 푸른 이마 따뜻하게 감싸주고 내 영혼의 깊은 골짝 은은하게 비춰주는반짝임 하나만으로 행복의 잔 넘친단다.
무수이 많은 밤하늘의 별들 속에서 빛나는 별 하나!
그 별이 그렇게 찬란한 빛을 내는 별이 아닐지라도, 또 그가 나에게 주는 빛이 비록 영광의 빛이 아니라 할지라도 내가 관심을 갖고 내가 사랑하는 별일 때, 그는 충분히 아름답고, 충분히 가치있는 존재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왕자의 장미>처럼 내가 관심과 애정을 가질 때, '그것이 세상에서 하나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로 인식될 때 '너는 나에게로 와서 의미가 되고, 나 또한 너에게 의미가 되어 반짝이게 될 것이다. 더구나 '내 영혼의 푸른 이마 따뜻하게 감싸주고/ 내 영혼의 깊은 골짝 은은하게 비춰주는' 오롯한 존재 하나만으로 내가 기쁨을 가질 수 있다면, 나는 너로 하여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음을 표현해 본 작품이다.
<2006년 8월 8일>
거울 2
이우걸
샘물,
그 성찰의
차가운
마음의 샘물,
아침마다 가다듬는
이 정결한 빗질 앞에서
거울은
늘 새롭구나
내 영혼 모두 비추네
불꽃 같은 욕망도 삭은 결로 내려앉고
솜털 같은 시간도 골을 파고 누워 있는
거울은 늘 무겁구나
내 남루
모두 비추네
거울은 단순히 자신의 외면만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고 반성해 보는 성찰의 샘물 같은 것이라고 화자는 보고 있다. 그리스의 미소년 나르키소스가 샘물을 들여다 보고, 나르시시즘에 빠졌다면, 이 시의 화자는 아침마다 거울 앞에 서서 정결한 빗질을 하며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며 차갑고 냉정한 시선으로 자신을 관찰하고 있다.
그러다가 젊은날의 '불꽃 같은 욕망도 삭은 결로 내려 앉고/ 솜털 같은 시간도 골을 파고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곧 젊음의 시간이 지나간 이제 남아있는 자신속의 남루까지도 발견하게 된다. 시인은 냉정한 성찰에 의해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생에 대한 성찰과 겸허함을 이 작품에서 드러내고 있다.
<2006년 8월 22일>
角北
-안개
박기섭
점령군 사령부의 산장 막사를 지나
계엄하의 산복도로를 서둘러 넘는 새벽
곳곳에 웅크린 짐승의 살냄새가 훅 끼친다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나온 도랑물들이
숨죽인 긴장 속에 골짜기를 빠져나가고
심하게 구부러진 채 길은 길게 묶여 있다
발치로 내려올수록 연막이 풀리면서
느닷없는 퇴각의 징후들이 감지되더니
어느새 진주한 햇살이 차창 밖에 왜자하다
위 시는 안개를 재미있고 산뜻하게 표현하고 있다. 첫 수에서는 안개를 점령군으로 표현하여 새벽녘 자욱한 안개가 낀 도로를 연상하게 한다. 둘째 수에 오면 그 안개군단은 '삼엄한 경계망'으로 표현되고 있어 긴장감이 느껴진다. 그 사이 숨죽인 긴장 속에 도랑물들이 골짜기를 빠져나오고...그러면서 서서히 퇴각의 징후들이 나타나더니 '어느새 진주한 햇살에 차창 밖에 왜자하다'고 하여 서서히 안개가 물러감을 표현하고 있다. 안개가 낀 산의 모습과 그 안개가 걷히는 모습을 신선한 비유법으로 재미있게 표현한 뛰어난 작품이다.
<2006년 8월 29일>
우리집 화단
김몽선
우리집 녹색 뜰엔
남의 손이 전혀 없다
얻어온 자식처럼
키운 정이 하도 커서
민들레
증손, 고손들
활개치며 살고 있다
바랭이 씀바귀
질경이에 냉이까지
먼 산비알 한 자락을
대청 앞에 앉혀 두면
충혈된
세상 인심도
넉넉하게 걸러낸다
위 시의 화자는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그러면서도 한국적 정서가 잘 살아나는 화단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화려한 꽃들로 가득찬 화단이 아니라, 자칫 화려한 화단 속에서 잡초라고 뽑혀지기 쉬운 민들레, 바랭이, 씀바귀, 질경이, 냉이 같은 우리의 토속적이고 친숙한 풀꽃들이 자라는 화단을 소개함으로써 우리에게 친숙함을 주고 있다. 또한 그것은 그대로 먼 산비알 한 자락을 옮겨다 놓은 모습이기도 하다. 꾸미지 않은 자연풍광을 그대로 정원처럼 둘러놓고 보던 우리 조상들의 슬기와도 맛닿아 있는 이 작품은, 작고 소박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시인의 아름다운 심성이 잘 나타나는 작품이다.
<2006년 9월 5일>
실바람
천숙녀
누군가 빈 방에 물빛벽지 바르네
두터운 창 가르며 눕는 저 달 모습으로
성심껏 동양화 한 폭 그려주고 있었네
질질긴 목숨하나 끌고 밀어 당길 때
저무는 언덕에서 불사르는 그대 손길
그리움 화음으로 받쳐 불러주는 노랫소리
하늘을 씻고 닦아 물소리 심겠어
마주보아 가슴치는 실바람 이름 얹어
외줄의 쓸쓸한 허기 시(詩) 한편을 빚겠어
첫째 수에서는‘누군가 빈 방에 물빛벽지 바르네’라고 하여 보이지 않는 바람의 모습, 그러면서도 느껴지는 실바람을 표현하고 있다. 달과 함께 동양화 한 폭을 그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달 밝은 밤 실바람이 부는 이미지를 쉽게 느낄 수 있다. 둘째 수에서는 삶과 시름하는 화자와 저무는 언덕에서 불사르는 그대, 실바람의 손길이 만난다. 그 실바람은 그리움을 불러오는, ‘화음으로 받쳐 불러주는 노랫소리’구실을 하고 있다. 셋째 수에서는 가을, 실바람 속 쓸쓸한 허기를 ‘하늘을 씻고 닦아 물소리’ 같은 시를 빚으며 달래겠다는 시인의 아름다운 정서와 의지를 만날 수 있는, 가을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2006년 9월 12일>
나뭇잎과 연못
남진원
나뭇잎들이 물위에 사뿐히 내려앉았어.
아아무 소리가 없이
바람이 무엇을 했느냐구?
가만히 나무 뒤에 숨어 구경만 했대
연못이 나뭇잎을 가만히 놓아두고
나뭇잎도 연못을 가만히 놓아두고
서로 틈을 두고 편안하게 있는 걸 구경만 했대.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이란 도교철학이 떠오르는 작품이다. 우리가 길이라고 하는 것이 항상 길이 될 수 없고, 이름이라 하는 것도 항상 이름이 될 수 없다는 도교의 철학. 무위자연설을 주장하는 도교철학이 이 작품의 밑바탕에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도교에서 주장하는 가장 상위의 善은 <上善藥水>이다. 즉, 가장 높은 선은 물 흐름과 같다는 뜻이다. 인위가 전혀 개입되지 않아 물 흐름과 같이 자연스러워 막힘이 없는 것을 최고의 경지로 보는 것이다. 누구를 시비하지도, 누구에게도 간섭받지도 않는 삶, 자연스럽게 생겼다가 자연스럽게 스러지는 삶이 곧 도교에서 말하는 최고의 선, 최고의 삶이다. 이 작품에서 나뭇잎과 연못의 관계가 그러하다. 서로의 삶을 불편하게 하지 않고, 그저 조용한 관찰과 포용으로 받아주며 서로가 편안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2006년 9월 19일>
바다와 해녀
김연동
뒤척이던 해 하나를 순산한 아침나절
고운 이 손길 같은 미풍을 맞은 바다
밤새운 낮달을 끼고
몸을 열고 누웠다
해녀는 발기하듯 물옷을 입었다
한낮의 정사는 거품으로 부서지고
올가즘
휘파람 소리
소라
전복
해삼
멍게...
위 시조 첫째 수는 제목이 보여주듯 ‘바다’를 둘째 수는 ‘해녀’를 노래하고 있다. 아침해를 순산한 바다, 그리고 미풍이 이는 잔잔한 바다, 밤새운 낮달을 끼고 몸을 열고 있는 바다이다. 그 바다 속으로 물옷을 입은 해녀가 들어간다. 바다 속에서 해녀의 물질하는 모습을 ‘한낮의 정사’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녀들이 만족을 느끼고 흐뭇해하며 건져올리는 소라, 전복, 해삼, 멍게 등을 ‘올가즘/ 휘파람 소리’로 표현하여 풍부한 상상력으로 인해 신선함을 주는 작품이다.
<2005년 9월 26일>
세여울*
노인숙
여울져 굽이치며 나래 펴고 너울너울
물소리에 몸 씻으며 마른 바람 설레누나
여름내 모래를 달구던 불길조차 다스리고
갈대들 흐느끼듯 속삭이는 노래 가락
세월의 모래 벌에 나지막이 스며들고
햇살에 잎새 떨구며 줄지어 선 그림자
찬 빗방울 맞으며 강바닥에 누운 돌 틈
야윈 몸 뒤채이다 몸져누운 풀잎 사이
시리게 머언 하늘 끝 까마득히 날아가라
백제와 신라 사이 고구려의 물줄기가
산과 산 이어져서 퍼덕이며 깃든 골에
하루 또 하루를 걸어 천 년에 닿은 여울
*충청북도 단양군 삼탄리에 있는 여울물
작은 물줄기지만 오랜 역사를 가진 세여울, 여름내 모래를 달구던 불길조차 다스리며 조용히 가을을 흐르고 있다. 여울가엔 갈대들이 흐느끼듯 속삭이는 노래 가락이 세월의 모래 벌에 나지막이 스며드는 조용한 가을, 그림자는 길게 늘어지고 있다. 가을의 여울가의 모습이 눈에 보이듯 이미지가 잘 묘사되고 있다. 백제와 신라시대, 아니 그 이전부터 흘러오던 고구려의 물줄기, 하루하루 쌓여 천 년 이상을 조용히 흐르는 여울의 아름다움을 잘 나타내고 있는 작품이다.
<2006년 10월 17일>
단풍잎에 앉은 청산별곡
김민정
이마 맞댄 하늘이 눈부시게 푸르른 날
산허리 돌아가다 문득 눈 준 차창 밖에
화들짝, 놀란 청산이 붉디붉게 다가왔다
누군가의 가슴속에 단풍든 적 있었을까
저리도록 아름다움 심어준 적 있었을까
지나온 나직한 삶들 돌아돌아 뵈는 날
명치끝을 아려오는 저 고운 황홀처럼
누군가의 가슴속을 물들일 수 있었다면
아, 정녕 청산별곡 속 나의 생은 푸르리
작년가을, 학교에서 재량휴업일이라 영동선 철로변에 있는 친정아버지의 산소를 찾아보고자 혼자 영동선기차를 탔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그냥 조용히 사색에 잠기며 고향에 잠깐 다녀오고 싶었다. 차창으로 스치는 맑은 하늘아래 물들어가는 가을산이 아름다웠다. 눈을 감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가다가 문득 눈을 뜬 순간, 눈앞에 붉디붉은 단풍잎이 들어왔다. 그 아름다움에 화들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마 ‘백산역’ 근처쯤 되었을까. 달리는 기차에서 바라본 단풍은 그렇게 순간적으로 스쳐갔지만, 그때의 단풍이 뇌리에 박혀 위의 작품을 구성하게 되었다. ‘아, 누군가에게 나도 저토록 아름다운 단풍으로 자리매김한 적 있었을까.’ 길지 않은 생애를 뒤돌아보며 반성해보는 시간이었다.
<2006년 10월 24일>
그 남자 1
김차순
매캐한 연기 누렇게 뜯겨 나갔다
구릿빛 살점이 타고 있는 간이역
비탈진 마음 받쳐 든
시린 불빛 부시다
순도 높은 바람이 화면에 가득하다
기울기를 맞추며 빠르게 하강하는
얼비친 불씨 몇 점에
파르르 떨리는 손
상징이 많은 시이다. ‘그 남자’의 어떤 모습을 화자는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사랑을 앓고 있는 모습일까. 아니면 일에 지친 모습일까.
일단은 사랑으로 풀어보기로 한다. ‘매캐한 연기 누렇게 뜯겨 나갔다’는 것은 사랑을 앓고 있는 모습, 사랑으로 쿨룩이며 초췌한 남자의 모습일까. 삶의 간이역 같은 사랑, 그 간이역에서 구릿빛 살점을 태우고 있는 사내. 그렇다. 어차피 지나쳐갈 간이역인데도 그냥 통과를 못하고, ‘비탈진 마음 받쳐 든/시린 불빛’이다. 균형을 이루지 못한 짝사랑의 아픔, 시린 불빛인데도, 부시다고 표현하여, 헌신적이고 순수한 사랑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둘째 수에서는 ‘순수한 사랑의 마음’이 화면 가득 비쳐옴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비탈진 짝사랑인 줄 아는 까닭에 ‘기울기를 맞추며 빠르게 하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얼비친 불씨 몇 점’에 파르르 손은 떨리고 있다는 것은, 사랑에 대한 미련을 말하고 있다.
<2006년 10월 31일>
전갈의 노래
박재화
전갈이 사막을 파고들 듯
나 숨었네
무엇 때문에 숨어야 하는지
왜 자꾸 숨을 일만 생기는지
팍팍한 날들 피하듯
나 사막에 들었네
길 없으면 길을 만들어서
건너온 한 세상
왜 눈물 없이는 평화가 없는지
왜 마른 땅에 바람만 더욱 세찬지
사막은 가르쳐주질 않았네
그러나 건기가 끝날 무렵
어둠에 쓸리며
사막은 입을 열었네
천지에 진정 숨을 곳은 없고
또한 숨고 나면 그 견딤 위에
비로소 모든 존재는
생존 자체로 말하는 것임을.
언제나 자신 있고, 당당하게 인생을 살아간다면 좋겠지만, 인간이 사는 이 지구에 낮과 밤이 있듯이, 또 양지와 음지가 존재하듯이 삶에도 굴곡이 있지 않겠는가. 드러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고 숨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이 시의 화자는 사막속의 전갈처럼 숨고 싶어한다. 그리고 궁금해 한다. ‘왜 눈물 없이는 평화가 없는지/ 왜 마른 땅에 바람만 더욱 세찬지’를... 그리하여 건기가 끝날 무렵 사막으로부터 답을 듣는다. ‘천지에 진정 숨을 곳은 없고/ 또한 숨고 나면 그 견딤 위에/ 비로소 모든 존재는/ 생존 자체로 말하는 것임을.’ 생존에 대한 깨달음이다. 생존에는 숨을 곳이 없음을, 현실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다.
<2006년 11월 7일>
담쟁이 덩굴
김진길
길이 막혔다고 불평하지 말라
여기 고독의 벽 아니면 나서지 않는
유별난 생애 앞에서는 그 조차도 사치다
기침소리 한 방에 무너져 내릴 듯한
돌담 위 켜켜이 쌓인 침묵의 계단을
담쟁이, 자일도 없이 맨손으로 오른다
낙상의 순간들을 안으로 도닥이며
점자 벽을 읽어가는 부르튼 손바닥
때로는 이술 한 방울도 감당 못 할 무게다
등에 진 세상 하나 발그레 타올라도
벽이 높아지면 그만큼만 더 오를 뿐
준법의 경계를 딛고 월담하지 않는다
길 없는 길을 만들면서 가는 것이 어디 담쟁이 덩굴뿐이랴. 그렇건만 화자는 ‘길이 막혔다고 불평하지 말라/ 여기 고독의 벽 아니면 나서지 않는/ 유별난 생애 앞에서는 그 조차도 사치다’라며 담이 있어야만, 기댈 것이 있어야만 비로소 타고 오르는 담쟁이덩굴의 고독한 생을 말하고 있다. 또한 그러한 담쟁이의 모습을 ‘자일도 없이 맨손’으로 오르고 있다고 화자는 안쓰러워하고 있다. 넷째 수에서는 ‘벽이 높아지면 그만큼만 더 오를 뿐/ 준법의 경계를 딛고 월담하지 않는다’고 하여 분명한 자아인식과 자기통제의 담쟁이덩굴을 찬양하고 있는 감정이입법의 작품이다. 우리는 자신이 가는 길이 조금만 힘들어도, 조금만 길이 막혀도 투덜대지는 않는지, 자신을 한 번 돌아볼 필요를 느끼는 시이다. 담쟁이덩굴처럼 고독해도, 힘들어도 자신의 길을 만들면서 분수를 알고 책임감과 준법성을 지니면서 살아가는 인생은 분명 가을날 단풍든 담쟁이덩굴보다도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2006년 11월 28일>
능소화
강혜규
아주 잊으라니요 하필 이 뜨거운 날에
담장 밖 세상을 향해 겁도 없이 넘나들던
그 더운 핏줄을 모두 뎅겅뎅겅 자르라니요
내 몸 속 어디쯤에 그런 열정 숨었는지
나무고 돌담이고 흐벅지게 타고 올라
진종일 그대를 향해 손나팔을 하던 날들
질 때는 미련 없이 뒷모습 보이지 말고
피 배인 울음조차 허공중에 달지 말고
캄캄한 그늘 속으로 화인이나 찍으라니요
능소화의 피고 지는 모습과 능소화의 전설 등 속성을 아주 잘 알고 쓴 작품이다. 필 때는 활짝 아름답게 피고, 질 때는 깨끗이 꽃 자체로 떨어지는 아름다운 능소화.
이 시에서는 그러한 능소화가 화자가 되어 있다. 첫째 수에서는 ‘아주 잊으라니요’로 시작하여 질문형식을 취하는 설의법을 사용하고 있어 독자의 관심을 집중한다. 곧 이어 ‘하필 이 뜨거운 날에’라고 하여 ‘아직도 한창 뜨겁게 피고 있는, 사랑의 감정을 뜨겁게 간직하고 있는 이 때’를 말하고 있다. 담장 밖을 향해 겁도 없이 넘나들며 피던 그 더운 핏줄을 모두 ‘뎅겅뎅겅 자르라니요’라고 하여 ‘뜨겁게 사랑하다가 뜻밖의 이별 경고를 받은 듯한’ 표현을 하고 있다. 곧 떨어져야 할 모습의 꽃이 안타깝게 외치고 있다.
꽃송이채 깔끔하게 지는 낙화의 아름다움, 떠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깨끗한 이별의 아름다움…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는 사람의 입장일 뿐, 떠나는 자에겐 얼마만한 아픔일까. 이 작품을 읽으면 그 아픔을 생각하게 된다. 그 사람의 입장이 되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비난하지 말라는 말도 생각난다. 우리가 바라보고 해석하는 타인이나 사물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가.
<2006년 12월 5일>
비밀번호
문무학
있었으면 좋겠네, 있었으면 좋겠네
내가 꾸욱- 누르면 네 가슴이 확 열리는
아, 그런
비밀번호가
있었으면 좋겠네
있었으면 좋겠네, 있었으면 좋겠네
네가 꼬옥- 누르면 내 가슴이 확 열리는
아, 그런
비밀번호가
있었으면 좋겠네
있었으면 좋겠네, 그대 알고 나만 알아
꾸욱, 꼬옥 누르면 두 가슴 엉키고 마는
정말로
그런 번호가
있었으면 좋겠네.
이 시를 읽으면서 시 읽는 재미를 느꼈다. 하나도 어려운 것이 없는데, 말하듯이 자연스러운데, 그리고 반복되는 시어도 많아 새로운 시어도 별로 없는데 왜 재미있지? 또한 현대 감각이 잘 드러나는데, 그것은 이 시를 읽으면서 핸드폰을 연상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이 마음에 와 닿는 또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독자가 이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와 화자의 생각에 동참을 하게 된다는 데 있다. 누구나 한 번 쯤은 생각해 볼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진솔한 감정이 꾸밈없이 나타나기에 독자들은 그것에 공감을 하게 된다. 현란한 수사법도, 특별히 신선한 어휘도 없고, 감추거나 비비꼬거나, 독자를 낯설게 하지도 않은 단순한(?) 작품 같은데도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작품, 그러한 작품이 좋은 작품이 아닐까.
<2006년 12월 12일>
저 길을 따라서
김 민 정
저 길 을
따
라
서
가 을 이
오고 있다
저 길 을
따
라
서
가 을 이
가고 있다
오 가 는
길
은
하
나
다
시 간 들 이
다 를 뿐
가을, 아니 계절은 오고 간다. 똑 같은 길을 따라서 왔다가 다시 간다. 그 사이를 살아가는 인간의 생을 생각해 본다. 사색에 잠기는 건 가을만이 아니겠지만, 유난히 가을이 되면 잎이 피던 봄, 그리고 무성했던 여름, 그리고 단풍들었다가 잎 지는 가을을 생각하게 된다. 잎이 피던 가로수길, 그리고 잎이 지는 가로수길….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은 기뻤다가, 슬펐다가, 즐거웠다가, 괴로웠다가… 또 한해가 저물어간다. 우리 모두 올 한 해 하려고 했던 일, 잘 갈무리하는 12월이길 바라면서...
<2006년 12월 19일>
전정
정형석
정원사 이씨 아저씨 전정을 하고 있다
짹 짹
짹 짹
짹 짹
짹
짹 짹
짹 짹
짹 짹
어느 새 뜰 앞 향나무 가득 참새가 앉아 있었다
단시조인데 참 재미있게 나열을 했다. 이 작품의 중장은 ‘짹’이란 단어가 13번 반복되어 만들어진, 정원사가 전정을 하고 있는 가위 모습이다. 또한 전정을 하며 나무를 다듬느라 가위가 짹각거리는 것을 참새가 짹짹 거리는 모습으로 발상을 전환한 표현법이 신선해서 이 시가 살고 있다. 남들이 미처 하지 못한 생각을 잡아내는 것, 그것이 시를 참신하게 하는, 시의 생명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주는 작품이다.
전정을 하는 것은 나무를 아름답게, 품위 있게 다듬기 위해 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자라도록 두는 것도 좋은 일이나 때로는 곁가지 등을 쳐 줌으로서 더욱 올곧고 아름답고 멋있게 자라도록 도와주는 일, 그것은 나무에게도 필요하고, 자신의 인생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2006년 12월 26일>
착각의미
박영교
몇 편의 소설들이
내 인생을 스쳐가고,
몇 조각 바람들이 내 편린 들추다 떠난 뒤
우전차
혀끝 감치는 향
따사로운 햇살이 드네.
현재에 살면서도
조선시대 생각에 묻혀
그들의 머릿속에는 봄볕보다 드높은 겨울
뒤덮인
백발이 얹혀도
오는 새봄 기다린다.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착각 속에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저마다 인생의 숨은 사연을 가슴 깊이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각자 소설을 쓰고도 남을 분량의 생 이야기. 그 속에는 기쁜 사연도, 슬픈 사연도 있을 것이고, 힘들었던 날들의 추억도, 그리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간 삶을 회상할 때, ‘우전차/ 혀끝 감치는 향/ 따사로운 햇살이 드네.’쯤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건 행복한 삶이 아닐까. ‘끝이 좋아야 다 좋다’는 세익스피어 희곡 제목처럼... 이 시의 화자는 백발이 얹혀도 새봄을 기다리는 꿈을 지니며 살고 있다. 죽는 날까지 꿈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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