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머물다 간 자리 서문>
아름다운 기도
김민정
이정금 선생님의 시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잔잔한 기도 같다.
선생님의 시를 읽노라면 마치 맑고 투명한 아침이슬을 만난 듯하다. 감사하는 마음과 자기반성의 생활이 그대로 배어있는 삶에 대한 긍정적 사고와 사랑이 담긴 시들로 무척이나 향기롭다.
시는 곧 마음의 표현이다. 시인의 정신세계를 그대로 나타내는 영혼의 거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선생님의 시는, 자신에게 주어진 길에 대하여 늘 감사하고 현실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며 작은 것에도 소홀함이 없는가를 살피고 주변의 고통을 내가 받는 고통처럼 함께 아파하는 순결한 마음이 담겨 있다.
또한 30여년의 교직생활에서 느낀 제자들에 대한 사랑과 가르친다는 것의 어려움도 나타나 있다.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로서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으며 살아 생전 다하지 못한 친정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동기간의 정도 유별나 보인다. 인간이면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을 아무런 꾸밈없이 순수하게 나타내 보이고 있다.
내가 아는 이정금 선생님은 늘 기도하듯 잔잔한 음성과 후배들이나 제자들에게 작고 큰 모든 것들을 세심하게 보살펴 주시는 그런 분이셨기에 선생님의 시를 읽으면서 역시 시와 생활이 일치하는 분이구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애환들을 긍정하며 더욱 삶을 사랑하고자 노력하는 마음이 여과없이 나타나 있는 선생님의 시는 건강하며 진솔하고 맑고 순수한 시어들로 축조되어 있다.
텅 빈
마음자리
사랑이 괴지 못하는
아물지 않는 아픔
목이 마른 바램이지만
선한 소리 듣지 못함은
자른 오만의 뿌리가
숨쉬기 때문이리니
작은 일에 노엽고
털어 버릴 일에 매이는
모자람으로 채워진
인색한 자리
온전히 비인 가슴 되어
겸허히 만나게 하소서
사랑하게 하소서
기도하게 하소서
애써 거둔 열매
다 주고도
그저 서 있는
들녘
가을 나무처럼 -기도 4, 전문-
<기도 4>라는 시를 읽으면 성숙한 삶을 바라는 시인의 마음이 잘 나타난다. 아픈 마음을 아물게 하여 그 자리에 사랑이 고이게 하고 싶지만, 삶의 현실에서는 작은 것에도 섭섭하고 노여워지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그러한 것을 자각함으로써 비로소 좀더 겸허한 인간의 자세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잎, 열매 아낌없이 다 주고도 의연히 서 있는 늦가을의 나무처럼 의연해 지고 싶은 시인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는 시어다.
가을을
서서히 닫는다
그토록
설레이고 아프고 마음 붙일 수 없는
계절이었는데
오뚜기가 되어
가라앉아 본다
풍요로운
거둠도 없이
허허로이 가버린 것아
못다한 일을 찾자
따사로운 엄마
너그러운 아낙
날 조금은 아껴도 주고
또 한 철의 문턱에서
생각하는 사람이 된다 -계절의 문턱에서, 전문-
시 <계절의 문턱에서>는 삶의 고독, 아픔, 허무, 마음 붙일 곳 없는 허전함 등을 느끼는 계절인 가을을 보내면서, 다시 오뚜기처럼 평온을 찾아 자신의 위치로 돌아오는 시인의 모습이 담겨 있다. 가버린 시간이 아무 것도 거둔 것 없이 허허로웠다는 인식을 함으로써 남아 있는 현재의 생활, 즉 엄마로서, 아내로서, 또 자신을 사랑하는 자아의식을 가짐으로써 현실을 사랑하며 삶을 긍정하려는 건강한 삶의 자세를 볼 수 있다.
시간의 원천을 찾아
초리골을 향했지
너와의 대화를 계속하며
어디고 회색 인간의 손은
뻗치고 있더구나
시간의 꽃을 볼 수 없는 눈
별과 새들과 나무들의
신선한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귀
모든 이들은 회색으로 변해가고 있었어
시간의 꽃이 질때마다
울고 싶었다는
가슴 메어지는 얘기
모모
사랑과 정의 원천
빼앗기고 있는 시간을 찾아
나만은 널 만나기 위해
언제까지 얘길 나누어야겠어 - 모모에게, 전문-
<모모에게>라는 작품을 통해서 시인은 현대인의 잃어버린 순수성과 다정의 세계, 즉 아름다운 인간성의 세계를 회복하고자 한다. 사랑과 정과 순수의 원천인 모모에게서 시간의 꽃을 볼 수 있고, 별과 새들과 나무들의 신선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만나고 싶어 모모를 만나 언제까지나 얘길 나누고 싶다는 것이다. 이 시를 통하여 인간의 꾸밈없는 순수성과 진실한 사랑을 추구하는 시인의 아름다운 마음을 엿볼 수 있다.
한 송이 예쁜 들꽃을 만났을 때의 충격,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은은한 향기에 코 끝을 들이밀던 생은 저절로 기쁨에 넘치게 되는 것이다.
이정금 선생님의 삶이 들꽃의 향기를 닮았음일까. 선생님의 시는 평범한 일상을 노래했으면서도 진실하고 맑아 읽은 이로 하여금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여기서, 기도처럼 고요하고 아침이슬처럼 투명한 시인의 시심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정금 시인의 시집 ‘머물다 간 자리’ 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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