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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여, 읽을 수도 안 읽을 수도 없는, 지지리도 잘난, 시여, 그대는 왜 그토록 많은 헛소리를 잔뜩 들고 있나뇨
주둥이 가는 어깨 허리춤 엷은 등판 두 손모가지에 물로 이고 지고 메고 얹고 차고 끼고 또 그것도 모자라 윗도리 아랫도리 주머니란 호주머니 뒷주머니 속주머니 윗주머니 동전주머니 조끼주머니 속바지주머니까지 가득 잔뜩 철 렁철렁 채워 넣고 울룩불룩 뒤뚱뒤뚱거리면서도 꽉 쓰러져 엎어질 줄 모르나뇨
황당한 네 배포에 깔려 내 쥐포 될까 하나니
위 작품은 사설시조다. 초장부터 조금은 삐딱한 시선으로 시작된다. ‘시(詩)여, 읽을 수도 안 읽을 수도 없는, 지지리도 잘난, 시여, 그대는 왜 그토록 많은 헛소리를 잔뜩 들고 있나뇨’라고 초장부터 시에 대한 시비다. 수많이 쏟아져 나오는 시에 대한, 시인에 대한, 좀더 냉정하게 본다면, 자기자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다.
시인들이 시라는 그릇에 주워 담는 수많은 시어들, 어색하고 많은 내용을 집어넣어 ‘울룩불룩 뒤뚱뒤뚱거리면서도 꽉 쓰러져 엎어질 줄 모른’다고 시를 비판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읽으면 웃음이 나온다.
시에 대한 비판을 하는데도 다분히 해학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종장의 ‘황당한 네 배포에 깔려 내 쥐포 될까 하나니’라는 대목은 더욱 재미있다.
사설시조의 묘미는 풍자와 해학에 있는데, 이 작품은 풍자와 해학을 충분히 잘 살리고 있다. 시에 대한 비판, 그것은 달리 말하 면 시에 대한 애정이다. 정(定), 반(反)의 과정을 거친 후에 얻게 되는 합(合)의 변증법은 시인이 바라는 시의 참모습이기 때문이다.
<시풀이:김민정 -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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