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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로컬럼 연재

대숲 아래서 / 나태주, 2024. 02. 05

by 시조시인 김민정 2024. 3. 31.

[김민정 박사] 대숲 아래서

김민정 박사님 조회수: 4,193 등록일: 24.02.05 댓글수: 0 공유share 링크복사

 

1 / 바람은 구름을 몰고 / 구름은 생각을 몰고 

/ 다시 생각은 대숲을 몰고 / 대숲 아래서 내 마음은 낙엽을 몬다. 

 

2 / 밤새도록 댓잎에 별빛 어리듯 / 그을린 등피에는 네 얼굴이 어리고 / 밤 깊어 대숲에는 후둑이다 가는 밤 소나기 소리 / 그리고도 간간이 사운대다 가는 밤바람 소리.

 

3 / 어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 / 어젯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 / 자고 나니 눈두덩엔 메마른 눈물 자죽, / 문을 여니 산골엔 실비단 안개. 

 

4 / 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가을, / 해 지는 서녘 구름만이 내 차지다. / 동구밖에 떠도는 애들의 소리만이 내 차지다. / 또한 동구 밖에서부터 피어오르는 / 밤안개만이 내 차지다. / 하기는 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것도 아닌 이 가을, /저녁밥 일찍이 먹고 / 우물가에 산보 나온/ 달빛만이 내 차지다. / 물에 빠져 머리칼 헹구는 / 달빛만이 내 차지다.  

- 나태주, <대숲 아래서> 전문      

 

나태주 시인의 이 작품은 1971년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1973년 동명의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시다. 자연 속에서 느끼는 임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작품이다. 가을날 대숲을 흔드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상념에 젖어 임을 떠올리는 화자는, 임을 향한 그리움과 임을 잃은 상실감으로 슬픔에 젖어 있다. 하지만 또 자연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 있음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표현상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는 각 연에 번호를 부여하여 각 연의 독립성을 부각하고 있다. 둘째는 화자의 내면 상태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셋째는 시구의 반복적 사용으로 운율을 형성하고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주제는 무심 무욕의 삶을 추구하며 자연을 통한 상실감의 극복이다. 

 ‘1’연에서는 상념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인 바람으로 시작하여 연쇄적으로 시상이 전개되고 있다. 즉 바람→ 구름→ 생각→ 대숲→ 내 마음→ 낙엽으로 연쇄적인 전개를 보이고 있다. 1연에서는 상념을 불러일으키는 대숲 바람을 말하고 있다.  

 ‘2’연에서는 대상들이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그을린 등피에 어린 네 얼굴’과 ‘밤 소나기 소리’, ‘밤바람 소리’는 ‘너’에 대한 그리움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너에 대한 그리움을 말하고 있다. 

 ‘3’연에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 ‘눈두덩엔 메마른 눈물 자죽’, ‘실비단 안개’ 등의 소재로 ‘너’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감을 말하고 있다.  

 ‘4’연에서는 ‘서녘 구름’, ‘떠드는 애들의 소리’, ‘밤안개’, ‘달빛’ 등의 소재로 화자는 위로를 받고 있다. 임에 대한 상실감으로 인한 슬픔은 모두가 내 것만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자연 속에서 화자는 심리적 위안을 받게 되는 것이다. 또한 달을 통해 화자는 깨닫는다. 임에 대한 그리움, 임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에 젖어 있던 마음이 우물에 비친 달을 보면서 화자는 그것만이 ‘내 차지다’라는 시구로 슬픔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우물에 비친 달을 통해 ‘너’를 온전히 가질 수 없지만 너에 대한 그리움 또는 추억은 가질 수 있음을 깨닫는다. 

짧은 4편이 모여 한 편 시를 이루는 이 시는 각 연에 번호를 부여하여 각 연의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화자의 내면 상태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고, 4연 이하에서는 ‘내 차지다’라는 시구를 다섯 번이나 반복하여 사용함으로써 운율을 형성하는 동시에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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