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민정 논문.평설

미의식의 측면에서 본 졸 - 김민정 논문 3

by 시조시인 김민정 2009. 7. 26.

"拙"의 美學

宇玄  김민정

 

 

1. 서론

 

  '어떻게 읊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미의식(美意識)의 측면이다. 조선시대의 강호가도(江湖歌道)는 규범성(規範性)이 짙다. 그러나 규범성만으로는 생을 충족시킬 수 없는 것이고, 하물며 자연(自然)을 대할 때에는 규범성보다도 선험적(先驗的) 미감(美感)이 앞서는 것이고 보면, 규범성이 있다면 그것은 미감 속에 용해굴절(溶解屈折)되어 미의식으로 나타난다.


2. “졸(拙)”의 개념

 

  졸(拙)이란 형사억제(形似抑制), 담박(淡泊)으로 나타나는 정신(精神) 또는 이념(理念)을 말한다.


  잘새는 도라들고 새달이 도다온다

  외나모 다리로 홀로 가는 져 禪師야

  네 절이 엇매나 하관다 遠鐘聲이 들리나니 (俛仰亭)


  위 시조에서 ‘잘새,새달,외나모다리,선사,절,원종성’등이 개체(個體)의 리얼리티로 나타날 뿐, 개체의 ‘리얼리티 표현’의 결여(缺如)로 문인화(文人畵)의 산수화(山水畵)를 보는 듯한 담박함이 나타난다. 개체는 전체성(황혼의 정적)을 나타내기 위한 단순한 소재로 제시되었다. 그리하여 이 작품의 전체는 졸하다. 즉 전체성인 정적이 표현상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은 다른 말로 형사(形似)가 전무(全無)하다고 할 수 있다. 형사억제의 양식화(樣式化)가 여백이며, 이것은 동양화에 잘 나타난다.  


3. “졸(拙)”이 표상되는 양상

 

  1) 그림(畵)으로 표상되는 졸  

 

   중국 오대(五代) 이후 특히 남송시대에 산수화의 경향은 장식적이고 사실적인 원칙에서 점점 변화되어 남송말엽 문인화적 회화가 나타난다. 그것은 대상의 겉모양에 구애되지 않고 이를 대담하게 생략하면서 사물의 진실된 모습, 즉 진면목만을 그리는 것을 말한다.

  피칼트는 “근대예술의 Atom화’를 비판하는 글에서 중국회화의 여백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화가가 그린 한 폭의 그림, 가령 한 송이의 꽃을 보고 있으면, 거기에는 꽃나무의 전체 또는 봄의 전체를 느낀다. 한 송이의 꽃은 화면에는 보이지 않게 그려져 있는 꽃나무 전체의 일부분이고, 그 주변에는 공간이 숨 쉬고 있다. 눈에는 보이지 않으면서 숨 쉬고 있는 이 여백에 무엇인가를 그려 넣고자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하여 여백은 단순한 공백의 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개체에 대한 비집착’이고, ‘전체성의 함축’이다. 여백에 있어서는 形似는 최대한도로 억제된다.

 

  완당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와 고람 전기의 <계산포무도(溪山葡茂圖)>에서는 형사억제(形似抑制), 즉 감각적 박진성을 억제해온 문인화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형사억제의 양식화인 여백을 통해 <세한도>의 것은 송백(松柏)의 ‘고절(孤節)’을 <계산포무도>의 것은 계산풍경의 ‘소요(蕭寥)’를 각각 함축하여 전체성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조선의 도자기 공예인 백자에서도 拙의 미가 나타난다고 할 수 있는데 조금도 꾸밈없는 천연의 미가 나타나고, 문양(文樣)에서도 형사억제가 나타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완당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

 

  2) 詩로 표상되는 졸

 

    ① 여백(餘白)의 표현에 관한 고찰


       우는 거시 버구기가 푸른 거시 버들숩가

       이어라 이어라

       漁村 두어 집이 냇속의 나락들락

       至菊悤 至菊悤 於思臥

       말가한가픈 소희 온갖 고기 뛰노나다. (고산의 어부사시사)


  위 고산의 어부사시사에는 물외한인(物外閒人)의 우유(優遊)하는 심경을 흔적없이 나타냈다. 개체에 비집착(非執着), ‘나락들락’은 보았다 말았다하는 개체의 상황인 동시에 보는 듯 마는 듯한 비집착의 경지이다. 여백은 중국회화의 미의식이나 이것은 詩,書,畵 일치관에서 시적 미의식이 되기도 한다.


    ② 졸(拙)의 내용에 대한 고찰 (면앙정, 고산 시조)


    ‘격정(激情)의 결여(缺如)’가 나타나는데 그 이유로 하나는 규범성에서 말미암았고, 또 하나는 여백의 미의식(비집착은 개체에의 감정이입 억제)이다.

   

      九曲은 어드매고 文山에 歲暮커다

      奇巖怪石이 눈 속에 뭇쳤셰라

      遊人은 오지 아니하고 볼 것 업다 하드라. (고산구곡가)


  이 작품은 참으로 淡泊하다. 담박함이 지나쳐 무미건조(無味乾燥)할 정도다. 묵화를 보는 듯한 작품으로 여백의 표본적 작품이다.


    ③ 박(樸)의 내용에 대한 고찰


      삿갓세 되롱이 닙고 細雨中에 호믜 메고

      山田을 홋매다가 綠陰에 누어시니

      牧童이 牛羊을 모라 잠든 날을 깨와다. (무명씨) 


  목가적인 전야(田野)풍경이다. 담박함이 태고연(太古然)한 박(撲)을 풍기는데 그것은 졸(拙)하기만 하다. 형사(形似)되지 않은 박(撲)이다. 여기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농부는 돌을 베고 잠이 들어 가슴팍과 허리는 제 멋대로 드러나고 짚신 한 짝이 저만큼 팽개쳐져 있는 그런 자세, 또한 목동은 소 가운데가 아닌 소허리에 비스듬히 앉아 있는 듯한 그런 풍경을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나타나는 졸은 천연(天然)이고, 그것이 서정(抒情0임을 알 수 있다. 내용의 박(撲)과 표현의 담박이 일치한다. 그래서 여기서 표상(表象)된 자연은 의구(擬構)된 자연이다. 그것은 실제가 아니며, 심의(心意)에서 꾸며진 자연인 것이다. 그것은 관념적(觀念的) 서정이 아니라 미의식적(美意識的) 서정이다.

 

4. 拙의 미의식이 갖는 문학사적 의의

 

  1) 강호가도(江湖歌道)의 ‘단세포적 서정(單細胞的 抒情)’에 대한 반발


  단세포적 서정이란 첫째 관념의 표징으로서의 자연, 둘째 추상화된 자연이다.

  첫째의 관념의 표징이란 규범성(規範性)을 말하는 것으로, 예를 들면 송국(松菊)이 때로는 고절(孤節)이 아닌 다른 관념의 표징으로도 될 법한데, 결과는 그렇지 못했으니, 이 단일성으로 말미암아 이 경우의 서정은 단세포성이 된다.

  둘째 송국에서 표징되는 관념은 한번 굴절하면 청초(淸楚), 숭고(崇高) 등의 미의식(이 때의 미는 理念美)이 있지만, 그 미의식을 찾기 전에 고절만을 상징했기 때문에 추상화된 자연이라 할 수 있다.

  무명씨의 ‘삿갓세...’,조헌,정철의 시조들에 표상된 자연은 졸(拙) = 박(撲)이다. 졸은 단순성인데 발레리는 이 단순성을 두 가지로 보고 있다. “하나는 결핍에서 오는 소박한 단순성이고, 또 하나는 과잉에서 우러난 탐닉(耽溺)에 환멸을 느낀 때문에 나타나는 단순성이다.”

  위의 시조들은 자연의 관념표징화(觀念表徵化) 및 자연의 추상화(抽象化) 등의 과잉과 탐닉에 대해 염증을 느꼈을 때 단순성이 요구되었기 때문에 씌어진 작품으로 볼 수 있다. 


  2) 역사적 시간의 망각

 

  ‘의구된 자연과 귀거래인(歸去來人)의 독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본다면, 독선은 현실과의 단절을 의미하며 현실에 통하는 문을 닫아버림으로써 현실외적 존재로서 자처하는 것이다. 현실외적 존재란 불가능하다. 다만 관념으로만 가능했고, 실제에 있어 불가능하다. 이에 고도(高蹈)가 형성되고 그 결과는 '태고(太古)의 박(撲)'을 꿈꾸어 그 속에 안주해 버림으로써, 역사적 시간을 잊고자하는 무위(無爲)다. 즉 관념의 공간에 가장 알맞은 것이 ‘의구(擬構)된 자연(自然)’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5. 결론


  ‘졸(拙)’의 미를 살펴보았다. 졸은 동양화에서는 형사억제 여백으로써 나타내는 전체성(全體性)이었고, 시가에서는 역시 여백이나 여유로써 표현되었고, 내용은 박(撲)이었다. 이것은 조화(造化)의 미이고, 진실(眞實)의 미이고, 순박(淳朴)의 미라고 볼 수 있다. 조화 중에서도 볼 수 있는 조화보다 감추어져 있는 조화이다.

  그리하여 한 폭의 수묵 산수화로서 실내에 있으면서 풍광을 볼 수 있고, 원숭이 울음과 새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한 편의 시가로서 마음은 근심,걱정 없는 무위의 상태가 될 수 있다. 즉 졸=박의 미란 이념(理念)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정신적 미라고 볼 수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