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연가
김민정(시조시인, 문학박사)
나뭇가지 창을 삼아 겨울산에 오릅니다
잎잎이 수액일 땐 아무것도 안 뵈더니
그 잎새 다 지고나니 말간 하늘 보입니다
억새꽃 뒤로 하며 겨울강을 건넙니다
은어떼 눈 맑음이 읽어내는 물소리로
묵언의 천 길 내 사랑
파문 지어 안깁니다
무지의 들녘에서 하늘을 보옵니다
소낙비 뒷걸음질 친 산마루 구름 저 편
눈송이 그대 맘 되어
내 안 깊이 내립니다
유지화, 「겨울 연가」 전문
지금은 겨울의 한가운데에 있는 느낌이다. 설이 1월에 있어 설이 지나고 입춘이 오겠지만 겨울의 차가운 맛이 제대로 느껴지는 요즘 날씨이다. 일 년 4계절이 뚜렷한 곳에 태어나 이러한 4계를 맛볼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르겠다. 뜨거운 사막지대가 아닌 또 1년 내내 얼음으로 덮힌 곳에 태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 계절 변화가 있어 우리는 변화에 잘 적응하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고, 그때 그때 빠르게 적응하며 지금껏 살아왔기에 적응력이 다른 민족에 비해 빠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고난극복을 유난히 잘하는 민족의 습성도 그런 것에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겨울 하늘은 유난히 청량하다. 더구나 산에서 보는 겨울하늘은 더 푸르고 맑다. 나뭇잎새에 가려서 안 보이던, 푸른 하늘이 가슴까지 내려와 더욱 마음까지 깨끗하게 닦아주는 느낌을 받는다. 위 시조의 첫수에서는 산에서의 시각적 맑음을, 둘째 수에는 물에서의 청각적 맑음을, 셋째 수에는 들녘에서의 시각과 촉각적 맑음으로 그것이 내 안 깊이 내린다고 한다. 겨울의 청량함 속에서 맑음을 추구하는 시인의 마음이 잘 나타나고 있다. ‘잎잎이 수액일 땐 아무것도 안 뵈더니’ 표현처럼 쓸데없는 욕망이나 욕심이 있을 때는 시야를 가려 안 보인다는 뜻도 들어 있다. 그런 것을 내려놓았을 때 주변이 비로소 맑게 잘 보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은어떼 눈 맑음이 읽어내는 물소리로’처럼 조용히 ‘묵언의 천 길 내사랑도 파문 지어 안기’는 것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 한 때 유명했던 드라마 ‘겨울연가’가 생각나기도 한다. 2002년 1월 14일부터 2002년 3월 19일까지 KBS 2TV에서 방영된 총 20부로 제작되었던 월하드라마. 강준상역 배용준과 정유진역 최지우의 열연이 재미있어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보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일본에서 한류의 시초가 된 작품으로 한국 드라마 사상 처음으로 일본 메이저 지상파(NHK)로 방영된 것은 물론 한국어 그대로 방영된 작품 중에서도 최초라고 한다. 남이섬의 멋진 겨울 풍경이 인상적이기도 했던 작품이어서 촬영장소였던 남이섬이 관광지로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한 남자와 여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린 드라마로 출생의 비밀, 기억상실증, 교통사고 등으로 구성된 작품이면서도 애절한 인연, 절절한 사랑이 시청자들을 몰입으로 끌고 갔던 것 같다. 조금은 진부할 수 있는 내용임에도 아름다운 영상미와 두 주연의 외모, 멋진 주제곡 등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고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눈 오는 겨울이면 한 번쯤 생각나는 드라마다.
겨울이 지나가고 있으니 봄도 멀지 않았다. 설이 지나고 입춘이 오면 남쪽의 매화 소식도 들려올 것이며, 봄은 서서히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더 멋지고 행복하게 다가올 봄을 기다리는 마음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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