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서정속의 서사 영동선
‘영동선의 긴 봄날’은 영동선 철로변에 오래 사셨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서정성이 짙은, <서정서사시조>로 표현해 보려고 시작(詩作)한 것이다. 지금도 아버님은 생전에 사시던 영동선 철로변 양지녘에 누워 계시고, 얼마 후면 그곳의 지그재그 철로인 스위치백의 철로가 사라지게 된다. 일제시대에 생겨 지금껏 긴 역사를 누려온 영동선과 일제시대에 태어나셔서 영동선과 함께 사시다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역사를 함께 다루어보고자 했다.
이 작품들은 어려운 시대(1912년~1968년)에 태어나 힘들게 삶을 살아간 한 범인이었던 아버지 생의 역사이다. 이를 통해 일제시대, 육이오, 4.19혁명 등의 격변하는 시대를 살아야했던 우리 민족의 역사를 표출해 보고 싶었다. 그것이 역사의 전부이거나 역사 그대로를 드러내지 않는 아주 작은 파편일지라도 평범한 한 인간의 삶 속에 어떻게 투영되고 반추되었는지를!
아버지는 57세의 짧은 인생을 사시면서 시골우체부, 선로반직원, 건널목지기 등의 직업을 가지셨고, 한 때는 일제의 권유이민으로 만주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탈출해 오신 분이다. 이민을 갈 때는 자유롭지만, 한 번 가면 거주이전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고, 여건이 좋지 못했던 그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감시를 철저하게 하는 바람에 고국에 다시 돌아오기는 아주 어려웠다고 한다.
환언하면, 이 시집은 서정성을 바탕으로 아버지의 삶과 영동선 철로의 역사를 이야기시조로 풀어내어 이른바 서정과 서사를 아우른 <서정서사시조>를 써 보려고 시도한 작품이다. 이 시집의 작품들이 개인이야기의 차원을 넘어 한 시대의 역사로서 독자들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작품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작품들은 격월간지인 『좋은 문학』(2004.4/5월호~2008. 3/4월호)에 ‘영동선 철로변에’란 제목으로 연재했었다. 시집으로 엮으면서 작품순서 및 내용이 수정된 곳이 있음을 밝혀둔다. .
2008. 04. 01
우현 김민정(宇玄 金珉廷)
영동선[嶺東線]
경상북도 영주시 휴천동 영주역에서 강원도 강릉시 교동의 강릉역을 잇는 총길이 193.6㎞인 단선철도이다. 1963년 5월 기존의 영암선(영주-철암)· 철암선(철암-북평)· 동해북부선(북평-강릉)을 하나로 합쳐 영동선이라 개칭했다.
1933년 5월 삼척-북평 간 23㎞가 개통된 것을 시작으로 1940년 8월에 묵호-도계 간, 1951년 10월 도계-철암간, 1955년 12월 영암선, 1962년 11월 동해북부선이 개통됨으로써 전구간이 연결되었다. 영동선은 영주에서 중앙선과 경북선에 연결되어 X자형 철도망을 이루며 전국을 하나로 연결하고 있다. 또한 동해역에서 북평선(동해-삼화)· 삼척선(동해-삼척)과 연결되며, 태백시의 백산역에서 태백선과 이어진다.
태백시와 삼척시 도계읍 심포리 구간은 해발 700m에 이르는 험준한 지형으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스위치 백(switch back) 시설이 되었으며, 1940년에서 1963년 사이에는 심포리와 통리구간에는 강삭철도<로프형철도>가 설치되었으나 1963년 5월
8.5㎞에 이르는 황지본선을 건설해 이 시설은 폐지하고 황지본선도 영동선에 포함되었다. 1975년 12월 철암-동해 간 61.5㎞를 전철화했으며, 1997년 3월 영주-철암
간 87㎞ 전철화 사업을 완료했다.
영동선은 태백산맥을 동서로 관통해 동해안을 연결하는 산업철도로, 태백산 지역의 지하자원과 삼림자원을 비롯해 동해안의 수산자원을 신속하게 운송함으로써 한국의 경제발전에 큰 몫을 담당했고, 이 지역의 산업개발을 촉진시키고 있다. 또한 동해안의 명승지와 관광지 개발에도 큰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국방상으로도 중요한 철도이다.
국방일보와의 만남
宇玄 김민정
‘시의 향기’란을 맡으면서 그동안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던 국방일보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처음에는 한 주는 자작시조와 창작동기, 한 주는 다른 시인들의 시를 실으면서 해설을 곁들이게 되었다. 차차 좀더 많은 시인과 시들을 소개하기 위하여 나의 시조는 한 달에 한 편씩만 소개하고 다른 시인들의 작품을 많이 소개하게 되었다. 그리고 작품이 실린 시인들에게는 국방일보를 꼭꼭 챙겨 보내주었다. 그러다 보니 주변의 시인들에게 국방일보가 알려지게 되고 시인들도 국방일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게다가 국방일보에 실린 작품을 영상시로 만들어 전국의 문인, 교수, 교사, 학생, 교육부, 교육청, 경찰청, 감사원 등등에 메일을 보내주다보니 국방일보는 자연히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그동안 무관심하였던 국방일보에 그들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2년 동안 변함없이, 일주일에 한 번씩 시감상을 쓸 수 있는 지면을 할애해 준 국방일보에 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국군장병에게는 시의 향기, 문학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기회를, 시인들에게는 지면을 통해 젊은 독자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나에게는 작가와 독자를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맡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때때로 국방일보를 본 군인들이나 일반인들이 내게 전화를 걸어 시가 좋다면서 칭찬을 하기도 했고, 때로는 아는 시인의 시가 실렸다면서 그 시인들의 주소나 전화번호를 묻기도 하여 내게 긍지를 갖게 해 준 것에 또한 감사한다.
국방일보를 통해 국방의 여러 모습과 각종 군사용어, 군인들의 활동 모습들을 알게 되어 국방에 대해 조금은 유식(?)해 지기도 했다. 또 아침단상, 병영칼럼, 종교와 삶 등의 글을 통해서는 인생에 대해 폭넓은 사고를 할 수 있게 되기도 했고, 문화면을 보면서 평소에 관심을 안 가졌던 연예인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한편 군에 간 제자들이 신문을 보고 반가와서 연락을 해 오기도 했고 제대를 한 제자들이 찾아오기도 하여, 그동안 잊고 지내던 제자들을 다시 만나는 징검다리 구실도 해주었다. 그러다 보니 국군장병들이 모두 사랑스런 제자들 같이만 느껴져 친근감이 가기 시작했고, 이제는 길에 지나다니는 국군만 봐도 다시 한 번 쳐다보게 되어, '관심과 무관심의 차이가 이런 것이구나'라는 실감을 하게 되었다. 인생은 이렇게 모르는 것을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 그리고 새로운 인연과의 끊임없는 만남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요즘 나는 ‘시의 향기’란에 자유시보다는 시조를 많이 소개하고 있다. 제7차 교육과정에서 우리의 오랜 전통시가인 시조를 소홀히 하여 중학교 교과서에 자유시 64 편을 실으면서 현대시조는 겨우 2편을 실어놓았다. 고등학교 교과서도 비슷한 실정이다. 때문에 문단 쪽에서도 많은 비판을 하고 있, 당연히 비난을 받아야 한다.
시조가 고려 말엽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정서에 잘 맞고 우리의 호흡에 잘 맞아 우리의 언어생활과 일치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조는 3․ 4조의 4음보라서 우리들이 흔히 쓰는 어휘와 호흡과 잘 어울리기 때문에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자기의 전통, 자기의 뿌리가 소중한 줄 모르는 나라와 국민은 어리석다. 우리에게는 우리만이 내세울 수 있는 우리의 말과 글이 있고, 좋은 문학의 형식과 내용이 있는데도 그것을 사랑하고 활용할 줄 모른다면 주체의식이 없는 민족, 정체성이 없는 민족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민족은 스스로 현명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 것을 사랑하고 우리 것을 널리 다른 나라에 알려야 한다. 시조를 알고, 사랑하고, 창작하고, 번역하여 여러 나라에 알려야 할 때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시의 향기’란에 현대시조를 많이 소개하고 있다. 앞으로 내게 좀더 지면이 주어진다면 해학과 풍자가 실린 재미있는 사설시조 등 소개하고 싶은 작품들이 아주 많다.
내게 많은 기쁨과 도움을 주고 있는 국방일보의 창간 41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앞으로도 국군장병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국군문화의 장으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민간인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고, 호응을 받을 수 있는 수준 높은 신문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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