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시조시인, 문학박사)
만월이 소리없이 토해낸 이슬 밟고
풀냄새 졸고 있는 새벽길 헤쳐간다
숨가쁜 달팽이 걸음, 축복으로 달래며
산골짝 바람 소리 온몸을 감는 순간
검붉게 하늘 뚫고 도도히 솟는 얼굴
천지간 손가락 걸고 복된 나날 맡긴다
쿵덕쿵 가슴달래 화살기도 날리면서
간절한 긍정의 힘, 온 세포 혼을 모아
겹겹산 인연의 굴레, 저 혼불에 기댄다
- 우형숙, 「일출」 전문
언제나 아침이면 해가 뜨는 일출이 시작되지만, 언제 보아도 신비롭고 신선하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란 소설을 보면 마지막 장면에서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 것'이라며, 불안과 근심을 잠재우는 주인공 스카렛 오하라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렇다. 어김없이 아침이면 떠오르는 태양이 있어 우리는 내일이 틀림없이 오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안심하고 잠자리에 들고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동해의 일출을 보기 위해 밤을 통해 정동진으로 달려가던 젊은 날들이 있었다. 밤기차에 몸을 싣고 청바지에 통기타를 둘러맨 젊은이들이 송창식의 고래잡이를 열심히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밤기차를 타고 새벽에 내려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돋이를 보면서도 피곤은 커녕 즐겁기만 하던 날들이었다. 결혼 후에도 몇 번 일출을 보러 동해로 갔다. 때론 가다가 대관령을 넘어가다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기도 했고, 때로는 솔비치의 새벽 침대에 누워서 해돋이 구경을 한 적도 있었다. 그 후에도 많은 일출을 볼 시간이 있었다. 그때마다 일출은 새롭고 신선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장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형숙시인은 일출을 보면서 '간절한 긍정의 힘, 온 세포 혼을 모아/ 겹겹산 인연의 굴레, 저 혼불에 기댄다'고 새롭게 태어나는 해를 보면서 인연에 대한 기원을 하고 있다. 모든 인연에 대해 긍정적으로 대할 것을, 긍정의 힘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일출을 바라보고 있으면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라는 작품도 생각난다. 묵호 등대가 세워진 곳에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라는 작품이 새겨져 인상적이었던 기억…. 그가 시를 구상하던 시간도 이처럼 해가 솟는 아침이 아니었을까.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해돋이.
박두진의 「해」라는 작품이 생각나기도 한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너머 산 너머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너머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 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에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서, 애띠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일제의 암울한 시대에 해처럼 밝은 시대가 오기를 바라며 썼던 작품일 것이다. 늘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하는 해돋이! 내일도 더 멋진 태양이 온 누리에 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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